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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14화 (414/424)

00414  에필로그 01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모두를 경악으로 몰아넣은 동지그룹 임시 주주총회가 끝나고, 곧바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지그룹 회장의 교통사고, 위독하다는 소문 그리고 깜짝 재등장에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할 테고, 고대성 회장은 그런 억측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격 기자회견이라는 용단을 내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하실 분들이 많을 테니, 제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대성 회장은 여전히 강건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기자회견장을 휘어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은 족속인 기자들도 그 모습에 압도되어 자신들의 호기심을 억누르며 침묵을 지켰다.

“지금으로부터 보름 전 동지그룹이 운영하는 정보팀으로부터 저와 고진성 부회장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제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트럭이 덮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정보팀이 사전 입수한 정보 덕분에 저 대신 인형을 태워 보냈고,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

사고를 당하지 않고 피했다는 말에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개중에 성급한 기자는 가지고 있는 휴대폰으로 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를 일으킨 배후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잡힐 때까지 피해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 사고는 미리 인지해 피할 수 있었지만, 그 행운이 두 번째 세 번째에도 계속된다고 보장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의 아니게 직접 사고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고, 중태에 빠져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거짓 정보를 풀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제 안전을 지킬 수 있었고, 범인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범인은 잡혔습니까?”

한 기자가 호기심을 참지 못했는지 고대성 회장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젊은 신입기자였다. 그는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고대성 회장의 실체를 모르는지 호기로운 표정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하룻강아지 같은 모습에 베테랑 기자들은 뭔가 큰 소리가 나지 않을까 긴장을 한 채 숨을 죽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대성 회장은 당돌한 신입 기자의 질문에도 여전히 흔들림 없이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범인은 바로 이틀 전에 잡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어제 나타나서 모든 걸 밝히고 싶었지만,경찰 쪽에서 그들은 사주를 받았을 뿐 진짜 주범은 따로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진술이 끝날 때까지 하루만 더 기다려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저 또한 경찰의 요청이 충분히 합당하다고 생각해 받아들였고, 본의 아니게 오늘 임시 주주총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동지그룹의 회장으로서 오늘 일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질의응답은 이도우 비서실장이 저를 대신해 답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한적한 곳에서 바깥 소식을 거의 접하지 않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기자 여러분들이 원하는 답은 이 실장이 더 정확하게 해줄 겁니다. 그럼.”

할 말을 모두 마친 고대성 회장이 퇴장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항의를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거대한 대기업의 총수가 이 정도 성의를 보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기자들 입장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고대성 회장보다 이도우 비서실장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편했다.

“휴···. 다행히 회장님이 사고를 안 치시고 조용히 퇴장하시는군요.”

기자회견장 구석에서 고대성 회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마동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게. 아들인 내가 봐도 조마조마했다.”

함께 지켜보던 고현호 상무의 마음도 그와 비슷했다. 고대성 회장의 부재로 동지그룹의 주가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고대성 회장의 부재도 악재였지만 세 아들 사이의 후계자 싸움이 큰 타격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협력업체 하나가 타이밍 나쁘게 도산을 하면서, 동지그룹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괴소문까지 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대성 회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갑자기 나타나면, 주가조작을 위해 일부러 잠적한 게 아니냐는 식의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현호 상무는 그런 의혹을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선 당사자의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직접 나서서 고대성 회장을 설득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기자회견이었다.

하지만 고대성 회장이 워낙 독불장군에 가까운 성격이라 무슨 사고를 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우. 저 눈치 없는 신입 기자 때문에 회장님이 화가 나셔서 그냥 나가버리진 않을까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줄 알았어요.”

“그러게 말이야. 저 자식 대체 어디 신문사 기자야?”

“몰라요. 확인 안 해봐서. 지금이라도 확인해 볼까요?”

“그래. 어디 신문사인지 확인해서 우리 그룹 출입 금지 시켜버려.”

“잠시만요.”

마동수는 얼른 근처에 있는 직원을 한 명 불러, 고대성 회장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진 눈치 없는 신입 기자의 소속을 알아오도록 시켰다.

그러는 사이 이도우 비서실장이 기자회견장 단상에 올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주식회사 동지 비서실장 이도우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기자님에게 차례로 기회를 드리겠으니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순서는 맨 앞줄 오른쪽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드림 일보 이수철 기자입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이신 회장님이 아무런 탈 없이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일 텐데. 배후가 누군지 밝혀졌습니까?”

“네. 밝혀졌습니다.”

“혹시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따라서 배후가 누구인지 확인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회사 임원이라는 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쯤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을 겁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일은 일종의 살인 및 살인교사 미수 사건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보면, 피해자가 사라질 때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이 범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스럽지만 지금 동지그룹을 보면 고대성 회장님이 부재 중일 때 제일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에··· 그러니까.”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세 아드님 중 한 명이 범인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겠군요.”

아무리 기자라고 해도 공개된 장소에서 대기업 총수의 세 아들 중 한 명을 범인으로 추정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이수철 기자는,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알았는지 이도우 비서실장이 다들 조심스러워하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사실 친족 살해에 대한 의심은 주가조작 논란과 함께 동지그룹 측에서 먼저 꺼내고 싶은 이야기였다.

“네. 그렇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배후로 지목된 인물은 이미 경찰에 의해 체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기자님께서 기자회견장을 잘 살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회장님은 세 아드님은 모두 이곳에서 참석해 계십니다. 그걸로 충분히 답변이 된 것 같습니다.”

이도우 비서실장의 말이 끝나자 기자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정호 사장, 고평호 상무, 고현호 상무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애썼다.

‘찾았다. 저기 고정호 사장.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은 안 보이는데?’

‘고정호 사장 왼쪽에 보면 고평호 상무 있잖아.’

‘아. 맞네. 고평호 상무네. 그럼 고현호 상무는?’

‘아까 못 봤어? 고현호 상무는 고대성 회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올 때 나란히 들어왔었어.’

‘그래? 그럼 고현호 상무는 진짜 아니라는 거네.’

‘나머지 두 아들도 마찬가지지. 배후 인물이 체포되었다는데 다들 이곳에 있잖아.’

‘그냥 쇼하는 건 아니고?’

‘에이. 고대성 회장 성격 몰라? 아무리 아들이라도 자기 목숨을 노렸는데 그 성격에 가만히 뒀을 것 같아?’

‘그건 그렇지? 쯧. 그건 좀 아쉽네. 대박 특종 하나 나올 뻔했는데.’

‘이 정도만 해도 이미 엄청 특종이긴 하지만 뭔가 아쉽긴 하네.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가의 골육상쟁. 어휴 제목만 봐도 짜릿하다.’

기자회견장은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소란스러움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곳에 없으면 범인으로 몰릴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고현호 상무와 달리 구석에 몸을 숨겨 조용히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고정호 사장과 고평호 상무도 모습을 드러냈다. 세 아들을 모두 확인하자 기자회견장은 금세 차분해졌다.

“어떻습니까? 이수철 기자님.”

소란스러움이 진정되자 이도우 비서실장이 이수철 기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확인했습니다. 말씀처럼 세 분 모두 이곳에 계십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혹시나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이 시간 이후 세 분과 관련된 어떤 추측성 기사도 우리 동지그룹은 단호하게 대처할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만약 세 분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추측성 기사가 올라온다면 기자뿐만 아니라 해당 글을 올린 신문사에게도 동지그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강력한 책임을 물을 생각이니 신중한 기사 부탁드립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회견장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듯 가라앉았다. 이도우 비서실장의 어조는 온화했지만 그 속에 품고 있는, ‘동지그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는 말의 의미는 굉장히 강력한 경고였다. 동지그룹과 정면으로 맞붙을 각오 없이는 절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

“아버지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고정호 사장과 고평호 상무는 얼른 그룹 회장실로 달려가 고대성 회장을 만났다.

“그래. 그렇구나.”

상기된 표정으로 황급히 달려온 두 아들과 달리 고대성 회장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이렇게 무사하셨으면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랬습니까?”

“번거롭게 뭐하러?”

“아버지. 번거롭다니요.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면회 한 번 안 온 녀석들이 말은···.”

“그··· 그건 병원 측에서 면회가 안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어···.”

“됐다. 변명을 듣자고 꺼낸 말은 아니니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변명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부재중일 때 흔들리는 동지그룹의 중심을 잡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이제 그 부재가 끝났으니 제자리로 돌아가야지.”

두 사람은 고대성 회장이 임시 주주총회에 나타났을 때 모든 게 끝이라는 걸 예감했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회장실을 찾았다. 하지만 고대성 회장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됩니까?”

잠깐이지만 달콤한 꿈을 꾸었던 고정호 사장은, 쉽게 그 꿈을 놓지 못해서 미련을 부렸다.

“정호야.”

“네. 아버지.”

“알지 않느냐? 넌 이미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오해일 뿐입니다.”

“오해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넌 그룹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고, 더는 기회가 없다.”

“아버지.”

“이놈. 그 알량한 동지유업까지 잃고 싶지 않으면 더는 욕심 부리지 말도록 해라. 알아들었어?”

“큭. 알겠습니다.”

“에잇.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네. 아버지.”

헛된 욕망 때문에 잠시 반항을 했던 고장호 사장은 고대성 회장의 호통에 금세 기가 죽었다. 그리고 축 처진 어깨로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평호야.”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고평호 상무 또한 조용히 회장실을 빠져나가려는데 고대성 회장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아버지.”

“이번 사건의 주범이 누군지 알 것 같으냐?”

“모르겠습니다.”

“현상태 이사더구나.”

“그랬군요.”

“정말 몰랐나 보구나.”

별로 놀라지도 않고 무덤덤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고대성 회장은 자신의 둘째 아들이 정말 놀랐을 때 반응이 저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래 죄송해야지. 네가 연관이 없다고 해도 네가 사람을 잘못 썼으니 네 잘못이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벌을 주신다면 뭐든 달게 받겠습니다.”

“동지 메디슨을 네게 주마.”

“하지만 거긴 고호성 사장이···.”

고대성 회장의 육촌 동생이자, 고평호 사장 측근인 이석근 팀장의 장인이 고호성 사장이다. 고평호 상무는 그런 그를 밀어내고 동지 메디슨을 자신에게 준다는 말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석근 팀장 또한 이번 일에 깊이 관여를 했더구나. 그럼 장인인 호성이도 물러나야지. 아무리 육촌지간이라고 해도 계속 둘 순 없지 않느냐.”

“휴···. 그렇군요. 현상태 이사. 이석근 팀장. 두 사람이 같이 저지른 일이군요.”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이제 할 말은 끝났으니 그만 나가보거라.”

“네. 아버지.”

============================ 작품 후기 ============================

결말이 미진한 것 같아 에필로그 몇 편으로 아쉬움을 달랠까 합니다.

앞으로 5편 정도 생각하고 있으며, 그걸로 미진한 내용을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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