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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18화 (418/424)

00418  에필로그 03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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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및 보직 인사발령 공고

임홍빈 : 전무에서 부회장으로 보직 변경

고현호 : 상무에서 전무로 보직 변경

··· 중략 ···

김학수 : 부장에서 이사로 보직 변경

조기훈 : 차장에서 부장으로 보직 변경

마동수 : 팀장에서 지사장(동지 에너지 마다가스카르 지점)으로 보직 변경

상기와 같이 보직 발령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1년 12월 동지그룹 회장 고진성.」

***

“역시 예상대로네. 이제 진짜 고현호 상무의 시대가 온 건가?”

본사 로비에 승진 공고가 나자 직원들은 모두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상무가 아니라 전무님이야. 앞으로 헷갈리지 마.”

“당연히 안 헷갈리지. 그런데 이제 회장님 이름이 고대성이 아니라 고진성이네. 뭔가 어색하다.”

“명목상으론 고진성 회장님이 그룹 총수지만 사실상 주인은 고현호 전무가 되는 거지.”

“그런데 저거 좀 이상한데? 저게 뭐야?”

“뭔데 그래?”

“밑에 마동수 팀장 봐봐. 지사장이라잖아. 다른 사람들은 다들 승진했는데 마동수 팀장은 왜 저 모양이야?”

“그게 왜? 동지 에너지 지사장이면 이사급이잖아. 본사로 치면 부장급인데, 팀장이 부장으로 바로 승진했으면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런데 뭐가 문제야?”

“보통은 그렇지. 그런데 나라 이름을 잘 봐. 마다가스카르라잖아.”

“응? 마다가··· 뭐?”

“마다가스카르. 몰라?”

“갈라파고스랑 비슷한 곳인가?”

“이런 무식한. 아프리카에 있는 섬이야.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왜?”

“휴양지로 유명한 곳인데 동지 에너지가 웬 말이냐고. 차라리 동지호텔·리조트라면 그러려니 할 텐데, 난데없이 동지 에너지라고 하니까 꼭 유배보내는 기분이잖아.”

마른 남자의 설명에 통통한 남자는 그제야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러네. 마동수 팀장이면 고현호 전무의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게 뭔 일이래?”

“그건 나도 모르지. 그런데 왠지 토사구팽 느낌이 나지 않아?”

“토사구팽이라···. 오호. 왠지 그럴싸한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정상적으로 승진했는데 혼자만 뭔가 좀 이상하네. 그런데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동안 마동수 팀장이 좀 많이 설치고 다니긴 했잖아. 고작 서른 초반밖에 안 된 녀석이 고현호 전무 최측근이라고 목에 힘 줄 때마다 얼마나 보기 싫었는데. 이거 쌤통인걸. 흐흐흐.”

“그건 그래. 그리고 능력이 너무 뛰어나기도 하잖아. 그동안 큼직한 프로젝트 성공시킨 게 몇 개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동수 팀장이 성공한 프로젝트 덕분에 동지그룹 시가총액이 1.5배 정도 올랐대. 덕분에 내년 재계 순위는 5위에서 4위로 한 단계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

“우와. 그게 정말이야? 그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을 지금 내치는 거야? 후계자가 확정되어서 더는 필요 없다는 이유로? 그건 좀 실망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현호 전무잖아. 항상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고 다니던 사람인데 좀 실망이다.”

“그건 그런데. 밑에 사람이 너무 뛰어나면 윗사람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 그리고 결정은 고현호 전무가 한 게 아니라 고대성 회장님이 했을 거야. 은퇴하는 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마지막 싹까지 제거한 거지. 정말 회장님은 무서운 분이 틀림없어.”

“회장님이 그랬다고 하니까 갑자기 이해가 된다. 원래 예전부터 냉정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하셨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마동수 팀장이 좀 불쌍하긴 하다. 그동안 정말 엄청난 성과를 보였는데 돌아오는 보답이 뒤통수라니 말이야.”

***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전무님이 팀장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번 승진 발표가 나고 가장 크게 화를 낸 사람은 최종현이었다.

최종현이 이석근 팀장의 술주정 이야기를 내게 말해준 덕분에 고대성 회장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고현호 상무도 손쉽게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고, 곧바로 우리 팀에 발령이 났다.

그 밖에도 상당한 거액의 금전적 보상도 받았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건 물어보지 않았다. 얼핏 건물 한 채, 아파트 한 채, 중형차 한 대를 받았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사람 목숨값에 경중을 따지는 건 우습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지그룹 회장과 부회장의 목숨을 구한 행동이었으니 절대 과한 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제1 공로자인 자신은 그렇게 엄청난 혜택을 받았는데 제2 공로자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오히려 토사구팽되는 분위기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뭘 그렇게 화를 내? 한 단계도 아니고 두 단계 승진이야. 감사해 할 일이지.”

“다른 곳도 아니고 마다가스카르니까 그러잖아요. 완전히 외지잖아요. 형은 화도 안 나요?”

“글쎄다. 그냥 덤덤해. 오히려 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게 더 재미있다.”

“이제 겨우 형이랑 같이 일한다고 좋아했는데 또 떨어지게 생겼잖아요.”

“우리가 부부냐? 일을 하다 보면 떨어질 수도 있고 같이 일할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아쉬워해.”

“아···. 진짜 형이 언제부터 그렇게 보살이었다고 천하태평인 겁니까? 안 어울려요.”

“그럼 어쩔까? 이미 은퇴를 선언하신 회장님의 결정이실 텐데, 찾아가서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며 따질까?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처럼 총질하면서?”

“꼭 그러라는 게 아니라. 아무튼, 전무님에게라도 따져야 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전무님이 형 덕을 얼마나 봤는데, 인간적으로 이대로 방관하면 안 되죠.”

“전무님도 황당하실 거야. 그러니까 괜히 전무님 원망은 하지 마.”

“아우. 답답하네, 답답해.”

“저··· 기 팀장님.”

승진 발표로 인해 팀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내가 굉장히 속상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항상 밝고 명랑했던 추미래조차 주춤주춤 눈치를 보며 제대로 말을 걸지 못했다.

“응? 왜? 무슨 일이야?”

“전무님이 잠깐 올라오라고 하셔서요.”

“그래? 알았어. 종현아. 나 올라갔다 올게. 이야긴 나중에 하자.”

“팀장님. 가셔서 전무님께 제대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아셨죠?”

***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어서 와.”

“전무님으로 승진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됐어. 지금 그걸 축하할 때가 아니잖아.”

고현호 전무 역시 나를 보는 눈빛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염려스러운 반응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혼자서 상상한 적이 있었다. 일인자보다 뛰어난 이인자는 또는 일인자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이인자는 대부분 제거되었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 데 가장 현격한 공을 세운 한신,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킬 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삼번(오삼계, 상가희, 경중명),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정도전. 이렇게 역사적으로 봐도 사냥이 끝난 후 사냥개를 삶아 먹는 토사구팽의 예는 꽤 빈번하게 일어났다.

내가 고현호 상무보다 뛰어나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운이 좋아 실패 없이 계속 성공만 했고, 그 모습이 고대성 회장 눈엔 아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그런지 나 자신도 놀랄만큼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긴. 당연히 마 팀장 일이지. 그 일 말고 내가 부를 일이 뭐가 있다고. 마 팀장. 많이 실망했지? 정말 미안해. 아버지 스타일이 원래 좀 그래. 사람을 잘 믿지 않고 혼자 일을 처리할 때가 많으셔. 나 자신보다 마 팀장 널 더 믿는다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히더라.”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입니다. 회장님 입장에선 제가 전무님을 위협할 수도 있겠다고 보신 거죠.”

“그게 말이 돼? 너처럼 귀찮은 일 싫어하는 놈이 잘도 회장 자리를 노리겠다. 그리고 이건 정치가 아니잖아. 정치야 쿠데타로 완전히 판을 뒤집을 수 있지만, 회사는 소유권이라는 게 있어. 쿠데타를 일으킨다고 해도 주식회사 동지 주식이 하나도 없는 네가 무슨 능력으로 회장을 한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의심을 하시는지···.”

“저보다는 시연이가 문제일 겁니다.”

“뭐? 뜬금없이 제수씨는 왜?”

“시연이 아버지가 윤승태 사장님 아닙니까? 저랑 윤 사장님이랑 작당하면 경영권에 충분히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보신 거겠죠.”

윤승태 사장님이 가진 정·재계의 인맥은 동지그룹도 쉽게 볼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게다가 동지그룹과 윤 스포츠센터는 이런저런 사업으로 상당한 관련을 맺고 있으니, 경영권을 넘보려면 못할 것도 없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회장님 눈에는 그런 일말의 가능성조차 거슬렸을 것이다.

“젠장. 정말 아버지 눈엔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 그런데 넌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왜 이렇게 남의 일처럼 무사태평해?”

“무사태평한 게 아니라,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무덤덤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억울함을 토로해봤자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요. 냉정하게 말해서 전무님이 회장님 고집을 꺾을 수 있어요?”

“흠···. 어떻게든 꺾어야지. 이제 은퇴한 양반이잖아.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아닙니다. 그냥 포기하세요. 인사 발령을 변경하는 것보다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는 게 더 쉬울 겁니다.”

“그럼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지 뭐. 솔직히 마 팀장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어. 그런데 그 영광을 같이 못 누릴 바에는 안 하는 게 나아.”

“헐. 동지 그룹이 무슨 구멍가게인 줄 아세요?”

“내가 왜 좋아하는 공부를 때려치우고 동지 그룹 회장이 되고 싶었는데?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야. 그런데 내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하는 후계자 자리 따위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런 자리라면 차라리 안 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말에 고현호 전무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지 아닌지 나도 헷갈렸다. 그렇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단단한 바위를 보는 것처럼 흔들림 없었다.

이곳에 오면서 고현호 전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것저것 예상을 해봤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1 ~ 2년 정도 기다리면 꼭 다시 부르겠다고 나보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때쯤이면 고대성 회장의 입김도 약해질 가능성이 높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고현호 상무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 너머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오히려 내가 말려야 할 판이었다. 어떻게 후계자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하게 둘 순 없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에필로그도 다음 편이면 끝입니다.

로맨스 소설처럼 동수와 시연이의 알콜달콩한 이야기를 집어 넣을까 고민을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요즘 제 마음이 얼어붙어서 오글거리는 이야기가 안 써지네요.

다음 편에서 완전히 완결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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