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중국에서의 행보는 그들이 왜 전 세계 1위의 대형 할인점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특히 중국시장 석권을 위해 투입하고 있는, 동지그룹 차원에서조차 상상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자금을 보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분명 비효율적인 자금 투입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단점조차 막대한 자금으로 메꿔버리는 압도적인 자금력의 위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난 이번 중국 출장에서 세상 밖의 세상을 두 번 봤다. 한 번은 중국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인구, 두 번째는 세계 1위 할인점의 말도 안 되는 돈 지랄(?).
“어머. 어머. 웬일이야, 웬일.”
차이나 월드 베리어스 클럽 시안점이 오픈되고, 팀원들과 최종 점검 차원에서 타운(월드 베리어스 클럽 직원들은 점포나 매장이라고 하지 않고 타운이라고 부른다.)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정지영 과장이 아웃렛 스토어의 유명 명품 매장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뭐? 뭔데 그렇게 놀라?”
“팀장님. 저기 저거 보이세요?”
“뭘 말하는 건데? 매장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요. 문제는 무슨. 아니죠. 어떻게 보면 문제라고도 할 수 있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몽롱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그 문제가 뭐냐고? 그래야 고치든 말든 할 게 아니야.”
“어휴. 답답해. 딱 보면 모르겠어요?”
“정 과장아. 나야말로 답답하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똑바로 대답 안 해?”
“남자들의 대체 왜 모를까요? 저 아이의 황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말이에요. 다른 아이들을 오징어로 만들어버리는 영롱한 모습이 보이지 않으세요?”
“저 아이? 정 과장. 너 설마 저 매장 안에 있는 가방을 보고 그러는 거야?”
언젠가 저런 모습을 본 기억이 났다. 예전에 명품 가방을 ‘아이’라고 부르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던 그런 여자를 사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 불가였는데 그 모습을 지금 보게 될 줄이야.
그래도 정지영 과장의 마음을 이해해보기 위해 매장 안의 가방들을 대충 훑어 봤지만, 영롱한 자태는 개뿔. 내 눈엔 그냥 그 가방이 그 가방처럼 보였다.
“당연하죠. 2010년 겨울 신상으로 나왔던 제품인데, 저 아이가 벌써 아웃렛에 풀릴 줄이야. 저도 소문만 들었는데 역시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대단하네요.”
“저기 정 과장.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말이야.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2010년 겨울 신상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작년에 나온 거잖아. 결국, 이월상품인데 아웃렛에 나올 수 있는 거 아니야?”
“우리 불쌍한 윤 작가님. 이런 무심한 남자가 약혼자라니. 흑흑.”
정말 몰라서 묻는데, 정지영 과장은 황당한 표정과 함께 과장되게 우는 시늉이다.
“자꾸 그렇게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 좀 해주지. 그럼 내가 특별히 저걸 살 수 있는 시간을 줄게.”
“어머. 그거 정말이세요?”
반색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출장이라도 일과 시간이고, 게다가 다른 회사의 협업 중인 상황이라, 대외적 이미지도 고려해 그동안 팀원들을 많이 타이트하게 쪼긴 했다. 그렇게 일할 때는 절대 딴짓을 못 하게 했더니 저렇게 눈치만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그러니까 빨리 설명해. 설명이 빨리 끝나면 끝날수록 정 과장이 ‘저 아이’라고 부르는 가방을 사러 갈 시간도 빨라져.”
“호호호. 사랑해요. 팀장님.”
“워워. 난 임자 있는 몸이니까 사랑 고백은 사양할 게. 그냥 설명만 부탁해.”
“흥. 저도 딱히 팀장님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단지 저 아이를 사랑해서 그런 거지.”
“어허. 잡설이 길다, 정 팀장아. 시간 계속 지나간다. 그 사이 누가 저걸 사가면 어떡하려고.”
“아! 그렇죠. 그럼 잘 들으세요. 그러니까 아웃렛이라는 게 뭐예요?”
“재고 상품을 싸게 파는 전문점 정도로 설명할 수 있으려나.”
“맞아요.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죠. 그 밖에 비인기상품이나 하자상품들도 함께 취급하고 있죠. 사실 명품 아웃렛이 인기인 건 명품 로고가 붙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어서예요.”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명품에 집착하면서 품질보다 명품의 로고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 모습 때문에 평범한 제품에 명품 로고만 붙여 파는 얄팍한 상술이 생겨난 것이다.
“그게 명품 아웃렛이 생겨난 목적이기도 하지.”
“하지만요. 아무리 사람들도 보는 눈이 있단 말이에요. 허접한 제품에 명품 로고만 붙여서 파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런 제품들만 모아서 판다고 절대 열광하지 않아요. 그럼 결국 짝퉁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요. 그래서 이월상품이나 비인기상품을 같이 모아서 팔죠. 어쨌거나 그건 진짜 명품이니까요.”
“그렇겠네. 일종의 미끼라고 할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이월 상품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겠군.”
“네. 그래서 부자들은 아웃렛에 가지 않아요. 진짜 좋은 제품은 백화점에 있지 아웃렛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저 같은 월급쟁이들은 그 매장에 이월 상품으로 얼마나 좋은 제품이 들어왔느냐로 좋은 아웃렛과 나쁜 아웃렛을 구별해요.”
“음. 그러니까 좋은 명품 아웃렛이 되려면 백화점에서나 파는 제대로 된 명품을 취급해야 한다는 의미네?”
뭔가 아리송하다. 역시 명품의 세계는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팀장님도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팀장님이 백화점에 가서 우리 윤 작가님에게 선물하려고 오백만 원이 넘는 가방을 샀어요. 그런데 그 제품이 명품 아웃렛에서 200만 원에 팔고 있다는 걸 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당연히 기분 나쁘겠지.”
“그렇죠? 그런 일이 생기면 명품에 대한 이미지만 나빠져요. 당장 총매출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죠. 그래서 명품 회사들은 아웃렛에 보낼 수 있는 제품들도 소각해버리곤 해요. 눈앞의 돈보다 장기적 이미지가 더 중요하니까요.”
“음. 무슨 말인지 이제 좀 알 것 같네. 그러니까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전 세계의 아웃렛 중,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명품에 가까운 명품을 취급한다는 의미?”
“빙고! 제가 생각할 땐 그게 바로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진짜 성공비결인 것 같아요. 저기 있는 저 아이도 지난겨울에 진짜 인기 많았던 제품이라고요. 평범한 아웃렛은 당연히 꿈도 못 꾸고 아마 세계적인 유명 아웃렛에서도 볼 수 없을 걸요? 모르긴 몰라도 백화점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저 아이를 파는 곳은 여기가 유일할지도 몰라요.”
“젠장. 정말 재수 없을 정도로 얄미운 마케팅이네.”
명품 가방을 모르는 내가 봤을 땐 황당하지만, 마케팅 종사자 입장에서는 봤을 땐 너무나도 매력적인 마케팅 기법이었다.
전 세계에서 해당 제품을 유일하게 판매하는 아웃렛. 굳이 TV를 통해 떠들썩하게 광고하지 않아도 소문을 통해 명품 마니아들 사이에 소식이 전해질 게 뻔했다.
“팀장님이 봐도 그렇죠? 명품 회사들은 정말 속 편할 것 같아요. 광고를 따로 하지 않아도 알아서 소문이 퍼지잖아요.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한국과 일본에서 소문을 들은 명품 마니아들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겠죠.”
“그것참···. 솔직히 이해는 안가. 비행기 값을 생각하면 그냥 자기 나라에서 물건을 사는 게 나을 텐데.”
“호호호. 명품을 사는 사람들은 물건값만 보지 경비는 생각하지 않아요. 버스를 타고 가나, 택시를 타고 가나, 비행기를 타고 가나, 그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싸게 그 제품을 샀느냐. 그게 중요할 뿐이죠.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저렴하게 득템 했다면서 자랑하겠죠. 아마 팀장님이 이런 것까지 이해하게 된다면 진정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가 될지도 몰라요.”
“됐거든. 그런 건 되고 싶지도 않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사람들의 그런 복잡한 심리까지 알고 싶은 생각은 없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나는 그냥 박리다매가 좋다. 그게 최고야.”
“에이. 제가 볼 때 팀장님은 박리다매보다 명품 쪽이 어울려요.”
“내가? 내가 어딜 봐서? 이거 갑자기 서운해지려고 하네. 우리 그동안 꽤 오래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날 몰라?”
“잘 아니까 이러는 거죠. 팀장님은 악당이라고요.”
“뭐? 악당? 팀에서 쫓겨나고 싶어?”
“호호호. 그런 말을 했다고 쫓아낼 팀장님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저같이 유능한 인재를 또 어디서 구하려고 그러세요? 백번 양보해서, 저처럼 유능한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성격까지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어요. 그리고 팀장님은 악당 맞아요.”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은 걸 보니 내가 악당이 맞긴 한가 보다.
“무슨 근거로?”
“팀장님이 그동안 해오신 스타일이 그렇잖아요. 특히 아이두나 골든타운 보세요. 처음부터 부자들의 두툼한 지갑이 목적이었잖아요. 교묘하게 그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악당이 따로 없다 싶더라니까요. 나쁜 말은 아니에요. 악당이지만 든든하니까요.”
“얼씨구. 병 주고 약 줄라고? 됐고. 얼른 가서 정 과장이 오매불망하던 그 아이나 사. 간 김에 제대로 구경도 좀 하고. 오픈까지 했으니까 잠깐 좀 쉬자. 미래씨도 정 과장이랑 같이 갈래?”
“그래도 되나요? 사실 저도 좀 궁금하긴 했어요.”
여자 혼자 보내는 것보다 두 사람이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함께 있던 추미래에게 물었다. 그러자 추미래는 금세 반색했다. 명품에는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녀도 여자이긴 여자였나 보다.
“당연하지. 그동안 일하면서 많이 돌아다녔는데도 궁금한 게 있어? 하여간 여자들이란. 그럼 잘 구경하다 이따 퇴근 한 시간 전까지만 와. 그렇지만 쇼핑에 정신 팔려서 늦으면 국물도 없어. 알았지?”
“네. 팀장님. 감사해요.”
두 사람이 신이 나서 명품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나와 윤권이는 타운 점검을 계속했다. 정지영 과장의 말이 아니라도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저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 비하면 우리 동지마트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실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동지마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동안 동지마트를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성장 원동력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번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협업이 내게 돌파구를 마련해 준 느낌이다.
내 생각대로만 된다면, 어쩌면 5년 안에 3-마트가 지켜왔던 한국 대형 할인 마트 1위 자리를 동지마트가 빼앗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일말의 가능성만 봤을 뿐이지만······.
============================ 작품 후기 ============================
동수는 아무 것도 모른채 동지마트를 좀 더 성장시킬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나름 폭풍전야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독자님들은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ㅠㅜ
이제 주인공은 한국으로...
빨리 한 편 더 올려서 12시 연재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할텐데요 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