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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24화 (424/424)

00424  외전 01 – 결혼 대작전  =========================================================================

기자회견을 마친 우동빈은 얼굴을 잔뜩 굳힌 채 기획사 안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제 된 겁니까?”

방에는 마동수 이사와 동지그룹 법률팀장 그리고 이곳 기획사 사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선 두 사람은 평온한 표정인 반면 기획사 사장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잘했다. 동빈아. 고생했어.”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겁니까?”

우동빈은 묵묵히 앉아 있는 마동수 이사를 한 번 보며 불만 섞인 투정을 부렸다. 마치 ‘저런 자식에게 내가 밀리다니 이게 말이 돼?’라며 억울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기획사 사장이 금방 사색이 된 얼굴로 두 손을 내저었다.

“당연히 해야지. 너 이 자식. 그 이야긴 아까 충분히 했잖아.”

“억울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요.”

“그거야 나쁜 일이 아니지. 하지만 임자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문제가 있어.”

“그렇지만 유부녀는 아니잖아요.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임자가 있다.”

“너 이 자식. 계속 이럴 거야?”

“그쪽도 뭐라고 말씀 좀 해보시죠. 힘 있는 대기업 등에 업고 우리 같은 중소기업 갈구는 치사한 짓 말고 남자 대 남자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나 나눠봅시다.”

우동빈의 도발에 소파에 앉아 있던 마동수 이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185cm가 넘는 키 그리고 딱 벌어진 어깨에 남자다운 외모가 절로 위압감을 풍겼다. 꽃미남 스타일의 호리호리한 우동빈은 덩치에서부터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이내 반발심이 생겨 턱을 빳빳이 들고 마동수 이사라를 노려봤다.

“남자 대 남자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고 했습니까?”

“네.”

“싫습니다.”

“네?”

“우동빈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연이 말고는 다른 사람이 절 남자로 보든 여자로 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남자 대 남자? 이딴 걸 제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불법만 아니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누르는 게 저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대기업 이사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죠.”

“무슨 그런···.”

보통 남자들은 ‘남자’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마동수 이사는 우동빈이 그동안 상대해왔던 사람과 전혀 다른 부류였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세요. 물론 시연이가 결혼을 한 건 아니니 호감 가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건 죄가 아니죠. 그런데 상대가 불쾌하게 생각하는데도 자기 감정을 자꾸 강요하는 건 일종의 스토킹입니다.”

“제가 스토킹을 했단 말입니까?”

“우동빈씨. 당신 꽤 머리가 좋은 걸로 압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보세요. 시연에게 어떤 식으로 전화 통화를 했는지. 모든 게 그대로 전부 녹음되어 있습니다. 월드 스타가 싫다는 여자에게 지분거리는 목소리가 공개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녹음되어 있는데 왜 공개를 안 하는 겁니까? 그랬으면 제가 지금보다 훨씬 곤란해질 텐데.”

“결혼을 앞두고 될 수 있으면 마음을 넓게 쓰려고 다짐했기 때문이죠. 이번 일 굉장히 불쾌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 기획사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습니다. 우동빈씨 당신을 완전히 쓰레기로 만들어 매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능력도 그럴 돈도 있거든요. 못할 것 같습니까?”

마동수 이사는 무서운 협박을 하는 가운데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기획사 사장만 긴장된 얼굴로 손을 파르르 떨었다.

“진짜 할 능력이 되긴 됩니까?”

“동빈아. 그만 좀 해.”

기획사 사장이 말렸지만 우동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마동수 이사가 의도했다는 건 전혀 모른 채 실실 웃는 그의 얼굴을 어떻게든 찡그리게 만들고 싶었다.

“잠시만 사장님. 궁금하잖아요. 대기업 이사 정도 되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말이에요. 그럴 능력도 그럴 돈도 있다니까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궁금하다니까 알려드리죠. 일단 이곳 쿨아트 기획사 주인이 저로 바뀌었습니다.”

“뭐라고요? 사장님 이게 갑자기 뭔 소리예요? 기획사 주인이 바꾸다니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우동빈은 기획사 사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동빈의 시선을 외면했다.

윤시연이 기자와 인터뷰를 한 지 고작 반나절이 지났을 뿐이다. 그 짧은 시간에 마동수는 모든 변수를 틀어막아 놓고 우동빈을 독 안에 든 쥐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우동빈씨는 아직 이곳과 계약 기간이 4년 남았더군요. 그냥 노세요. 원한다면 4년간 모든 활동을 막아놔 드리겠습니다.”

“아니 이보세요. 그렇게 하면 계약 위반입니다.”

“궁금하면 소송을 걸어 보시던가요. 전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가 장담하는 데 우동빈씨는 지금부터 4년간 백수로 지내야 할 겁니다.”

“하아. 좋아요. 좋습니다. 그런데 정말 너무 하십니다. 전화로 조금 귀찮게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 인간적으로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당신 눈엔 내가 바보로 보이나 봅니다.”

“네?”

“지라시 일보에서 나간 기사. 우동빈씨가 은근히 의도했다는 걸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 아니 그게···.”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사실이 마동수 이사의 입에서 나오자 우동빈은 당황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처음엔 부정하려고 했지만 부리부리한 그의 눈에 주눅이 들어 말만 계속 더듬었다.

“걱정 마세요. 기사로 낼 생각은 없으니까. 단지 당신의 처지를 말해주는 겁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평소 제 스타일이면 절대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앞두고 내 손에 피를 뭍이기 싫어서 이렇게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물론 제 친절이 싫다면 저도 더는 아량을 베풀 생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네?”

“그냥 조용히 연예인으로 살든지 아니면 전국적으로 패가망신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뭡니까? 조용히 살겠습니까? 망신을 당하겠습니까?”

“조··· 조용히 살겠습니다.”

마동수 이사가 내뿜는 위압감에 우동빈은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온몸이 얼어붙었다. 감히 반론을 말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요. 잘 생각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마동수 이사는 우동빈의 어깨를 몇 차례 두드리고 그의 방을 빠져나왔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에 앉은 마동수 이사는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의 액정에는 ‘윤시연’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Rrrr

- 네. 동수씨.

“그래 시연아.”

- 집에 안 오고 전화를 한 거예요?

어쨌거나 윤시연은 아침에 기자들 앞에서 대담하게 프러포즈를 했다. 그리고 집에서 노심초사하며 마동수 이사를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전화만 걸려오자 목소리에 풀이 죽었다.

마동수 이사는 울상을 지을 윤시연의 얼굴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로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달려고 힘껏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전화를 먼저 걸었다.

“할말이 있어서.”

- 저기···. 설마 거절···

“그런 거 아니야. 지금 집이지?”

- 네.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고 동수씨만 기다렸어요.

“내 방 책상 제일 위 서랍을 열어봐.”

- 잠시만요···. 네. 열었어요.

“작은 상자가 있을 거야.”

- 수첩 옆에 있는 거 말하는 거예요?

“응. 바로 그거. 우선 그걸 꺼내.

- 이게 뭔데요?

“궁금하면 열어봐.”

- 그래도 돼요?

“응. 처음부터 네 것이었거든.”

- ······. 도··· 동수씨. 이거 뭐에요? 웬 반지에요?

상자를 확인하던 윤시연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결혼해줘.”

- 네? 다시 한 번 말해줄래요?

“나랑 결혼해줘. 윤시연. 사실 얼마 전에 네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산 반지야. 그런데 오늘 네가 먼저 프러포즈를 해서 완전 망했잖아. 인석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할 기회를 줬어야 할 것 아니야.”

- ··· 흑.

전화기에서 조용히 울음소리만 들렸다. 그렇지만 마동수 이사는 그 소리가 슬퍼서가 아니라 기뻐서 나는 울음소리라는 걸 알았다.

“직접 만나서 끼워주고 싶었는데, 내가 집에 도착하는 동안 네가 피가 마를 것 같아서 먼저 반지부터 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 직접 만난 건 아니니, 반지를 건네는 진짜 프러포즈는 내가 먼저 한 거다. 알지?

- ··· 흑흑. 네. 알아요.

“멋진 곳에서 기억에 남는 멋진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전화로 해서 미안해.”

- 아니에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자 이제. 내가 프러포즈를 했으니 이제 남은 건 네 대답이네. 내가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 네 손바닥에 반지가 있으면 승낙한 거고 아니면 거절한 거라고 생각할 게. 그리고 반지가 있으면 내가 네 네 번째 손가락에 직접 끼워 줄게. 알았지?”

- 알았어요. 그런데 언제 와요? 보고 싶어요.

“지금 가고 있어.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 그때까지 울음 뚝 그치고 나 기다려.”

- 히잉. 안 울었는데.

“그래. 그럼 내가 도착할 때까지 안 울은 얼굴로 있어. 알았지?”

- 흑흑. 네. 알았어요. 말짱한 얼굴로 동수씨 기다릴게요. 빨리 와요.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 반지 꼭 쥐고 있어야 해.”

전화를 끊은 마동수 이사는 오른발에 힘을 줘 가속 패달을 힘껏 밟았다. 그러자 그의 자동차는 순식간에 가속이 붙으며 빠른 속도로 도로를 내질렀다.

저물어가는 석양에 강남대로가 붉게 물들었다.

원래라면 당연히 막혀야 할 시간. 그런데 동수가 가는 길은 마치 두 사람의 미래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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