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윽! 저 긴장돼요.”
“지금까지 잘 와 놓고 갑자기 왜?”
JFK 국제공항에 도착해 출입국 사무소까지 무사히 통과한 시연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동수씨도 알잖아요. 제 꿈이 단순한 아나운서가 되는 게 아니라 훌륭한 인터뷔어가 되는 거라는 걸요.”
“알지. 그래서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도 만나보고 싶다면서.”
“생각해보니까요. 오늘이 바로 그 첫 발걸음 같아서요.”
“뭐? 오늘이 무슨 날이라고?”
갑작스러운 발언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조세핀 스톤 이사를 만나는 게 제겐 일종의 예비 인터뷰 같은 거라고요. 저도 동수씨에게 이야기 듣고 그분에 대해 많이 조사했거든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진짜 대단한 사람이더라고요.”
“그럼. 당연히 대단한 사람이지 아직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이사 자리를 꿰찼으니까.”
“단순히 그런 사실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거 아세요? 조세핀 스톤 이사의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장애인이라는 거요.”
“조세핀 스톤 이사의 부모님이? 그게 정말이야?”
정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솔직히 조세핀 스톤 이사의 가정환경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게는 월드 베리어스 클럽 이사로서의 그녀가 중요했지 인간 조세핀 스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연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세핀 스톤 이사를 설득하려고 일본까지 건너갔던 내가 시연이도 조사하면 알 수 있는 그런 정보도 모른 체 면담에 임했다는 게 부끄러워졌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인데 나는 그런 기본조차 잊고 있었다. 그래놓고 다음에 만나면 조세핀 스톤 이사에게 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해 먹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다니······. 그동안의 거침없는 성공 가도가 나를 굉장히 나태하게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네. 아버지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고, 어머니는 귀가 들리지 않는대요.”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데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은 거야?”
“유명한 이야기던 데요? 그냥 조세핀 스톤이라는 이름으로 구글링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정보였어요.”
“겨우 구······ 구글링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모르고 있는 내가 참 한심했다.
“알아보니까 워낙 유명한 이야기더라고요. 미국의 한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뉴욕의 주목할 만한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되기도 했고요.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뉴욕의 주목할 만한 여성? 그런 프로그램은 처음 들어보는데. 어떤 내용이었는데?””
“힘든 일을 이겨내고 성공한 여성들에 대한 감동 스토리라고 보면 돼요.”
“거기서 조세핀 스톤 이사의 불우한 환경이 소개된 거고?”
“네. 원래 아버지는 정상인이었는데, 사고로 다리를 잃은 후 폐인이 되었다고 해요. 실의에 빠진 아버지가 일을 안 하면서 집안이 많이 어려워졌고, 그래서 조세핀 스톤 이사는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집안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대요.”
내가 큰 관심을 보이자 시연이는 신이 난 듯 조세핀 스톤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항 출구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본에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의 정보를 듣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조세핀 스톤이라는 여자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이 갔다.
12살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생 나이에 집안의 가장역할을 한 그녀. 사회생활이 어려운 부모님을 건사하며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절대 공부를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누가 봐도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그것만 잘 이용해도 먹고살기가 훨씬 편했을 텐데, 절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한길만 달려온 꿋꿋함에 참 대단함을 느꼈다.
‘물론 유혹이 많았다. 내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을 대가로 말도 안 되는 큰돈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게 아니라도 뭐하러 열심히 공부하느냐며 모델 등 외모로 편하게 먹고살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선택하면 내가 세상에서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를 지탱하는 건 자존심과 독기뿐이었다. 그게 무너진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았다. 그게 싫어서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수입이 좋은 모델일 조차 거절했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능력 있다는 칭찬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녀가 ‘뉴욕의 주목할 만한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 시연이는 그 말이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멋져 단숨에 외워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뉴욕 최고의 명문대인 컬럼비아 대학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부분에서는 저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모님을 먹여 살리면서 세계적인 명문 대학에 합격하는 건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인간 승리가 따로 없었다. 불과 2년 전 회사 생활이 어렵다고 징징거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질 만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그녀를, 나는 그저 아름다운 외모만 보고 너무 쉽게 판단했었다. 마치 금발이 멍청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처럼, 실력이 아니라 외모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얕보기까지 했었다.
“정말 대단하네. 난 솔직히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로 그 자리에 올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잘못 짚고 있었네.”
“다른 건 몰라도 동수씨를 오히려 역 이용한 사람이잖아요. 그것 하나만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요. 저도 그래서 더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것 같아요.”
“윽! 날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보기 좋게 당했는데 그런 칭찬을 받으면 부끄럽잖아.”
“동수씨가 대단한 건 누가 뭐래도 사실이잖아요. 제 약혼자라서가 아니라 아빠를 제외하고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동수씨만큼 대단한 사람은 한 번도 못 봤어요. 다른 걸 다 떠나서 동수씨가 만들어 놓은 방방곡곡 프로젝트는 조세핀 스톤 이사가 와도 절대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의 생활패턴 자체를 바꿔 버렸잖아요.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도 기죽지도 마세요. 제 눈에는 누가 뭐래도 동수씨가 최고예요!”
“하하하. 그래. 고마워. 그런데 시연아. 조세핀 스톤 이사가 대단하긴 한데······. 아니지. 잠깐만! 아까 그 여자가 뭐라고 했다고 했지?”
“‘외모에 대한 칭찬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능력 있다는 칭찬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거요?”
“아니. 그 전에. 그전에 했던 말이 뭐였지?”
“음··· 그럼 ‘뭐하러 열심히 공부하느냐며 모델 등 외모로 편하게 먹고살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선택하면 내가 세상에서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를 지탱하는 건 자존심과 독기뿐이었다. 그게 무너진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았다.’ 이거요?”
“그래. 바로 그거. 그 말이 좀 마음에 걸리네.”
그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동수씨. 혹시요······.”
“뭐 떠오르는 거라도 있어? 괜찮으니까 말해봐.”
“저는 조세핀 스톤 이사의 그 말을 들으면서, 그녀가 머지않은 미래에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회장 자리에 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주저주저하며 망설이던 시연이가 깜짝 놀랄 말을 내게 했다.
“뭐?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회장? 조세핀 스톤 이사가? 대체 무슨 근거로? 그녀가 대단한 인물이긴 한데, 세계적인 거대 기업의 회장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 아무리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다국적 기업의 이사에 올랐다고 해도, 회장 자리는 또 다른 거야. 단지 대주주에게 잘 보인다고 오를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반드시 이사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사진들의 성향은 굉장히 보수적이야. 여성 CEO? 세계적인 기업 중에 패션 계통을 제외하고 여자가 회장인 경우가 거의 전무한 것도 바로 이사회의 성향이 보수적인 이유가 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 자리는 금녀의 구역이나 다름없다는 걸요. 전에 제게 이야기했죠?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실제 소유자는 에저튼 가문이라고요.”
“그랬지. 원래는 형인 톰 에저튼이 동생인 찰리 에저튼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데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부인에게 위자료로 지분을 빼앗기면서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경영권까지 위험하게 됐다고 했지.”
“네. 그런데 조세핀 스톤 이사가 한 말을 보면서 그녀가 정확히 누구의 사람인지 알 것 같았어요.”
“누구의 사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찰리 에저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연이의 뉘앙스가 뭔가 좀 이상했다.
“영화배우 뺨치게 예쁜 여자 이사. 사람들은 당연히 찰리 에저튼과 모종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겠죠. 마치 아름다운 외모로 그를 유혹했을 거라고요. 그런데 조세핀 스톤 이사가 그랬어요. 자신은 절대 외모를 이용해서 먹고 살고 싶지 않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찰리 에저튼과는 아무런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누구? 설마······? 톰 에저튼의······.”
그제야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무언가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네. 톰 에저튼의 전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조세핀 스톤 이사가 톰 에저튼의 이혼한 전 부인의 대리인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까지 전부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니야. 단순히 대리인이 아닐 수도 있어.”
“네? 그러면요?”
“톰 에저튼의 전처, 그러니까 소피아 에저튼과 조세핀 스톤 이사가 예전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이라면 어떨까?”
“당연히 알고 있었겠죠. 그러니까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내 말은 그러니까. 음··· 단지 안면만 있던 사이가 아니라 아주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사실 소피아 에저튼이 톰 에저튼과 이혼을 할 때 왜 하필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지분을 요구했을까 궁금했었거든.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조세핀 스톤 이사가 있었다면 어떨까?”
“오히려 조세핀 스톤 이사가 배후라고요?”
“배후라는 말이 이상하다면, 조언자라는 표현은 어때? 소피아 에저튼이 톰 에저튼으로부터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지분을 요구하게 하고, 찰리 에저튼과 손을 잡도록 조언한 사람이 조세핀 스톤 이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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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서 예약을 걸어두고 어딜 좀 다녀왔더니, 뭔가 또 예약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네요. ㅠㅜ 본의 아니게 이틀동안 연재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