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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83화 (383/424)

0038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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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家)의 둘째 고평호 상무.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는 고대성 회장의 세 아들 중 가장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였다. 겉으로 볼 땐 첫째인 고정호 전 전무와 각축을 다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거의 모든 면에서 고평호 상무가 더 나은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중립을 지키던 이사들 사이에서도 여자를 좋아하고 폭급한 성격을 가진 고정호 전 전무보다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고평호 상무가 동지그룹을 이어받아야 그룹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거라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면 짧게는 2년, 길어도 5년 안에 동지그룹 차기 총수는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만 더 인내하며 노력하면 달콤한 과실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인해 상황은 급변했다.

바로 동지가(家) 셋째인 고현호 상무의 등장이었다. 사실 세 아들 중 머리가 가장 명석하다는 평가를 받긴했지만 경영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그가 동지그룹 차기 총수 후보로 떠오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고대성 회장의 동생인 고진성 회장의 첫째 딸보다 낮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고작 1년 사이에 엄청난 성과를 보이며 강력한 차기 총수 후보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회장 자리에 가장 근접했던 고평호 상무였다.

혹자는 여전히 고평호 상무가 유리하다고 평하곤 하지만, 고현호 상무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가장 여실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고평호 상무였다.

“다들 알겠지만 이번에 고현호 상무의 예비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강현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 정도에서 그친다면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언론에서는 빠르면 이번 대선 늦어도 다음 대선에서는 대통령 자리를 노릴 수 있을 거라고 예측들을 하더군요. 현호 장인이 대통령이 된다? 우리에겐 절대 반가운 소식이 아닐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걸 느낀 고평호 상무가 또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근래에 고정호 상무 문제로 회의를 소집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는데, 그만큼 마음이 조급해졌다는 의미였다.

“강현순 변호사의 기세가 무서운 건 사실입니다. 친일과 반일의 논쟁이 격화되면서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독립투사라는 얼토당토않은 표현을 쓰는 언론도 생겨날 정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요?”

“지금껏 무소속으로 나온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조그마한 나라라고 해도 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강현순 변호사는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

“네. 서울시장이야 무소속으로도 당선될 수 있지만 대통령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강현순 변호사를 평가절하해서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할 때 대통령 선거는 일종의 사업입니다. 돈이 많고 탄탄한 조직일수록 유리하죠. 물론 야당과 여당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대통령을 배출하는 걸 보면 그 기준이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국적으로 선거유세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금과 조직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소속으로 대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고평호 상무의 측근 중 한 명인 조창수 이사가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제법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렇죠. 물론 조창수 이사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조 이사님의 발언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강현순 변호사가 계속 무소속으로 머물러있어야 합니다. 그걸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에···. 확신은 하기 어렵지만 성향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구태의연한 기존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특정 정당에 들어간다? 그건 아무래도 힘들 거라고 봅니다. 그럴 거였으면 무소속으로 나올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정당소속으로 후보등록을 했겠죠. 제가 볼 때 강현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고고하고 도도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보통 융통성이 부족합니다. 왜 이런 말이 있죠.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 지금은 반짝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래가지 않아 파탄이 날 겁니다.”

“조 이사님.”

“네. 상무님.”

“대체 누가 강현순 변호사를 보고 고고하고 도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그야 언론에서 다들···.”

“어떤 언론에서 그랬습니까?”

“네? 아니 그러니까, 대다수 언론에서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말이 아니었죠. 기본적으로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했지, 언제 고고하고 도도하다고 했습니까?”

“저··· 그게 그 말 아닙니까?”

최근 여러 가지 일로 짜증이 났던 고평호 상무는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조창수 이사를 몰아붙였다. 그렇지만 평소 눈치 없기로 소문난 조창수 이사는 차갑게 내려앉은 회의실 분위기는 모른 채 계속해서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그게 그거요? 어떻게 그게 그겁니까? 대체 강현순 후보가 누굽니까?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서민을, 약자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서민과 더불어 살아와 서민변호사라고 불리는 사람을 보고 고고하다고요?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변호사라고 평가받는 사람을 보고 도도하다고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황당해 할 사람이 누군데? 그런데도 오히려 더 황당한 표정을 조창수 이사를 보며, 고평호 상무는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조 이사님. 조 이사님은 내가 심심해서 바쁜 와중에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 것 같습니까? 그래서 웃겨보려고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조창수 이사는 고평호 상무의 직설적인 말투에 그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닫고 급히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미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오른 그의 마음을 달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사과였다.

“몰랐다고 하면 끝입니까? 죄송하다고 하면 끝나는 겁니까? 아니지, 아니야. 이제 보니 제 잘못이 가장 크군요. 다들 이렇게 무기력한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여러분들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끝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 아직도 차기 회장직을 목표로 하는 여러 후보 중 한 명일 뿐입니다. 큰 형이 후보에서 탈락했다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정신 차리세요. 현호는 큰 형과 다릅니다. 훨씬 유능하단 말입니다. 그렇게 팔자 좋게 늘어져서 방심하고 있으면 금방 뒤집힌단 말입니다. 알아들어요?”

고평호 상무가 사나운 눈빛으로 회의장을 둘러보며 물었지만 다들 자라목처럼 움츠리며, 행여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열심히 고개만 돌려댔다.

“좋습니다. 다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내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겠군요. 앞으로 한 달 드리겠습니다. 한 달 안에 기획서든 계획서든 작전서든, 뭐든 고현호 상무를 누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오세요. 사업 방안으로 이기든 뒷공작으로 이기든 방법은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방법을 찾으세요. 딱 한 달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출한 안건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더는 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겁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무님.”

‘예외는 없다.’는 말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윤 이사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고평호 상무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그였다.

“네. 윤 이사님. 지금 마음 잘 압니다. 서운하시죠?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윤 이사님이 그동안 저를 위해 헌신한 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다들 이번 보궐 선거 보셨습니까? 결과가 어땠습니까?”

“대한당이 참패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월등히 앞서나가던 대한당이, 잘못된 판단 하나 때문에 대패를 했습니다. 그냥 김이용 후보만 포기했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장 자리가 아깝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멍청하게 미련을 떨다가 친일파 정당으로 낙인 찍힌 게 타격이 컸죠. 저는 절대 대한당과 같은 실수를 저지를 생각이 없습니다. 그동안 너무 안일했습니다. 같이 살아남아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쭉정이부터 솎아내야 합니다. 서운하신 분이 계시더라도 부디 제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회의실 분위기 어땠습니까?”

고평호 상무는 폭탄 같은 발언을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그의 측근인 현상태 이사가 찾아오자 그곳 분위기부터 물었다.

“폭탄을 던지셨으니 당연히 폭탄 맞은 분위기가 됐습니다.”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고요?”

“제가 상무님 프락치라는 건 다들 아는데 설마 불만이 있다고 해도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까?”

“어허. 프락치라니. 그냥 최측근이라고 해둡시다. 그래서 그치들이 제 말을 불만 없이 조용히 받아들이더란 말입니까?”

“딱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상무님의 심중이 대체 뭔지 그걸 파악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쯧쯧쯧. 숙제를 내줬더니 하라는 숙제는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내가 왜 숙제를 내줬는지 그것만 궁금해하는 꼴이군요. 그동안 세를 불리기 위해 어중이떠중이까지 가리지 않고 받은 대가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무슨 전염병도 아니고, 같이 어울리다 보니 유능했던 사람들까지 바보가 되는 것 같아요.”

“뒤늦게라도 적절한 조처를 하셨으니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겠죠. 그렇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뿌리 뽑기 쉬웠으면 진즉 해결했겠죠. 그나저나. 이 팀장.”

현재 고평호 상무가 가장 믿는 두 사람이 바로 현상태 이사와 뒤에서 조용히 경청만 하고 있는 그의 수석비서 이석근 팀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회의는 지금부터였다.

“네. 상무님.”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지?”

“역시 상무님 예상이 맞았습니다. 이번 보궐선거에 고현호 상무가 개입한 게 분명합니다. OO시에 아이두가 유치되고 골든타운 건설과 관련한 MOU가 체결된 것도, 전부 강현순 변호사를 당선시키기 위한 국민당과 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지만 과거역사 연구를 은밀하게 움직인 인물이 바로 마동수 팀장인 모양입니다.”

“젠장. 또 마동수야? 망할 놈의 자식. 난 현호보다 그 자식이 더 싫어. 그래서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있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허점을 보일 만큼 허술했으면 애초에 상무님이나 제가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현 이사 말이 맞습니다, 상무님. 조사팀이 찾아낸 몇 가지 정황증거로 추측만 가능할 뿐이지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정황증거라는 게 어떤 건데?”

“팀에서 마동수 팀장의 행적을 잠시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뭔가 불안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후에 김이용 후보의 친일 행적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동수는 고정호 상무, 김학수 부장과 더불어 고평호 상무 측에서 전담팀까지 만들어 감시를 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인물이었다. 행적이 일정한 두 사람과 달리 마동수는, 가끔 한 번씩 행방이 묘연해질 때가 있는데 그러고 나면 꼭 뭔가 큰일이 생기곤 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보궐선거의 가장 큰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분명 마동수 짓인데 그걸 증명할만한 증거가 없으니 이석근 팀장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게 다 정호 형이 헛짓거리를 해서 그렇잖아. 허술하게 납치를 하려다 실패해서는 괜히 그 자식 경계심만 높여진 꼴이야. 진짜 거슬려. 눈앞에서 치우고 싶은데 도무지 틈을 안 보이니. 그 자식만 어떻게 멀리 보낼 수 있어도 속이 시원할 텐데 방법이 없어, 방법이.”

윤 스포츠센터의 예비 사위라는 타이틀은, 그래도 아직 진짜 사위는 아니니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그러나 고대성 회장이 직접 마동수에게 승진 명령을 내린 건 일종의 ‘불가촉’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냉혹한 고평호 상무라도 그룹 회장의 경고를 무시할 정도 대담하진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아니야. 무리할 필요 없어. 그 교활한 자식은 그런 것도 이용하고 남을 놈이야. 그냥 지금처럼 적당한 선에서 감시만 게을리하지 말라고. 어쨌거나 한 가지는 알아냈잖아. 마동수의 행적이 묘연해지는 순간 뭔가 일이 터진다는 거. 일단은 그 정도 선에서 만족하자고. 괜히 성급하게 굴다가 정호 형 꼴이 날 수 있어. 그러니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방법을 찾을 때까지 조급하게 굴지 말자고.”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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