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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09화 (409/424)

0040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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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호 상무 방에서 고현호 상무, 김학수 부장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향후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때였다. 회의를 시작한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문밖이 소란해지더니 고장희가 퉁퉁 부은 눈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흑흑흑. 작은 오빠. 왜 아빠 면회가 안 되는 거야?”

“장희야. 너 그런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그럼 어떻게 해? 아무도 아빠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데, 여기라도 찾아와야지. 오빠는 아빠가 어디 있는지 알 것 아니야.”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 손님들 있는 거 안 보여?”

“손님 누구? 학수 오빠? 아니면 동수? 두 사람은 나랑도 친하거든.”

김학수 부장은 고현호 상무의 친구여서 오래전부터 고장희와 알던 사이였다. 그런데 미국 유학시절 김학수 부장이 고현호 상무를 대신해 이것저것 돌봐주면서 굉장히 친해졌다고 들었다. 나야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였으니 당연히 친했고.

“그··· 그랬나? 그래도 이 녀석아. 여긴 회사야. 명색이 이사라는 녀석이 공과 사를 이렇게 구분 못 해?”

솔직히 방금 고현호 상무의 말은 내가 봐도 많이 궁색한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을 목숨이 경각에 다른 중환자로 둔갑시켜놓고, 면회는커녕 병원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으니 오죽 시달렸을까?

그런데 이제는 회사까지 찾아와서 저 난리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딸이 중태에 빠진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우는 건 누구도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답답해도 며칠 후 고대성 회장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다.

“공과 사? 오빠. 여기서 어떻게 공과 사라는 말이 나와? 정말 내가 아는 현호 오빠 맞아? 아닌 것 같아. 동물을 사랑하고 그림을 좋아했던, 내가 알던 예전의 오빠라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 없지. 아빠가 위독하다는데 걱정도 안 돼? 어떻게 여기서 마음 편하게 회의를 할 수가 있어? 큰 오빠나 둘째 오빠라면 이해를 해. 두 사람이야 원래 욕심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오빠는 아니잖아. 어떻게 작은 오빠에게 아빠 목숨보다 회사 일이 먼저일 수 있어? 정말 이번에 작은 오빠한테 크게 실망이야.”

“장희야. 네가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나도 아버지가 걱정돼. 그렇지만 면회가 안 되는 걸 어떡해? 억지로 면회를 한다고 해도 온갖 기계들을 덕지덕지 붙여서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다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왜? 왜 그게 의미가 없어? 아빠는 지금 병실에서 혼자 외롭게 싸우고 있을 거잖아. 오빠가 가기 귀찮으면 나라도 곁에서 힘이 되어 드려야지.”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지금 네 어리광이 아버지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병원에서 면회가 안 된다고 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도 네가 우겨서 면회를 한다면, 의사들이 얼마나 불편해하겠어?”

궁색하다 궁색해.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불안할 정도로 여전히 답변이 궁색했다. 이러다 가짜 환자를 만들어, 고현호 상무의 표현처럼 온갖 기계를 덕지덕지 붙인 다음 면회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못 해주겠다고?”

“그 이야긴 나중에 집에 가서 하자고 했잖아. 지금 회의 중인 거 안 보여? 네 어리광 때문에 두 사람이 아무것도 못 하고 멀뚱멀뚱 서 있어야 하잖아.”

“그럼 내가 지금 양해를 구할게. 저기 김학수 부장님. 제가 잠깐 시간을 빼앗아도 괜찮으시죠?”

“뭐? 크흠. 네. 괜찮습니다. 고장희 이사님.”

“고현호 상무님. 방금 김.학.수. 부장님이 하시는 말씀 들으셨죠. 괜찮다고 하시네요.”

“고장희 너 이 녀석. 자꾸 이렇게 고집 피울 거야?”

“왜? 기다리시는 분이 괜찮다고 하는데. 아직 한 명 남아서 그래? 저기 마동수 팀장님. 제가 고현호 상무님과 대화를 해야할 것 같은데 제가 잠깐 시간을 빼앗다도 괜찮으시죠?”

“흠···. 저기 고장희 이사님.”

“네. 말씀하세요.”

“안 되겠습니다.”

고장희가 안 되어 보이긴 하지만 어차피 안 될 일이라면 단호하게 말해줘야 한다.

“뭐? 야! 너···. 아니지 아니야. 마동수 팀장님. 지금 안 된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고장희 이사님. 지금 우린 굉장히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고장희 이사님은 그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으십니다. 혹시 고현호 상무님에게 할 말이 있다면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회의가 언제 끝나는데요?”

약 올리듯 한 내 말에 고장희는 굉장히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연륜이 좀 생겼는지 애써 화를 참는 모습이었다. 항상 천방지축이던 녀석의 과거 모습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그렇지만 그래 봐야 내 앞에선 부처님 손바닥 위다.

“글쎄요. 워낙 중요한 회의라 언제 끝날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군요.”

“그래도 대략적인 시간은 있을 거 아니에요. 여기서 밤샐 것도 아니고.”

“그거야 모르죠.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면 여기서 밤샐 수도 있습니다.”

“일하다가 밤을 새워요? 여기서요? 집에도 안 가고요?”

“그럼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능력이 좋은 고장희 이사님은 워낙 빨리 이사로 승진하셔서 야근을 경험 안 해보신 것 같은데 저 같은 말단 팀원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합니다. 그건 여기 계신 김학수 부장님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고현호 상무님도 동지랜드에 계실 땐 그곳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밤낮없이 일하셨죠. 이사님은 모르셨나 봅니다?”

“이이···. 야! 마동수 이 자식아! 넌 친구라는 녀석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응? 이 말똥구리 같은 자식 같으니라고. 우리 아빠가 아프다는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나쁜 자식. 흑흑.”

겨우 그친 눈물을 다시 터트리는 모습을 보니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특히 ‘우리 아빠가 아프다는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나쁜 자식.’이라고 하는 말이 왜 그렇게 아프게 들리는지, 하마터면 ‘너희 아버지 멀쩡하시거든. 그러니까 그만 좀 울어.’라고 솔직하게 말해줄 뻔했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되면 얼마나 원망할지 벌써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줘 봐야 쓸데없는 시간 낭비일 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 아파도 그냥 차갑게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 아버지가 정말 위독하다면 아무리 바빠도 일을 미루고 친구와 함께했겠지만 이건 그냥 쇼일 뿐이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도 지금 여기서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며 산 대가라고 생각해.”

“뭐?”

“솔직히 네가 평범한 집안의 딸이 아니잖아. 그냥 부자도 아니고 대 재벌가의 딸이야. 그리고 동지랜드의 실질적인 책임자잖아. 그럼 평범한 집안의 딸처럼 질질 짜지 말고 경영자다운 모습을 보여야지.”

“하···. 경영자다운 게 어떤 건데?”

“감정을 죽이고 냉정한 모습을 유지해야지. 가족이 아프다고 해도 울지 말고 일을 우선으로 생각해야지. 지금 네 어깨 위에 동지랜드 직원들의 삶이 걸려있어. 그 무게가 네겐 그렇게 가벼워?”

“누가 가볍다고 했어? 하지만···.”

“하지만 뭐? 넌 이미 정상화 된 동지랜드를 맡아서 마음이 편안한가 본데 불과 2년 전만 해도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야. 그런 회사를 고현호 상무님하고 나랑 둘이서 다시 살려낸 거라고. 그때 고생했던 직원들은 그때 기억 때문에 회사가 조금만 흔들려도 아직도 노심초사할걸? 그런데 놀이공원 입장에서 5월 다음으로 대목인 이번 달에 최고 책임자가 일은 안 하고 눈물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어. 그걸 지켜보는 직원들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지금 네 책상엔 결재가 필요한 서류가 한 수레는 될 거야. 하루빨리 처리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릴 직원들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응? 어떨 것 같냐고?”

“야. 마동수. 내··· 내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안다고? 알긴 개뿔. 고현호 상무님이 왜 일 년 넘게 동지랜드 기숙사에서 숙식까지 해결하며 외롭게 지냈는데. 그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 돌아가신 어머님과의 추억이 가장 많이 깃든 곳. 그래서 후계자 싸움을 훨씬 일찍 시작할 수 있었음에도 동지랜드부터 살려냈잖아. 그럼 너도 응석 그만 부리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지.”

“그렇지만 아빠까지 돌아가시면 난 이제 고아라고.”

“아직 안 돌아가셨잖아. 그리고 회장님이 어떤 분이셔? 고작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것 같아? 절대 안 돌아가셔. 그러니까 눈물 그치고 당장 동지랜드로 돌아가서 일해. 회장님도 딸내미가 옆에서 질질 짜고 있는 것보다 경영자로서 든든한 모습을 보이길 원하실걸?”

“확실해? 아빠 진짜 안 돌아가셔?”

“그걸 왜 내게 물어? 나보다 딸인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회장님이 고작 교통 사고 따위에 돌아가실 분이야?”

“그··· 그건 아니지. 우리 아빠가 어떤 분인데.”

“그렇지? 그럼 믿어. 딸인 네가 아니면 누가 믿어. 믿고 기다려.”

“그래. 알았어. 믿을게. 믿으면 될 거 아니야. 마동수 넌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진짜 잔인한 녀석이야. 시연이처럼 천사같은 아이가 너 같은 녀석을 좋아하는 게 아직도 이해가 안 가. 나.쁜. 놈. 간다, 가.”

설득이 통했을까? 고장희의 표정이 처음보다 단단해져 보였다.

“그래. 가서 일 좀 해라.”

“그리고 오빠!”

“응? 왜?”

“진짜 나 때문에 동지랜드에 계속 있었던 거야?”

“음··· 꼭 그런 건 아니고. 거긴 내게도 엄마의 추억이 깃든 소중한 곳이었잖아. 그리고 너랑 약속한 것도 있고 해서 나도 꼭 지키고 싶었어.”

“고마워. 약속 지켜줘서.”

“고마우면 가서 어서 일해. 그리고 내가 열심히 지원해줄 테니까 세계적인 놀이공원으로 만들어 봐.”

“그래. 알았어. 꼭 그럴게. 그런데 오빠.”

“응?”

“마동수 저 자식 잘라버리면 안 돼?”

“응. 안 돼.”

“왜왜? 저 녀석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라고 그렇게 품고 있어. 예전에 대학생활 할 때도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잔머리만 좋았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었다고.”

“그래도 내겐 별 볼 일 있는 녀석이니까 그만 가라. 아니면 널 동지랜드에서 잘라버린다.”

“칫! 역시 내 편은 아무도 없군. 에잇. 내가 여길 다시는 오나 봐라. 나 진짜 간다. 그러니까 다들 아주 밤 새애애애애도록 열심히 일하셔요.”

***

현상태 이사의 방.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현상태 이사는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람이 좋아서 호인이라고 소문난 주승대 이사라니. 이건 저도 의외입니다.”

함께 자리한 이석근 팀장의 표정도 좋지 않앗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룹 내 대부분 사람이 속았을 겁니다. 소리장도. 웃으며 칼을 간다고 하더니 주승대 이사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군요. 지금 상황이 어떻죠?”

“주승대 이사가 고정호 사장과 완전히 손을 잡은 사실이 퍼지면서 주주들 중에 그쪽으로 마음이 기운 사람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장남’이란 타이틀이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흠···. 참 멍청한 사람들이군요.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장남에 목을 매나. 그것도 능력이 없어서 계열사로 퇴출된 사람을 두고 말입니다.”

“주주들 중에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출혈이 있겠지만 고현호 상무를 끌여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현호 상무를요? 과연 손을 잡으려고 할까요?”

“아마 관심을 가질 겁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고현호 상무도 회장님 면회는 가지 않고 측근들만 모아 계속 회의만 거듭한다고 하더군요. 주승대 이사의 예상외 행보를 보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그렇게 되면 출혈이 너무 큽니다.”

“어쩔 수 있습니까? 욕심을 부리다 다 잃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니 이 팀장은 마동수 팀장과 만남을 은밀히 주선해 주세요. 그 친구라면 말이 통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 작품 후기 ============================

요즘 계속 올리는 시간이 늦네요... ㅠ

분발해야 하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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