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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화&프롤로그 (1/227)

1화 프롤로그

마차가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마차에 먼저 타고 있던 여섯 명의 일행은 따라 타게 된 한 남자를 힐끗힐끗 살피고 있었다.

“아까 건너려 했던 다리는 언데드 놈들 천지입니다. 그대로 걸어갔다간 꼼짝없이 죽었을 텐데 우리를 만나다니 운이 좋으신데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가볍게 웃으며 감사를 표하자, 그를 둘러싼 여섯 명의 일행은 하하 웃으며 서로 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눈치가 빠른 이라면 대가 없는 선의와 음흉한 눈빛을 알아차리고 그들의 정체를 가늠했겠지만, 허술한 상대는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 하하, 이 자식 아무 의심도 안 하고 있어.

- 진짜 멍청한 놈이네. 손이 근질근질한걸?

- 조금만 참으라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남자들이 서로 귓속말 시스템을 사용해 수군거렸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이곳 주위에서 유저들을 상대로 한 전문 PK(Player Killing) 도적단이었다.

플레이어를 죽여서 아이템과 골드를 빼앗고, 무엇보다 뒤통수를 쳤다는 데에서 강한 희열을 느끼는 악질들.

어설픈 초짜들과는 다르게 자주 위치를 옮겨 다니는 그들의 특성상 피해자들이 속출한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뭐, 상관없겠지. 이번 건은 무조건 대박이다.’

붉은 십자가로 장식된 검은 갑옷과 백색의 검.

손에 끼고 있는 반지와 다른 자잘한 장비들까지, 하나같이 가격이 나가 보이는 것들이었고,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도 꽤 있어 보이는 녀석이었다.

아마 금수저쯤 되어 현금을 덕지덕지 발랐거나, 인맥으로 구한 장비들을 주제에 맞지 않게 두르고 있는 게 뻔했다.

레벨은 조금 되어 보이지만, 그래 봤자 이 지역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이상 유의미한 차이는 아닐 것이었고, 혹여 꽤 차이가 난다 해도 상대는 고작 한 명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완전히 방심을 한 상태에서 여섯이나 되는 인원이 동시에 기습한다면, 그가 랭커라 할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오늘같이 돈 많은 호구를 제대로 하나 잡아 마차에 태운 이상, 축하 파티는 이미 확정이었다.

“흠흠…….”

맨 앞자리에 앉은 길드원은 이죽이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참아가며 목적지를 향해 마차를 몰았다.

신호만 한다면 언제든 목을 따고 장비와 돈을 챙길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이런 작업은 신중할수록 좋다.

혹시나 지나가는 다른 유저에게 목격되지 않도록, 숲속 외진 곳까지 마차가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덜컹!

앞자리에 앉은 길드원이 말도 없이 마차를 급하게 세웠다.

그러자 마차 위에 타고 있던 이들이 흔들리는 차체에서 다급히 몸의 균형을 잡았다.

“이런… 죄송합니다. 바퀴가 돌부리에 걸린 것 같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뻔뻔하게 사과해 오는 길드원의 말에도 검은 갑옷의 남자는 친절히 대답했다.

하지만 길드원의 말은 사과가 아니라 미리 정해 둔 신호에 불과했다.

스릉!

멍청한 남자를 둘러싸고 있던 길드원들이 동시에 무기를 뽑았다.

검과 도끼, 창, 메이스와 단도까지.

남자의 숨통을 끊기 위해 온갖 무기가 휘둘러졌다.

채앵!

“어……?”

하지만 무기는 모두 남자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고작 한 자루의 검으로 여섯 갈래의 무기를 모두 흘려냈다.

그리고는 쥐고 있던 장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길드원들은 서둘러 마차 밖으로 뛰쳐나가며 거리를 벌렸지만, 가장 먼저 노려진 암살자 둘은 목이 베인 채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잠시 어안이 벙벙하던 길드원 하나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개자식이! 이미 알고 있었던 거냐!”

“분명 습격당한 건 나인데, 왜 너희가 화를 내는지 궁금한걸.”

마차에서 풀쩍 뛰어내려 온 남자가 웃기다는 듯 말했다.

안 그래도 농락을 당한 것이 분했던 길드원은 자신을 비웃기까지 하자, 이성을 잃고서 메이스를 치켜들어 그에게 달려들었다.

“파티원도 없는 기사 클래스 따위가! 허세 떨지 마라!”

콰득!

쥐고 있던 메이스가 뒤로 날아가 바닥에 꽂혔고, 달려들던 길드원은 순식간에 바닥에 고꾸라졌다.

피가 바닥에 적셨고, 그는 단숨에 게임 오버가 되어 로그아웃당했다.

그러자 다른 길드원들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 죽은 남자는 높은 체력과 방어력으로 항상 전위를 맡아 책임지던 메인 탱커였다.

하지만 두터운 판금 갑옷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고, 일격에 모든 체력이 끝장났다.

어지간히 높은 수준의 고레벨 암살자가 뒤라도 잡지 않는 이상, 결코 불가능할 일.

“먼저 하나 잘못 짚었다. 나는 기사가 아니야.”

갑옷을 입은 남자가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장검에서 하얀 불꽃이 화르륵 솟아올랐다.

성스러운 불꽃이 담긴 칼날은 길드원에게로 향했다.

“여신의 검이자 불꽃. 그리고 그분의 뜻을 이행하는 자.”

이제 고작 세 명 남은 길드원들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뭔가 된통 잘못 걸린 듯한 느낌이 그들을 덮쳐 왔다.

“마… 맞아. 저 자식 ‘루’의 이단심판관이야!”

“뭐? 설마 그 미친 광신도 말하는 거냐?”

남자가 추종하는 신의 이름이 나오자 길드원들의 안색이 일순간에 창백해졌다.

그리고 등을 돌려 이곳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순식간에 쇄도해 온 검은 갑옷의 남자, 이단심판관의 검에 길드원들의 다리가 하나둘 관통됐다.

“마… 말도 안 돼! 이렇게 강할 리가……. 끄아악!”

남자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바닥에 쓰러진 길드원들을 한 번 더 베어, 죽기 바로 직전까지만 데미지를 입혔다.

반쯤 시체가 되어 버린 동료들 사이에서 마지막 남은 길드원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 이런 미친 자식이…….”

“미쳤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감흥도 없는데.”

피 묻은 검을 든 남자가 흑색 갑옷을 절그럭거리며 다가왔다.

“자… 잠깐! 나도 이 PK범들한테 어쩔 수 없이 끌려온 거야. 다른 사람들을 꼬드길 미끼 역을 맡으라면서! 정말 억울하다고! 너… 너희는 정의를 따른다며, 그러면 날 구해 줘야 하지 않겠어? 정말 고마우니 사례는 할게, 응?”

기겁을 한 길드원이 급하게 말을 지어내며 둘러댔다.

48시간 접속 제한, 아이템 드랍, 레벨 다운.

사망하는 순간 가해지는 막대한 데스 페널티 탓에 결코 죽어서는 안 된다.

“흠, 미끼라… 그럴 수도 있겠어. 막피꾼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긴 하지.”

급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던져 본 말이었지만, 놀랍게도 남자는 멈춰 선 채 수긍했다.

미친 여신으로 소문이 자자한 루의 추종자답게 완전히 정신 나간 녀석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일말의 대화는 통하는 듯싶었다.

“그런데 말이야.”

“응……?”

“그런 경우보다는 같은 일당이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확률이 더 높잖아?”

“정말이라니까! 믿어 달라고! 무고한 사람까지 죽여 버릴 셈이야?”

“자, 물론 그 점은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신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니.”

갑자기 돌변한 남자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스킬을 발동시켰고, 밝은 빛과 함께 왼손에 두꺼운 법전이 하나 생겨났다.

촤르르륵!

손을 대지도 않았음에도 닫혀 있던 책의 페이지가 마구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넘어가던 책장이 우뚝 멈춰 서자, 남자는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더니 책을 탁 덮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란 십자가가 바닥에서 불쑥 나타났고, 남자는 꼼짝 못 하는 세 명의 도적을 생겨난 화형대에 묶어 고정시킨 뒤, 그들의 앞에 섰다.

“신자 살해 기도죄……. 율법에 따르면 교수형. 하나 일반 신도가 아닌 신의 대리인, 사도를 대상으로 한 살해 미수라면 형벌은 달라지지. 너희 전원에게 ‘화형’을 선고한다.”

화륵!

이단심판관의 검에 타올랐던 하얀 불꽃이 거세게 일렁였다.

“무… 무슨 개소리야! 나는 결백하다고! 이거 풀어, 이 개자식아!”

“죄가 없다면 증명해 보면 된다. 여신께서는 죄인과 백성을 구별할 줄 아시니, 너희를 불사르면 모든 게 명확해질 테지. 만약 네가 억울한 피해자라면 그분께서 구해 주실 테니까.”

“그따위 미친 소리를! 이거 놔!! 이런 젠장!!”

기겁한 길드원이 거세게 몸부림쳤다.

하지만 단단히 묶인 밧줄과 화형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난 이번에도 죽으면 정말 끝이라고!”

“오직 성화만이 결정할 일이지. 나도 네가 살아남기를 바라.”

길드원이 악을 쓰든 말든, 남자의 검이 화형대 아래의 건초 더미에 닿았고, 하얀 불꽃이 그리로 옮겨갔다.

순식간에 커진 불꽃은 십자가에 매달린 길드원들에게로 쇄도했다.

“아… 안 돼!”

화르르륵!

불꽃이 십자가에 묶인 도적들을 삼켰다.

[극심한 화상에 노출되었습니다!]

[남은 체력 1%, 죽음이 당신에게 손짓합니다.]

“끄아아아악!”

길드원이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실제로 느껴지는 고통이 없다고 해도 후끈한 열기만큼은 현실과 다를 게 없었고, 십자가에 묶인 채 맹렬한 불꽃이 자신의 온몸을 삼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얀 불꽃이 형체도 남기지 않고 시체를 불태워 갈 때, 불을 놓은 장본인은 그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더럽혀진 여섯의 영혼을 여신의 곁으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들을 인도하여 주시고 죄에 걸맞은 형벌을 내리소서. 정의가 땅에 떨어진 작금의 상황 속에서 오직 여신의 말씀만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니. 당신의 사도(使徒)로서 사도(邪道)를 벌하는 사도(死徒)의 길을 걸어, 이 세상 모든 이단과 불신자들을 멸하고 당신의 곁으로 가겠나이다.”

눈을 감고 읊조리던 남자가 번쩍 눈을 떴고, 그의 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145]

[신앙심 스탯 +6]

[광기 스탯 +6]

[‘빛의 심판관, 루’가 당신의 집행에 만족감을 표합니다.]

[여신의 총애 +0.96% (현재 200%)]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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