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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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소XX는 조심스럽게 고대성 회장의 자동차를 뒤따랐다. 그들의 임무는 단순했다. 최종 목적지까지 조용하고 은밀하게 미행하는 것.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보고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임무였다. 그런데 터널을 앞두고 1, 2차선을 느린 속도로 나란히 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 때문에 뜻하지 않게 목표물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썅! 저것들 대체 뭐야. 미친 것들. 비키라고 클랙슨 좀 눌러봐.”
“예. 알겠습니다.”
빵빵. 빵빵빵. 빠빠빵.
운전자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려대고 헤드라이트를 껌벅거려봤지만 앞선 두 차는 여전히 길을 막은 채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고대성 회장의 자동차는 유유히 터널 안으로 사라져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젠장. 없어졌잖아. 빌어먹을 새끼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글로브 박스를 주먹을 내리친 다음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기는 올빼미 둘. 독수리가 탄 차를 놓쳤다.”
- 뭐?
“갑자기 차 두 대가 길을 막아서 독수리를 놓쳤습니다. 대장.”
상대의 차가운 목소리에 조수석 남자는 작전용 용어를 잊고 평상시 말투로 보고했다.
- 누가 대장이야?
“죄송합니다. 뻐··· 뻐꾸기.”
- 차 두 대가 길을 막아서? 일부러 막아선 건가?
“정확하지 않다. 한 대는 승용차, 한 대는 트럭이다. 아! 지금 승용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뭐?
동지그룹 경호팀 소속의 자동차가 느리게 달리던 트럭을 이용해 길을 막은 거지만, 은색 소XX에 탄 사람들을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상황 보고를 채 마치기도 전에 길을 막고 있던 검은색 승용차가 속도를 내며, 나란히 달리던 트럭을 앞질렀다.
“야, 얼른 속도 내.”
“예. 알겠습니다.”
조수석 남자는 보고를 멈춘 채 얼른 운전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은 보고보다 목표물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두 사람이 탄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터널을 지나쳤다. 많아야 1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면 터널을 충분히 통과하고도 남았다.
“좀 더 속력 높여”
“알겠습니다.”
부으응.
터널을 중간쯤 지나도 목표물이 보이지 않자 조수석 남자는 더욱더 운전자를 재촉했다. 그 소리에 운전자는 최대한 깊숙이 가속 페달을 밟았고, 자동차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빠른 속도로 터널을 통과했다.
터널 중간에 마련된 공터에 그들이 쫓는 목표물과 똑같이 생긴 자동차가 서 있었지만 마음이 급해진 추적자들에겐 그런 걸 눈여겨볼 여유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두 대의 차가 바꿔치기 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저기. 저기 보입니다. 8XXX 검은색 XXX. 아까 그 차입니다.”
“휴우··· 아주 멀리 간 건 아니네. 이제 속도 늦춰. 아까보다 더 거리 벌리고.”
“알겠습니다.”
- 올빼미 둘. 상황 보고하라.
“여긴 올빼미 둘. 잠시 놓쳤지만 독수리를 찾았다. 우리보다 1분 정도 앞서가고 있었다. 이상 상황 종료. 다시 조용히 따라만 가겠다.”
- 확실한가?
“자동차 색깔, 번호판 모두 일치한다.”
- 알았다. 이제 곧 작전에 들어갈 예정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금 전과 같은 실수는 없도록.
“주의하겠다.”
***
터널 안 오른쪽에 마련된 작은 공터에 세워진 검은색 자동차 안, 휴대폰과 연결된 스피커에서 마동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떻게 됐습니까?
“아무 이상 없이 탈각 완료했습니다.”
상대측 작전명이 브롬든이라면, 이들의 작전명은 탈각이었다. 파충류나 벌레가 허물을 벗듯 두 대의 차를 교환한다는 의미였다.
- 미행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조금 전 허겁지겁 터널을 빠져나갔습니다. 지금쯤 더미가 탄 가짜 1호차를 따라잡았을 겁니다.”
- 눈치챌 일은 없겠죠?
“물론입니다. 평소에도 1호차는 선팅이 진한 편이기 때문에 육안으로 구분하긴 어렵습니다. 작정하고 열 감지기를 동원하지 않는 이상요.”
-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회장님은 어떠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놀라거나 그러신 건 아니죠?
“당연히 괜찮지. 내가 고작 이런 일로 놀랄 것 같아?”
상황 보고를 들은 마동수가 고진성 부회장의 상태를 묻자, 뒤에서 조용히 통화를 듣고 있던 고대성 부회장이 발끈했다.
- 아. 부회장님. 듣고 계셨습니까?
“내가 스피커폰으로 돌리라고 했어.”
- 저는 부회장님이 걱정돼서 물어본 겁니다. 미행 차량 때문에 차량 교체에 차질이 생길뻔 했으니 당황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이런 일로 놀라서 당황할 정도면 동지그룹 안방마님 자리는 진작 내놓았을 거야. 이 정도로 끄떡할 내가 아니지. 암.”
- 그럼요.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의 부회장님이 그러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뭘?”
- 뭐긴 뭐겠습니까? 지난번에 말씀드린 거 있지 않습니까?
고진성 부회장은 그제야 마동수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나중에 고현호 상무가 차기 총수가 된다고 해도 동지그룹 안방마님 자리는 부회장님이 맡아주십시오.’
과거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마동수는 이번 작전의 성공을 당연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 후의 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일이 마동수의 의도대로 마무리되면 고현호의 유일한 라이벌인 고평호은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아무리 본인이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평가받는 현상태 이사와 이석근 팀장이 직접 관여했다.
물론 사안이 크지 않다면 두 사람만 책임을 지고 조용히 마무리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지그룹의 오롯한 주인인 고대성 회장의 목숨을 노린 일이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들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린 꼴이니, 조용히 마무리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발본색원의 처절한 응징이 필요하다.
그럼 후계자 후보는 오직 단 한 명, 고현호만 남게 된다. 이 상황에서,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며 후계자 후보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고현호가 낙마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마동수는 이미 여기까지 예상했으며, 지금은 다음 단계까지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는 셈이었다.
고작 30대 초반이 할 수 있는 수 읽기가 아니었다. 고진성 부회장은 마동수가 그룹 내외적으로 왜 그토록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조카인 고현호가 마동수에 대해 과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주며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늙은 노인네를 앞으로도 계속 부려 먹겠다고?”
- 어이쿠. 누가 감히 부회장님을 보고 늙은 노인네라고 합니까? 제가 생각할 때 부회장님은 앞으로 최소 20년은 거뜬하실 겁니다.
“뭐라고? 그럼 앞으로 20년은 더 부려먹겠다는 소리야?”
- 당연한 거 아닙니까?
“뭐? 당연해? 이 녀석이 점점.”
- 솔직히 부회장님이 정정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오늘같이, 젊은 사람들도 위험해서 부담을 느끼는 일을 완벽하게 해냈지 않습니까? 그것도 어렵게 한 게 아니라, 마치 동네 한 바퀴를 드라이브하듯 가뿐하게요.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동수의 말은 버터에 꿀까지 바른 듯 매끄럽고 달콤했다. 처음엔 인상을 쓰던 고진성 부회장도,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맺기 시작했다.
“크흠. 그냥 자주 다니던 길을 평상시처럼 다녔을 뿐인데.”
- 그거야 부회장님이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이건 예전부터 마동수가 조금씩 설득해왔던 일이었다. 아직 마흔도 안 된 고현호가 나이 많은 이사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고진성 부회장 정도 인물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했다. 게다가 고대성 회장의 천재적이지만 중구난방에 가까운 경영방식을, 그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고진성 부회장이다.
따라서 고현호가 고대성 회장의 자리를 완벽하게 물려받음과 동시에 발전을 꾀하려면 고진성 부회장은 무조건, 반드시 필요했다.
“그건 이번 일이 끝나고 생각해보세.”
고진성 부회장은 마동수의 달콤한 꾐에 넘어가 하마터면 ‘그러마.’라고 대답할 뻔했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가까스로 다음으로 대답을 미룰 수 있었다. 연륜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나면 그땐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일단 이번 일이 모두 수습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데 지금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오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더미 1호차라고 불린 자동차는 서울 외곽을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일차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고대성 회장과 고진성 부회장의 모습과 닮은 인형이었다.
어떤 기계장치도 없는, 최소한의 인간 형태만 갖춘 단순한 인형이었다. 대충 봐도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없는 모습이지만, 짙게 붙여진 유리 선팅 덕분에 그 사실을 눈치채는 건 어려웠다.
그런데 단순한 인형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자동차가 마치 인간이 운전하듯 자연스럽게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동지그룹 차세대 기술 개발 회사에서 완성한 무선 운전 기술이 이런 황당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진짜 운전자는 뒤에서 무선으로 더미 1호차를 운전하고 있었음에도 처음부터 줄곧 미행을 해오던 은색 소XX의 운전자는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직선 도로를 지나 강을 따라 도는 꼬부랑길에 들어서서도 자연스러운 운전은 변하지 않았다. 난이도가 높아지는 바람에 진짜 운전자가 진땀을 흘려가며 더미 1호차를 조정하고 있었지만, 그 노력 덕분인지 겉에서 보이는 움직임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잠시 후 신기에 가까운 무선운전 솜씨도 더 이상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끼기기기기기긱. 콰가가가가가강.
급회전 구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대형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미친 듯이 돌진했고, 육중한 트럭에 정면으로 처박힌 더미 1호차는 휴짓조각처럼 구겨져 오른쪽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뒤따르던 동지그룹 경호팀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 허겁지겁 차를 세웠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던 은색 소XX는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유유히 사고현장을 지나쳐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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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올빼미 둘. 독수리 나와라.”
- 여기는 독수리. 올빼미 둘 말하라.
“작전명 브롬든이 조금 전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작전명 브롬든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 오케이 접수. 수고했다. 즉시 복귀하도록.
============================ 작품 후기 ============================
결국 완결을 못 짓고 설악산으로 떠납니다.
오늘 새벽 설악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다음 편을 써보겠습니다. ㅠㅜ
무전을 주고받는 게 굉장히 어색합니다. 무전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전화로 해도 될 것 같고. 이랬다 저랬다. ㅠㅜ 얼른 완결부터 하고 수정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