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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04화 (404/424)

0040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위험합니다. 부회장님.”

“괜찮아.”

“안 됩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우리는 미끼로 쓰기 위한 대역까지 만들어 그들을 낚을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고진성 부회장이 대역 대신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해서 우리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위험하긴 뭐가 위험해. 계획은 확실하잖아. 아니야?”

“맞습니다. 그렇지만 변수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자네가 세운 계획은 내가 봐도 빈틈이 없어. 최소한 내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은 절대 변수가 생길 수 없었어. 그리고 그놈들을 제대로 낚으려면 확실한 미끼가 필요해. 괜히 어설프게 대역을 썼다간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수 있어. 그럼 잡을 방법이 없어. 그런 괘씸한 놈들을 그렇게 둘 순 없지.”

“안 됩니다. 최대한 두 분과 비슷하게 꾸몄습니다. 가까이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구분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건이 일어난다면 본사에서, 돌아가신 회장님 사모님의 묘지로 이동하는 과정 중에 일어날 확률이 높다. 사고로 가장하려면 고씨 일가의 선산에 도착하기 전에 뭔가를 꾸며야 한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보는 눈이 많은 서울시 안에서 뭔가를 꾸미긴 어렵다.

결국, 서울에서 빠져나가 인적이 드문 교외로 접어들었을 때, 뭔지 모르지만 준비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길 확률이 높다.

그걸 감안해서 내가 세운 계획은 이러했다.

서울에서 교외로 빠져나기 전 둘을 잇는 터널이 있다. 작전 장소는 그곳이다. 그곳에서 고대성 회장의 차와 똑같이 생긴, 무선 운전이 가능한 또 다른 차를 준비해놓고 기다린다. 대역이 탄 자동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오면, 인형을 태운, 준비된 차를 출발시킨다. 일정 거리를 두고 경호팀이 뒤따르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다.

그리고 뭐가 됐던,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면 경호팀은 재빨리 범인을 체포하고 증거를 확보한다.

최대한 안전을 생각해서 세운 계획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대역도 전문 스턴트맨으로 준비했다. 물론 대역이 실물과 똑같긴 힘든데, 고진성 부회장은 그 점을 들어 자신이 직접 타깃이 되겠다며 나선 것이다.

물론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본사에서 터널 도착 전까지는 사건이 생길 일이 거의 없으니 고진성 부회장도 저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거의’라는 게 문제다. 1% 이하의 확률이라도 만에 하나는 존재한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돼서 고대성 부회장의 신변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그건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니만 못한 일이 된다.

어쩌면 계획을 세운 나는 물론이고 고현호 상무도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어렵게 올린 공든 탑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 일이다 보니, 나로서는 결단코 절대 불가를 외쳐야 했다.

“그래도 티가 나지. 용의 주도한 놈들인데 무작정 일을 저지르기보다는 한 번쯤 가까이 접근해서 확인하려고 들지 않을까?”

“모자를 쓰고 안경을 끼면 알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회장님이야 원래 모자와 안경을 즐겨 쓰시지만 난 아니잖아. 그런데 나까지 모자와 안경을 쓴다면 필시 의심을 받을 거야. 그럼 말짱 도루묵이라고. 결국 유 비서마저 의심받을 텐데, 그렇게 되면 다시는 그놈들을 잡을 방법이 없게 돼.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난 반드시 그놈들을 잡을 생각이야. 그리고 감히 회장님을 두고 불순한 생각을 가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똑똑히 보여줘야지.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겠지. 안 그래? 마 팀장.”

고진성 부회장의 말 속에는 그 어떤 반론도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이렇게 되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문제를 인지하고 고진성 부회장에게 보고했을 때부터, 최종 결정자는 고진성 부회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부회장님. 한 가지는 꼭 약속해주셔야 합니다.”

“어떤 약속? 일단 들어나 보지.”

“작전이 실행되는 동안에는 반드시 저의 지시에 따르셔야 합니다. 당연히 그 어떤 돌발행동도 하시면 안 되고, 그냥 목적지인 터널까지 조용히 차를 타고 가시는 겁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도 구두로라도 약속해주십시오. 아니면 전 이번 작전에서 빠지겠습니다.”

고진성 부회장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 째라는 식으로 단호하게 약속을 강요했다.

“건방진 녀석.”

“건방져도 어쩔 수 없습니다. 부회장님은 그만큼 중요한 분이시니까요.”

그의 강렬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한여름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이 연상될 만큼 강렬했다. 그러나 나 또한 지지 않고 뚝심 있게 마주 바라봤다.

그동안 나도 많은 성장을 했다. 고진성 부회장의 눈빛만 보면 꼬리를 말던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실을 마주 당기듯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나를 노려보던 그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방 안에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그가 한 발 물러섰음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그건 그렇고 그동안 좀 성장했나 보더군.”

“그런가요? 그냥 먹고살려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을 뿐인데요.”

“지금도 충분히 먹고살 만한 것 같은데?”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요?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데도 놀러 다니고 해야죠. 그러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냥 예의상이라도 동지그룹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고?”

“원하신다면 해드릴 용의는 있습니다.”

“됐어. 나도 엎드려 절 받기는 취미가 없거든.”

“동지그룹에 대한 충성심은 없지만 고현호 상무에 대한 의리는 있습니다.”

“결국 충성심은 아니라는 거군.”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받쳐야 할 소모적인 감정보다는 서로 주고받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솔직히 나라는 인간 자체가 반골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충성심이라는 말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나라에 충성하라, 회사에 충성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뭐랄까,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해야 하나? 충성이라는 단어는 그런 뜻이 아닌데 이상하게 그런 느낌을 받는다.

국가와 국민, 회사와 직원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기에 충성심보다는 믿음이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충성심은 일방적인 감정이라는 뜻인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회사가 직원에게 충성한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국가가 국민에게 충성한다는 이야기는요? 직원이나 국민이 회사나 나라에 충성하라는 이야기는 들어도 반대의 경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고, 회사가 있어야 직원이 있다고요.”

“틀린 말은 아니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저는 이런 말도 해주고 싶습니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직원이 있어야 회사가 있다고요.”

“흐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군.”

“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제가 고현호 상무를 좋아하는 것도, 고현호 상무는 부하 직원에게 충성심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냥 믿고 맡깁니다.”

“믿고 맡긴다? 좋은 말이지. 그런데 믿고 맡겼는데 그게 실패로 이어지면 어떻게 하겠나? 이번 일도 그래. 어느 정도 권한을 부여했더니, 호의가 권리인 줄 알고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사람을 잘 뽑아야죠. 그리고 아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실력있는 사람을 승진시켜 그 사람에게 권한을···. 아!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제가 너무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고진성 부회장이 내뿜는 기세에 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다가, 할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고작 서른 먹은 내가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노련한 경영가에 충고라니···.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행히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은 듯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같잖아서 조소를 머금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차가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니야. 주제넘지 않았어. 좋아 보여. 자네 나이에 그 정도 패기도 없으면 남자가 아니지. 남자라면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법이야. 난 그래서 마 팀장이 싫지 않아. 미래가 기대되기도 하고. 그리고 하룻강아지는 하룻강아지다워야 재미있어.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알면 재미가 없거든.”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더니, 마무리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였다. 어떻게 보면 격려와 경고를 동시에 들은 셈이다. 그렇지만 내가 자제를 못 하고 오버한 거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며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게 중요해. 이제 겨우 30대 초반이잖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시행착오는 언제든지 겪을 수 있어. 중요한 건 시행착오를 통해 얼마나 성장을 하느냐 그거거든.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를 해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필요하지. 자네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거야.”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만 하고 있습니다.”

“허허. 엄살은. 예전에 누가 자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지그룹에서 엄살은 최고일 거라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군.”

“네? 누가요?”

“누군지 알면 찾아가서 따지게?”

“아니요. 그냥 누가 그런 유언비어를 퍼트리나 싶어서···.”

“됐네. 그런데 이제 슬슬 준비해야할 시간 아닌가?”

“맞습니다. 부회장님.”

“그런데 왜 이러고 있나? 얼른 출발해야지.”

“그게··· 부회장님이 정말 미끼가 되실 겁니까?”

나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당연한 이야기를. 뭘 그렇게 멀뚱멀뚱 보나? 나를 흰소리나 하는 늙은이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얼른 앞장서게.”

“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고진성 부회장의 호통에 나는 그제야 말실수 한 번에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겼음을 깨달았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그 말을 제대로 깨달은 오늘이었다.

***

광화문.

동지그룹 본사가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층 빌딩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아찔할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평지를 보는 양 평온했다. 단지 그의 눈빛만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로웠다.

삐삑삐삑.

“여긴 뻐꾸기. 말하라.”

손에 들린 소형 무전기에서 신호음이 들리자 남자는 익숙하게 붉은 버튼을 누르며 무전을 시작했다.

- 여긴 올빼미 하나. 방금 독수리가 둥지를 떴다. 반복한다. 독수리가 둥지를 떴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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