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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96화 (396/424)

0039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아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한송이는 어려운 수술을 마치고 요양원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매주 찾아오는 아들인 최종현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많이 어두웠다.

항상 고생만 시킨 아들. 그렇지만 그동안 힘든 내색 한 번 제대로 하지 않던 기특한 아들이었다. 오히려 엄마가 걱정할까봐 밝은 표정만 보여주던 아들이었는데 무슨 걱정 때문인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응? 무슨 일은.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회사 일이 어려워서 그래?”

“아니. 회사 일은 재미있어. 대리로 승진하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으니까 보람도 느껴져.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정말 정말 만족하고 있으니까.”

최종현은 일부러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현송이는 어색한 아들의 웃음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알아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엄마.”

“응? 왜 아들.”

“있지. 내 친구 이야긴데. 회사에서 정말 친한 직장 상사가 두 사람 있대.”

“그런데?”

친구가 아니라 본인 이야기라는 걸 알았지만 현송이는 모른 척하며 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별로 안 친해.”

“안 친하다고? 서로 성격이 안 맞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서로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사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이를테면 적이거든,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반드시 꺾어야 하는, 마지막 한 사람만 남아야 하는 적. 두 사람 사이가 그래?”

“어머. 친구에게는 가혹한 일이네. 함께 공존할 방법은 없고?”

“공존할 방법 같은 건 없어. 그래서 친구는 자기가 마치 줄리엣이 된 기분이래.”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그 줄리엣?”

“응. 두 사람의 가문인 몬테규가와 캐플릿가가 서로 철천지원수 사이잖아. 엄마도 알지?”

“그럼. 엄마가 예전에 얼마나 좋아했던 소설인데. 당연히 알지. 친구가 그 정도로 고민이 많은 거야?”

현송이는 자신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가는 걸 느꼈다. 웃으면서 대답은 했지만 하필이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니. 아픈 엄마를 두고 아들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쉽지 않았다.

“응. 그런가 보더라고.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은가 봐.”

“하지만 종현아. 두 사람 다 친구의 직장 상사라면서? 직장 상사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럼 어느 한쪽 편을 들지 말고 두 사람 모두 잘 지내면 안 되는 거야?”

“응. 처음엔 그랬지. 엄마 말처럼 그래도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어. 며칠 전에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게 됐거든. 그 때문에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 왔어.”

최종현은 그저께 있었던 이석근 팀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어떻게 할 거라는 정확한 정보를 말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을 가지고 추측해보면 그가 뭘 노리고 있는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바로 동지그룹의 고대성 회장.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최종현은 자신의 심장이 바닥으로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처음엔 설마했다. 동지그룹에서 감히 고대성 회장이 심장을 겨눌 미친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렇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의 추측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일종의 쿠데타였다. 고현호 상무가 최근 들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무모한 계획을 세워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건 모르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석근 팀장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던 모른 척하는 게 최고다. 일적으로 본받고 싶은 사람이고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니 만약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최종현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었다. 반면 실패한다고 해도 그들의 계획에 가담한 건 아니니 불이익을 받을 일도 없다.

그러니 굿이나 보며 떡이나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평소처럼 하던 일에 집중하면서 속 편하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석근 팀장도 그럴 거라고 믿고 엄청난 비밀을 털어놨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런 최종현의 마음에 걸리는 딱 한 명 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마동수였다. 서로 대적 관계인 만큼 이석근 팀장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애써 모른 척하면 그만이었다. 마동수에게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니니 꼭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바늘에 찔리듯 심장이 아팠다.

어머니에게는 둘 다 좋아한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경우가 달랐다. 한 사람은 자신을 높이 끌어줄 사람, 다른 한 사람은 고마운 사람이다. 전자가 그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면, 후자는 언젠가 갚아야 할 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전자는 투자, 후자는 부채.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결론은 명확했다.

하지만 최종현이 마동수에게 받은 도움은 합리적인 선택이라면서 외면하기엔 너무나도 큰 은혜였다. 예전과 달리 건강한 혈색을 되찾은 지금의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그 친구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그냥 모른 척 가만히 있기 힘든 상황이면 어쨌든 결정을 내려야 할 텐데.”

“모르겠어. 아직 고민인 것 같아. 그렇지만 곧 결정을 내려야 해. 모른 척하는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편을 드는 거니까.”

“아들은 친구에게 뭐라고 조언해줬는데.”

“그냥··· 나도 모르긴 마찬가지야. 한 명은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정말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거든.”

이 말을 듣는 순간 현송이는 아들이 말하는 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 모자에게 거액의 치료비를 빌려주고, 그 이후에도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계속해서 편의를 봐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때의 갑작스러운 도움에 아들이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하던 그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했다.

미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말에, 아들을 생각하는 어미의 입장으로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금세 마음을 가다듬고 고뇌에 찬 최종현의 눈을 바라봤다.

“아들.”

“응?”

“내가 네가 강요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인생을 오래 산 사람으로서 딱 한마디만 할 게.”

“그게 뭔데?”

“예전에 신채호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그 말을 곱씹으면서 진짜 미래에 도움이 될 사람이 누군지 친구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해.”

“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멋진 말이네. 그러네. 정말 단순하지만 명쾌한 말이네.”

***

Rrrr

“네. 여보세요.”

“동수형. 잘 지내? 나 종현이.”

“어! 그래 종현아. 잘 지내지?”

요즘은 현상태 이사가 신경 쓰여 밖에서 데이트도 못하고 있다. 그렇게 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시연이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최종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때는 내 직장 상사였지만, 이젠 ‘형, 동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스스럼이 없어진 사이가 됐다.

갑자기 양지선 팀장의 팀 전체가 고평호 상무 휘하로 들어가는 바람에 어색해질 수도 있는 사이였지만, 오랜만에 전화를 한 녀석의 목소리에서는 그런 껄끄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잘 지내긴 하지만 그래 봐야 동수 형만 하겠어? 형은 요즘 더 잘나간다면서?”

“하하하. 그러기에 내가 우리 팀으로 오라고 했었잖아. 그랬으면 너도 대리가 아니라 과장을 달 수도 있었어.”

“됐어. 난 그냥 평범하게 살래. 형처럼 그렇게 살기엔 내 심장이 너무 소심해서. 그리고 형은 좋은 사람이지만 직장 상사로서는 매력 없어. ”

“뭐? 내가 어때서? 우리 팀원들 나 완전 좋아하거든?”

“걔들이야 원래 형 밑에 있던 사람이잖아. 난, 한 때라곤 해도 형보다 윗사람이었다고. 체면이 있지. 아무리 전세가 역전됐다고 내가 형 졸따구가 될 순 없잖아?”

“하하하. 올. 우리 종현이 안 본 사이에 이제 좀 남자다워졌는걸? 그런 농담도 다 할 줄 알고.”

“아. 진짜. 나 원래 남자답거든. 형이 과다하게 마초인 거지. 내가 남자답지 않은 건 아니었어.”

예전의 최종현은 소심함의 극치였는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머니 병세가 호전되면서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는데 못 본 사이에 훨씬 씩씩하게 변했다. 마치 내가 그렇게 바꾼 것 같아 흐뭇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인정! 솔직히 내가 좀 남성호르몬 과다인 경향이 있긴 하지. 참. 이기적 과장은 어떻게 지내? 요즘도 같이 일해?”

“아니. 이기적 과장이랑은 이제 같이 일 안 해. 처음엔 한 팀이었는데 얼마 못 가서 쪼개졌거든. 그때부터 숨통이 확 트이더라. 그 양반은 과장 승진하고 얼마 못 가서 금방 실력이 들통 났어. 그래서 요즘은 여기저기서 구박만 받고 살아. 너무 천덕꾸러기 신세라서 좀 불쌍할 정도야.”

언젠가 그렇게 들통 날 날이 올 줄 알았다. 허구한 날 나와 최종현만 부려 먹던 인간이었는데 제대로 실력을 갖췄을 리가 있나. 요즘 듣던 소식 중 제일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 그런 일이 있었어? 진짜 잘 됐다. 어쩐지 남자다워졌다 싶었더니, 이기적 과장하고 헤어져서 그런 거였구먼. 솔직히 그 자식만큼 암적인 존재가 어디 있겠어? 나 봐라. 그 양반하고 같이 일 안 하면서부터 승승장구했잖아. 그러니까 종현이 너도 이제 곧 나처럼 잘 나가게 될 거야.”

“에이. 그건 무리다. 아무리 그래도 형만큼 잘 나가는 건 욕심이야. 아까도 이야기했잖아. 나는 그냥 평범한 게 좋아.”

“그것도 나쁘지 않지. 사실 나처럼 되는 게 어디 쉬워. 다른 건 몰라도 절대 불가능한 게 하나 있잖아.”

“아···. 사람 못 됐다. 무슨 말을 할지 충분히 짐작이 오는 데 그래도 형이 원하는 것 같으니까 모른 척하고 물어봐 줄게. 그 한 가지가 뭔데?”

“당연히 우리 시연이지. 음하하하하하하하.”

옆에서 전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연이가 창피한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알았어. 그래. 누가 뭐래도 형수님이 최고지. 암, 그렇고말고. 인정. 이 정도면 됐지?”

“으흐흐. 녀석. 이제 좀 사는 방법을 아는구나. 미래에 넌 분명 크게 될 거야.”

“글쎄. 과연 내가 미래에 정말 크게 될 수 있을까? 휴우···.”

“응? 갑자기 웬 한숨이야? 좀 전까지 자신감이 넘치던 녀석이. 왜? 뭐, 안 좋은 일 있어?”

“동수 형.”

“응. 그래 종현아. 뭔데 그래? 일단 무슨 일인지 이야부터 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도와 줄 테니까.”

“됐어. 도움은 무슨. 그런 거 아니거든. 형한테 그렇게 받고 또 도움을 받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형은 자꾸 날 염치없는 인간으로 만들래?”

“아니. 갑자기 한숨을 쉬니까 그렇지. 그럼 무슨 일인데?”

“음···. 그러니까, 동수형. 잠깐 나 좀 볼 수 있어? 바쁘면 어쩔 수 없고.”

나를 보자고 말하는 최종현이 목소리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나가서 만나봐야 할 것 같은 예감? 조금 뜬금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런 예감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이야기 전개가 참 뻔하죠?

제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 이런거 없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400회를 돌파했습니다. ㅠㅜ

중간 중간에 공지글이 몇 개 있어 정확하게 400회라고 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400회를 돌파했습니다. ㅠㅜ 아... 진짜. 제가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400회를 돌파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3년 넘게 완결을 못짓고 이러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물론 못했지만요 ㅠㅜ

어서 서둘러 완결지어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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