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당연히 골든타운이겠지.”
“맞습니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이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타운을 짓는데 들어가는 건설비용만 생각해도 적은 돈은 아닐 테니까요. 사실 수도권은 땅값이 비싸서 제가 생각한 규모의 골든타운을 지으려면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갑니다. 그런 것까지 고려하면 OO시가 딱이죠. 수도권과 비교적 가깝고, 개발이 안 된 지역이 많아 땅값도 저렴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치지 눈앞에 놓인 떡이 아니잖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고현호 상무가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건 반대로 말해서 우리 동지그룹이 투자해야할 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꼴랑 아이두 하나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테니 말이다.
“당연히 가시적 성과 정도는 제공해야겠죠. 예를 들어 MOU를 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될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거로는 부족하겠죠. 말씀처럼 선거가 코앞인데 공사를 시작하는 데만 몇 달은 걸릴 프로젝트에 표심을 기대하긴 힘듭니다. 그래서 전 방송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방송을 선거에 이용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어.”
“드라마 PPL을 이용하면 괜찮습니다.”
“아이두처럼 말이지? 그런데 괜찮은 드라마가 있어?”
“있죠. ‘내 약혼녀는 여우.’가 있지 않습니까?”
“거긴 아이두를 PPL하는 곳이잖아.”
“이미 PPL 효과는 차고 넘칩니다. 관심이 지나쳐서, 여기서 더 방송에 더 내보내는 건 무의미하다는 판단입니다. 그러니 이참에 아이두 광고는 그만두고 골든타운로 대체하면 됩니다.”
“제작사 반응은?”
“오히려 반기는 눈치입니다. 계약서상으론 매회 아이두를 노출해야 하는데, 스토리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고민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제작사 측에서 먼저 계약 변경을 요청해왔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집안과 갈등을 겪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데, 계속 아이두에 근무하는 모습을 내보내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골든타운 이야기를 슬쩍 꺼냈더니, 제작사에서 당장 절이라도 할 것처럼 반겼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런데 마 팀장. 골든타운은 아직 계획에만 존재하는 거잖아. 그걸 어떻게 PPL로 이용하겠다는 거야?”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무조건 최대한 럭셔리하게. 그냥 그렇게만 내보내면 됩니다.”
“최대한 럭셔리하게?”
“네. 부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할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럭셔리하게, 6성급 호텔 느낌으로 꾸며서 내보내면 될 겁니다. 거기에 간간이 체계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양념처럼 곁들이면 금상첨화겠죠.”
“그걸 본 대중들은 골든타운에 호기심을 가질 테고. 그때 은근슬쩍 OO시에 골든타운 조성을 발표할 생각인 거야?”
솔직히 준비하는 데 많은 기간이 필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드라마에서 나가는 장면은 길어야 30초. 최대한 화려한 겉모습만 보여주고, 내실은 천천히 다져도 된다.
그렇다고 날림으로 대충 만들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전부 윤 스포츠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체계적인 연령별 운동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대규모 건설 계획도 같이 발표한다면 지역경제는 확 살아날 겁니다. 그리고 그 공은 전부 민국당의 조이봉 후보의 공으로 돌리면 되겠죠.”
“금액이 문제긴 한데···. 이 계획 장기적인 플랜은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원래 이번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곧바로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시장성도 충분하고 상징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년에 1억씩 천 명만 수용한다고 해도 연 매출이 1천억 원입니다.”
“뭐? 1억?”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것도 최소로 잡은 건데.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대상은 부유층이라고요. 그냥 부유층도 아니고 1년에 1억 원쯤은 껌값으로 생각하는 상류층이 대상입니다. 그것도 너무 저렴한 것 같아서 한 3억 원쯤 받는 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추가해야겠죠.”
방법은 많다. 윤 스포츠센터와 연계해 작은 컨트리클럽을 조성하거나, 최신 음향시설이 완비된 작은 연주 홀을 만들어 실력있는 음악가를 초빙, 매주 연주회를 개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돈만 있다면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차라리 종신 계약을 조건으로 50억 원 정도를 받는 건 어때?”
“그것도 이미 생각하고 있습니다. 50억 원은 좀 과한 것 같으니 10억~20억 원 정도로 조정하면 됩니다.”
“뭐? 허허허. 미치겠군.”
“제가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지금껏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전 세계적으로도 쉽게 찾기 어려운 가장 럭셔리한 실버타운. 그곳이 바로 제가 말하는 골든타운의 실체입니다.”
“김 부장 생각은 어때?”
고현호 상무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김학수 부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제 대답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전 마 팀장 아이디어라면 무조건 찬성입니다. 더군다나 골든타운 프로젝트는 얼핏 이야기만 들어도 돈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 같군요. 시간이 부족해서 체계가 부족한 게 흠이지만 고작 이틀 만에 이걸 만들어낸 걸 보면 오히려 과할 정도죠. 역시 마 팀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은요. 시작하자마자 캐시카우가 될 사업을 생각해내는 게 어디 보통일 입니까?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할 ‘스타’보다는 안정감 있는 ‘캐시카우’가 더 매력적일 때가 많죠.”
캐시카우는 BCG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경영학 용어다. ‘스타’는 시장 성장률과 시장 점유율이 높아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 반면 시장 점유율은 높지만 시장 성장 가능성은 낮아 별도의 투자 없이도 꾸준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캐시카우’라고 한다.
골든타운의 대상인 부유층은 그 수에 한계가 있으니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처음부터 확실하게 시장을 선점한다면 큰 위기 없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게 캐시카우의 장점이고, 골든타운 프로젝트의 매력이다.
“제대로 보셨습니다. 드라마 PPL을 통해 골든타운이 알려지기 시작한다면 그 후의 홍보는 김 부장님에게 맡겨도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 효과는 이미 아이두에서 보셨지 않습니까?”
봤다. 너무 과해서 문제지만.
“미리 말씀드리는데 아이두만큼 폭발적인 관심은 사양합니다.”
“하하하. 그거까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잘 알지 않습니까? 저는 소비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거지, 실제로 자극을 받고 움직이는 건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몫입니다.”
“어이. 두 사람. 나 아직 수락 안 했거든? 마치 당장 진행할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아 줄래?”
“할거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에잇. 나도 모르겠다. 이 정도 규모면 분명 회장님의 재가가 필요하겠지만, 시간이 없으니 일단 저질러보고 보자.”
***
골든타운은 단순히 럭셔리한 실버타운이 아니다. 우리나라 상류층이 모여 건강한 노후를 보낼 곳이다. 한국에서 상류층은 돈만 많은 존재가 아니다. 권력도 가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층의 부모들이 보여서 사는 곳. 그런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골든타운의 진짜 실체다.
“···. 골든타운을 운영하면서 권력층의 부모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권력이 됩니다. 노골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친(親) 동지그룹 성향에 물든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골든타운 사업을 시작할 가치가 있습니다.”
“권력층의 부모를 동지그룹 친화적인 인물로 만들어 우리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게 한다?”
“네. 회장님. 그것이 바로 제가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물론 금전적으로도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현호 상무가 어떻게 보고를 했는지, 곧장 회장실로 호출되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골든타운 프로젝트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다행히 갑작스레 보고한 것치고는 발표는 완벽했다.
예전 같으면 떨었겠지만, 회장님과 부회장님 얼굴도 자주 보다 보니 익숙해졌나 보다. 아니면 내 간이 예전과 달리 커졌던가.
“고현호 상무.”
“네. 회장님.”
“확실히 매력은 있어. 그런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정경유착이라고 할 수 있어. 감당할 자신이 있어?”
“물론입니다. 자신이 없었으면 말씀드리지도 않았겠죠. 사실 골든타운 프로젝트도 매력적이지만, 전 강현순 변호사의 잠재력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네 예비 장인이 가진 잠재력? 어떤 잠재력?”
“회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효령씨 집안이 어떤 곳인지는. 그러니 두 형들과 달리 연애로 만난 우리 둘 사이를 반대하지 않으셨겠죠.”
“그건 인정한다. 그래서?”
“저는 강현순 변호사가 단지 서울시장이 되기 위해 이번 선거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종 목표는 역시 대권이겠죠. 그리고 전 어쨌거나 그 집안 예비사위입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설사 강현순 변호사가 원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서울시장으로 머물도록 두고 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강현순 변호사의 정적(政敵)은 제게도 적대적일 겁니다. 제가 중립을 지킨다고 해도 그들은 저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겠죠. 그런 의심을 받으며 살 바에는 적극적으로 돕는 게 낫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파혼하는 방법도 있다.”
“차라리 저보고 죽으라고 하십시오.”
고대성 회장이 이죽거리자 고현호 상무가 지지 않고 대들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건 나도 처음 봤다.
“효령이가 그렇게 좋으냐?”
“아버지는 왜 재혼을 안 하십니까?”
“뭐라? 허허허. 이거 우문현답이군, 그래. 알았다. 방금 그건 내가 말이 지나쳤다. 하지만 넌 사업에 개인적 감정을 가져왔다. 인정하느냐?”
“네, 인정합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요.
“골든타운 프로젝트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그런데 설사 네 예상처럼 사돈이 대권을 잡는다고 해도, 그게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느냐? 그 꼬장꼬장한 집안에서 사위 집안이라고 봐주고 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
“대신 정치적 논리에 의해 쓸데없는 압력을 받을 일도 없을 겁니다. 회장님은 그동안 정치권과 그리 잘 지내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우리 동지가 재계 서열 5위에 머물러 있는 건 정치권의 비협조도 어느 정도 일조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그룹도 우리 그룹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정경유착을 통해 뒷구멍으로 우리 동지그룹을 발전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결국 사상누각이나 마찬가지죠. 역사를 봐도 정치권과 심각하게 밀착했던 기업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대부분 무너졌습니다. 역사에서 증명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겁니다.”
“네 결심이 그렇다면···, 좋다. 한 번 네 뜻대로 진행해봐라. 동지마트에 대한 권리는 오롯이 네게 주도록 하마. 대신 그룹 차원에서 지원은 없을 거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역시 회장님다운 결정이었다. 반대는 하지 않지만 혹시 실패했을 때 그룹이 피해를 받을 피해는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의 지원은 없다고 해도 동지마트에 대한 권리만 있다면 자금은 충분했다.
지금의 동지마트는 과거의 동지마트와 완전히 다르다. 포에버마트와 합병하면서 대형할인마트 순위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기업가치만 조 단위를 훌쩍 넘는 거대기업이 됐다. 동지마트의 역량만으로도 골든타운 프로젝트 정도는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와 고현호 상무는 서로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허락은 떨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