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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17화 (417/424)

00417  에필로그 03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동지 그룹에 몰아치는 사정의 칼바람.

한동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대성 회장 테러 미수 사건. 권력에 눈이 멀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추해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피해자로 조용히 지내고 있던 고대성 회장이 마침내 사정의 칼을 들었다. 대상은 본인이 범인들을 피해 잠적한 동안 본색을 드러내고 활개를 쳤던 중역들. 그 첫 번째 희생자는 역시 주승대 이사였다.

이혼 경력만 없었다면 지금의 전무이사 자리는 그의 몫이 됐을 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능력과 고대성 회장에 대한 충성심 보여준 주승대 이사. 그러나 고대성 회장의 잠적을 계기로 그의 행동이 모두 가식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었다.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난 주승대 이사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사표와 함께 은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한 자숙도 복수의 칼날은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주승대 이사는 어제부로 그룹 자금 유용 및 횡령 관련 혐의를 인정받아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조해 고정호 사장과 손을 잡고 그룹 경영권을 노렸던 나머지 중역들도 각종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입건되거나 동지그룹을 떠나야만 했다.

그 인원만 해도 동지그룹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동지 소속 이사 이상 중역의 1/5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다. 그러나 사정의 칼바람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룹 전체로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고정호 사장과 고평호 상무를 지지하던 세력은 물론이고 그동안 그룹 내 은근한 위화감을 조성했던 불순 세력까지 모조리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3일 전 동지 메디슨의 사장으로 고평호 전 상무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계열사 분리를 통해 동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난번 동지 유업에 이어 두 번째 계열 분리이며, 이는 사실상 고현호 상무가 동지그룹 후계자로 확정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 민족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를 열었고 후대에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왕이지만 그가 그렇게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의 피의 숙청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 고대성 회장이 단행한 다소 과격한 인사 조처는 과거의 태종 이방원과 굉장히 닮았다. 과거의 역사처럼 진짜 피가 튀기는 살벌한 숙청은 아니지만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손수 내쳐버리는 단호함은 그에 못지않을 만큼 냉정한 모습이다.

태종 이방원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고대성 회장의 행보. 셋째 아들인 세종대왕과 고현호 상무. 묘한 역사적 닮은꼴에 동지그룹의 미래가 기대된다.」

***

“회장님. 정말 은퇴하실 겁니까?”

동지그룹에 몰아쳤던 대대적인 인사 개편도 이제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약속했던 것처럼 고대성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 사실이 안타까웠던 고진성 부회장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한 번 내뱉었던 말인데 당연히 지켜야지.”

“하지만 아직 정정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더 회장직을 유지한다고 해서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닙니다.”

“됐어.”

“회장님. 아니 형님. 저도 형님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으니 지쳤을 겁니다. 그런 와중에 한적한 시골에서 유유자적 하루하루를 보내니 쉬는 게 좋았겠죠. 그렇지만 그런 여유가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한 달? 반년? 길게 잡아도 일 년입니다. 1년이면 지겨워지실 걸요? 떠들썩하게 은퇴를 했는데 그때가서 지겨워졌다고 다시 복귀하실 겁니까?”

“안 지겨워질 거야. 시골에서만 살 게 아니고 세계 여행을 떠날 생각이니까.”

고진성 부회장이 열심히 설득을 해보지만 고대성 회장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솔직히 다시 복귀해서 일해보니 후회되지 않습니까? 일이 재미있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다 싶은 생각 안 드세요?”

“전혀. 귀찮기만 해.”

“형님!”

“쯧쯧. 진성아.”

“네. 형님.”

“난 지쳤어. 이번에 복귀해서 일을 해보니 내가 지쳤다는 걸 확실히 느끼겠어.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하루하루 일하는 게 귀찮기만 해.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당장 떠나고 싶은데, 현호가 눈에 밟혀서 그러지 못하는 것일 뿐이야.”

“지쳐요? 제가 아는 그 고대성 회장 맞습니까? 형님이 그럴 리가요? 지금도 여전히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칩니다. 그런데 지치다니요? 그건 형님의 착각일 겁니다.”

“허허허. 내가 나를 모를까? 난 오히려 네가 의외야. 내가 지친 만큼 너도 지친 줄 알았거든. 복귀해서 다시 일하니까 좋아?”

“네. 여기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도 여전히 재미있고요.”

“이런 일 중독자 같으니라고.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지.”

“전 평소에 즐기고 살았습니다.”

“그건 그렇군. 제수씨가 있으니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고. 딸들이 애교도 잘 부리니 그것도 즐거울 테고. 그렇게 평소에 쉬엄쉬엄 즐기고 살아서 지금도 여전히 안 지치나 보구나.”

“아직 안 늦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즐기며 살면 됩니다. 괜찮은 여자라도 소개시켜 드릴까요?”

“여자를 소개해줘? 하하하하하.”

황당한 제안이었는지 고대성 회장의 어이없는 웃음소리가 회장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왜요? 그동안 형님은 너무 금욕적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즐기고 사셔야죠. 이젠 형수님도 충분히 형님을 이해할 겁니다. 그렇게 여자와 살 부대끼며 살다 보면 다시 의욕이 생기실 겁니다. 설마 여자가 싫으신 건 아니죠?”

“나도 남잔데 여자가 왜 싫어. 네 말처럼 나도 이제 괜찮은 여자 있으면 만나볼까 생각 중이긴 하다.”

“그래요? 그럼 제가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그동안 고대성 회장이 너무 금욕적으로 사는 것 같아 항상 불만이었다. 가끔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고 은근히 권유도 해봤지만 지금껏 돌아온 건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반응에 고진성 부회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됐다. 뭘 그렇게 서둘러. 다 정리하고. 여자는 그때 가서 만나도 늦지 않아.”

“굳이 그때까지 뭐하러 미뤄요. 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고 당장 한 번 만나보시죠.”

“그룹 회장이 되면 말이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해. 내가 지금 만약 여자를 만난다면 후계 구도에 대해 또다시 이상한 소리가 나올 거야. 애써 거슬리는 잡초들을 제거하고 있는데 또 다른 잡초가 나도록 둘 순 없지. 그런 건 현호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그때 해도 늦지 않아. 십 년을 없이 살았는데, 그 몇 달을 못 기다릴까?”

“휴···. 정말 은퇴하실 생각인 거로군요.”

“그럼 농담인 줄 알았어? 내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래?”

“잘 알지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요. 그럼··· 현호에게 언제쯤 자리를 넘기실 생각이십니까?”

고진성 부회장은 흔들림 없는 고대성 회장의 모습에 더 이상의 설득을 포기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 현 당면과제인 후계 이양에 대해 물었다.

“정리 작업이 끝났으니 곧 물려줄 생각이야. 직책은 전무겠지만 후계자답게 권한을 강화해줘야겠지.”

고대성 회장이 은퇴하면 그 자리는 고진성 부회장이 대신하기로 했다. 고현호 상무는 전무로 승진해 동지그룹 차기 총수로서 역량을 쌓을 예정이다.

아직 마흔도 안 된 고현호 상무가 그룹 회장직에 오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고, 권력 이양 단계에서 오는 과도기의 혼란을 고진성 회장이 안정적으로 막아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회장직을 완전히 넘겨줄 계획을 세웠다.

“제가 회장직에 오르면 10년 동안 눌러 앉아 있을 생각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그럼 당연히 괜찮지. 하고 싶은 만큼 해. 네가 오래 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현호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난 믿어. 그런데 한 가지는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게 뭡니까?”

“3년 정도 지나면 회장직 그만하고 싶다고 네가 날 찾아올 거야.”

“그럴 일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회장직 10년 동안 해먹을 생각이라고. 그런데 왜 제가 3년 만에 그 자리를 내놓겠습니까? 그럴 일 없습니다.”

“회장직은 외롭거든. 옆에서 조언하는 자리와는 달라. 아무리 옆에서 뭐라고 하든 결정은 자기 혼자 하는 거야.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롯하게 자기 혼자의 몫이고. 나는 내 옆에 네가 있어서 외로움이 덜했지만 네 옆엔 그런 사람이 없잖아. 힘들 거야.”

“시작부터 겁을 주시는 겁니까?”

“동지그룹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지.”

고대성 회장은 언제나 뒤에서 묵묵하게 자신을 돕던 동생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번에 회장직을 넘기는 것도 어려운 일을 떠넘기고 혼자만 도망가는 것 같아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고진성 부회장이 아니면 회사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지그룹을 너무 잘 경영해서 놀라실 겁니다.”

“하하하. 그래. 꼭 그래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호가 전무에 오르면 현호 측근들에게도 힘을 실어줘야겠군요. 생각은 해두셨습니까?”

“고민 중이야.”

“뭐··· 혹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응. 있어. 마동수 팀장.”

“네? 마동수 그 녀석은 갑자기 왜요? 혹시 형님에게 밉보이기라도 했습니까?”

“너무 특이한 녀석이라 아직 파악이 안 돼.”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됩니까?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과해서 걱정인 거지. 김학수 부장은 똑똑하지만 그래도 이인자나 삼인자로 있어도 만족할 녀석이야. 그런데 마동수 팀장은 아직 잘 모르겠어. 주인을 잡아먹을 녀석인 아닌지 아직 확신이 안 서. 내가 그동안 많는 유형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이렇게 묘한 녀석은 처음이야.”

“그럼 내치실 수도 있는 겁니까? 현호가 반발할 텐데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시험을 하나 해볼 생각이야. 그럼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알 수 있겠지.”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고대성 회장의 얼굴에는 평소 보기 힘든 개구진 미소가 지어졌다.

“시험이요? 대체 어떤 시험인데 그렇게 짓궂은 미소를 짓는 겁니까?”

“내가 지금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어?”

“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악동 같은 미소입니다. 재미있는 일이면 저도 같이 알면 안 됩니까?”

“하하하. 두고 보면 알아.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 작품 후기 ============================

큰 반전 있고 그런 거 아닙니다. 혹시나 이상하게 이야길 진행할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안심하세요.

전 응팔 작가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런 사악한 작가가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안 되고요. ㅎㅎ

어쨌든 저는 어남류를 응원합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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