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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69화 (369/424)

0036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백우찬 차장. 그에게는 서른일곱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어준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그의 연인인 조연서. 남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엄청난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씨였다. 그런 그녀의 사랑이 오롯하게 그에게만 향한다는 사실이 항상 백우찬 차장을 뿌듯하게 만든다.

조연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은 항상 가슴 설렜고, 그 사랑 덕분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될 수 있었다. 행복이 충만한 삶. 그게 바로 그녀를 만난 이후 변화된 그의 삶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난데없이 나타나 그의 삶에 끼어든 마동수.

사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백우찬 차장이 일하고 있던 미래 백화점 철거 현장에 난입해 소란을 피운 인간이 마동수였고, 그 과정에 지상으로 추락할뻔한 그를 구해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처음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갖고 있던 감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백우찬 차장에게는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골칫거리였지만 마동수에게는 누가 뭐래도 고마운 생명의 은인이었다.

매일 같이 안부 연락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와 함께 밥을 먹자고 졸랐다. 솔직히 귀찮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생명의 은인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간절하게 말하는데, 그의 성격상 차갑게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처음 한두 번은 둘이 만났지만 그다음 만남에는 그의 연인인 윤시연까지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인 조연서 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마동수를 살려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에, 백우찬 차장은 마동수에게 가지고 있던 시큰둥한 마음이 풀리고 말았다.

“형님. 제 여자친구 예쁘죠.”

“그래. 정말 아름다우시네.”

“어! 반응이 좀 미적지근한데요? 이상하다. 시연이 같은 미인을 보는 게 쉽지 않은데.”

“물론 시연씨도 엄청난 미인이긴 한데 우리 애인도 만만찮거든!”

“헉! 정말입니까? 대체 얼마나 미인이길래요? 그러지 말고 사진 좀 보여주세요.”

“옜다. 우리 애인도 시연씨만큼 예쁘지?”

“세상에! 정말 미인이시네요. 그럼 제 마음을 더 잘 이해하시겠네요. 형님이 제 목숨을 구해준 것도 정말정말 고맙지만, 그래도 더더욱 감사한 건 시연이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신 거예요. 저는 솔직히 제 목숨을 구해준 것보다 시연이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감사해요. 그래서 형님은 제게 평생 갚아도 갚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은인이신 거고요. 어딜 가던 평생 따라다닐 거예요. 그러니까 제게서 도망갈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으세요. 흐흐흐.”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오해로 조연서와 잠시 헤어졌을 때 잠시나마 지옥을 경험했던 백우찬 차장은, 그의 말에 100% 공감할 수 있었다.

그에게 남아있던 감정의 찌꺼기가 완전히 사라진 게 바로 그날이었다. 그리고 조연서까지 친해지면서 네 사람은 친형제처럼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마동수와 친해지면서 백우찬 차장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직장인 백우찬의 삶은 예전과 180도 달라졌다. 능력은 있지만 강직한 성격이던 그를 보며 대부분의 사람은 마흔 전에 명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을 내렸다. 불의를 보면 잘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이 문제였다. 덕분에 회사 내에 적도 많은 편이었다. 게다가 사이가 안 좋은 인간들 대부분이 미래건설에서 잘 나가는 인간이라는 것도 그의 회사생활을 쉽지 않게 만들었다.

백우찬 차장도 그런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조연서와 오랜 연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약점들 때문이었다.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혼하자고 청혼하는 건 뻔뻔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회사 생활이 불안해 보였던 그가 작년에 차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여섯. 미래그룹에서 가장 잘나가는 계열사인 미래건설의 차장 자리를 과장으로 승진한 지 고작 1년 반 만에 달았다는 건 그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는 완전히 다른 행보였다.

그런 그의 고속 승진에 바로 마동수의 도움이 있었다. 사실 백우찬 차장의 성격상 그런 마동수의 도움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형님. 제 목숨값이 그렇게 싸구려가 아닙니다. 이런 거로 부담스러워하시면 안 되죠.’

‘없는 일을 만들어서 드리는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점포는 새로 지어야 하고, 불행히도 동지그룹은 건설회사가 없어요. 그런데 제가 왜 미래 건설 말고 다른 건설사를 컨택하겠어요?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라고 불리는 미래 건설인데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요. 설마 제가 다른 건설사와 일하는 걸 바라시는 건 아니죠? 형님도 좀 멀어도 웬만하면 동지마트를 이용한다면서요? 사람 사는 게 그런 거죠.’

이런 마동수의 논리에 백우찬 차장도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여러 개의 큰 공사를 따낸 덕분에 회사 내에서 ‘백우찬’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고, 이제는 명퇴 순위 1번이 아니라 미래 건설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승진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원래부터 그와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들의 견제가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그건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다. 하지만 친했던 동료들과의 관계 변화는 그에게도 뼈아픈 일이었다. 개중에는 그를 라이벌로 여기고 멀리하는 사람도 생겼고, 빠른 승진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이런 변화가 많이 힘들었었다. 한편으로 마동수가 고요한 자신의 삶에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킨 것 같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마동수를 보면서 그런 원망은 이내 지워버렸다. 오히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편안하게 회사 생활을 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봐. 백 차장.”

요즘 들어 백우찬 차장을 가장 못살게 구는 박옹기 이사가 신문을 들고 그를 찾아왔다.

“네. 이사님.”

“여기 신문에 마동수 팀장 기사가 났더군.”

“그렇습니까? 무슨 일로요?”

마동수에 대한 소식은 백우찬 팀장도 알고 있었다. 이젠 정말 친동생같이 느껴지는 성공 소식에 자기 일처럼 반가웠지만 박옹기 이사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없어 일단 모른 척했다.

“몰라? 두 사람이 절친하다면서 그걸 몰라?”

“죄송합니다. 바빠서 아직 오늘 신문을 못 봤습니다.”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바빠? 맨날 노는 거 아니었어?”

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차장으로 승진하면서 두 배나 바빠진 게 그였다. 오늘도 출장 갔다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출근한 상황이다. 그러나 박옹기 이사는 백우찬 차장 일이라면 무조건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였다.

“출장 다녀오느라 정신이 좀 없었습니다.”

“쯧쯧쯧. 출장 다녀왔다고 생색내는 건가? 우리 때는 토요일 일요일도 일했는데 자네들은 안 그러잖아. 일주일에 이틀은 쉬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동수 기사가 떴다고요? 무슨 일로요?”

“이번에 또 큰일을 했다고 그러더군. 고현호 상무는 참 부하 직원 복도 좋아. 저렇게 일 잘하는 사람을 밑에 두고 말이요. 두 사람이 친하다면서 백 차장은 뭐 느끼는 거 없나? 질투도 안 나?”

“하하하. 질투는 무슨요. 워낙 뛰어나서 그저 감탄하기 바쁩니다.”

박옹기 이사는 활짝 웃는 백우찬 차장의 모습이 못마땅했다.

“한심하기는. 남자가 그렇게 배포가 없어서야···. 그나저나 백 차장. 지난번에 마 팀장과 식사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하더니 어떻게 된 거야?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

“그게··· 그동안 동수가 해외출장으로 바빴습니다.”

“그래? 대단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바쁜 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지. 백 차장이 다시 한 번 연락을 넣어봐. 단지 밥을 먹자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이게 다 비즈니스야, 비즈니스. 나만 좋자고 그러는 것도 아닌데 좀 적극적으로 나서보라고. 알겠어?”

“네. 이사님. 그렇지 않아도 이사님과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동수에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랬어? 그럼 진즉에 이야길 하지 그랬어!”

지금까지 짜증만 내던 박옹기 이사기 처음으로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출장 보고서부터 마무리하고 이따 점심때쯤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여간 사람하고는.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그깟 출장 보고서가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그래서 언제 보자고 하던가?”

“이제 좀 한가해졌다고 이사님 시간에 맞춘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역시 큰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자세가 됐군그래. 그럼 질질 끌 게 뭐 있나? 내일 당장 만나자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이사님.”

***

“고생했어. 마 팀장.”

“아닙니다. 아버님. 운이 좋았습니다.”

“이이는. 마 팀장이 뭐예요, 마 팀장이. 가족 모임일 때는 마 서방이라고 부르라니까. 안 그런가, 마 서방.”

뉴욕 여행을 다녀오고 곧장 시연이 부모님과 함께 조그마한 축하연을 열었다. 축하연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네 사람이 조촐하게 식사를 하며 시연이의 출판 계약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하하하. 사실 저도 아버님이라는 말보다는 사장님이라는 말이 더 편합니다.”

약혼한 사이니 ‘마 서방’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 그렇지만 윤승태 사장님 나이가 올해로 이제 겨우 마흔아홉, 시연이 어머님은 마흔여섯이시다. 특히 시연이 어머님은 나랑 고작 열네 살밖에 차이가 안 난다. 게다가 워낙 동안이시라 나랑 밖에 나가면 사위 장모가 아니라 부부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나보다 어리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어머님을 쏙 빼다 박은 시연이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는 분이 나를 ‘마 서방’이라고 부르는 게 굉장히 이상할 때도 있다.

“그 봐. 그렇다니까.”

“이상하네. 난 마 서방이라는 말이 입에 착 달라붙어 좋기만 하던데. 어쨌든 마 서방. 정말 고생했어. 이번에는 떠들썩하게 신문에까지 나고. 내가 요즘 마 서방 덕분에 목에 힘주고 산다니까. 호호호.”

“이게 다 시연이 덕분입니다. 저야 그냥 시연이 출판 계약에 꼽사리 껴서 따라갔다가 얻어걸린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축하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시연이죠.”

“그것도 마 서방이 판을 깔아놓은 거잖아. 영어로 번역해보라고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 어휴···. 우리 딸이 미국에서 책을 출판하는 날이 오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아. 고마워.”

“그게 어디 저 때문인가요? 작품이 좋아서 그렇죠. 이번이 아니었다고 해도 분명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미국 출판사에서도 기대를 많이 하더군요.”

비즈니스 마인드가 철저한 미국에서 계약을 위해 우리 두 사람에게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제공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Something 출판사가 시연이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어머! 그럼 우리 시연이가 한국인 최초의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거야?”

“에이. 엄마. 그건 너무 김칫국이다. 엄마도 그랬잖아. 출판사 일을 해보니 꼭 된다 싶은 책이 안 될 때가 제일 당황스럽더라고. 그러니까 너무 기대는 말아주세요. 난 미국에서 제 책이 출판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헤헤.”

“어머. 예. 그래도 꿈은 크게 가져야지. 안 그래도 좀 있으면 두 사람이 이야기가 드라마로 반영되는 거 알고 있지?”

“저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민망하네요. 전 국민이 우리 두 사람 이야기를 드라마로 본다는 게.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일이거든요.”

드라마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얼마 안 있으면 TV로 방영된다고 하니 기분이 정말 묘했다. 우리 사랑 이야기가 그만큼 특별한 것 같아 기쁜 기쁘기도 하면서도, 높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이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시연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하자고 덤빌지 누가 알아?”

“그··· 그런가요? 아무리 그래도 할리우드는···.”

“호호호. 그랬으면 좋겠다, 이거지. 원래 꿈은 원래 크게 가지는 법이잖아. 아··· 정말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시연아. 그런데 혹시 이번에 다른 책 한 번 내 볼 생각은 없어?”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무슨 책?

“이번에도 로맨스 소설이야.”

“동수씨랑 내 이야기를 또?”

“아니. 이번엔 나랑 네 아빠 이야기.”

“뭐? 엄마 아빠 이야기를?”

“네가 잘 몰라서 그런데 우리 이야기도 너희 못지않게 드라마틱해. 얼마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긴데.”

“그럼 엄마가 써요.”

“어머, 딸. 그냥 딸이 써주면 안 돼?”

“나 이제 바빠. 빨리 정식 아나운서 돼서 동수씨랑 결혼해야지. 글은 당분간 안 쓸 거야.”

“치사하게 이렇게 나올 거야?”

“응.”

“나 그럼 두 사람 결혼 반대한다.”

“엄마. 정말 치사하게 그럴 거야?”

‘책을 내라. 안 낸다.’ 이렇게 투닥거리는 두 모녀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이었다. 하지만 이건 잠깐의 휴식일 뿐 내일부터는 또다시 전쟁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두렵지는 않았다. 이젠 그런 고생에 인이 박였는지 두렵기보다는 고지가 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더 설레게 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추코를 해주시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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