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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0화 (10/227)

10화 신성모독자 (2)

“여긴가…….”

목적지에 도착한 에일이 중얼거렸다.

듀벨의 서쪽 방향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사냥터 ‘금지된 폐허’는 이름 그대로 황량한 폐허였다.

과거 꽤 많은 주민이 살았을 것처럼 보이는 규모의 마을은 성한 곳 없이 여기저기 파괴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지저분하고 어두침침한 배경이었다.

보통 저레벨 필드 사냥터에는 어딜 가든 사람이 꽤나 붐비기 마련이었지만, 가상현실 게임의 특성상 이렇게 무섭거나 우울한 분위기의 사냥터는 비교적 인기가 없었다. 게다가 거기서 등장하는 몬스터가 끔찍한 외양의 언데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으어어…….”

겉으로는 무너진 마을로 보이는 ‘금지된 폐허’는 사실상 징그러운 좀비들로 가득 찬 공동묘지나 다름없었고, 안 그래도 워로드에 익숙해지기 전인 대부분의 초보자에게는 철저한 기피 사냥터였다.

에일이 지형을 미리 파악해 두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녔음에도 네다섯 명을 본 게 전부일 정도였다.

하지만 남들에게 기피 대상이라는 건, 그만큼 자리가 널널하다는 소리였고, 문제와 부딪힐 일도 없이 마음껏 사냥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좀비가 징그럽게 생기긴 했지만, 평소 무섭다고 소문난 공포영화를 봐도 헛웃음만 나오던 에일이었기에, 그들을 보고서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놀랍도록 잘 구현해 낸 시체가 걸어 다니나 보다, 싶을 뿐이었다.

‘대강 구조는 다 파악했고… 슬슬 준비해 볼까.’

적당한 위치를 봐 둔 에일은 몬스터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하며, 사냥터 곳곳에 구덩이를 파더니 그 안에 아이템들을 하나씩 묻어 넣었다.

좀비 몬스터의 인식 범위에 대해서는 미리 조사를 하고 온 뒤라 들키지 않으며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다만 그가 하고 있는 짓은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인 데다가, 애초에 이곳은 5레벨의 유저가 올 만한 곳이 아니었다.

‘금지된 폐허’는 15레벨대의 좀비 몬스터가 굉장히 많이 나타나는 사냥터였고, 그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어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있지 않으면 쉽게 찾지 않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워로드의 시스템상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보다 레벨이 크게 낮은 유저에게는 전투 중에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위축’ 디버프 효과가 적용되는 탓에, 고작 5레벨이 이곳에서 자리 잡고 사냥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기에 이 사냥터가 악명 높은 이유는 험상궂게 생긴 좀비들이 기본적으로 상대의 속도를 큰 폭으로 낮추는 ‘공포’ 디버프를 안겨 주기 때문이었고, 디버프 내성을 올릴 방법이 없는 저레벨엔 그대로 당하면서 놈들을 상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몬스터와의 레벨 차이가 극심해 디버프 ‘위축’ 상태에 빠집니다!]

- 강력한 적에게 압도되어 전체적인 능력치가 저하됩니다.

[다수의 혐오스러운 몬스터로 인해 디버프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 몸이 굳어 속도가 크게 저하됩니다.

이상한 행동을 멈추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선 에일이 좀비들의 시선과 마주치자, 그의 눈앞에 상태창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상태창이 그 위를 덮으며 나타났다.

[스킬, ‘광적인 순교자’의 효과로 모든 심리적 상태 이상 효과가 무효화됩니다!]

[디버프 ‘위축’이 해제되었습니다!]

[디버프 ‘공포’가 해제되었습니다!]

에일은 더 이상 좀비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폐허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녀석들과 싸우지도 않고 도망만 다니며 폐허 안에 득실거리는 몬스터들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마치 좀비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듯이 엄청난 수의 좀비가 뭉쳐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고, 언덕 위에서 사냥 중에 우연히 에일이 있는 방향을 보게 된 유저는 기겁하며 흠칫 물러섰다.

“미… 미친! 저거 트롤러 아냐?”

고의적으로 몬스터를 몰아 다른 유저들이 휩쓸리게 하거나 같이 산화하는 것.

변태적이게도 그런 행위에 희열을 느끼는 이들도 간혹 출현했고, 막피꾼 못지않게 필드에서 주의해야 할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곧 남자는 그런 경우가 전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콰아아앙!

맹렬히 추격 중인 좀비가 밟은 땅바닥이 불룩 부풀어 오르더니,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강력한 위력에 범위 내에 있던 좀비들이 쓸려 나갔고, 산산조각 찢긴 시체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번에 수십 마리의 좀비가 죽었고, 에일의 레벨이 올라갔다.

지뢰라도 터진 듯 난데없이 일어난 강력한 폭발.

바로 지난 퀘스트로 얻었던 마력 폭발 수정의 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종류의 소모성 공격 아이템들은 비용과 효과 모두 굉장히 안 좋은 효율을 가지고 있어 사냥에 사용하는 유저는 없었다.

20레벨대의 소모성 아이템, 그것도 그 수준의 플레이어 지갑 사정을 생각해 보면 굉장히 비싼 수준의 아이템을 사용해야 동 레벨은커녕, 10레벨짜리 몬스터를 겨우 한 방에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이런 폐급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에일이 어제 클리어한 ‘마력이 담긴 붉은 눈동자’를 요구하는 퀘스트는 평균 클리어 레벨이 28이나 되었고, 특정 몬스터들을 잡아야만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요구하는 퀘스트인지라 보상도 강한 편이었다.

즉, 그가 얻은 12개의 붉은 수정들은 전부 30레벨대를 넘어선 소모성 폭발 아이템이었고, 15레벨의 좀비들은 가볍게 폭사시킬 수 있었다.

물론 반복 퀘스트의 특성상 보상 경험치는 심히 작은 편이었지만, 당시 4레벨에 막 들어섰던 에일의 레벨을 올리기엔 충분했다.

[칭호 ‘폭발물 전문가’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일타오피’를 획득하였습니다!]

[다중 킬 보너스 경험치 +25%]

단 한 방에 스물이 넘는 몬스터를 잡아낸지라 여러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하나하나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어차피 ‘어려운 길을 택한 자’ 칭호엔 못 미치는 잡다한 칭호들이었고, 아직도 몰이하던 몬스터가 많이 남아 있어 계속해서 도망쳐야 했다.

“우워어어!”

지능이 굉장히 떨어지는 좀비들은 동료가 터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쫓아왔다.

너덜너덜한 시체 주제에 의외로 빠른 속도를 지닌 녀석들은 많은 유저의 골치를 썩였지만, 속도를 늦추는 ‘공포’ 디버프를 완전히 무시한 에일은 레벨이 떨어짐에도 아슬아슬하게 붙잡히지 않고 사이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타악! 콰아앙!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은 에일이 건너편에 안착하자마자 뒤편에서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났고, 좀비들이 갈려 나갔다.

주르륵 차오르는 노란색 경험치 바를 본 에일은 씩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쿠웅!

잔잔하던 폐허엔 폭발음이 수차례 울려 퍼졌다.

* * *

폐허 속 반파된 건물의 옥상.

불타고 있는 모닥불의 앞에 에일이 편하게 앉아 있었다.

아래쪽엔 좀비들이 득실득실 깔려 있었지만, 그가 자리 잡은 곳은 확실하게 어그로 범위 밖이었다.

“아이템 회수를 제대로 못 한 건 아깝지만… 충분히 이득 봤으니까.”

난간에 등을 기댄 에일이 쩝쩝거리며 중얼거렸다.

소모성 아이템을 이용해 몬스터를 대량으로 몰아잡는 방식을 선택한 대신 아이템을 꼼꼼히 루팅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저번 사냥터에서 미리 모아 둔 토끼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언데드인 좀비에게서는 얻을 수 있는 식재료가 전무했다.

썩은 고기를 얻으려면 얻을 수 있었지만, 포만감이 얼마 차지도 않는 데다가 식중독에 걸려 사냥에 지대한 지장을 받게 될 뿐이었다.

현재 에일의 레벨은 9.

원래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4레벨이나 올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방금 에일이 한 것처럼 레벨이 낮은 극초반엔 이런저런 요행을 곁들여,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존재했다.

꼬챙이에 꽂혀 있던 고기를 모두 해치우자 에일은 수통에 담긴 차가운 물을 들이켰고, 한쪽으로는 눈을 돌려 인벤토리에 남은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다 합쳐 12개가 있던 폭발 수정 중에서 사냥으로 8개를 사용했고, 그중 마력 폭발 수정은 모두 써 버렸다.

이제 4개의 신성 폭발 수정만이 그의 인벤토리에 남은 것이었는데, 남은 건 그의 다음 계획을 위해 최대한 아껴 둬야 했다.

에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난간을 넘어 좀비가 있는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우어어어!”

건물 아래를 어슬렁거리던 좀비는 에일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괴이할 정도로 쩍 벌어진 입안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그를 노렸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번번이 에일에게 닿지 못한 채 빗나갔고, 오히려 놈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푸욱!

에일의 장검이 좀비의 목을 꿰뚫었고, 이미 체력이 깎여 있던 좀비는 치명적인 일격에 그대로 쓰러졌다.

9레벨의 유저와 15레벨 몬스터의 대결이었지만, 레벨에 따른 위압 효과는 에일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고, 남은 능력치 차이는 그의 실력으로 모두 가볍게 메꿀 수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10을 돌파하였습니다! 기초 직업 스킬이 한 가지 활성화됩니다. 습득할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증오의 칼날’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이단을 상대로 한 모든 공격의 데미지가 25% 증가합니다.

5레벨을 넘어 10레벨이 되자 다시 새로운 기초 스킬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그는 곧바로 스킬을 선택했다.

보통 가장 먼저 성능이 뛰어난 ‘성화’를 선택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오히려 에일의 선택에서는 가장 뒤로 밀리며 순서가 뒤바뀐 상황.

하지만 그는 고민하는 모습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었다.

[10레벨이 되어 스킬 습득 한도가 늘어났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0/1)]

그 옆에는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도 떠 있었다.

레벨이 오르자 직업별 기초 스킬뿐 아니라 새로운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한도도 함께 늘어났다.

10레벨 단위로 보유할 수 있는 스킬의 한도가 하나씩 늘어나는 만큼, 지금이 한도가 늘어난 첫 번째 시점이었다.

다만 아직은 얻어 놓은 스킬북이 없으니 당장 스킬을 채워 넣을 수는 없었다.

보통 스킬북은 사냥을 통해 얻거나 퀘스트 보상 혹은 여러 경로를 통해 구매할 수 있었는데,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경우 소속 교단의 공헌도를 통해서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매장을 통하든 직접 만나서 거래하든, 유저 간의 거래만큼은 확실하게 불가능했다.

스킬은 어떤 경로를 통하든 본인이 직접 얻는 수밖에 없었고, NPC들이 비싼 돈을 받고 파는 스킬북들은 최대가 희귀 등급이었기 때문에, 일정 등급 이상의 스킬을 얻으려면 단순 현질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워로드에서 특히 더 강조되는 ‘캐릭터 육성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분명 이쪽 방향이었지…….’

에일은 미리 체크해 뒀던 주변 지리를 떠올리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첫 번째 스킬을 구하러 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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