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자! 그럼 마 팀장도 도착했으니, 회의를 시작하자고.”
인천 공항에 내린 우리는 곧바로 동지그룹 본사로 향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회의가 시작되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곧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중국 시장 진출을 선언할 예정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그리 많은 시간은 없었다.
“조 차장님이 진행하시죠.”
조기훈 차장이 고현호 상무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 고작 한 살이지만 고현호 상무는 언제나 예의 바르게 존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알겠습니다. 상무님. 우선 일본 출장을 다녀와서 쉬지도 못하고 본사에 합류한 네 사람.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분초가 다투는 급한 상황이니까요.”
“우리는 네 사람이 한국으로 오는 동안 마 팀장이 제안한 이번 계획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 갔지만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위험부담이 있긴 해도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엄살을 피워도 역시 마 팀장의 잔머리는 알아줘야 한다는 겁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조기훈 차장 덕분에 굳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많이 풀렸다.
“그냥 알아주는 것도 아니죠. 갈수록 일취월장을 하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한국 무대가 좁다고 국제분란까지 조장하려고 들겠습니까?”
“크흠···.”
“이크. 마 팀장이 노려보니 잡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가 검토해 보니 마 팀장의 계획 자체는 매우 빈틈이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탄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나 감탄이 나올 정도더군요. 그런데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간과했더군요.”
“그게 뭡니까?”
“마 팀장.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야. 우리나라나 일본과 달리 언론 통제가 비교적 잘 되고 있는 나라라고. 연예인 소식 같은 신변잡기 기사라면 모를까?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사는 쉽게 다루기 어려워.”
전화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생략했을 뿐 충분히 예상했던 문제였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러시아, 캐나다,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 4위의 거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죠. 더군다나 인구는 압도적인 세계 1위.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도 중앙 정부가 중국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잊지 마셔야 할 게 우리의 목표는 국가 안보 위협이 아닙니다.”
“그럼?”
“단지 중국인으로 하여금 반일 감정, 더 나아가 혐일 감정을 가지도록 조장하는 겁니다.”
“하지만 마 팀장님. 그런 감정을 가지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역시 댜오위다오 / 센카쿠 분쟁입니다. 그건 동북아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갈등 요소이기도 하고요.”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김수현 팀장이 날카롭게 지적해왔다.
“김 팀장님 말씀도 맞습니다. 그러지만 언론 논조가 ‘일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가 또는 ‘일본을 배척해야 한다.’가 아니라 ‘일본 기업 제품을 사용하지 말자.’ 정도라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런 소식을 껄끄러워하는 지방 정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뇌물을 쓰는 수밖에요.”
“뇌물을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중국에서 뇌물을 잘못 받았다가 사형을 당한 고위관계자 소식은 뉴스에서도 가끔 볼 수 있잖아요.”
“그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금액을 해먹었기 때문이죠. 그쪽 고위 관계자들이 해먹은 비리 금액 규모가 우리나라 국방부 일 년 예산보다 많을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큰 금액을 뇌물로 줄 필요도, 줄 여력도 없습니다. 혹시 ‘꼭 뇌물을 줘야 해?’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필요합니다. 중국은 뒷돈 없이는 아직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요. 사실 뭐··· 우리에게는 일종의 필요악이죠.”
“필요악이라는 말씀 저도 인정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뒷돈을 전달할 계획이신가요?”
“정체를 감추고 대리인을 내세워야죠. 굳이 우리가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그 정도 일은 가능할 겁니다. 물론 대리인은 믿을 만한 사람으로 물색해야겠지요. 먹고 튀어버리면 큰일이니까요.”
“그런데 마 팀장.”
“네. 부장님.”
이번엔 김학수 부장이다.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질문을 해대니 마치 청문회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을 받으면서 고민을 하다 보니, 내 생각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행히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중국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안 좋은 편이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그거 정말 반가운 소식이군요. 그런데 마 팀장이 상무님에게 언급했던 기사 내용은 댜오위다오 / 센카쿠 분쟁이 아니라 독도 문제입니다. 그걸로는 중국 내의 반일 또는 혐일 감정을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그렇죠. 우리나라가 댜오위다오 / 센카쿠 분쟁에 별 관심이 없듯 중국도 독도 분쟁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건수를 만들어야죠.”
“어떻게요? 확실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을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찌라시 정보는 결국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니까요.””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장님.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해서 꼭 중국을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중국을 움직이기 위한 일인데 중국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니요? 아무리 마 팀장이라도 그건 좀 무리수 같은데요?”
“일본 언론을 움직이면 됩니다. 일본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니 여론몰이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물론 부장님이 우리나라에서 보여줬던 엄청난 파급력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다행히 일본에는 모두 아시는 것처럼 극우파 또라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센카쿠 문제로 조금만 자극을 주면 금세 발끈해서 중국을 지탄하는 시위를 벌일 겁니다. 잘 유도하면 중국 대사관 앞을 찾아가 항의하도록 유도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죠.”
“아··· 그럼?”
김학수 부장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중 시위를 중국에 알리는 거죠. 댜오위다오 / 센카쿠 분쟁과 곁들여서요. 자존심 강한 중국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일본 애들이 댜오위다오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더라.’, ‘일본인이 중국인 관광객들을 푸대접하고 바가지를 씌우더라.’. ‘일본 애들이 중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펼치더라.’ 그런 식으로 그냥 옆에 앉아 살짝 부채질만 하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중국도 일본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부추겨도 알아서 들끓어줄 겁니다.”
“그럴싸하군요. 나쁘지 않아요. 아니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접근 방식이 굉장히 신선해요. 중국을 직접 자극하는 게 아니라 일본을 통해 중국을 자극한다···?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한 일입니다. 마 팀장은 언제나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군요. 대단합니다. 항상 많이 배웁니다.”
“어휴··· 그건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아닌 걸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단순히 중국 애들이 좋아하던 이이제이를 살짝 비틀었을 뿐입니다.”
“오! 그 말 마음에 든다. 이이제이. 일본을 이용해 중국을 자극한다 이 말이지? 좋다. 좋아.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젝트 이름은 이이제이 프로젝트다.”
방방곡곡 프로젝트도 그러더니 가만 보면 고현호 상무도 일을 할 때, 은근히 이런 식으로 뭔가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하는데 재능은 없어 보인다. 방방곡곡, 이이제이. 왠지 들으면 들을수록 오글거린다.
“이이제이 프로젝트요? 상무님. 꼭 그렇게 오글거리는 이름을 붙여야겠습니까?”
“응. 꼭 붙여야 해. 원래 모든 일에는 이름을 붙여줘야 애정이 생기는 법이거든. 그렇다고 뭐, ‘키사라기 에이지 엿 먹이기 프로젝트.’, ‘다나카 아크로바틱 뒤통수 치기 프로젝트.’, ‘조세핀 스톤 돌 만들기 프로젝트.’ 이따위 이름은 구질구질해서 보기 싫잖아. 게다가 비밀을 요하는 일인데, 프로젝트 성격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문제고. 이이제이가 딱이야. 그러니까 반론 안 받겠어. 오케이?”
“네. 이사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자··· 그럼 혹시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이번 이.이.제.이. 프로젝트에 대해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그럼 이번 이이제이 프로젝트는 마 팀장 의견처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동수씨!”
“어이쿠. 하하하.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여긴 회사 앞인데.”
본사에 복귀해 회의를 마무리한 나는 시연이와의 데이트를 위해 재빨리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데 회사 앞 카페에서 기다릴 줄 알았던 시연이가 로비에서 나에게 덥석 안겨왔다. 이제 꽤 유명인이 된 그녀지만 그런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시연이였다.
“몰라요.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몸이 동수씨에게 달려나가더라고요. 헤헤.”
“그래도 이제 유명인인데···.”
“어때요? 그냥 남자 친구도 아니고 약혼자잖아요.”
“하하 그건 그렇지? 그런데 시연아. 오늘은 뭔가 달라 보이네. 아···! 구두. 내가 선물한 구두를 신었네?”
하얀색에 파란색 무늬가 들어간 원피스와 내가 선물한 지미추의 빨간색 구두를 신은 시연이는 평소보다 더욱 더 상큼한 매력이 돋보이고 있었다.
“네. 어울려요?”
“그럼! 정말 잘 어울려. 와···. 이렇게 잘 어울릴지 알았으면 진작에 선물할 걸 그랬다.”
“정말요?”
“응. 정말. 아··· 그런데 내 안목이면 이런 구두를 못 골랐을지도 모르겠다. 안목이 있다고 자랑하더니 확실히 조세핀 스톤 이사가 센스가 있네.”
“맞다, 동수씨. 조세핀 스톤 이사라는 분이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 구두까지 골라줬다고 해서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계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어떻게 보면 내가 당했다고 볼 수 있어.”
“동수씨가요?”
“응. 조세핀 이사가 다나카 아크로바틱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우릴 이용한 것 같아.”
“네? 그럼 구두를 골라주고 직접 선물까지 한 게 전부 쇼였단 말이에요? 정말 너무했다.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마음에 쏙 드는 구두를 선물 받아 좋아하던 시연이는, 조세핀 스톤 이사와 있었던 사정 이야기를 듣고 정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세상엔 고수가 많았던 거지. 한 수 배운 셈 치면 돼.”
“그래도···.”
“그리고 시연이 네게 보여준 호감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그렇게 실망하지 마.”
“동수씨는요? 동수씨는 괜찮은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어. 꿍꿍이가 보였어도 아쉬운 건 우리니까 그냥 모른 척 넘어간 거지. 그리고 이번 일 아직 포기 안 했어. 그러니 조세핀 스톤 이사와의 친분도 계속 유지해야 하고.”
오늘 시연이를 만나는 건 데이트도 데이트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하나 더 있었다.
============================ 작품 후기 ============================
최근 글이 잘 써진적이 거의 없지만, 이번엔 진짜 슬럼프인 것 같습니다. ㅠㅜ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할까? 슬슬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로또'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형가사'처럼 용두사미로 끝날까? 이런 고민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고요.
아우.. 역시 전 유리 멘탈의 작가가 분명합니다. 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늦지 않게 자정에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