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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15화 (415/424)

00415  에필로그 02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놓쳤단다.”

“누굴?”

“현상태 이사.”

“뭐? 어쩌다가?”

“글쎄다. 현상태 이사가 엄청나게 눈치가 빨랐나 보더라고.”

기자회견이 끝나고 회견장을 나서는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광우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왔다.

광우는 나를 비롯한 동지그룹 사람들을 위한 연락책 자격으로 이 자리에 있을 뿐 체포 작전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래서 그런지 범인을 놓쳤다고 말하는 녀석의 얼굴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남의 집 이야기 하듯 무덤덤해 보였다.

광우가 대장으로 있는 광수대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이고, 현 서울경찰청장은 광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실력 하나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할만하지만 타협이 없는 뻣뻣한 성격 때문에 윗사람들에겐 계륵 같은 존재였고 경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번 체포 작전도 결국은 다른 팀에게 빼앗겨 버렸다. 서울경찰청장은 이번 사건의 상징성을 생각해 광수대가 아닌, 자신이 밀고 있는 강력계 제1팀에게 작전 권한을 넘긴 것이다. 죽 쒀서 개 준 꼴이지만 광우는 별다른 동요 없이 덤덤했다.

이런 식으로 불이익을 받는 게 처음도 아니고, 동지그룹 정보팀이 대부분 조사를 마친 사건을 넘겨받는 것도 내켜 하지 않아 했었다. 남이 주는 밥을 얻어먹는 건 자신의 체질이 아니라며 강력계가 사건을 가져가는 걸 오히려 반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분명 임시 주주총회에 참석해 있던 사람을 놓치면 어쩌자는 거야?”

광우가 체포 작전을 맡았다면 범인이 고자(?)가 되는 참변은 일어날 수 있어도, 범인을 놓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그렇게 미치자 괜한 욕심을 부린 서울경찰청장이 생각나 절로 짜증이 났다.

“이해해라. 거기 팀장이 좀 멍청해.”

“멍청해? 그럼 능력이 없다는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경찰서도 아니고 지방경찰청 팀장이 된 거야?”

“그런 단점을 날려버릴 수 있는 특출한 재능 덕분이지.”

“그게 뭔데?”

“잘 비벼.”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부를 잘 한다고. 항간에는 하도 비벼서 그 친구 지문이 희미해졌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니까.”

“그런 놈이었으면 네가 신경 좀 써주지. 현상태 이사는 꼭 체포했어야 했다고. 비서실장님도 아까 기자회견에서 범인은 체포됐다고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 된 거잖아.”

“쩝. 나라고 이것까지 예상했겠냐? 솔직히 이렇게 무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명색이 서울지방경찰청 강력팀장 아니냐? 광수대만큼 능력 있는 애들이 모인 곳이니 한칼은 있을 줄 알았지.”

“에이씨. 아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네게 이런 이야기를 해서 뭐하겠냐. 그래서 현상태 이사를 잡을 순 있대?”

자신의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꼴이니 광우도 결국 피해자였다. 그러니 녀석을 붙잡고 하소연해봐야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꼴이다.

“글쎄다. 쉽게 생각했는데 범인을 놓쳐버려서 허둥지둥하고 있는 분위기야. 팀장 그 자식 잠깐 봤는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더라.”

“미친 자식. 울 것 같은 게 아니라 울어야 할 거다. 우리 회장님 성격 너도 알지? 이번 실수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걸? 아마 망할 놈의 팀장뿐만 아니라 서울경찰청장도 무사하기 힘들 거다.”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지그룹 회장이니 서울경찰청장 정도는 한칼에 날려버릴 수도 있겠지?”

“응? 너 뭐야? 뭔가 반응이 이상한데? 솔직히 털어놓지? 무슨 꿍꿍이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광우의 뉘앙스가 뭔가 이상했다.

“무슨 꿍꿍이?”

“20년을 넘게 알고 지냈다. 내가 널 몰라? 무슨 꿍꿍인지 솔직히 털어놓지? 그래야 내게 맞장구를 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왜? 서울경찰청장이라도 날려버리려고?”

“뭐 인마? 일개 경정 나부랭이가 어떻게 서울경찰청장을 날린다고 그래?”

“그래? 자꾸 이렇게 모른 척한다 이거지? 그럼 내가 회장님께 말씀드려서 경찰청장 아저씨를 날려버려도 괜찮은 거지?”

“어허.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직장 상산데 어떻게 그런 험한 일을 당하게 해. 그냥 살짝 내게 좀 미안한 일만 만들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내가 좀 막 나갈 것처럼 행동하자 광우는 그제야 은근히 속내를 드러냈다.

“그 정도 돼? 네가 원하면 진짜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아니야. 그 정도면 충분해. 청장 양반 뒷배가 생각보다 굉장히 든든하거든. 그러니 괜히 서로 얼굴 붉히는 것보다 이럴 때 살짝 신세를 지도록 만드는 게 나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너 말이야.”

“뭐? 왜?”

“잠깐 이리 와서 귀 좀 대봐.”

“아이 자식. 갑자기 귀는 왜?”

광우는 내 말에 귀찮은 기색을 보였지만 자신도 뭔가 느꼈는지 순순히 귀를 가져다 댔다.

“지금 현상태 이사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이렇게 여유가 있는 거지? 다 아니까 솔직히 불지?”

“큭큭. 눈치챘냐?”

“헐. 뭐야? 진짜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아···. 이 망할 녀석.

“그 정도까진 아니고 어쨌거나 잡을 방법은 있어.”

“음흉한 녀석. 넌 이미 실패를 예견한 거구나? 혹시 실패하라고 고사 지낸 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까지 사악한 놈은 아니거든! 그냥 혹시나 해서 알아 둔 거야. 유비무환이라고나 할까?”

“개뿔. 이미 예상해놓고는 유비무환 같은 소리 한다.”

계륵 같은 사건이었다고 해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사건을 빼앗겼다. 내가 아는 광우라면 절대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반격이 너무 빠르다. 광우 녀석. 안 그런 척하더니 열을 좀 많이 받은 모양이다.

“에이 진짜. 꼭 그런 건 아니라니까.”

아니라면서도 실실 웃는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그 강력계 팀장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불쌍해졌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현상태 이사는 빨리 잡히는 게 좋아. 그러니까 시간 끌지 말고 얼른 원하는 걸 이야기해 봐.”

“별거 없어. 그냥 범인 놓친 것에 대해 청장을 조금 압박하면 돼. 그렇다고 너무 밀어붙이지는 말고 적당히.”

“그래서 다급해진 청장이 네게 사정하게 만들도록 하라는 거지?”

“그렇지. 전에 이야기했잖아. 같이 더럽게 변하지 않으면서도 경찰생활을 계속하려면 저들의 약점을 잡아두는 게 최고라고.”

“그래. 적당히 압박하는 건 또 내 전문이니까 믿고 조금만 기다려 봐.”

***

광우의 부탁을 들은 동수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이면 상당한 거물이지만 그에겐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됐다. 곧 동지그룹의 공식 후계자가 될 딱 한 사람.

사실상 동지그룹의 차기 총수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고현호 상무는 동수의 부탁을 받고 광화문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았다.

“어서오세요. 고현호 상무님.”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장님. 바쁘신 데 갑자기 방문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무리 바빠도 고현호 상무님이 이렇게 친히 와주셨는데 얼마든지 시간을 내야죠.”

“그래도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조심스럽군요. 시간을 많이 뺏진 않겠습니다. 천만 서울 시민의 치안을 책임지시는 분인데 사소한 일 때문에 오래 붙잡아 둘 순 없지요? 간단히 제 뜻만 전달하고 가겠습니다. 사실··· 청장님도 제가 무슨 일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아닙니다.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소식을 들은 회장님 심기가 매우 불편해지셨습니다.”

고현호 상무는 시작부터 자신이 꺼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를 꺼내 들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그 말에 채만기 서울청장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물불 가리지 않는 고대성 회장의 성격은 정·재계에서도 유명했다. 심지어 과거 모 장관이 일을 엉망으로 처리한 바람에 동지그룹이 피해를 보자 직접 찾아가 먹살잡이를 했다는 소문까지 들릴 정도였다.

“고대성 회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습니까?”

“네. 그래서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이죠. 혹시 기자 회견은 보셨습니까?”

“당연히 봤습니다. 여전히 강건해 보여서 얼마나 다행이다 생각했는데요.”

“보셨으면 청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도우 비서실장이 기자 회견을 통해 범인을 잡았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도 회장님이 단상에 올라 직접 해명까지 한 자리에서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회장님께서 이도우 비서실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는 건 비서실장의 말이 곧 당신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의 무게가 다르죠. 결국 경찰의 방심이 부른 실수로 회장님이 거짓말을 하게 된 거죠.”

“이··· 이거 정말 송구하게 됐습니다.”

채만기 서울청장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지만 고현호 상무의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범인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잠시 몸을 피하셨다가 공식적으로 처음 다시 등장한 자리입니다. 잠시 몸을 피해 계신 동안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혹시나 주가 조작 같은 오해를 받지는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이 거짓말로 드러난다면 대중들이 우리 동지그룹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이도우 비서실장이 그랬죠? 불미스러운 추측성 기사가 올라온다면 기자뿐만 아니라 해당 글을 올린 신문사에게도 동지그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강력한 책임을 물을 생각이니 신중한 기사 부탁한다고요.”

“네. 저도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강력하게 말했으니 감히 회장님의 뜻을 거스르는 기자는 없을 겁니다.”

“그건 비단 기자나 신문사에 국한된 말이 아닙니다. 이번에 실수를 한 강력계 팀장은 물론이고 서울지방경찰청에도 화살이 향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고··· 고 상무님.”

“네. 청장님.”

“제발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폭풍처럼 몰아치는 협박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채만기 서울청장은 결국 고현호 상무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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