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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54화 (354/424)

0035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번 일을 허락받기 위해 고현호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Rrrr

“그래. 마 팀장. 오늘 들어온다고?”

“네. 상무님. 원래라면 이번 일은 포기하고 새로운 타킷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원래라면? 그렇다는 건 계획이 바뀌었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전화를 드리는 것도 그걸 허락받기 위해서고요.”

“그건 마 팀장이 알아서 해. 나야 마 팀장 일이라면 뭐든 밀어줄 생각이니까.”

언제나 그렇듯 고현호 상무는 신뢰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나를 지지해줬다. 가끔은 그런 믿음이 부담될 때도 있지만 이런 전폭적인 신뢰는 내게 큰 힘이 될 때가 많다.

“그게······. 상무님. 이번 일은 아무래도 사안이 많이 커서요.”

“사안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 천하의 와룡그룹도 흔들어놨던 친구가 새삼스럽게. 왜? 이번에는 사성그룹이라도 건드려 보려고? 괜찮아. 마음껏 해. 일등이든 이등이든 한 끗 차인데 뭔가 문제가 되겠어.”

우리나라 재계서열 1위의 사성그룹.

고현호 상무는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재계서열 1위 사성그룹과 2위 와룡그룹 꽤 넓은 강이 흐른다. 그냥 순위만 한 끗 차이일 뿐 두 그룹을 비슷한 레벨로 평가하는 건, 사성그룹에 대한 모욕이라고 할 만큼 둘 사이에는 엄청나게 넓고 긴 강이 자리잡고 있다.

사성그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 항간에는 이런 솔 정도로 그 파워와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가히 압도적이 위용이며 그래서 과장을 조금 보태 대한민국을 사성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비꼬는 뜻으로 시작된 말이지만 이제는 경외심을 담은 의미로도 사용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사성그룹의 영향력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그러니 사성그룹을 건드려도 된다는 건 대한민국을 완전히 뒤집어 놔도 뒤를 봐주겠다는, 고현호 상무의 굉장한 자신감이 담긴 발언이었다. 확실히 동지마트의 성공 이후 그의 모습은 과거보다 더욱 당당해지고 배포가 커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건 단순히 대한민국을 뒤집는 수준이 아닌 게 문제였다.

“크흠······.”

“응? 반응이 뭐가 그렇게 뜨뜻미지근해? 사성그룹도 괜찮다고 해줬으면 좋아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게 더 필요해? ······ 너 설마? 부족한 거야?”

“아니었으면 제가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런 전화를 드리지 않았겠죠. 좀 국제적으로 크게 사고를 한 번 쳐보려고요.”

“국제적으로?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건데?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다나카 아크로바틱 사이의 제휴계약은 이미 체결되었다며? 혹시 테러 이런 걸 준비하는 건 아니지?”

“일종의 테러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마 팀장. 자꾸 그렇게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해줘. 그래야 나도 대책을 세울 거 아니야?”

“네. 그래야죠.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 키사라이 에이지 그 자식 때문에 완전히 열 받았습니다. 그 또라이가 글쎄 정 과장에게 입에 담지 못할 성희롱을 하지 뭡니까? 진짜 그 개자식 그만 안 둘 겁니다.”

생각만 해도 열이 받은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성희롱?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 과장이 자기랑 자주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계약을 포기할 수도 있답니다.”

“무··· 뭐가 어째? 뭐 그런 개자식이 다 있어? 마 팀장! 그런 미친 또라이 새끼를 가만뒀어?”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의 제안에 혹시라도 솔깃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역시 고현호 상무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 안 두려고요. 원수는 제대로 갚아줘야죠.”

“어떻게?”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일본 기업인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파트너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계약까지 한 마당. 그 계약을 무효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나카 아크로바틱 측에 계약 이행을 위한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생겨야겠지?”

“그렇죠. 그런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결격사유를 만들어내긴 힘듭니다. 그들이 운영하는 소쇼 프로그램도 상당히 과학적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약점을 잡기는 쉽지 않고요.”

“그래서?”

“내적인 요소를 문제 삼을 수 없다면 외적인 문제를 찾아봐야죠.”

“외적인 문제? 정치, 경제, 외교 이런 외적인 문제?”

“그렇죠.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이제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전범 국가 주제에 정말 갈수록 뻔뻔해져 가더군요.”

“그 뉴스 봤는데 나도 불쾌하더라. 그런데 그게 왜 결정적 결격사유가 되는 건지는 이해가 안 가는데?”

“중국 입장에서는 결격사유가 아니죠. 그런데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가 비단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죠. 만약 그 대상이 독도가 아니라 중국의 댜오위다오 그러니까 센카쿠 열도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센카쿠 열도? 그럼 뭐야? 너 설마······? 중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

“설마가 사람을 잡기도 하죠?”

“미친놈!”

그래. 내가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 분명했다. 일개 개인이 중국과 일본 사이의 분쟁을 일으킨다는 건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꿈도 꾸지 못할 행동이다.

하지만 미친 또라이를 상대하려면 나도 미쳐야만 했다.

“네. 미친놈 맞습니다.”

“음···. 그래, 와룡그룹 땅콩 스캔들 사태를 생각하면 아주 얼토당토않은 일은 아니야. 그 일 하나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으니까. 나라가 다를 뿐 동지그룹이 비밀리에 나선다면 여론 조성? 못할 것도 없지. 그런데 마 팀장.”

“네. 상무님.”

“마 팀장이라면 이미 고려했겠지만 자칫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희박한 확률이라고 해도 전쟁은 위험부담이 너무 커. 정말 사소한 계기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어. 트로이 전쟁을 봐. 고작 헬레나라는 유부녀 하나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잖아. 그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어?”

트로이의 전쟁.

트로이 전쟁의 원인은 결국 파리스의 심판 때문이었다.

파리스의 심판이 열리게 된 배경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이다. 결혼식 피로연을 위해 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황금사과를 하나 떨어뜨렸다. 사과 겉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에리스는 밤의 여신 닉스가 혼자 낳은 딸로 주로 고통, 전쟁, 살인, 싸움, 거짓 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나 여신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그 황금사과를 놓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었다. 세 여신은 옥신각신하다가 제우스에게 판결을 부탁했다. 영리한 제우스는 셋 중 하나를 택해 두 여신의 원한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고르는 일은 인간들 중 가장 잘 생긴 남자 파리스가 해야 한다고 둘러대 위기를 모면했다.

세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되기 위해 파리스에게 한 가지씩의 조건을 제시한다. 헤라는 아시아의 군주로 만들어 준다고 했고, 아테나는 전쟁에서 항상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으며, 아프로디테는 예쁜 여자와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다.

여기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손을 들어줬고,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인 헬레네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가지 분석이 많지만 누가 뭐래도 전쟁의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여자 한 명이었다.

신화 속 이야기지만 고현호 상무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봐도 사소한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굉장히 비일비재했다.

“상무님의 걱정이 뭔지는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몰고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중국 내 반일 감정 또는 혐일 감정을 고조시켜 일본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나게끔 유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정도로는 절대 전쟁은 안 일어납니다.”

“될까?”

“김학수 부장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분의 능력을 믿습니다. 땅콩 스캔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적절한 선을 잘 유지해 줄 겁니다.”

“흠···.”

“과거에도 중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그걸로 전쟁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게다가 불매 운동을 길게 유지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곧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파트너로 발표하고 공식적인 중국 진출을 선언할 겁니다. 타이밍은 바로 그때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시작부터 불매 운동이 일어나버리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 특히 조세핀 스톤 이사 측에서는 굉장히 마음이 다급해질 겁니다. 더글라스 에이얼리 회장이 의견까지 묵살한 채 독자적으로 추진한 일이 꼬이게 생겼으니 부담감이 굉장히 크겠죠.”

“그렇게 되면 조세핀 스톤 이사 측도 고민이 되겠군. 위험부담을 안고 다나카 아크로바틱과 함께 가느냐 아니면 다른 파트너를 정하느냐?”

위험한 일이라고 반대하던 고현호 상무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최악의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솔직히 거의 희박한 확률이다. 단지 동북아 국가 사이의 영토 분쟁이 워낙 예민한 문제고 자칫 한국, 중국, 일본 세 정부에 동시에 미운털이 박힌다면 동지그룹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배포가 커진 고현호 상무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중국 시장 진출을 선언하긴 했지만 아직 점포가 들어선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이미 여러 개의 점포가 있어서 막대한 손해가 예상된다면 모를까, 지금은 제로 베이스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어떤 비용 손실도 없이 다나카 아크로바틱과 결별을 선언할 유일한 기회죠.”

“투자 비용이 없으니 위험부담을 안고 가기보다 새로운 파트너를 선택하는 게 낫겠군.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파트너로 선정했으나 중국 국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결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한다면 여론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고. 둘째는?”

“둘째. 이미 중국 시장 진출을 선언한 마당에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 그렇군! 파트너를 바꾸는 것도 망신인데, 새로운 파트너를 선정하느라 중국 시장 진출이 늦어지면 그건 정말 개망신이겠지. 더군다나 라이벌 회사에게 대비할 시간까지 주는 셈이니 월드 베리어스 클럽 입장에서는 이중고에 처하는 셈이네.”

“그럼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조세핀 스톤 이사 측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미 검증이 완료된 곳을 새로운 파트너로 정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곳은 바로 우리 D&Y 피트니스 센터고 말이야?”

역시 척하면 척이었다.

“맞습니다. 어떻습니까, 상무님?”

“땡겨. 느낌이 아주 괜찮아. 월드 베리어스 클럽 입장에서는 처지가 다급해졌으니 협상에서는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겠고.”

“그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죠.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다나카 아크로바틱과의 제휴 협상에서 상당히 큰 양보를 얻어냈지만, 우리를 상대로는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쪽이니까요.”

“좋아. 그럼 마 팀장 의견대로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상무님. 제가 한국으로 가는 동안 김학수 부장와 기획마케팅부 부원들을 모아 지금 프로젝트, 꼼꼼하게 재검토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급하게 짜낸 계획이라 빈틈이 많을 수 있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할 테니 마 팀장도 조심해서 오라고.”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상무님.”

============================ 작품 후기 ============================

기업의 이익을 위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깨트린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좀 많이 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양아치에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거든요. 될 수 있으면 독자님들이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적절한 선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속도가 느려서 분통을 터트리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빨리 진행하고 싶지만 마무리 단계라서 그런지 잘 안 되네요. 그런 부분에 대한 수정은 나중에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느리더라도 꼬박꼬박 마무리될 때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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