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92화 (392/424)

0039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사실 나도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었어. 어떻게 보면 너무 황당한 이야기잖아. 솔직히 내가 음모론을 좋아하긴 해도, 이건 듣기에 따라 편집증처럼 보일 수도 있거든.”

“아니에요. 상무님도 이미 신경 쓰기 시작했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내용이잖아요.”

조금 전 조기훈 차장의 말처럼 우린 어쩌면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인간을 적으로 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팔에서 소름이 오돌오돌 돋았다.

“그런데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아마 그게 사실이라도 현상태 이사가 우리를 노릴 일은 거의 없어.”

“네? 그건 또 왜요?”

“지금껏 패턴을 보면 현상태 이사는 몸통이나 꼬리에는 관심이 없었어. 항상 대가리만 노렸어. 죽은 사람들도 보면 전부 최고 윗선이었거든. 설사 실질적인 머리는 따로 있다고 해도 상관 안 해. 항상 목표는 대가리야.”

“그럴 수도 있지만 세 번이면 대조군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요.”

“그것만 보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업 스타일도 그래. 왜 무사들도 저마다 칼 쓰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하잖아. 어떤 사람은 팔다리를 노리고, 어떤 사람은 집요하게 심장만 노리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단숨에 상대의 목을 날리는 걸 선호해.”

“차장님이 볼 때 현상태 이사는 마지막 경우?”

“그래. 뭔가 집착증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요해. 물론 효과는 굉장히 좋았어. 머리가 날아가는 순간 숨통이 끊기는 거니까.”

그 말에 뭔가 안심이 되면서도 불안했다. 지금 고현호 상무 측에서 가장 경계를 해야 할 인물이 김학수 부장과 나다. 그런데 현상태 이사의 스타일 상 우리 두 사람을 노리지 않는다면 남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설마 그럼 고현호 상무가 타깃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

“이를테면 그렇지.”

“에이 그래도 친동생인데 설마.”

“돈 앞에서는 부모 자식 간에도 칼부림을 하는 게 요즘 세상이야. 그런데 그냥 돈도 아니고 동지그룹이 걸려있다면, 솔직히 칼부림 정도는 애교지. 그리고 마 팀장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주체는 고평호 상무가 아니라 현상태 이사야. 그 양반에게 고현호 상무는 친동생이 아니지. 핏방울 하나 안 섞인 남을 뿐이야. 만약 우리 생각처럼 정말 소시오패스라면 일말의 가책도 없을걸?”

“그럼 어쩌죠? 아무래도 상무님에게 조심하라고 말씀드려야겠죠?”

“나도 그러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제아무리 현상태 이사가 날고뛰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대기업 로열패밀리를 사고를 가장해서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원래 열 명 장정이 한 명 도둑을 못 막는다고 하잖아요. 마음먹고 해코지를 하려면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 내겠죠.”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해. 자칫 회장님의 분노를 사서 고평호 상무까지 쫓겨날 수 있거든. 그런 것까지 감수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커.”

“하긴. 후계자에서 쫓겨났다고 해도 고정호 전무, 아니지 지금은 사장이죠. 동부 유업 사장. 아무튼, 고정호 사장이 어떻게든 기회만 엿보며 와신상담하고 있을 텐데 쉽게 빌미를 줄 순 없겠네요.”

아무리 쫓겨난 아들이라고 해도 아들은 아들이다. 만약 막내아들이 잘못되고 그 배후에 둘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고정호 사장을 다시 불러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현상태 이사도 쉽게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다. 혹, 궁지에 몰린 쥐 신세라면 모를까.

***

“그래서 내가 소설을 하나 써 봤어.”

“네? 또 그놈의 음모론입니까?”

동수는 이젠 징글징글하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음.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일단 한 번 들어봐. 내가 아까 이야기했지. 현상태 이사는 대가리만 노린다고.”

“그랬죠. 그래서 차장님과 제가 고현호 상무를 걱정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동지그룹의 진짜 대가리가 누굴까?”

“네? 진.짜. 대가리요?”

“그래. 진짜 대가리. 다른 말로 우리 동지그룹의 주인. 일명 스페셜 원이 누구지?”

“네? 에이. 설마. 아, 진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하여간 차장님도. 그놈의 음모론에 언제까지 빠져 사실 겁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게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진짜 미친놈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을 벌일 리가 없잖아요. 그냥 음모론은 차장님 혼자 상상하세요. 전 그냥 가볼랍니다.”

동수는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간 끝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기훈 차장이 뭐라고 하든 얼른 귀를 막다시피 한 모습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조기훈 차장은 자기 말만 하고 바람처럼 나가버리는 동수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가정한 게 사실이라면, 현상태 이사는 진짜 미친놈이라고.”

***

“왜 그러신 겁니까?”

이사회를 마치고 회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 없이 둘 만 남자, 고진성 부회장이 고대성 회장에게 회의장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물었다.

“뭘 왜 그래?”

“다 아시면서 그렇게 시치미를 떼십니까? 평호를 왜 그렇게 자극하셨느냐 말입니다.”

“아, 그거? 내가 못할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만 이사들까지 지켜보던 공개된 자리였습니다. 안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아이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뭉개버릴 필요는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녀석이 요즘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서. 그리고 조용히 불러서 경고를 준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럼 그냥 알았다고 끝나지, 별다른 경각심도 못 느낄걸? 차라리 사람들 많은 데서 제대로 망신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러다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고작 그런 말로 상처를 받아? 그리고 나는 애들을 그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았어. 그런 걸로 무너질 정도면 애초에 그룹 후계자의 자격조차 없는 거야.”

고대성 회장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그에게는 자식보다 동지그룹이 더 중요했다. 그의 말에 상처받을 자식보다, 모진 고난에도 흔들림 없는 후계자를 만드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의에서 그렇게 고평호 상무를 몰아붙인 것이다.

“휴···. 그러게요. 회장님 말처럼 좋은 자극이 되어야 할 텐데요.”

고진성 부회장은 고대성 회장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알고 더 이상의 설득을 포기했다. 수십 년 동안 고치지 못한 성격이 지금 당장 바뀔 리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좋은 자극이 되면 현호와도 좋은 경쟁이 되겠지. 현호가 갑자기 너무 컸어. 이런 식으로 아무런 제어도 없이 커버리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나태해져. 정호도 그랬고, 평호도 그랬어. 또다시 그 모습을 지켜볼 바에 차라리 긴장을 늦추지 못하도록 바짝 조이는 게 나.”

“설마 벌써부터 정호로 염두에 두시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렇지만 셋 중에 제일 지켜보는 맛은 나. 두 녀석은 너무 뻔하다면, 정호는 녀석이 호언장담한 대로, 나와 스타일이 완전히 반대야. 그래서 색달라. 다음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기대가 되는 것도 있고.”

“그럼 평호를 자극한 것도 결국 목적은 평호가 아니라 정호인 겁니까?”

“어허. 아직 결정 난 건 아니래도. 나는 지금 시험지를 던져두고 녀석들이 어떤 답을 낼지 지켜보고만 있을 뿐, 판단을 내리기엔 일러. 그렇게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 한 녀석만 남겠지. 후계자는 그때 선택해도 늦지 않아.”

띵.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회의는 잘 끝나셨습니까?”

문 앞에는 고대성 회장의 비서실장인 이도우 실장과 비서실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회의? 그럼 아주 잘 끝났지.”

“웃으시는 걸 보니 아주 만족스러우셨나 봅니다. 회장님.”

이도우 실장은 조금 전 회의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곳에 있던 다른 비서의 보고를 받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모른 척 고대성 회장의 심기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기업 회장의 비서가 하는 일은 많지만, 이도우 실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시는 분의 기분 상태였다.

“그럼. 아주 만족스러웠지.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커.”

“회의가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오늘은 어떤 차로 준비할까요? 유 비서를 시켜 커피를 준비시킬까요?”

“유 비서가 만드는 커피? 괜찮지. 그럼 오랜만에 유 비서가 끓여 주는 진한 커피 향을 맡아 볼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곧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같은 기분에는 커피를 즐겨 마시는 고대성 회장이다. 이도우 실장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완벽하게 헤아렸다. 그 덕분에 고대성 회장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유진서씨.”

“네. 실장님.”

“회장님 말씀 들었죠? 평소보다 조금 진하게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실장님.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도우 실장 밑에는 네 명의 비서가 있다. 각자 맡은 업무가 다르듯 음식이나 심지어 차를 만드는 조차 전문 분야가 따로 있었다. 유진서는 그 중 커피를 담당했고, 이도우 실장은 그를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게 할 만큼 매사 철저했다.

이번에 유진서가 선택한 원두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였다. 부드러우면서 짙은 향과, 달콤한 신맛 때문에 고대성 회장이 좋아하는 커피 중 하나였다.

그 밖에 몇 가지 원두가 더 준비되어 있다. 품질은 언제나 최고급이며, 보관 기간은 최대 삼 일을 넘지 않는다. 삼 일이 지난 원두는 원칙적으로 폐기 되는데 보통은 비서들이 나눠 가지거나 회사의 친한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유진서는 능숙한 솜씨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서실은 금세 진한 커피 향으로 가득 찼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커피와 커피가 담긴 잔을 들고 회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회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표정과 움직임은 한결같았다. 마치 움직임에 절도가 느껴질 만큼 빈틈없고 철저해 보였다.

띠링.

그러나 천하의 고대성 회장 앞에서도 흔들림 없던 그녀의 담담한 표정은, 조금 전 휴대폰에 표시된 세 글자의 이름에 거침없이 흔들렸다.

[이석근]

유진서를 흔들리게 만든 세 글자 이름의 정체였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단지 이름만 봤는데도 심장이 주체하지 못하고 미칠 듯이 뛰었다.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확인 버튼을 눌렀다.

============================ 작품 후기 ============================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고, 이제 슬슬 막장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완결을 두고,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두 사람이 경합을 통해 정정당당한 승부를 내느냐 아니면 지금의 스토리처럼 뒷공작이 섞인 막장스타일로 이끌고 가느냐.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이 두 가지를 두고 몇 달을 고민했습니다. ㅠㅜ 그리고 결국 후자를 선택했죠. 막장스토리 같아서 마음에 걸리지만, 달리기 경주도 아니고 대기업 후계자를 뽑는 자린데 정정당당한 경합으로 승부를 내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더군요.

부디 괜찮은 선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ㅠㅜ

어쨌거나 연참에 성공했습니다. ^^

음.. 그리고..

너무 노골적인 말이라 좀 민망하지만.. 쿠폰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