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진짜 독수리인지 최종 확인 바란다.”
- 올빼미 삼이 확인 작업 중.
“최종 확인 후 다시 연락 바람.”
- 알았다. 오버.
남자는 주머니에 있던 작은 망원경을 꺼내 눈에 가져갔다. 그가 향한 곳은 동지그룹 본사 지하주차장 입구.
독수리는 동지그룹의 수장인 고대성 회장을 의미하고 둥지를 떴다는 건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는 의미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최종확인만 남았다.
긴장이 되는지 남자는 주먹을 여러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쪽 방면에서는 상당한 전문가이지만 목표가 이번처럼 엄청난 대어였던 적은 없었다. 대신 후폭풍이 큰 인물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도 엄청났다. 이번 일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평생 먹고살아도 될 만큼 거액의 보수가 기다리고 있다. 걱정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차분해지려고 저절로 몸이 떨려왔다.
그러나 그는 역시 베테랑이었다. 감정 컨트롤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일이었고, 그런 장점 덕분에 그동안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다. 남자는 그의 특기를 살려 몇 번의 심호흡으로 널뛰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처음에 지켜보던 주차장 입구를 다시금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 여기는 올빼미 하나. 올빼미 삼 확인 작업 완료. 독수리는 평소처럼 중절모와 뿔테 안경 차림. 60% 일치.
잠시 후 확인 작업을 마친 올빼미 하나가 애매한 보고를 해왔다.
“작은 독수리는 동행했나?”
- 작은 독수리 동행 중. 올빼미 삼 확인 작업 완료. 동일인물일 확률 95%. 다시 한 번 반복한다. 확인 작업 완료. 독수리 60% 일치. 작은 독수리 95% 일치. 독수리가 진짜 독수리일 확률 85% 예상.
됐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보고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동안 그가 제일 걱정했던 게 목표물에 대한 확인 작업이었다. 고대성 회장은 색깔만 바뀔 뿐 늘 비슷한 중절모와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근접해서 관찰해도 100% 동일 인물인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들 입장에서 최선은 고진성 부회장이 동행하는 것이었다.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하는 성격답게 목 위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다닌다. 그래서 대상이 동인 인물인지 아닌지 관찰하기도 정말 쉬웠다.
올빼미 하나는 진짜 독수리일 확률이 85%라고 했지만 그건 최대한 미니멈으로 잡았을 때 이야기다. 고대성 회장과 일치하는 복장을 갖춘 사람이 고진성 부회장과 동행한다? 미리 눈치를 채고 쇼를 하지 않는 이상 독수리가 고대성 회장이 아닐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고대성 회장이 홀로 다닐 때도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하늘도 자신을 돕는 기분이었다.
“확인. 작전명 브롬든을 시작한다. 반복한다. 작전명 브롬든 시작한다.”
브롬든은 미국의 작가 켄 키지가 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등장하는 극중 화자다. 소설 속 기득권 세력인 콤바인들에 의해 정신병자로 분류되어 살아가지만, 맥머피라는 가짜 환자가 등장하면서 자유를 꿈꾸기 시작한다.
정신병원 측과의 갈등 끝에 맥머피는 죽음을 맞고 브롬든은 그를 계기로 정신병원을 탈출해 자유를 얻는다.
남자가 자신을 뻐꾸기라고 지칭한 것도 이번 작전명을 브롬든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번 일이 그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 확인. 작전명 브롬든 시작하겠다.
“건투를 빈다.”
비장하게 통신을 마친 남자는, 목표물의 차가 주차장 입구에 나타나는 걸 확인한 후 조용히 옥상을 빠져나갔다.
***
- 조금 전 부회장님이 타신 자동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멀리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따라가주세요.”
-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배 팀장님.”
- 염려 마십시오. 마 팀장님.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 일은 경호팀 중에서도 고대성 회장과 고진성 회장을 근접경호하는 1, 2팀 베테랑들만 뽑아서 극비리에 진행했다. 그만큼 기밀을 요하는 일이어서 최대한 신중히 믿을만한 사람만 참가시켰다.
“휴우···.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잘 될 겁니다.”
옆에서 같이 있던 윤권이가 안심을 시켰지만 별로 위로가 되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이런 일은 나랑 별로 안 맞는 것 같아.”
“왜요? 정말 잘내고 계신데요.”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빈틈없이 계획은 짜도 조금만 변수가 생기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너무 답답해. 나는 문제가 생기면 직접 가서 해결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그런데 지금 나를 봐. 그냥 아무것도 못 하고 상황 보고만 받으며 결과를 기다려야 하잖아.”
“그렇다고 팀장님이 현장에 나가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죠. 그쪽으론 전혀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그런 건 현장요원에게 맡기고 여기서 조용히 있는 게 최곱니다. 부회장님보고 사고 치지 말라던 팀장님의 말, 제가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네요.”
“누가 뭐래? 나도 사고 칠 생각 없거든.”
“그럼 다행이고요. 초딩이 아니니 사고는 그만 치셔야죠.”
“얼씨구. 나윤권 이 자식. 너 요즘 점점 건방져가고 있어.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올래?”
“건방진 게 아니라 팀장님을 생각하는 부하직원의 충심입니다.”
“충심? 충심이 다 얼어 죽었다. 이 자식아. 아우. 부회장님 심정이 이랬을 것 같네.”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로 돌아가 일에 집중할 형편도 아니다. 앞으로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그냥 이곳 작은 골방에서 모든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커맨더센터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띠링띠링.
“네. 마동수입니다.”
“팀장님. 마동수가 아니라 코드 원. 이제 작전에 들어갔으니 작전명을 따라야죠.”
뭔가 소꿉장난하는 것 같이 오글오글거려서 정말 싫었다. 그래서 이건 정말 안 하고 싶었는데, 다들 꼭 해야 한단다.
“크흠. 네. 코드 원입니다.”
- 코드 투입니다.
“말씀하십시오.”
- 정체불명의 차가 한 대 따라붙었습니다.
“어떤 차죠?”
- 구형 은색 소XX 차량입니다. 시중에서 굉장히 흔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종류입니다.
“우리가 뒤따르고 있는 건 모르고 있죠?”
- 물론입니다. 저들은 우리가 이미 눈치 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렇지만 방심은 하면 안 됩니다.”
- 물론입니다.
“어쨌든 조짐은 좋군요. 미행하는 차가 있다는 건, 그들이 뭔가 꾸미고 있긴 꾸미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미행하는 차량의 등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음을 의미했다. 씁쓸하면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 이제 어떻게 할까요?
“1호차와 놈들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 대략 10미터 정도 거리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정도 거리면 터널에서 차량 교체할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군요.”
-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량 교체할 타이밍을 벌어줄 수 있습니까?”
- 가능합니다. 차량 두 대를 서행시켜 1~2분 정도의 시간을 벌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획을 세울 땐 차량 교체 타이밍을 가지고 고민한 적이 없었는데 벌써 이렇게 변수가 생겼다. 다행히 워낙 노련한 사람들이라 어렵지 않게 임기응변식 대책을 마련했지만, 내 입안은 시간이 갈수록 바짝 타올랐다.
“여기 물입니다. 한 잔 드시죠.”
지금 내 상태를 알았는지 윤권이가 차가운 물이 담긴 유리잔을 건넸다.
“어. 고마워.”
“팀장님도 긴장을 하긴 하네요.”
“싱거운 놈. 나는 사람 아니야? 일부러 위험을 찾아가는 변태도 아니고, 나는 항상 긴장한다고.”
“그렇지만 그동안은 그런 티가 전혀 안 났어요. 항상 여유가 넘치셨거든요.”
“그게 다 블러핑이지. 상대에게 내가 초조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 그렇지만 지금은 골방에 너랑 나밖에 없는데, 정신 사납게 표정 관리할 필요는 없잖아.”
“헐. 그런 거였습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이건 잘못하면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일이잖아. 특히 지금 차에 타고 계신 사람은 부회장님이야. 긴장 풀 일이 아니라 무조건 긴장해야 한다고.”
***
배만석은 동지그룹 경호팀 제2팀장이며, 고진성 부회장의 경호를 총괄하고 있다.
고진성 부회장이 경호팀을 호출하고 그 자리에 마동수를 불러 이번 일에 대해 브리핑을 시켰을 땐, 솔직히 황당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대성 회장을 노린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평상시 경호 수준이 대통령 경호를 방불케 할 정도 철저하다. 군 세력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그런 철통 방어를 뚫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건 배만석의 자신감이었고,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마동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신감과 자부심이 자만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철통 방어라고 생각했던 경호 체계에는 분명히 틈이 있었다. 아무리 고대성 회장이 혼자 또는 고진성 부회장과 단둘만 죽은 부인의 묘지를 찾겠다고 명한다고 해도 경호팀은 그 상황에 따른 자신들만의 대비책을 세워 놓아야 했다. 그런데 설마 하는 생각으로 그에 대한 대책 마련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었다.
방비가 소홀했던 건 반성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후폭풍을 생각하면 감히 고대성 회장을 노리는 간 큰 인간이 있을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1호차에 따라 붙는 정체불명의 자동차를 발견하면서, 마동수의 예측이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온몸의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서기 시작했다.
“정기야.”
“네. 팀장님.”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미친 인간들이 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지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부턴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회장님의 안위를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걸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발견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실책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동수 팀장이 알아냈다는 게 더 자존심이 상합니다.”
경호팀에서 일하는 요원 대부분이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 정보기관에서 스카우트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정보분야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이다.
아무리 회사 업무가 뛰어나도 일반인은 일반인이다. 그런데도 그냥 일반 회사원보다 정보 수집이 느렸다. 이 분야에서 베테랑이며 프로라는 자부심에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당연히 쪽팔린 줄 알아야지. 그리고 이번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어서 반드시 만회해야 해. 그래야 최소한 얼굴은 들고 다닐 수 있어. 그러니까 절대 실수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두 사람뿐만 아니라 이번 작전에 투입된 모든 경호원들이 바짝 긴장한 채 1호차를 쫓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차 목적지인 거의 다다를 때까지 혹시나 우려했던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된 1호차는 서서히 터널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설악산 산행 전에 완결을 지어야 하는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안 되면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차안에서라도 마무리 해서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