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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77화 (377/424)

0037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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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선거에서 민국당 후보 사퇴를 조건으로 아이두를 원하는 지역에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이 말씀이죠?”

“단순히 후보 사퇴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여사님. 후보 사퇴를 통해 야권 통합을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거 노하우까지 제공하겠습니다. 솔직히 강현순 후보님 선거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선거 경험이 없는 초짜 아닙니까? 냉정하게 말씀드려 선거캠프는 인권 변호사 사무실이 아닙니다.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르죠. 아무리 유능한 사람을 모았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로 선거에 이기는 건 어렵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그 과정을 생략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는 겁니다.”

거래를 제안하러 온 제갈현은, 다급한 속내를 감추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최순애를 상대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능구렁이가 다 된 그로서는,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아직 정치판에서는, 초짜에 불과한 그녀를 상대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후보 사퇴는 물론이고 선거 노하우까지 전해주겠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

“아이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아이두가 아무리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도 민국당의 실세라 불리는 제갈현이 직접 찾아와 아쉬운 소리를 할 정도인지, 최순애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노회한 정치인을 상대하기에는 그녀의 정치 내공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단순히 우리를 믿기 힘들다면 선조치 후거래는 어떻습니까?”

“선조치 후거래요? 그게 무슨 말이죠?”

“박동호 후보가 후보 자리에서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먼저 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회견을 보시고 그 이후에 도움을 주셔도 됩니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시려고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강현순 후보의 인격을 믿습니다. 제안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 여사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갑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없으시겠죠. 워낙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강 후보님이 정치를 결심하신 것도 그런 불합리함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 제가 신뢰를 보여드리는 겁니다. 후보님과 여사님의 우리 당의 진정성을 확인하시고 그 후에 도움을 주시면 됩니다.”

거래를 제안한 사람은 제갈현이지만 당당했다. 지금 이곳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최순애였다.

상대의 제안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다. 야권 통합도 통합이지만 선거 노하우를 전해주겠다는 말이, 그녀에겐 더 반가웠다. 선거캠프를 꾸리는 건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 생각이 계속 최순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역시 제 제안이 갑작스러웠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고민해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예상이라고 했다는 듯 미련없이 일어나는 제갈현의 뒷모습을 보며 최순애는 아쉬움을 느꼈다.

***

솔직히 말해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사태가 커졌고, 마치 몰래카메라나 코믹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지금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도 힘들었다.

상황 자체는 단순했다. 그룹 차원에서 지원해준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히 피디, 작가, 연기자들의 역량이 좋아서 그런 건진 몰라도 드라마가 대박이 났다. 그러면서 우리가 PPL로 요청했던 아이 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태가 여기까지만이었다면 즐거운 기분으로 축배를 들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내게 있었다. 그래. 우리나라 교육열을 너무 쉽게 본 내 잘못이 가장 크긴 하다. 고작 유치원도 안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1년에 2천만 원(아이 두 캐주얼도 1년에 천만 원이 넘는다.)이 넘는 거액을 쓰겠다는 정신 나간(?) 부모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을 줄 예상 못 한 내 잘못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관심에 정치인들이 숟가락을 얹으면서, 분위기 좋던 로맨틱 코미디는 블랙 코미디로 장르를 바꾸어버렸다.

- 왜 영남지역에만 아이 두를 먼저 설치하냐? (새로 생길 대구 동지마트에 아이 두를 운영한다고 발표 후.)

- 영남이랑 호남이랑 인구가 다른데 왜 아이 두 숫자가 똑같냐? (차기 아이 두는 호남 지역에 하겠다고 발표 후.)

- 지금 충청도 무시하냐? (영호남 지역에만 설립 계획을 발표 후.)

- 그렇다면 강원도는?

- 그렇다면 제주도는?

- 왜 인천만 아이 두가 있냐? 지금 수원 무시하냐? 여기도 인구 백만 넘었다.

이런 식으로 단순한 자존심 싸움에 지역감정과 정치적 논리가 뒤섞이면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듯, 마치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양새로 변하고 말았다.

“마 팀장. 이제 어쩔거야?”

급박한 사태에 고현호 상무와 기획마케팅 부서원들이 긴급 소집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다들 황당한 표정만 지을 뿐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묵묵부답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고현호 상무가 나를 콕 찍어 대책을 요구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거야?’라는 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뉘앙스였다. 추미래와 박서라는 그의 말에 움찔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 다 나를 꽤 따르는 편이다 보니 고현호 상무의 말이 서운하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나와 고현호 상무 사이의 각별함을 이해하지 못한 두 사람의 오해일 뿐이다. 나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일종의 조크였다. 어떻게 해서든 작금의 골치 아픈 사태를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에서 오는 여유.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없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 팀장이 모르면 누가 알아? 전지전능한 마느님인데 정도 상황은 이미 예측했을 것 아니야?”

눈치 빠른 정지영 과장이 설렁한 농담에 ‘풋’하고 웃었다. 그 모습에 뒤늦게 장난임을 깨달은 추미래와 박서라의 경직된 표정이 온화하게 풀렸다.

“마느님요?”

“마느님 몰라?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하신 마동수 팀장님이잖아. 그래서 마느님.”

“맙소사. 그건 신성모독인데요?”

“짜아식. 신급이라고 추켜세워줘도 까칠하기는. 그래서 마땅한 대책이 정말 없는 거야?”

“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버티는 겁니다.”

“버틴다? 시간이 가면 잠잠해질 테니까 그냥 그때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그렇죠.”

“지방 선거가 앞으로 3개월 정도 남았나? 그때까진 정치인들이 어떻게든 숟가락을 들이밀 것 같은데, 무대응으로 3개월을 버티자고?”

역시 문제는 지방 선거였다. 아이두와 선거는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사소한 다툼이 예상치 못하게 변질되면서 정치가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이르게 됐다. 결국, 최악의 경우 지방 선거가 끝날 때까지 논란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힘들겠죠? 음···. 그렇다면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한 번 더 해볼까요?”

“노이즈 마케팅?”

“아이들이 받는 교육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서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귀족 교육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이 아니라 물질만능주의부터 심어줄 수 있다. 계층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악이다. 뭐 이렇게요?”

“미친 녀석.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려고? 마 팀장 지금 반항하는 거야? 그건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라 그냥 노이즈잖아!”

“그렇죠? 그런데 방법이 없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냥 귀찮은데 요구사항 전부 들어주면 안 되나?”

고현호 상무는 지금 이런 회의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거야말로 귀찮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짓이죠. 상무님. 아이두의 최고 강점이 뭔지 아십니까?”

“아이두의 강점? 다른 곳과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 아니겠어?”

“물론 그렇죠. 하지만 프로그램만 좋다고 아이 두가 잘 굴러가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바로 프로그램을 직접 활용하는 교사의 자질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연수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철저하게 교육을 마무리한 다음 현장에 투입했습니다. 현장에서도 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고 선임 교사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충분한 멘토링 기간을 두고 있고요. 그만큼 교사의 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윤 스포츠센터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몇몇 무개념 보육교사 때문에 교사 자질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치권의 압력이 귀찮다며, 원칙을 포기하고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무분별하게 아이 두 지점을 늘렸다가 교사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게다가 아이 두는 그냥 보육기관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를 표방하는 보육기관. 그곳의 문제는 단순히 아이 두의 문제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윤 스포츠센터나 동지그룹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이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그러면 어쩌냐?”

“글쎄요.”

“잠깐만. 정말 미안한데, 중요한 전화라서. 금방 전화 받고 올 테니 조금 이따 다시 시작하자고···. 네, 어머님.”

지금껏 회의시간에 전화 받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저렇게 다급하게 전화기를 들고 나가는 모습이 낯설었다.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님? 그게 누구지? ’

잠깐 그런 호기심이 들었지만 알게 뭐람. 지금 나는 아이두 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복잡했다.

***

회의는 중단됐다. 그리고 고현호 상무는 할 말이 있다며 나와 김학수 부장만 조용히 불러냈다.

“뭐 안 좋은 전화라도 왔습니까?”

전화를 받은 직후 회의를 파하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전화였어. 어머님 전화였거든.”

그 말에 김학수 부장이 알만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가 모르는 둘만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님이 누군데요?

“우리 효령씨 어머님 되시는 분.”

“효령씨는 또 누구···. 아! 상무님 약혼녀라는 그분? 뭐라고 불러야죠? 예비 사모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예비 사모님은 무슨. 정 없게 왜 그래? 내가 시연씨 보고 뭐라고 불러?”

“제수씨요.”

“그럼 넌 우리 효령씨를 뭐라고 불러야겠어?”

“에이. 그래도 상무님 약혼녀 되시는 분을 어떻게 형수님이라고 불러요?”

“나 진짜 삐진다.”

“어휴. 알았어요. 알았어. 형수님이라고 부를게요.”

기대감을 담아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고현호 상무를 염원(?)을 차마 거절할 순 없었다.

“쯧. 진작 그럴 것이지.”

“아무튼. 그래서 형수님 어머님 되시는 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왜 회의를 중단하신 겁니까?”

“그게 말이야. 이것저것 설명하자면 길어질수도 있으니 간단하게 이야기할게. 효령씨 아버님이 바로 강현순 변호사님이야.”

“강현순 변호사요? 혹시 제가 아는 그 강현순 변호사님이요? 이번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신?”

“맞아. 바로 그분이지.”

“맙소사. 이제 보니 상무님, 대단한 집안의 예비 사위셨네요.”

한국의 케네디가(家). 굳이 비유하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아직 그 정도 위상까지 간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근접한 집안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뭐, 나쁜 집안은 아니지.”

“네? 나쁜 집안은 아니라고요? 나 참. 우리나라에서 그 집안만큼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곳이 어디 있다고요. 이번 선거에서만 이기면, 차차기쯤에는 대권에 도전해도 충분할 걸요? 그런데··· 설마 아이두 때문에 연락이 온 겁니까? 무소속이고 게다가 서울인데 아이두가 필요할 이유가 뭐가 있다고요?”

“민국당에서 거래를 제안했다고 하더라.”

“민국당에서요? 혹시 야권통합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하던가요?”

“역시 마 팀장이네. 맞아. 그걸 조건으로 원하는 지역에 아이두 유치를 도와달라고 했다더군. 거기에 선거운동 노하우까지 제공하겠대.”

“와. 뻔뻔한 놈들이네요.”

고현호 상무의 설명을 듣는 순간 그들의 의도가 눈에 뻔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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