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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84화 (384/424)

0038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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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평호 상무와 이야기가 끝나자, 현상태 이사는 조용하게 이석근 팀장을 불러냈다. 장소는 동지그룹 본사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한남동 카페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별실. 최대한 은밀함을 기하려는 듯 수행원으로 하여금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도록 지시했다.

“부르셨습니까? 이사님.”

“어서 와요. 이 팀장. 일단 이것부터 한잔해요.”

이석근 팀장이 자리에 앉자 현상태 이사는 익숙한 솜씨로 테이블 위에 준비된 차를 우려냈다. 뜨거운 물을 머금은 찻잎에 나오는 향은 별실을 가득 메울 만큼 깊고 은은했다.

“감사합니다. 차 향이 좋네요.”

“그렇지요? 이런 차는 풍취 좋은 곳 온돌방에서 앉아 먹어야 제맛인데 이런 꽉 막힌 구석방으로 불러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겠죠. 그때 다시 한 번 좋은 차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향만 간단히 느끼고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차 맛은 좋았지만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여유가 있을 만큼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현상태 이사와 이석근 팀장이 판단할 때, 상황이 그만큼 안 좋았다.

“그래야지요. 그땐 오늘처럼 불편한 마음 없이 편안하게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저도 그랬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내가 오늘 이 팀장을 이 자리에 부른 건 긴히 논의할 게 있어서 그럽니다. 나는 말이오. 이번 일을 상무님이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사실 조금 걱정이 됩니다.”

“아마 예측하기 힘든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럴 겁니다. 그리고 이사님이야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과연 그게 저만의 노파심일까요? 솔직히 지금 고현호 상무의 기세는 정말 무섭습니다. 동지랜드야 손바닥만 한 놀이공원이니까 그러려니 하더라도 동지마트의 성공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1/10도 안 되는 동지마트가 포에버마트를 합병한 건 우리나라 재계를 뒤흔드는 큰 이슈였습니다. DJ마트 프로젝트는 어떻고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인터넷 쇼핑 문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며 극찬을 하고 있습니다. 이 팀장도 잘 아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두 캐주얼은 드라마 덕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이젠 하다 하다 못해 아직 첫 삽도 뜨지 않은 골든타운까지 대박 조짐이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말입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곧 있으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중국시장 진출이 눈앞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중국 본토에 1호점을 오픈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중국 사업 파트너가 누굽니까? 바로 D&Y 피트니스 클럽입니다. 그곳 책임자는 다름 아닌 고현호 상무고요. 만약 고현호 상무가 D&Y 피트니스 센터의 해외진출까지 성공시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룹 내 위상이 더욱 높아지겠죠.”

“그냥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고현호 상무로 후계구도가 굳혀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계속 기회만 엿보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까? 상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훨훨 날고 있는데?”

“사실··· 저도 그게 걱정이 되긴 합니다.”

고평호 상무는 분명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방법을 찾을 때까지 조급하게 굴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현상태 이사의 생각은 달랐다. 이대로 있다가 추월당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석근 팀장이 그의 말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세계 1위라는 자존심까지 낮춰가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지 평가도 나쁘지 않고, 중국에서 시작한 ‘내 약혼녀는 여우’ 덕분에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서 운영할 아이두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성공 여부야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첫 단추는 잘 끼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이번 마케팅에 동양인 남자가 깊이 관여를 했다고 하더군요.”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머리를 굴릴 사람이 마동수 팀장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전 한국드라마에 아이두가 PPL로 나오는 걸 보고 의아했습니다. 어차피 그런 광고를 안 해도 잘 나가는데 굳이 드라마에까지 등장시킬 필요가 있을까? 천하의 마동수도 실수를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었죠.”

아이두는 일종의 사치품이다. 그리고 사치품은 대부분 공급과 수요가 한정적이다.

반면 TV 광고는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다. 즉 아이두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까지 광고가 노출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효과는 있겠지만 TV 광고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굉장히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유명 명품 브랜드들이 TV 광고가 아니라 지면광고에 주력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우리에겐 빌어먹을 인간이지만 절대 호락호락한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약혼녀는 여우’라는 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이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그제야 마동수 팀장의 진정한 의도를 깨달았습니다. 마 팀장은 국내시장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목표는 중국이었겠죠. 지금 중국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을 생각한다면 정말 기가 막힌 한 수입니다. 그 순간 전 그 친구가 기가 막히게 얄미워지더군요.”

“아···. 그런 것까지 계산에 넣다니. 적이지만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제가 볼 때 고현호 상무 측 전력의 반 이상은 마동수 팀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동수 팀장만 밀어내기만 하면 고현호 상무의 손발을 잘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어떻게 제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회장님이 이미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를 내렸습니다. 현 이사님. 설마 회장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시죠? 그렇다면 전 이사님에게 협력하기 어렵습니다.”

“설마요. 저 또한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어떤 방안이 있어 저를 이 자리로 부르신 겁니까?”

이석근 팀장의 질문에 현상태 이사의 눈빛이 뱀처럼 요사스럽게 변했다.

“옛날에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칼이 있었습니다. 그 칼은 세상의 어떤 단단한 물건도 벨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날카로웠습니다. 칼의 주인은 그 칼의 위력 덕분에 그 어떤 적도 단숨에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칼의 주인은 결국 세상의 주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팀장.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칼을 가지고도 세상을 가지지 못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글쎄요.”

“상대가 칼을 상대하지 않고 주인을 직접 베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칼이 단단하지 주인의 몸뚱이가 단단한 건 아니니까요.”

“현 이사님! 그럼 설마 고··· 고현호 상무를···.”

“아닙니다. 아직은 고현호 상무도 마동수 팀장의 진짜 주인은 아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석근 팀장은 뭔가를 깨달은 듯 두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너 이놈의 자식!”

윤승태 사장님의 호출에 급한 일도 미루고 윤 스포츠센터로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대쯤 호통부터 치셨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조용히 입 다물고 눈치만 보며 있었다.

“벙어리야? 왜 대답이 없어?”

“면목이 없어서요.”

“면목이 없어? 뻔뻔한 녀석 같으니라고! 사기를 치려고 해도 사람을 봐가면서 해. 내가 마 팀장을 하루 이틀 봐왔어? 이거 전부 예상했던 거잖아. 그래 놓고 인제 와서 발뺌하면 모를 줄 알아?”

말이 참 묘하다.

분명 욕을 하고 있는데 가면 듣고 보면 칭찬이다. 어쨌든 나보고 능력있다는 의미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날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신다.

내가 잔머리가 좋아서 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후폭풍까지 예상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건 아니다.

그래. 솔직히 이리저리 무리해가며 드라마 PPL을 했을 때는 분명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압력을 넣다 안 된다고, 윤승태 사장님에게 직접 청탁을 넣는 일이 생길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다.

하기야 윤 스포츠센터의 주 고객층이 상류층 사람들이니, 오래된 회원이라면 그런 청탁을 넣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일까지 예상해가며 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짜 믿어주세요.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날 줄은 정말 진짜진짜 몰랐어요.”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야? 대책은 있는 거지?”

“글쎄요. 저도 뾰족이 대책이 있는 건 아니라서.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한 번 더 해볼까요?”

“노이즈 마케팅?”

“사실은 완전 돈지랄이 바로 골든타운이다. 서비스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서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귀족 실버타운이다. 계층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악이다. 뭐 이렇게요?”

“미친 녀석.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려고? 지금 반항하는 거야? 그건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라 그냥 노이즈잖아!”

“그렇죠? 그런데 방법이 없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냥 귀찮고 괴롭더라도 참는 수밖에요.”

노골적으로 말해 ‘배 째’라는 의미였다.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두 개의 찻잔이 식어갈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눈싸움을 계속했다.

“망할 녀석.”

“믿어주세요.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알았다면 저도 PPL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아무리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고 해도 어쨌거나 실버타운인데, 그런 곳에 들어가겠다는 부자들이 많을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심지어 사장님에게 청탁까지 해가면서 말이죠.”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너 이 녀석. 골든타운이 네 아이디어라서 로열티도 받는다면서? 골든타운이 잘 되면 네게 떨어지는 돈도 늘어나는 거잖아. 그런데도 믿으라고?”

시연이가 나를 대신해 아이두에 대한 로열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안 고현호 상무가 날 위한답시고 골든타운에 대해서도 로열티라는 걸 만들어 지급하기로 했다. 영업이익의 3%를 받기로 했는데 아직 첫 삽도 뜨지 않은 상황이라 실감도 나지 않는다.

“제가 사장님 앞에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요. 솔직히 골든타운에서 받는 돈은 코 묻은 돈이죠. 제가 아이두에서 받는 돈이 일 년에 얼만지 잘 아시잖아요.”

아이두 하나에 로열티 1억 원, 아이두 캐주얼은 5천만 원이다. 그것도 한 번 지급으로 끝이 아니라 20년간 지점 하나당 1억 원씩 받기로 했다.

지금 내가 일 년에 아이두 로열티로 받는 돈이 10억이 넘었고, 중국시장까지 생각하면 예상 수령 금액이 연간 30억 원을 넘어설 분위기다. 그러니 굳이 골든타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끄응. 코 묻은 돈? 하하하. 망할 녀석.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 일은 어떻게 할 거야?”

“어쩌긴요. 그냥 절대 청탁은 안 된다고 못을 받아 주세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러는 거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 편의를 봐주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습니다. 소문이라도 나면 골든타운의 위상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 힘드시더라도 참아주세요. 저도 얼른 준비해서 2차 회원모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괜찮아 질 겁니다. 어차피 골든타운에 들어오겠다는 희망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 또 속을 것 같지만 한 번 믿어 주마.”

“감사합니다.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면 될 겁니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누가 날 욕하나?”

“널 욕할 사람이 한두 명이겠어? 그냥 그러려니 해.

============================ 작품 후기 ============================

눈치 빠르신 분들은 현상태 이사가 노리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죠?

사실 이 부분도 몇 달 동안 저를 괴롭히던 내용입니다. 과연 이 걸 독자님들이 납득을 할지. 소소한 이야기를 한다더니, 막장으로 가는 거 아니냐고 화를 내는 건 아닐지? 계속 고민에 고민만 했습니다. ㅠㅜ

어쨌든 이제 슬슬 완결을 향해 하는 것 같습니다. 지루하시더라도 조금만 힘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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