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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13화 (413/424)

00413  완결.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동지 바이오 사장실.

“사장님. 이제 정말 결정을 하셔야 할 때입니다.”

동지 바이오 조강재 사장의 심복인 배운규 영업부장이 자신의 보스인 조강재 사장에게 빠른 결단을 요구했다.

조강재 사장은 한때 고정호 사장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고정호 사장이 사고를 치고 후계자 후보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그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고현호 상무였다.

주인을 바꿨다고 해서 배신자라는 비아냥을 듣긴 하지만 조강재 사장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다. 고현호 상무는 알면 알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고, 고정호 사장과 달리 진심으로 따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고현호 상무에게 엄청난 악재가 하나 생겼다.

동지 그룹 그 자체였던 고대성 사장이 사고를 당해 생사가 불분명해졌고, 그 바람에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였던 고현호 상무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때 고평호 상무 측에서 은밀히 연락이 왔다. 만약 지금이라도 고현호 상무를 버리고 자신들에게로 온다면 계속해서 동지 바이오 사장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굉장히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고평호 상무가 평소 조강재 사장의 유능함을 눈여겨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 부장. 아니 운규야.”

“네. 사장님.”

“너랑 나랑 알고 지낸 지가 얼마나 됐지?”

“사장님이 부장으로 계실 때 제가 신입 사원으로 들어갔으니 17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17년이라···. 거의 강산이 두 번 변할 정도의 세월이니 우리도 참 지겹도록 같이 지냈네.”

“그렇긴 하죠. 저도 웬만하면 사장님하고 오래 지내기 싫은데 이놈의 정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흥. 네가 나 아니면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고?”

“이거 왜 이러십니까?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데요. 심지어 전무 이사 자리를 준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아···. 용수 식품? 거긴 얼마 전에 불량 식품 문제로 폐업됐지 아마?”

“크흠···. 그건 그렇죠. 그렇지만 제가 전무 이사로 갔으면 그럴 일이 없었을 겁니다.”

“신소리 좀 그만 해라. 걔네들이 왜 네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는지 몰라서 그래? 너를 통해 우리 동지 바이오와 선을 넣으려고 그런 거 아니야. 완전 양아치에 사기꾼 같은 녀석들인데 잘도 그런 일이 없었겠다.”

“쩝.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렇게 아픈 과거를 들춰내시는 겁니까? 또 무슨 아쉬운 소리를 하려고요?”

“내가 뭘?”

“뭘 또 시치미입니까? 제가 사장님을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니고. 꼭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을 때 이렇게 괜히 제게 시비를 걸지 않습니까?”

“이번 일 말이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난 한 번 주인을 배신한 놈이잖아.”

조강재 사장도 참 난감했다. 그냥 홀몸이라면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고 고현호 상무를 따를 텐데, 그에겐 가족도 있고 배운규 부장처럼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부하 직원도 걸렸다.

“와! 진짜! 누가 누굴 배신해요.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사장님이 먼저 배신한게 아니라 고정호 그 멍청한 새끼가 마동수 팀장을 납치하려다 실패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래서 후계자에서 쫓겨나 놓곤 사장님보고 배신자라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습니다.”

“야야야. 또 흥분한다. 누가 개운규 아니랄까 봐.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화를 내? 솔직히 고정호 사장만 그런 이야길 하는 게 아니야. 여기저기서 얼마나 비아냥거리는데. 나는 귀가 없는 줄 알아?”

배운규 부장은 평소 굉장히 침착한 성격이지만 조강재 사장과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대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개운규였다.

“그래서요? 또다시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고평호 상무와 손을 못 잡겠다는 겁니까?”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렇죠? 솔직히 사장님이 그런 말에 흔들릴 만큼 감성적인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 배 부장 네가 몰라서 그렇지 내가 얼마나 감성적인데 그래? 시와 클래식과 그림을 사랑하는 남자가 바로 나라고.”

“풉. 시는 모르겠고 트로트와 화투를 사랑하는 건 알죠. 화투도 그림이라면 사장님의 그림 사랑만은 인정해드리겠습니다.”

“뭐 인마?”

“사장님. 자꾸 요지에서 뱅뱅 돌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씀해주시죠. 고평호 상무와 손을 잡기 싫은 겁니까?”

조강재 사장을 17년 동안 옆에서 보필한 사람이 배운규 부장이다.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그런 그가 봤을 때 자신의 보스는 고평호 상무와 손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자기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각별하지만, 그 외 사람에게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때로는 냉정하리만치 차갑게 대하는 사람이 조강재 사장이었다.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지금 타고 있는 배는 침몰 직전이다. 그가 알고 있는 조강재 사장이라면 당연히 타고 있는 배를 갈아탔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망설이고 있는 게 배운규 부장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휴···. 그래. 내게 너를 어떻게 속이겠냐? 솔직히 안 내켜.”

“왜요? 고평호 상무가 싫으신 겁니까? 혹시 약속을 안 지킬까 봐?”

“아니.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으면 굳이 그런 연락을 할 필요가 없어. 그냥 잘라버리면 그만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요?”

“고현호 상무가 마음에 걸려.”

“네? 누가 마음에 걸려요?”

“아, 이 자식! 귀가 막혔나. 고현호 상무가 마음에 걸린다고.”

못 알아듣는 척하는 배운규 부장의 모습에 조강재 사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러든 말든 시큰둥한 배운규 부장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황당해서 그러죠. 갑자기 고현호 상무가 왜 마음에 걸려요? 사랑을 느낀 건 아닐 테고, 설마··· 아니죠?”

“설마 뭐?”

“고현호 상무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껴 배신하기 마음에 걸린다 뭐 그런 이야긴 아니죠?”

“왜? 나라고 그러면 안 돼?”

“아니요. 음···. 좀 의외이긴 하지만 솔직히 고현호 상무가 사람이 좀 괜찮긴 하죠? 능력도 있고 사람을 포용할 줄도 알고.”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헛소리한다며 핀잔을 줄 줄 알았던 배운규 부장이 그의 말에 동조를 하자 조강재 사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그건 저도 동감해요. 게다가 말이죠.”

“게다가 뭐?”

“저는 마동수 그 친구랑 많이 친해졌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막상 고평호 상무에게 가려니까 그 녀석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뭐? 하하하. 나도 나지만 넌 왜 또 그랬냐?”

“저도 몰라요. 어느새 친해져 있더라고요. 그리고 제수씨가 워낙 살갑게 대해줘서···.”

“제수씨? 누굴 말하는 거야?”

“누구긴 누굽니까? 당연히 마동수 팀장 약혼녀를 말하는 거죠.”

“혹시 동지 마트 광고에도 나왔던 그 윤시연을 말하는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요. 당연히 그 윤시연이죠.”

“에라이. 도둑놈아. 너랑 걔랑 나이 차이가 25살인가 난다. 제수씨라는 말이 쉽게 나오냐?”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제수씨가 저보고 먼저 아주버님이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대하니까···.”

“에잉. 쯧쯧쯧. 넘어갔네. 넘어갔어. 천하의 개운규가 결국 미인계에 넘어간 거야.”

“와! 넘어가긴 뭘 넘어가요? 그냥 우리 동수씨 잘 부탁한다고 해서 알았다고 한 것뿐인데.”

배운규 부장은 자기가 생각해도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그게 넘어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좋아요. 그렇다 쳐요. 그런데 그건 사장님도 마찬가지죠. 결국 사장님도 고현호 상무한테 넘어간 건데.”

“큭.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어쩌지? 그냥 두 눈 꾹 감고 고평호 상무한테 갈까? 나야 애들이 다 졸업했지만, 넌 첫째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안 했잖아.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않겠어?”

“혹시 저를 걱정해서 망설인 거예요? 마음은 고평호 상무에게 가기 싫은데?”

“꼭 너 때문은 아니지만, 조금 고려는 했지.”

“사장님.”

“왜?”

“이제 사장님 마음을 확실히 알았으니 제가 받은 느낌을 말씀드릴게요.”

“뭔데?”

배운규 부장은 조강재 사장의 판단에 지장을 줄까 봐 망설이고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다.

“솔직히 지금 동지 그룹에서 제일 다급한 사람이 누굽니까?”

“아무래도 고현호 상무겠지?”

“네. 그리고 마동수 팀장도 고현호 상무의 측근이니 당연히 다급해야겠죠?”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데 이 녀석이 너무 여유로워요. 분명히 말은 걱정이 많은 척하는데 눈에는 전혀 근심이 담겨있지 않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지?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해봐.”

조강재 사장도 배운규 부장의 말에 뭔가를 느꼈는지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마동수 팀장이 어떤 녀석입니까? 그동안 동지그룹을 여러 차례 들었다 놓았다 했던 녀석 아닙니까?”

“그렇지? 뭔가 변칙적이긴 하지만 그 녀석이 벌이는 일마다 굉장히 센세이션하긴 했어. 어쨌거나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지. 오죽했으면 우리가 그렇게 휘둘렸겠어?”

“역시 사장님도 저랑 같은 생각이시죠?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녀석이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겁니다. 자포자기냐? 그런데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럴 녀석도 아니고요. 진짜 위기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쥐어짤 녀석이죠.”

“그런데 그럴 생각은 안 하고 여유를 부리고 있다?”

“네.”

“이상하네.”

“그렇죠?”

“그래. 이상해. 확실히 이상해. 분명 뭔가 있는데 그게 뭘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워낙 의뭉스러운 놈이라.”

“배 부장.”

“네. 사장님.”

“분명 지금 분위기를 반전시킬 비장의 카드가 있는 게 분명해.”

“그 비장의 카드가 뭔지 알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뭔지 모르지만 그 비장의 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 마동수 팀장이라는 사실이 중요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동수잖아. 재계에서는 여전히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바로 그 마동수라고. 나는 왠지 그 녀석이 내일 주주총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 같은 느낌이야.”

숨겨진 실체는 모르지만 마동수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두 사람 모두 인정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미친 짓 같지만 우린 여기서 승부를 건다. 고평호 상무에게 연락해.”

“그래서요?”

“제안은 고맙지만 거절한다고 정중하게 우리 뜻을 전해.”

“알겠습니다. 사장님.”

***

드디어 대망의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번 주주총회는 정기총회가 아니라 고대성 회장 부재를 메꿀 새로운 총수를 뽑는 임시 주주총회였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엄청난 대기업의 총수를 뽑는 자리이기 때문에 동지 그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이번 주주총회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현호야.”

“네. 형님.”

주주총회가 열리는 대강당 입구. 무덤덤한 얼굴로 대강당을 들어서려던 고현호 상무를 고평호 상무가 불러세웠다.

“결국 우리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더군.”

“혹시 연락을 기다리신 겁니까?”

“예전의 네가 아니라 혹시나 하며 기대를 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은 합리적으로 변할 줄 알았거든.”

“그래서 제가 정호 형님보다 더 나쁜 조건으로 협상을 제시할 거라고 믿으신 겁니까?”

“합리적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형님을 어떻게 믿고요?”

고평호 상무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고현호 상무. 그러나 그의 얼굴에 비아냥거림은 없었다. 그래서 고평호 상무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그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형인 고정호 사장보다 동생인 고현호 상무가 상대하기 더 편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우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구두 약속도 약속인데 그걸 헌신짝 버리듯 버린 사람이 바로 작은 형님입니다. 그래놓고 믿어달라고요? 솔직히 제 눈엔 정호 형님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수작으로 보입니다.”

“수작? 하하하. 그래. 내가 한 짓이 있으니 네 신뢰를 얻는 건 쉽지 않겠지. 하지만 지금 내 말은 진심이다. 지금이라도 정호 형님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너와 손을 잡고 싶다.”

“그런 분이 야금야금 우리 세력까지 빼가셨습니까?”

“이런. 우리 셋째가 마음이 많이 상했나 보네.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화가 나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손해를 보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다.”

“됐습니다. 제 걱정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작은 형님은 오늘 주주총회나 걱정하시죠.”

“쯧. 이렇게 냉정하지 못해서야. 그렇다고 어쩌겠어? 평안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어쩔 수 없지. 이만 간다. 나중에 모두 뺏기고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말도록 해라.”

고현호 상무의 태도가 단호하자 고평호 상무도 더 이상의 설득을 포기하고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귀빈석에 도착하자 지금 상황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고정호 사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았다.

“제시간에 맞춰 왔구나. 평호야.”

“예. 형님.”

“아버지께서 어렵게 일구신 그룹이 오늘 갈라지겠네. 개인적으론 참 아쉬워.”

“정 아쉽다면 형님이 양보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정호 사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의뭉을 떨자,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평호 상무가 차갑게 일갈했다.

“하하하. 농담도. 너··· 설마 지금 와서 합의를 깨려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럴 일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시죠.”

“정말인 거지?”

“네.”

“그래. 네가 예전부터 계산은 정확했지. 그런데 말이야. 동지그룹 차기 총수가 된다고 하니 기분이 어때? 아직 젊은 나이잖아?”

“그냥 무덤덤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고평호 사장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생겼다 사라졌다. 그러나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고정호 사장은 그런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가? 나라면 기분이 좋아 웃음이 떠나질 않을 것 같은데.”

“그냥 무덤덤합니다.”

“원, 사람 참 싱겁기는. 그래 알았어. 무덤덤한 걸로 해두자고.”

“네.”

고평호 상무는 별달리 말을 섞기 싫었는지 단답형 대답으로 일관했고, 이에 무안해진 고정호 사장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잠시 후 제XX회 동지그룹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주 여러분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사회자가 임시 주주총회의 개최를 선언했다.

주주총회 식순이 끝나자 오늘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 이유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투표에 들어갔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별다른 논의가 필요 없다는 분위기였다.

고평호 상무는 고현호 상무의 담담한 표정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금방 지웠다.

주주들의 투표가 끝나고 결과 발표만 남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주주 여러분들이 해주신 투표 집계가 방금 끝났습니다. 이제 곧 결과 발표를 하겠습니다. 동지그룹 차기 회장직은···.”

쿵.

사회자가 동지그룹 차기 회장을 발표하려는 순간 큰 굉음과 함께 대강당의 정문이 열렸고, 세 명의 남자가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회자는 경호원에게 그 사람들을 제지할 것을 요구하려고 했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대강당으로 들어오는 남자들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 마치 귀신을 본 듯 새하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고··· 고대성 회장이다. 말도 안 돼.”

그 말에 대강당은 핵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조금 전까지 옅은 미소를 띠고 있던 고정호 사장과 고평호 상무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고, 귀신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다 곧 두 사람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주주총회 내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현호 상무의 모습. 그 모습이 번쩍 떠올랐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고현호 상무는 오늘 벌어질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정호 사장과 고평호 상무는 단상으로 다가올수록 점점 명확하지는 고대성 회장의 모습에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고대성 회장이 건강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 좌중들을 압도하며 던진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동지 그룹 회장으로서 오늘 열린 임시 주주총회의 폐회를 선언한다.”

============================ 작품 후기 ============================

아쉬운 감이 있지만 이렇게 완결하겠습니다.

뭔가 미진한 뒷 이야기는 몇 편의 외전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해서 완결하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오랜 걸렸습니다. ㅠㅜ 우여곡절을 겪으며 중간에 두번이나 연중을 반복했지만 독자님들의 믿음 덕분에 이렇게 완결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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