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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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마동수라고 합니다.”
“오. 어서 와요. 바쁠 텐데 이렇게 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현상태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장희를 돌려보내고 얼마 안 있다가 고평호 상무 측의 이석근 팀장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사실 그들이 날 만나자는 이유야 뻔했다.
지금 동지그룹의 폭풍의 눈은 누가 뭐래도 주승대 이사였다. 고대성 회장과 고진성 부회장이 있을 땐 조용히 호인으로 지냈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동지그룹을 휘젓고 있다. 솔직히 나는 그런 사람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만큼 그의 등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누가 설치고 다니든 그건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해서 설치고 다녀주는 게 더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숨겨왔던 본심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야 나중에 고대성 회장이 자신의 위독함을 거짓으로 꾸며 잠적한 효과가 점점 커지니 말이다.
그렇게 한 번 사정의 칼날을 제대로 휘두르고 나면 훗날 고현호 상무가 동지그룹을 휘어잡기도 훨씬 쉬워진다. 그러니 나는 주주총회가 열릴 때까지 그들과 같이 어울리는 척 굿이나 보며 떡이나 먹으면 된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동지그룹 최고의 브레인이라고 불리시는 현상태 이사님이 어떤 분인지 항상 궁금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하하하. 동지그룹 최고의 브레인요? 그건 너무 과분한 호칭 같군요. 특히 최근 들어 동지그룹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는 마동수 팀장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려니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제가 동지그룹을 들었다 놓았다 하다니요? 아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망둥어처럼 겁 없이 주제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고 있는 겁니다.”
“이런. 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습니다. 마 팀장의 그간 행적은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만큼 대단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상태 이사와 약속이 잡혔을 때 생각이 많았다. 대체 어떤 컨셉으로 만나야 이 사람의 방심을 불러올 수 있을까? 대체로 이런 고민들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사람이다.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때론 언제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이런 사람을 상대로 허술한 모습을 보여 방심을 유도한다는 게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괜히 이상한 모습을 보여 뭔가 눈치챌 수 있는 빌미를 줄 바에는 그냥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분하게 대화에 임했다.
“좋게 봐준 게 아니라 사실이 그러니까요. 자. 그럼 피차 사정은 잘 아는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러시죠. 저도 동감입니다. 굳이 시간 낭비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충 탐색전은 바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왔다. 솔직히 선수끼리 빙빙 말을 돌리며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말이 통하는군요. 그럼 역시 제가 마 팀장을 보자고 한 이유도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당연히 주승대 이사 때문이겠죠.”
“맞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갑자기 등장했어요. 그런데 행보가 굉장히 파격적이고 거침이 없습니다. 그동안 조용히 산 게 신기할 정도로 말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주승대 이사라는 분이 계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현 이사님보다 받는 충격이 더 컸을 겁니다.”
“가끔 그렇게 꿍꿍이를 절묘하게 숨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놓는 사람이 있죠. 그래서 이렇게 마 팀장과 마주하게 된 것이고요.”
진짜 꿍꿍이를 숨겨놓은 사람이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진실을 아는 나로서는 순간순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게 싫었다. 솔직히 일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사님. 제게 바라는 게 뭡니까? 전 한낱 팀장일 뿐입니다.”
“한낱 팀장이 아니니까 제가 불렀죠. 솔직히 고현호 상무의 최측근이라고 하면 김학수 부장과 마동수 팀장 이렇게 두 사람 아닙니까? 이미 알려진 사실이니 부정하진 않겠죠?”
“음. 글쎄요. 최측근이라는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고현호 상무님의 과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요. 그것 때문에 마 동수 팀장을 만나자고 한 겁니다. 제가 직접 고현호 상무와 만남을 청할 수는 없고, 김학수 부장은 사람이 좀 고리타분해서 말이 잘 통하지 않거든요.”
“고리타분하다기보다는 정석에 가까운 거죠.”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었군요. 마동수 팀장이 김학수 부장과 절친하다는 걸 제가 깜빡했습니다. 맞습니다. 굉장히 바르고 정석적이죠. 그래서 융통성이 있는 마 팀장을 이렇게 초대한 겁니다. 저랑 말이 통할 것 같거든요. 이건 인정하시죠?”
“네. 인정합니다. 제가 좀 변칙적이긴 하죠. 그럼 제 성격도 아시는 것 같으니 돌려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조건이 뭡니까?”
주승대 이사가 고정호 사장과 손을 힘을 합치면서 단일 세력으론 으뜸이 되었다. 고평호 상무나 고현호 상무 측 세력도 그리 약한 건 아니지만 일대일로 붙으면 밀리는 형국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대일로 밀리는 두 세력이 힘을 합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두 세력이 손을 잡는 건 기원전부터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상태 이사가 나를 찾은 것도 결국은 같이 손을 잡자는 것일 테고, 그래서 나는 노골적으로 조건부터 물었다. 장사로 치면 ‘얼마면 사실 건가요?’라고 묻기도 전에 ‘얼마에 파실 건가요’라고 선 제시를 요청한 것이다.
“하하하. 역시 시원시원하군요. 마 팀장과 만나길 잘했습니다. 음···. 조건이라.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어떤 조건이면 우리와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현 이사님.”
“네. 마 팀장님.”
“죄송하지만 캐스팅보트는 현 이사님이 아니라 제가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원래 국회에서 찬성과 반대가 동수일 경우 의장이 가지는 결정권을 캐스팅보트라고 한다.
단순하게 수치화하면 고정호 사장이 3, 고평호 상무가 2.5, 우리가 2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세력으로 따지면 가장 약하기 때문에 차기 총수가 되긴 힘들어도 우리의 선택에 따라 차기 총수를 정할 순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것도 일종의 캐스팅보트였다.
그렇지만 너무 과한 조건을 요구하면 최악의 경우 고정호 사장과 고평호 상무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니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받아내는 게 오늘 만남에서 가장 중요했다.
물론 며칠 후 고대성 회장이 등장하면 오늘 논의는 무의미해지겠지만 연극을 하려면 완벽하게 하는 게 좋다.
“역시 마동수 팀장이군요. 고현호 상무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거 인정합니다. 그럼 제가 먼저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지마트, D&Y 피트니스 클럽, 동지푸드쿡, 동지 호텔리조트, 동지 백화점, 동지랜드. 어떻습니까?”
“휴우···.”
황당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 정도면 날강도나 다름없다. 방금 말한 계열사들은 대부분 고현호 상무 지지세력들이다. 굳이 고평호 상무의 논의하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는 계열사나 마찬가지다.
“왜요? 마음에 안 드십니까?”
“현 이사님.”
“네.”
“전 현 이사님이 동지 그룹 최고의 브레인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군요. 거절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논의를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더 할 말 없으면 일어나겠습니다.”
나는 굉장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진짜 일어나서 나가려는 시늉을 했다.
“잠깐만요. 마 팀장. 왜 그렇게 급합니까?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조건을 들어보고 들어드릴 수 있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동지랜드는 고장희 이사의 몫입니다. 그건 고정호 사장이나 고평호 상무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마치 선심 쓰듯 우리에게 주겠다니요? 장난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면 제가 이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 낭비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원하는 걸 말해달라는 거 아닙니까.”
“좋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동지마트, D&Y 피트니스 클럽, 동지푸드쿡, 동지 호텔리조트, 동지 백화점에 추가로 동지 유통, 동지 바이오, 동지 에너지를 넘겨주십시오.”
“뭐라고요? 동지 에너지를요? 이봐요. 마 팀장. 욕심이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과거 고정호 사장이 직접 관리했고, 동지그룹 계열사 중 최고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계열사가 바로 동지 에너지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최고의 알짜를 달라고 했으니 천하의 현상태 이사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네? 과해요?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하셔서, 원하는 걸 말했을 뿐인데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의뭉을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식선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상식이요? 그런 현 이사님은 상식적이셔서 동지랜드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신 겁니까?”
“흠···. 좋습니다. 아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그럼 상식적인 선에서 제시하죠. 동지마트, D&Y 피트니스 클럽, 동지푸드쿡, 동지 호텔리조트, 동지 백화점에 동지 유통을 추가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동지 바이오까지 쓰시죠.”
동지마트, 동지 백화점, 동지 유통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생필품 최대 생산 업체인 동지 바이오가 반드시 필요했다.
“동지 바이오를요? 하지만 거기도 만만찮은 알짜인데···.”
“그래 봐야, 계열사 중 1, 2위인 동지 중공업과 동지 에너지를 가져가는 고평호 상무만 하겠습니까? 더 이상의 협상은 없습니다. 받을 생각이 없다면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겠죠.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주주총회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고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고평호 상무였다. 그래서 마음껏 배짱을 튕겼다.
“쯧쯧쯧. 마 팀장이 이 정도로 독하게 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김학수 부장과 이야기할 걸 그랬습니다.”
“그래서 거절하시겠습니까?”
“크흠···. 아닙니다. 마 팀장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내일이 벌써 2015년 마지막 날이군요. 에휴..
내일은 꼭 완결지어야 할 텐데.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