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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64화 (364/424)

0036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저에 대해서요? 어떤 걸 알아냈는지 궁금한 걸요?]

조사를 해왔다는 내 말에 찜찜한 얼굴이던 조세핀 스톤 이사의 얼굴이 변했다. 긴장된 표정이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감출 게 없다는 그런 자신감 있는 도도한 모습이었다.

어떤 표정이든 아름다운 얼굴. 나는 그 얼굴이 일그러지게 만들고 싶은 묘한 충동에 휩싸였다. 귀여운 아이를 보면 꼬집고 싶어지는, 하얀 스케치북을 보면 마구 낙서하고 싶어지는 그런 악동같은 심술이 오랜만에 되살아 난 것 같았다.

[‘뉴욕의 주목할만한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셨더군요.]

[아···. 그걸 보셨어요? 그쪽 케이블에 일하는 친구가 자꾸 졸라서 어쩔 수 없이 출연했어요. 볼만했나요?]

뉴욕 케이블에서 일하는 친구, 출판사 사장, 패션 잡지 편집장.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이사라서 그런지 인맥도 정말 다양했다.

[그럼요.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이사님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기더군요.]

[존경심이요? 조금 창피하네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닌데요.]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죠. 이사님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도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삶에 대한 열정, 고결할 정도로 드높은 자존감은 충분히 존경받고 남습니다.]

[네? 고결함이요? 호호호. 아부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저한테 뭘 바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드릴 수 있는 거였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게 있어서 아부하는 게 아니라 진심입니다. 정말 이사님이 나온 방송은 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휴우···. 방송에 나가고 창피했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그 친구가 저를 설득할 때 그랬거든요. 분명 내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요. 그런데 미스터 마가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호호호. 농담도 참···.]

[농담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저보다는 시연이가 더 감동을 받았죠.]

[션이요? 정말인가요?]

[그럼요. 시연이가 이사님을 똑 닮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머. 그건 정말 반가운 이야긴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션이 그런 말을 하다니, 제가 인생을 잘 살아오긴 했나 봐요. 그런데 미스터 마.]

[네. 이사님.]

[설마 저를 조사했다는 게 이게 전분가요? ‘뉴욕의 주목할만한 여성’ 2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본 게 전부? 그럼 좀 실망인데요.]

시연이 이야기에 흐뭇해 하던 조세핀 스톤 이사가 정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고작 칭찬 몇 마디로 벽을 허물만큼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요. 그렇지만 ‘뉴욕의 주목할만한 여성’이 제게 큰 영감을 준 건 사실입니다. 거기서 조세핀 이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물론 유혹이 많았다. 내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을 대가로 말도 안 되는 큰돈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게 아니라도 뭐하러 열심히 공부하느냐며 모델 등 외모로 편하게 먹고살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선택하면 내가 세상에서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를 지탱하는 건 자존심과 독기뿐이었다. 그게 무너진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았다. 그게 싫어서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수입이 좋은 모델일 조차 거절했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능력 있다는 칭찬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와···! 이번에는 조금 놀라운데요. 그 말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전부 외우다니요.]

[방금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제게 큰 영감을 줬다고. 그러니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죠.]

[대체 어떤 영감을 줬길래요?]

[사실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굉장히 재미있는 결과를 낳더군요.]

[계속 해보세요. 저도 궁금하네요.]

[‘만약에 조세핀 이사님이 찰리 헤밀턴이 아니라 소피아 헤밀턴의 사람이라면?’ 저는 이런 가정을 해봤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사실은 아닌데요. 저랑 소피아는 꽤 친한 사이 맞거든요.]

그녀는 친근하게 소피아 헤밀턴의 이름을 부르는 친근함을 과시했다.

[그냥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소피아 헤밀턴의 대리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대리자라기 보다는 배후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뭐라고요? 이봐요. 미스터 마.]

[혹시 불쾌하신 건 아니죠? 어디까지나 가정이니까요. 그냥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겁니다. 기분 나쁘시다면 그만하겠습니다.]

[······ 아니에요. 계속해보세요.]

여유 있던 얼굴이 살짝 굳어지는 걸 보며 나는 나의 가정에 확신을 얻었다.

[감사합니다. 듣기로 소피아 헤밀턴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이혼을 결심했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굉장한 부자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8억 불은 절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돈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그런 거애을 포기하면서까지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지분을 받아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죠.]

[그건 제가 이유를 알아요. 소피아는 톰 헤밀턴을 사랑했거든요. 그래서 그가 한눈을 팔았다는 사실에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 상처를 남편이 가장 아끼는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경영권을 빼앗는 걸로 대신하려고 했다?]

[그렇죠.]

[알려진 사실 그대로군요. 그런데 전 그게 쉽게 납득이 안 가더라고요. 잠깐 소피아 헤밀턴에 대해 조사를 해봤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전형적인 부잣집 귀부인이더군요. 그랬던 그녀가 남편이 가장 아파하는 것을 빼앗을 생각을 한다? 혼자 생각으론 어려웠을 겁니다. 분명 누군가 조언자가 있었겠죠. 톰 헤밀턴으로부터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알려준 조언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만, 그 사람이 조세핀 이사님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가정이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말이죠. 세상 물정 모르는 귀부인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여자가 바로 소피아 헤밀턴 같은 부류의 여자거든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자신을 절대 배신하지 않으리라 철석같이 믿는 사람. 그러니 누군가 그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미스터 마의 가정에 의하면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렇죠! 톰 헤밀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조세핀 스톤 이사. 그 사실을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하다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소피아 헤밀턴을 이용할 생각을 한 거죠. 놀라운 실력으로 이사 자리에 올랐지만 더 이상의 승진은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 왜냐하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을 지금의 자리에 올린 일등공신이 바로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이기 때문이죠. 그 남자가 버티고 있는 한 이사님은 절대 일인자가 될 수 없어요. 회사의 진정한 오너인 톰 헤밀턴 뿐만 아니라 이사회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을 밀어내긴 힘들겠죠.]

[그래서요?]

[그래서 조세핀 이사는 소피아 헤밀턴을 이용해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을 밀어낼 결심을 한 겁니다. 그 사람만 밀어낸다면, 소피아 헤밀턴과 찰리 헤밀턴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 조세핀 이사가 회장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굉장히 커질 테니까요.]

[후훗. 션의 피앙세다워요. 이런 멋진 추리소설을 쓰는 걸 보니 말이죠.]

산전수전을 거쳐 이사 자리에 오른 사람답게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말투 자체가 공격적으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죠? 나중에 이 이야기로 소설책을 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미국의 유력 가문 사람들의 애증과 아름다운 한 여자의 성공 욕망. 어때요?]

[좀. 식상하네요. 차라리 제가 톰 헤밀턴의 외도 상대였다고 말하는 건 어때요? 그게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요.]

[그런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이사님의 자존감이 너무 강해요. 게다가 ‘뉴욕의 주목할 만한 여성’에서 외모를 이용할 생각은 없다는 말도 진심으로 보였고요. 그렇게 쉬운 길을 선택할 생각이었다면 예전부터 그렇게 살았겠죠. 굳이 지금에 와서 행동을 바꿀 이유는 없잖아요.]

[병 주고 약 주는 건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다른 자리도 아니고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회장 자리라면 외모를 이용할 수도 있을 거라는···.]

[그래 봐야 월급쟁이 회장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월드 베리어스 클럽 자체를 준다면 모를까? 안 그래요?]

[호호호호호호. 좀 뻔뻔한 이야긴데 기분이 나쁜 건 아니네요. 미스터 마의 추측이 사실이라고 쳐요. 그렇다고 그걸 증명할 길이 있나요?]

이 정도면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증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전에도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건 유·무죄를 따지는 법정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죠. 단지 소피아 헤밀턴에게 이사님에 대한 불신을 심어줄 수는 있죠. 나약한 여자이니만큼 귀도 얇겠죠. 제 설득에 넘어가 당신에 대한 신뢰를 거둬버린다면요?]

[대체 어떻게 그녀를 만나려고요? 친분도 없는데?]

[제가 직접할 필요가 뭐 있어요.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분이 제 보스랑 친하잖아요. 오늘 이야기를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에게 해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사실만 이야기하지 않고 이 모든 게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회장 자리를 욕심낸 조세핀 스톤 이사가 꾸민 짓이라고 이야기한다면요?]

[그게 무슨···.]

[어렵지 않습니다.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이 톰 헤밀턴을 설득해서 그가 직접 나서게 하면 됩니다. ‘외도를 한 건 미안하다. 하지만 사실은 조세핀 스톤 이사가 꾸민 일에 내가 넘어간 거다. 외도 사실도 그녀가 알려주지 않았느냐? 알고 보니 그녀가 전부 꾸민 짓이더라. 바보 같아서 그녀의 꾐에 넘어갔다. 후회한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소피아 당신이다.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 이렇게 속삭인다면 나약한 귀부인께서는 뭐라고 할까요?]

[외도 사실은 정말 우연히 알았어요. 절대 내가 꾸민 게 아니라고요!]

빙고!

이죽거리며 말하는 내 모습에 조세핀 스톤 이사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모습조차 아름다웠지만 어쨌든 원하는 바는 이뤄냈다. 그렇다고 이걸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 작품 후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선추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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