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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95화 (395/424)

0039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뭔가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는데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현상태 이사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절대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광역수사대를 이끌고 있는 광우에게 사건을 한 번 알아볼 것을 넌지시 권했다.

한참이나 연락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전화해서 소식을 전했다. 혹시나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별것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광우가 대단한 경찰이라도 해도 몇 년씩 지난 사건을 파헤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쉽게 증거가 나왔다면 지금처럼 소문으로만 돌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 역시 그렇구나. 그런데 확실히 의심스럽긴 한 거야?”

“한 명은 병으로 죽은 거지만 어쨌든 관련자가 세 명이나 죽었잖아. 그런 식의 우연은 절대 쉽게 일어나지 않아. 내가 볼 땐 가능성이 매우 높아. 함부로 범인을 단정 지으면 안 된다는 지침만 없었다면 100% 그 자식이 범인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 정도야? 그럼 계속 조사해볼 거야?”

“아니. 증거가 없어서 계속 조사하긴 힘들 것 같다. 광수대 바쁜 건 너도 잘 알잖아. 몇 년씩이나 지난 정확한 증거도 없는 사건에 매달리기에는 세상에 나쁜 놈이 너무 많아. 그런 놈은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 잡아넣어야 하는데 이번 일은 좀 아쉽네.”

아무리 광우가 경찰 사이에서 별종으로 통한다고 해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정황만 가지고 수사팀을 움직이긴 어렵다. 나도 어떤 해결을 기대하고 연락한 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고마웠다.

“바쁜 데 시간 빼앗은 건 아니지?”

“다른 대원에 비하면 나는 좀 한가한 편이잖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당분간 윤권이 곁에서 떨어지지 마. 대가리만 노리는 성향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대가리 노리다가 안 되면 팔 다리를 노릴 수도 있는 거잖아.”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데이트할 때도 붙어서 지긋지긋할 정도다.”

“하하하. 그게 다 네 탓이라고 생각해라.”

“내가 뭘?”

“내가 뭘? 지금까지 친 사고를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텐데? 너 인마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겪을까 말까 한 일이 네게만 자꾸 일어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안 해봤어?”

“내가 워낙 잘나서 남들이 시기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미친놈. 이제 하다하다 왕자병까지 걸렸어? 작작 좀 하지?”

“쓸데없는 소리 하려거든 이만 끊는다. 전화비도 전부 나라 세금인데 아껴야지. 수고해라.”

자식이 심심한 가 본데 놀아줄 시간이 없다.

나도 뭔가 내 삶이 남과 다르게 스펙타클하다는 건 느끼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에 겁먹고 숨죽이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냥 생긴 대로 사는 수밖에.

***

“최 대리. 아니 종현아.”

“네. 팀장님. 넌 절대 나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돼. 알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제일 닮고 싶은 분이 팀장님인데.”

최종현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군대를 면제받았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어린 나이에 동지그룹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회사에 입사한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하면 아니꼽게 생각하는 동료도 많았고, 후배들도 자신보다 어린 그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특히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군대를 면제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려 드는 인간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최종현을 많이 힘들게 만들었다.

최종현도 원해서 군대를 면제받은 게 아니다.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어머니밖에 없는데 그런 어머니가 아팠다. 그가 입대하면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는 상황,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어머니가 아파서 면제를 받았다고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남들이 오해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러면서도 상처는 받기 싫어 몸 전체에 갑옷을 두르고 가시를 세웠다.

과거 마동수를 괴롭히던 최종현은 그런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다. 아무나 치근거리는 색기 가득한 양지선 팀장도 싫었고, 지금까지 겪었던 인간 중 최악이었던 이기적 대리는 소름 끼쳤다. 조기훈 과장이 그나마 인간적이었지만 이기적 대리의 횡포를 방관하고만 있는 그에게 별다른 정을 느끼긴 힘들었다.

그렇게 힘겨운 직장생활을 하던 중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바로 이석근 팀장과의 만남이었다. 평소 차가운 성격으로 알려진 그였지만 이상하게 최종현에게만은 살가운 편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혹시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의심을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사정을 알고 그런 의심을 풀 수 있었다. 사실 이석근 팀장과 최종현은 서로 많은 면에서 닮았다. 특히 아픈 어머니를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어려운 살림에 고군분투했던 모습은 마치 판박이처럼 비슷했다.

이석근 팀장이 양지선 팀장 이하 팀원들을 자신의 진영의 끌어들인 이유는 딱 하나였다. 마동수에 대해 적대적이면서도 마동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오직 그 사실 하나만으로 팀 전체를 끌어들일 정도로 마동수는 그만큼 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새로 들이는 팀에 대한 조사는 철저히 했다. 혹시라도 고현호 상무 측의 프락치가 숨어 있으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최종현의 집안 형편이었다. 본인과 많이 닮은 최종현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봤다.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 예전과 그와 똑 닮았고 그래서 최종현에게만은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은 최종현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하다는 유대감에서 오는 친밀함 때문인지 이석근 팀장에게 자꾸 정이 갔고 의지가 됐다.

최종현이 동지그룹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딱 두 명이다. 마동수 팀장과 이석근 팀장. 그리고 우연처럼 두 사람 모두 동지그룹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동수는 무슨 만화 속에서나 볼법한 독특하고 황당한 캐릭터라 도저히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 없었다. 반면 이석근 팀장의 성공 스토리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오른 그야말로 현실적인 케이스였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차기 동지그룹 총수 후보 1순위라 평가되는 고평호 상무의 최측근이 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멋지게 성공해야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오늘 이석근 팀장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그동안 항상 자기관리가 철저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오늘은 뭔가 속상한 일이 있는 듯 많이 취한 모습이었다.

“나를 닮고 싶다고? 대체 내가 어디가 잘났다고 나를 닮아?”

“잘난 게 없다니요. 팀장님처럼 대단하신 분이 어디 있다고요? 고학생 신분으로 어렵게 공부해서 동지그룹에 입사한 이후 승승장구 하셨잖아요. 지금은 차기 총수에 가장 근접한 고평호 상무님의 왼팔이라고 불리고 계시고요. 솔직히 동지그룹에서 팀장님만큼 성공한 사람 찾기 힘듭니다.”

“성공한 사람을 찾기 힘들어? 휴··· 종현아.”

“네. 팀장님.”

“넌 아직 순진하구나. 나는 동지그룹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야. 그냥 시계 속 수많은 부품 중 하나야. 남들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해서 부속품이 아닌 건 아니야. 그냥 소모품이지. 나 정도는 동지그룹에서 흔해. 동지그룹에서 평범 이하의 집안 출신이면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볼 때 딱 두 명이야.”

“네? 원래 좋은 집안사람이 아니고 팀장님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있긴 합니까?”

“김학수 부장, 마동수 팀장. 그 정도는 되어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알겠어? 그리고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꼽으라면 난 마동수 팀장을 선택하겠어.”

“마동수 팀장이요?”

“그래. 그 녀석 정도는 돼야 제대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난 거기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어. 한때는 네 졸따구라 속상할 수도 있겠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놈은 진짜야.”

마동수 이야기가 나오자 최종현은 이석근 팀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석근 팀장은 자신이 마동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비가 필요했을 때 거액의 돈을 서슴없이 빌려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최고 전문가가 있는 병원을 섭외해주고 믿을 수 있는 요양원까지 알아봐 준, 최종현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석근 팀장에게는 할 수 없었다. 그가 마동수와 자신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친근하게 지낼 수 없을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속인다는 게 항상 마음에 걸리면서도 그냥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저와 같이 일할 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랬겠지. 과거의 사실로 그를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돼. 지금은 누가 뭐래도 동지그룹 최고의 인재니까. 미국 명문대 출신도, 서울대 출신도 전부 눈뜬장님으로 만든 진짜배기.”

“지금 보여주고 있는 성과를 보면 놀랍긴 합니다. 신입일 때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마동수가 아니라 마동수 할애비가 와도 이기적 그 멍청이 밑에 있으면 빛을 보지 못했을 거야. 내가 살다살다 동지그룹에서 그런 멍청이는 처음 봤을 정도니까. 종현이 너도 그렇잖아. 이기적 밑에 있을 땐 평범했는데 지금은 믿고 일을 맡기고 싶을 만큼 꽤 쓸만해. 그러니까 직장인은 윗사람을 잘 만나야 해.”

“그 말씀은 저도 동감합니다. 이렇게 팀장님을 만나보니 확실히 알 것 같더라고요.”

“후훗. 아부는···.”

“아닙니다. 아부라니요. 팀장님은 진짜 제 롤모델이십니다. 믿어주세요.”

이석근 팀장이 자조적인 웃음을 짓자 최종현은 억울한 표정까지 지으며 항변했다.

“롤모델? 고마운 말이지만 그러지 마라. 난 실패한 인생이다.”

“팀장님. 오늘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씀은 절대 인정하지 못합니다.”

“아니야. 실패했어. 왜 실패했는지 알려줄까?”

“아니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팀장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쯧쯧쯧. 그러니까 들어봐봐. 내가 왜 실패한 인생인지 자세히 설명해줄 게.”

“팀장님!”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눈앞에 있는 술잔에 술을 따라 연거푸 마시자, 그를 보는 최종현의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

“우선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 정말 불쌍하시다. 정말 어렵게 나를 키우셨거든. 그런데 제대로 된 보답도 못 해보고 덜컥 병에 걸리신 거야. 지금도 투병 중이신데 아들이 돼서 병문안도 제대로 못 가.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우리 와이프가 싫어하거든.”

“사모님이 왜요?”

“내가 이야기 안 했나? 우리 와이프님께서는 고평호 상무님의 팔촌 동생이야. 직접 소개를 해주셨고, 집안도 대단해서 내가 눈치를 봐야 해. 결혼 전에 그러더라고 어머니가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대신 가족과의 관계는 끊어라. 자기는 시집살이도 싫고, 시댁이라고 유세 부리는 꼴을 보는 것도 싫대.”

“그래서 어머님을 뵈러 갈 때도 눈치를 보시는 겁니까?”

“응. 내가 좋다고 했어. 그 여자와 결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행복해지려면 성공해야 하니까, 성공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어설프게나마 성공해서, 그걸 자랑하고 싶었거든. 하지만 자랑할 사람이 주변에 없더라고. 성공을 바라보고 가족을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사랑하던 여자를 버렸거든. 그렇다고 와이프에게 자랑할 수도 없어. 그 여자가 생각하는 성공은 아직 한참 부족해서 자랑할 엄두가 안 나.”

“팀장님이 사모님을 오해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야. 난 집사람을 잘 알아. 절대 오해하는 게 아니야. 탐욕스러움 그 자체거든. 집사람 이야기는 하지 말자. 술맛 떨어진다. 종현아. 그리고 있지. 오늘 나··· 예전에 버렸던 여자에게 또다시 몹쓸 짓을 했다.”

언제나 단단할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보여주는 슬픈 눈빛을 보자 말문이 막혀버렸다. 감히 위로를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작품 후기 ============================

힘들게 연참하겠다는 약속 지켰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꽁꽁 숨겨놨던 마지막 떡밥이 등장했습니다.

최종현.. 너무 오래된 사람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시죠? 연재를 몇 번이나 쉬어서 그래요. 죄송해요.ㅠㅜ

그렇지만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시는 분이 있다면 대충 어떻게 진행될지 감이 오시죠? 그렇습니다. 제가 원래 이렇게 뻔한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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