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루의 신도
푸욱!
뿔토끼의 목덜미에 에일의 검이 틀어박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칭호 ‘어려운 길을 택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장착 시, 모든 기본 스탯 +5.]
“딱 스무 마리. 정확하네.”
‘어려운 길을 택한 자’라는 칭호는 레벨 5가 되기 전에 솔로 플레이로 뿔토끼 20마리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칭호로 듀벨에서 시작한 초보자들 중, 위험한 사냥터를 선택해 난적을 쓰러뜨린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생산직이 아니고서야 초반에 쓸 만한 칭호를 얻을 방법은 많지 않았는데, 힘과 민첩, 체력과 마력 네 가지 기본 스탯을 모두 골고루 올려 주는 이번 칭호는 꽤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에일이 사냥터 선정에 다소 욕심을 내보았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마침 레벨도 올랐겠다, 그는 상태창을 열어 포인트를 투자했다.
<유저 정보>
이름: 에일
칭호: 어려운 길을 택한 자
세력: 빛의 교단
레벨: 3
직업: 이단심판관
주요 능력치
힘: 25(+5) 민첩: 22(+5) 체력: 23(+5) 마력: 20(+5) 신앙심: 0.2 광기: 0
패시브
N/A
액티브
N/A
‘어려운 길을 택한 자’ 칭호 효과 - 모든 기본 스탯 +5
레벨이 두 번이 오르며 총 10개의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졌고, 에일은 힘, 민첩, 체력에 적당히 나눠 분배했다.
마법사들의 스탯인 마력은 마법 공격력과 더불어 최대 마나양까지 늘려 주긴 했지만, 검을 쓰는 에일은 단순히 마나양만 보고 투자하기엔 낭비였다.
아직은 스탯도 낮고, 활성화된 스킬 하나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이런 건 또 하나하나 채워 가는 맛이 있었다.
워로드 스킬은 전투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컸는데, 자동으로 습득되는 되는 것이 아닌 따로 스킬북을 구해 습득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 탓에 같은 직업의 유저라도 스킬과 무기에 따라 실제 플레이 방식은 완전히 달라지곤 했다.
‘그나저나 초반이기는 해도 고작 스무 마리로 레벨을 두 개나 올리다니, 역시 쏠쏠한데.’
난이도가 어려운 만큼, 위험을 감수한 만큼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
그것이 워로드의 방식이었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플레이 방식에 따라 육성 속도와 캐릭터의 스펙은 완전히 천차만별로 갈라진다.
워로드 공식 홈페이지 랭킹에 이름을 올린 천 명의 랭커는 200레벨을 넘어가고 있는 중인 데 반해, 일반 유저들 사이에선 100레벨만 넘더라도 실력자라며 대우를 해 줄 정도였으니 똑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실력에 따른 격차가 큰 편이었다.
‘내가 딱 좋아하는 방식이지.’
콧노래를 흥얼거린 에일은 추욱 늘어져 있는 뿔토끼에게 다가갔다.
시체를 뒤적거리며 녀석이 떨어트린 아이템을 루팅했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변이된 뿔(일반)]
[14크론]
‘이번에도 별건 없네.’
이번 사냥터에서는 그다지 운이 따라 주는 편이 아니었다.
스무 마리를 잡았는데도 수준 낮은 장비는커녕 값이 조금 나가는 재료템도 없었고, 평범한 잡템이 전부였다.
하지만 떨어트린 돈과 아이템을 루팅했음에도 뿔토끼의 시체는 아직 남아 있었다.
여기서 몬스터의 시체를 해체함으로써 한 번 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보통의 유저들은 굳이 몬스터의 시체를 파헤치려 하지는 않았다.
일일이 채취하기 귀찮거나, 시간이 아깝다거나, 징그럽다는 이유로 생산직이 아닌 이상 해체 작업은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까지나 돈과 쓸 만한 아이템이 뜨는 주요 루트는 처음의 기본 루팅이었으니까.
하지만 에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 지급되는 해체용 단도를 꺼내 들어 시체를 갈랐다.
가죽을 가르고 살점을 파내 뼈를 떼어 냈다.
시간과 수고를 잡아먹기는 했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력이 담긴 붉은 눈동자(희귀)]
[질 낮은 뼛조각(최하급)]
[질 낮은 토끼 고기(최하급)]
“가끔 이렇게 쓸 만한 것도 나온단 말이지.”
에일이 피식 웃으며 아이템을 챙겼다.
쉽게 볼 수 없는 희귀 등급의 아이템이 나타나 줬다.
원래 이 레벨대에서는 접하기 힘든 수준의 아이템이었고, 여태 사냥한 걸 넘어설 정도로 굉장히 큰 수입이었다.
거기다 방금 그가 얻은 ‘마력이 담긴 붉은 눈동자’ 아이템은 일정 시간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향상시켜 주는 고급 도핑 포션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보상이 좋은 퀘스트가 요구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마침 에일은 붉은 눈동자를 요구하는 퀘스트가 도시 내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사냥만 끝나면 퀘스트를 거저 클리어하기 위해 NPC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꾸르륵!
마침 포만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고, 에일은 안전한 구석 자리로 가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는 사냥을 통해 얻었던 뿔토끼의 고기 세 개를 구웠다.
기본으로 30개씩 지급된 빵과 물이 있긴 했지만, 미리미리 자급자족할 수 있는 버릇을 들여 두는 게 좋았다.
나무 꼬챙이에 꽂힌 고깃덩이들이 거의 다 익자, 두 눈을 감은 에일은 양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그에게 기도는 굉장히 어색한 일이었지만, 시간까지 체크해 가며 틈틈이 계속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물론 아무 이유도 없이 하는 행동들은 아니었다.
[꾸준한 기도로 신앙심이 깊어집니다!]
[신앙심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0.3)]
워로드의 모든 직업은 4개의 기본 스탯을 제하고도 각자의 전용 스탯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다섯 번째 스탯이라고도 불리는 전용 스탯은 해당 직업 스킬의 전반적인 효율을 늘려 주는 역할을 했는데, 그중 ‘루’를 따르는 신도들의 전용 직업인 이단심판관은 그들만의 전용 스탯으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플레이어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신앙심’은 굳이 기도뿐 아니더라도 스탯을 올리는 방법이 여럿이었는데, 보통 퀘스트나 교단에 대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교단에 들어와서 이러고 있을 생각은 없었지만… 거기서 날 빼내 준 게 정말 그 여신이라면 고마운 건 사실이니까…….’
현실의 진짜 신들을 대하듯 진심으로 기도하긴 무리겠지만, 감사를 담은 기도 정도야 얼마든지 바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에일의 능력치 중 6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광기 스탯인데, 이 스탯은 도저히 무슨 효과를 주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이런 이름의 스탯이 있었다는 건 에일조차 난생 처음 들은 데다가, 레벨 업으로 얻은 포인트를 투자할 수도 없었고, 사냥이나 기도 같은 행위를 통해서도 도통 오르지 않았다.
스탯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살펴보려 눌러 봐도 비활성화된 스탯이라는 문구만 계속해서 나타났다.
지금은 광기 스탯에 대해 당장 알아내는 건 일단 포기한 상태였고, 기도가 끝난 에일은 익은 고기를 집어 들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항상 어떤 맛일지 궁금했는데 이런 거였군.’
처음으로 먹어 본 워로드의 음식. 몬스터의 고기는 생각 외로 나쁘지 않았다.
요리와 관련된 스킬이 있는 게 아니니만큼 정말 맛있다, 까진 아니어도 나름대로 음미하며 먹을 만했다.
‘다음 사냥터는 랑브로이 숲… 아니, 금지된 폐허가 나을까.’
에일은 입을 우물거리면서도 다음 루트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했다.
학생이었을 적 폐인 짓을 하던 때와 비교해 지금은 생계 문제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만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아무리 취미라도 그의 성격상 이왕 즐길 거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아무래도 ‘이단’이 있을 만한 폐허가 낫겠지…….’
“크아악!”
마지막 한 점을 베어 물려는 찰나, 반대편에서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인 에일은 고기를 입에 쑤셔 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향하자 씩씩거리는 뿔토끼 한 마리와 그 밑에 깔린 남자의 시체가 보였다.
이미 목숨이 끊겨 강제 로그아웃 조치를 당한 유저의 모습이었고, 에일은 검을 뽑아 들며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전투로 인해 성이 나 있는 뿔토끼는 그를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지만, 타고난 게임 센스를 가지고 있는 에일은 이미 놈의 패턴에 익숙해진 상태였고, 별문제 없이 뿔토끼를 제압할 수 있었다.
푸욱!
“키이익!”
뿔토끼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추욱 늘어지자, 에일은 먼저 죽어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꾼들이 다 챙길 테니까…….’
한번 죽은 이상 떨어트린 돈과 아이템의 회수는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에일은 남자의 시체를 뒤적거렸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바렌 장검(상급)]
[최하급 체력 포션 x 6]
[1실링 54크론]
“으음, 괜찮은데?”
에일이 감탄하며 아이템들을 살펴봤다.
무기의 이름을 보아하니 듀벨 동쪽의 풀토끼에게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고, 남자는 아마 그쪽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다가 과감하게 뿔토끼를 잡아 보러 온 모양이다.
가장 쉬운 놈을 상대하면서 자신감도 붙었을 테고 레벨도 조금은 올랐겠다, ‘어려운 길을 택한 자’ 칭호를 노리고 온 것일 터였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죽어 버렸고, 황금고블린이 되어 에일에게 아이템을 건네주러 온 꼴이 되었다.
장비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하나 있었으면 했던 체력 회복 포션도 여섯 개나 떨어뜨려 줬고, 에일은 짭짤한 수입에 만족하며 인벤토리에서 새로 얻은 무기를 꺼내들어 보았다.
[바렌 장검]
- 등급: 상급
- 종류: 장검
- 제한: 레벨 2 이상
- 물리 공격력 3
- 힘 +2
예상했던 대로 무기는 당장 얻을 수 있는 검 중에서는 굉장히 좋은 축에 속했다.
워로드에서 보통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 등급의 장비 아이템들은 기본 공격력 혹은 방어력만 옵션이 붙어 있는데 반해, 높은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스탯이나 부가 효과가 붙기 시작했다.
상급이라면 일반 아이템의 바로 위 단계였는데, 지금 레벨대에 힘 스탯이 두 개나 붙어 있는 걸 보면 꽤나 스탯이 잘빠진 무기였다.
‘그런데 쓰던 거랑 생긴 건 많이 다르네.’
초심자에게 기본으로 지급되는 검은 휘두르기 쉽게 딱 표준에 알맞은 모양이었다면, 이번에 새로 얻은 무기는 장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만큼 칼날의 길이가 보다 길었다.
이런 종류의 무기는 보통 우월한 리치를 통해 우위를 가지는 대신 다루기가 꽤나 까다로운 경우가 많았다.
“한번… 써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