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6 에필로그 02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방법이 하나뿐인 거 청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방법이 하나뿐이라니요. 그게 어떤 방법입니까?”
“최대한 빨리 현상태 이사를 잡으면 됩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최대한 빨리 현상태 이사를 잡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빠르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언론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하고 은밀하게 잡아들여야 합니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맞습니다. 절대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설마 오늘 실수한 그 팀에게 다시 기회를 줄 생각은 아니죠?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청장님이 우리 동지그룹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당연히 아닙니다. 그 팀은 당장 청으로 불러들이고 믿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투입하겠습니다.”
수사팀 교체까지 적시하는 건 분명한 내정간섭이다. 그러나 지금 칼자루는 고현호 상무가 쥐고 있고, 채만기 청장으로서는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었다.
“청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당연히 그러시겠지만 전 최고를 원합니다.”
“당연합니다. 당연히···”
“그런데 이번 체포 작전에는 최고를 투입하지 않으셨더군요.”
“크흠. 그··· 그게 말입니다.”
“됐습니다. 청장님도 지금 위치에 오르시려면 당연히 정치적 처세가 필요했을 겁니다. 경찰이나 기업이나 자기 사람 아끼는 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잘됐으면 해피앤딩으로 끝났겠죠. 하지만 그 욕심 때문에 우리 동지그룹이 한번 피해를 봤습니다. 그런데도 또다시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진 않으시겠죠?”
“물론입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히 말씀드리건대 우리 서울지방경찰청에는 대한민국 최고 경찰이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최고라는 말을 듣는 순간 채만기 청장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체포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런데도 망설인 건 지금 와서 그에게 수사를 맡기면 청장인 자신이 부하직원에게 고개를 숙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현호 상무가 직접 찾아왔다. 이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다행이라면 동지그룹 또한 이번 일에 대해 조용히 넘어가길 원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실수가 언론에 알려진다면, 특히 광수대의 일을 빼앗아 강력계에 넘긴 걸 안다면 채만기 청장 본인도 무사할 수 없었다.
Rrrr
약속처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고현호 상무가 돌아가자 채 청장은 곧바로 최광우 계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청장님. 최광우입니다.
“그래. 최 계장. 시간이 없으니 용건만 간단히 할 게. 부탁이 있어.”
- 부탁이라니요. 명령을 내리시면 따르겠습니다.
“부탁이든 명령이든 아무튼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 말씀하십시오.
“현상태 이사 체포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을 거야.”
- 네. 범인이 눈치가 빨랐던 것 같더군요. 고대성 회장이 나타나자마자 이상하다는 걸 직감하고 곧바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책상물림 아니야? 오 팀장 이 바보 같은 녀석이 너무 방심했어. 아니지.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현상태 이사 잡아줄 수 있나?”
창피하고 쪽팔렸다. 그러나 채만기 청장은 성난 고대성 회장의 모습을 상상하며 두눈을 질끈 감았다.
- 물론입니다. 원래 제가 조사하던 사건이라 이미 범인에 대해 파악은 해뒀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최대한 빨리 잡아들일 수 있는 거지?”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원래 조사하던 사건’이라 함은 ‘당신이 사건을 빼앗아 김 팀장에게 넘겼지 않느냐’는 질책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이미 범인에 대해 파악해뒀다.’는 소리만 들렸다.
- 장담은 못 하겠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체포 작전 시작할까요?
“그래 당장 시작해줘. 내가 최 계장을 모르나?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잖아. 잡고 오면 오늘 은혜는 잊지 않을 게.”
- 은혜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요. 그럼 현상태 이사를 체포한 다음 찾아뵙겠습니다. 그리 오래는 안 걸릴 테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
“은혜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요. 그럼 현상태 이사를 체포한 다음 찾아뵙겠습니다. 오래는 안 걸릴 테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 그래. 난 최 계장만 믿겠네.
“믿기는 개뿔. 믿었으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보나 마나 김 팀장이 옆에서 알랑방귀를 뀌었겠죠. 두고 보십시오. 그 개자식 내가 가만 안 둘 겁니다.”
최광우는 채만기 청장과 통화를 끝낸 다음에야 진짜 본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대경 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에는 수사과, 형사과, 광역수사대, 지능범죄수사대 이렇게 네 개의 조직이 있다. 분명 서로 다른 임무를 맡고 있지만 범죄 특성상 영역이 겹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나쁜 놈들은 대게 한 가지 범죄만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 폭력배가 살인 사건을 일으키고, 마약 유통하고, 성매매 배후로 활동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강도가 돌변해서 강간범이 되는 일도 있고, 살인범이 연쇄 살인마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수사 영역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강력계가 소속된 형사과와 광역수사대는 겹치는 일이 굉장히 많아 전통적으로 사이가 나쁜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동지그룹 사태에서 형사과장도 아니고 강력계장도 아니고 강력계 일개 팀장이 광역수사대 계장에게 강력한 빅엿(?)을 먹여버린 것이다. 그 사실에 가장 노발대발한 사람이 노대경 팀장이었다.
“진정하시죠. 노 팀장님. 어쨌거나 이번 사건으로 경찰 생활이 꼬여버렸으니 굳이 노 팀장님이 나서지 않으시더라도 충분히 괴로울 겁니다.”
“아··· 진짜. 김 팀장 그 자식. 계장님하고 경찰대 동기만 아니었으면 예전에 박살 내버렸을 겁니다. 능력도 쥐뿔 없는 녀석이 동기라는 이유로 기어오르는 게 계속 눈에 거슬렸거든요.”
최광우는 경찰대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초고속 승진을 달렸고, 김 팀장은 평범한 길을 걸었다. 그런데 동기의 승승장구가 눈꼴시었는지 김 팀장은 사사건건 최광우를 걸고넘어졌고, 옆에서 지켜보던 노대경 팀장은 그런 상황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선배인 자신도 후배인 최광우의 능력을 인정하고 꼬박꼬박 직장상사로 대접하는데 한참이나 후배인 김 팀장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기어오른다는 사실이 그로서는 짜증이 났다.
“그래도 참으십시오. 제 성격 잘 아시잖아요. 전 절대 당하고 가만 안 있습니다.”
“그렇죠? 계장님 성격이야 워낙 사악하시니···. 그런데 계장님. 아무리 그래도 범죄자들 대하듯 고자로 만들면 안 됩니다.”
“하하하. 그거야 성범죄자들만 그렇게 만든 거죠. 제가 앞뒤 분간 없는 인간은 아닙니다.”
“에이. 그동안 사고를 많이 치셨잖아요. 이왕 앞뒤 분간 하는 김에 앞으로 범인들 고자로 만드는 건 좀 자제하는 게 어떨까요? 그것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 계장님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진 않지 않습니까? 김 팀장 그 자식도 그래서 계장님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고요.”
“승승장구해서 뭐하게요. 여기서 더 승진하면 현장에서 활동 못 합니다. 전 범인 잡으려고 경찰이 된 것이지 책상에 앉아 서류나 보려고 경찰이 된 게 아니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사법 고시 패스 안 하는 건데. 내가 미쳤지.”
지금은 그래도 경정이라 수사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만 한 계급 올라 총경으로 승진하면 그것도 힘들어진다. 최광우는 그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짜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전 지금 계장님이 달고 있는 경정이라도 달아봤으면 소원이 없겠구먼.”
“농담이 아니라, 마음 같아서는 정말 계급을 바꿔드리고 싶어요. 경장 달면서 서류 작업이 두 배나 늘었거든요.”
“쩝. 됐습니다. 제가 서류라면 질색하는 거 아시면서.”
“하하하. 그러니까 바꿔드리고 싶다고 한 거죠. 그런데 현상태는 어떻게 됐습니까?”
“맞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보고드리러 온 건데. 10분 전쯤 체포했다고 합니다. 현상태 그놈도 참 희한한 놈입니다. 조사결과를 보면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성향을 지닌 놈인데, 어떻게 키우던 고양이에게는 그렇게 지극정성인 건지.”
일반적으로 소시오패스는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동 양식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반복적인 범법행위에 참여하거나 연루되곤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이 전혀 없으며, 사기를 일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사회적, 가정적으로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실, 정직,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 반사회적인 사람들 중 일부는 달변의 매력을 갖추어 다른 사람을 매혹시키고 착취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관심이 없지만,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가학적인 사람들도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마약 등 물질 남용과 연관성이 높다.
위와 같은 내용에 따르면 현상태 이사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였다. 그런데 최광우는 마동수의 부탁을 받아 사건을 조사하면서 재미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현상태 이사는 고양이를 매우 아꼈다. 그 모습이 소시오패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자세히 지켜보니 강박증에 가까운 집착이었다. 미용을 비롯해 고양이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는 최고급이었고, 먹이도 스위스에서 직수입된 오가닉(유기농) 사료만 사서 먹였다.
이중 최광우가 주목한 건 오가닉 사료였다.
현상태 이사의 집착증을 생각했을 때 도피를 할 때도 고양이는 반드시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직수입된 오가직 사료는 우리나라에서 딱 한 군데에서만 판매된다. 도피 생활을 하려면 충분한 사료가 필요할 터, 최광우는 현상태 이사가 반드시 해당 가게를 들릴 것으로 판단하고 형사들에게 매복을 지시했다.
그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고, 채만기 청장의 전화가 걸려오기 직전 체포에 성공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최광우와 노대경 팀장 그리고 체포 작전에 투입된 최광우의 수족 같은 수하 형사들이 전부였다.
“벌써 잡혔습니까? 그것참. 머리 좋은 놈이라고 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쉬웠네요.”
“머리 좋은 놈은 맞는데 이런 쪽으로 경험이 없어서 허술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죠. 노련함까지 갖췄다면 꽤 고생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놈은 어떻게 할까요?”
“천천히 오라고 하십시오. 지금 청에 들어가 봐야 좋은 소리 듣기 힘들 겁니다. 괜히 우리가 범인을 빼돌렸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세 시간 정도 후에 보자고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 작품 후기 ============================
이번에 경찰 계급 조사하다 알았는데..
광수대 대장은 경정이 아니라 총경이 맡는다고 하는군요. 전에도 조사했는데 왜 틀렸을까요? ㅠㅜ 늦었지만 수정합니다. ㅠ
살짝 미진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음편 부터는 동수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