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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21화 (421/424)

00421  외전 01 – 결혼 대작전  =========================================================================

“마 이사 왔어?”

“네. 전무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혹시 내가 왜 불렀을 것 같아?”

“서··· 설마 사고라도 치신 겁니까?”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사고 친 거? 귀신같은 녀석.”

“헉! 정말이십니까?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신 겁니까? 수습 가능하긴 한 겁니까?”

“수습하려고 마 이사를 부른 거야.”

“뭔데요? 일단 말씀부터 해보세요. 그래야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설 것 아닙니까?”

“자! 이거 받아.”

가끔씩 고현호 전무가 치는 사고에 노이로제에 걸린 마동수 이사. 이번에도 여지없이 사고를 쳤다는 소리에 그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복잡한데 골치 아픈 일이 한 가지 더 생겼다고 하니 벌써 두통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마동수 이사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현호 전무는 뿌듯한 표정으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청첩장이지.”

“청첩장이요? 헐! 이게 왜 사고입니까? 좋은 일이지.”

“사고를 쳐서 결혼하는 거거든.”

서른아홉인 고현호 정무, 서른세 살인 강효령. 두 사람의 나이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는 게 나았다. 그러나 강효령의 아버지인 강현순이 보궐 선거에서 승리해 현재 서울 시장으로 재직 중인 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정치계의 떠오르는 다크호스의 딸과 한 단계 순위가 올라 재계 서열 4위를 기록한 동지그룹 차기 총수의 결혼. 자칫 정경유착으로 보일 수 있는, 정치적으로 보면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그래서 결혼이 계속 미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청첩장이라니, 눈치 빠른 마동수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고를 쳤다고요? 무슨··· 설마?”

“그래. 맞아.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우리 효령씨가 임신을 했어.”

“헉! 정말입니까?”

“아니 뻥이지. 그렇지만 결혼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

“미쳤군요. 언제 사실대로 고백하려고요?”

“그건 일단 결혼 먼저 하고 생각해봐야지.”

“결혼요?”

“그래 결혼. 왜? 너는 제수씨랑 결혼하기 싫어?”

“아니요. 그건 아닌데 요즘 들어 이상하게 결혼 이야기가 자주 나오네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나이를 생각해봐. 지금 마 이사 나이가 한창 결혼할 시기잖아.”

“그런 건가요?”

“그럼!”

“결혼 계획 잡으니까 좋으세요?”

“말이라고. 당연히 좋지. 너도 제수씨랑 결혼해아지 않아?”

“결혼이요···?. 흠···.”

***

마동수는 거의 넉 달 만에 백우찬을 만났다. 마동수가 바빴던 게 아니라 백우찬이 신혼을 핑계로 술 약속을 계속 미뤄온 게 문제였다.

“아 진짜. 우찬 형님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비싸게 굴기 있습니까?”

“너야말로 너무한 것 아니야? 아직 신혼인 사람을 왜 자꾸 못 불러내서 안달이야?”

“얼굴 까먹을까 봐 그러죠.”

“제발 얼굴 좀 까먹었으면 좋겠다.”

“하하하. 힘들 겁니다. 제가 워낙 인상적인 얼굴이잖아요.”

“나 참. 세상천지에 목숨 구해줬다고 이렇게 집요하게 구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거다.”

“하하하. 어쩌겠어요. 그냥 제 목숨을 구해준 형님 팔자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계세요.”

“끄응···. 그래. 내가 널 어떻게 이겨 먹겠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손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인데. 그지?”

“그럼요. 형님은 평생 제가 갚는 은혜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포기하시면 서로 좋아요.”

백우찬은 골치 아프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었다.

자신이 마동수를 구해준 대가는 이미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동수는 항상 평생 은혜를 갚겠다고 하니, 너무 과한 걸 받고 있는 건 아닌가 민망한 마음이 들 때가 가끔 있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오늘도 신혼의 단꿈을 포기하고 여길 나온 거 아니야.”

“그렇죠. 신혼집에 시연이를 침투시킨 덕분에 억지로 나오신 거지만 포기한 걸로 생각할 게요.”

“으···. 집요한 놈.”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안 본 사이 형님 얼굴이 활짝 폈어요. 결혼이 그렇게 좋으세요?”

“당연하지. 내가 오죽하면 너랑 만나는 걸 피했겠어? 너무너무 좋으니까 그렇지.”

백우찬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아까의 머쓱한 미소와 달리 꽃이 활짝 만개한 것처럼 누가 봐도 부러운 환하게 밝은 미소였다.

“평소에 데이트 하셨잖아요.”

“같이 사는 건 그거랑 당연히 다르지.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가는 거랑, 예쁜 와이프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비.교.불.가.라고.”

“그런데 먼저 결혼한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말라며 말리던데요?”

“그건 그 사람들이고 난 아니야. 그리고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넌 제수씨랑 결혼하기 싫어?”

“아니요. 하고 싶죠. 밤에 헤어지는 건 언제나 아쉬워요.”

“그런데 왜 결혼 안 해?”

“너무 이르잖아요.”

“이르다고? 네 나이가 서른셋인데 뭐가 일러?

“저 말고 시연이요. 시연이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셋인데 벌써 결혼하는 건 좀 그렇잖아요.”

“뭐가 달라지는 데?”

“네?”

“제수씨가 너랑 결혼해서 달라지는 게 유부녀라는 타이틀 말고 뭐가 있어? 결혼하면 사회활동 못 하게 집에 가둬둘 거야?”

“그건 아니죠. 전 결혼해서도 자기 일 하는 여자가 좋아요.”

“그럼 결혼 안 할 이유가 있어? 제수씨가 임자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알잖아. 그러니 유부녀가 됐다고 불이익을 받을 것도 아니고, 네가 결혼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면 굳이 미룰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설마 마음이 변한 건 아니지?”

“에이. 절대 아니죠. 전 시연이랑 떨어지기 싫어서 회사에 사표까지 던졌는걸요. 저도 시연이가 정말 좋아요.”

“그럼 이유가 없잖아. 이유가. 솔직히 오래 연애하는 게 절대 좋은 게 아니야.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오래 연애하는 사람들의 반수 이상은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로 결혼을 안 해. 그런데 네가 둘 중 하나에 해당해? 누구보다 제수씨를 사랑하고, 재벌가 자식을 제외하면 누구보다 성공한 네가? 솔직히 말해봐. 진짜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가 뭐야?”

“제가 결혼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세요?”

“그럼?”

“글쎄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결혼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 아무래도 그동안 동수 너는 결혼을 너무 남의 일로 생각하고 방관해온 것 같다. 그냥 언젠가 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만 했지 구체적인 계획은 한 번도 세운 적이 없다는 이야기잖아.”

“그러게요. 그동안은 결혼이 저랑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참 신기한 녀석이네. 약혼까지 한 녀석이 결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 좀 의아하다. 너 그러다 제수씨가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래?”

“누가요? 시연이가요? 하하하. 에이 설마요.”

“왜 설마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시연이잖아요. 시연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

“그래. 제수씨라서 더 위험하다고는 생각 안 했어? 일단 외모를 봐. 제수씨에게 이런 표현을 해서 미안하지만 이제 한창 물이 오르고 있잖아. 직장생활을 하면서 예전보다 더욱 세련되게 변한 것도 있고,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제수씨보다 예쁜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이 안 간다.”

“시연이가 좀 과하게 예쁘긴 하죠.”

여자 친구 예쁘다는 칭찬에 동수가 장난스럽게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안 불안하다고? 머리도 똑똑하고 게다가 집안까지 좋아. 혹시라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 중에 제수씨보다 예쁜 사람이 있을 수는 있어. 그렇지만 제수씨보다 나은 1등 신붓감은 없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말이야. 요즘 제수씨가 일하는 곳이 어디야?”

“방송국이죠.”

“거기 가면 우리 같은 평범한 남자들은 오징어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릴 대단한 미남들이 길가에 있는 돌멩이처럼 널려 있어. 아무리 제수씨가 널 좋아하는 마음이 확고하다고 해도, 그런 남자들이 계속 대시를 하면 흔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약혼자라는 녀석이 결혼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면 더더욱 말이야. 입장 바꿔 생각해봐. 만약 너는 결혼하고 싶은데 네 여자친구는 결혼에 관심이 없어. 그런데 어느 날 엄청나게 예쁜 연예인이 너에게 관심을 보여. 어떨 것 같아? 전혀 안 흔들릴 자신 있어? 혹하는 마음이라도 생기지 않을 자신 있어?”

“그건 저도 잘···. 그렇지만 시연이는 안 그럽니다.”

거만한 표정은 사라졌고, 마동수는 아까보다 표정이 점점 더 굳어갔다.

“넌 잘 모르겠다면서 제수씨는 안 그럴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 두 사람이 연애한 지 벌써 3년이야. 예전의 절절했던 마음이 지금도 그대로일 것 같아?”

“글쎄요···. 그런데 형님. 오늘 웬일로 이렇게 정곡을 계속 찌르세요?”

갑작스러운 마동수의 반격. 백우찬은 속으로 뭔가 찔리는 게 있었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도 결혼해봐. 그럼 보여.”

“정말 그런 겁니까?”

“그렇다니까. 궁금하면 결혼해봐.”

“흠···. 뭔가 좀 이상한데.”

“뭐··· 뭐가 이상해?”

“결혼이 너무 싫어서 저를 결혼이라는 구렁텅이 빠트리려는 느낌?”

“에라이. 이 자식아. 그럼 지금 네 말은 나랑 우리 연서랑 안 행복하다 이 말인 거야? 관둬라, 관둬. 너처럼 꼬인 자식은 차라리 결혼을 안 하는 게 낫다. 망할 녀석 같으니.”

“아니. 형님. 그냥 뭔가 저를 좀 몰아가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 거지 형님이랑 형수님이 안 행복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동수가 혹시라도 눈치챘을까 백우찬은 조금 과하게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됐거든. 결혼은 됐고 그냥 술이나 마시자. 내 말 믿고 결혼했다가 괜히 나중에 나만 원망하면 어떻게 해? 그냥 오늘 내 말은 잊어.”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형님 말씀처럼 결혼은 깊이 한 번 생각해볼 겁니다.”

“됐다니까. 관둬.”

“생각해볼 거라니까요.”

“넌 꼬여서 결혼하면 안 돼.”

“우와. 제가 얼마나 긍정적인 인간인지 형님이 몰라서 그래요.”

“웃기시네. 두 번만 긍정적이었다간 우리 부부 이혼했다고 몰아갈라.”

“아이고. 형님. 그건 그냥 실수입니다. 실수. 그러니 이해해주세요.”

***

“어떻게 됐어요?”

조연서는 백우찬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녀의 뒤에서는 윤시연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백우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진짜 눈치 빠른 자식.”

“뭐야? 들켰어요? 그러게 동수씨 눈치 빠르다고 조심하라고 그랬잖아요.”

“에이.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누구야?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은 백우찬이라고. 들킬 뻔한 거지 들키진 않았어. 그 녀석. 지금까지 결혼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오늘부터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대. 그러니까 제수씨 안심하세요.”

“감사해요. 우찬 오라버니. 곤란한 부탁이었을 텐데 이렇게 들어주시고요.”

“하하하. 아닙니다. 이게 다 동수를 위한 일 아닙니까? 녀석에게 그동안 받은 게 얼만데요.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서 제가 오히려 기쁩니다.”

“그래. 시연아. 부탁할 게 있으면 부담가지지 말고 뭐든 말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도울 게.”

“고마워요. 언니. 나중에 꼭 보답할게요.”

윤시연은 조연서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처음 고장희에게 조언을 들었을 때 윤시연은 뭔가 미진함을 느꼈다. 그녀가 아는 마동수라는 남자는 질투심 정도로 홧김에 결혼을 결심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을 꾸몄다.

그리고 윤시연이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동수와 절친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계획을 세워뒀다.

어쩌면 마동수는 처음 그녀와 과외를 시작했을 때 이미 윤시연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는지도 모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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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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