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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40화 (40/227)

40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3)

털썩!

불길에 휩싸였던 벨루그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엘리트 몬스터였지만, 그래 봤자 아직 눈높이가 낮은 저레벨 대의 몬스터.

최악의 상성과 적절한 대처법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나쁘지 않네.”

에일이 벨루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녀석은 체력이 거의 끝자락까지 떨어져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할 뿐, 죽은 것은 아니었다.

흐물거리는 시퍼런 녀석이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은 묘하게 징그러웠지만, 에일에게는 그조차 유쾌하게 받아들여졌다.

이정도면 보스를 공략하기 전에 좋은 몸풀기 거리였다.

‘이제 보상을 챙겨볼까.’

에일은 양 손으로 쥐고 있던 장검을 바닥에 닿도록 세웠다.

그리고는 벨루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지 않은 이유, ‘형벌 선고’ 스킬을 발동했다.

하얀 빛과 함께 나타난 법전.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더니 어느 순간 멈춰섰고, 그와 동시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형벌 선고의 장]

[죄인에게 선고할 형벌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저번에 이은 두 번째 스킬 사용.

에일은 고민하지 않고 곧장 벨루그에게 내려질 형벌을 선택했다.

[화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쿠웅!

에일의 손짓이 향한 곳에 심판대가 세워졌다.

죄인의 처형을 위한 나무 기둥이 우뚝 솟았고, 그 아래엔 불길을 살릴 건초가 수북이 깔렸다.

퀸즈 블론드에서 스킬을 사용했던 때와 똑같은 모습.

준비는 모두 끝났으니, 남은 건 이제 집행뿐이었다.

터억!

에일은 꺼리는 기색 없이 벨루그에게 다가가 놈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녀석을 질질 끌어 심판대에 올려 세웠고, 밧줄을 이용해 기둥에 매달았다.

벨루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에일을 위협했지만, 꼼짝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래봤자 우스울 뿐이었다.

능숙하게 묶인 밧줄이 벨루그를 팽팽하게 잡아끌어 고정시켰다.

그러자 에일은 작업을 위해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던 장검을 집었고, 하얀 불꽃이 붙어 있는 검을 내려 화형대에 불꽃을 먹였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번진 거센 화염이 벨루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키이이이익!”

벨루그는 타들어가는 고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던 녀석은 얼마가지 못해 숨통이 끊어졌고, 축 늘어진 채 화형장의 땔감으로서 활활 타올랐다.

녀석은 죽었지만, 불꽃이 화형대와 시체를 모두 불태우고 꺼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형벌 선고’에 따라 지정된 형벌을 성공적으로 집행하였습니다. 스킬의 효과로 스탯 보너스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

[여신의 총애 +0.21% (현재 52.91%)]

[빛의 교단 공헌도 +55]

[신앙심 스탯 +2]

[광기 스탯 +2]

[화형 집행으로 인해 심판관의 공격력이 60분간 10% 증가합니다.]

[신앙심이 한층 더 깊어짐을 느낍니다.]

[신앙심 스탯 +0.1]

[광기 스탯 +0.1]

“음...?”

순간 멈칫한 에일이 떠오른 상태창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분명 교단의 적인 이단을 처치했고, 문제없이 집행까지 끝나 ‘형벌 선고’ 스킬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 나타나던 이단 처단의 문구를 제하고도, 또 다른 문구가 나타나 신앙심과 광기 스탯이 올랐음을 그에게 알렸다.

‘이건 뭐지...?’

두 항목 중 아래에 나타나 신앙심이 깊어졌음을 알리는 문구.

지금껏 나타난 적 없던 종류의 것이었다.

뜬금없이 따로 0.1씩 왜 오른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보너스 스탯을 줄 리는 만무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잠깐...”

에일의 머릿속에 불현 듯이 한 가지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주기적으로 기도를 하거나 교단에서 봉사를 하는 것처럼 신을 따르는 행동을 반복하면 조금씩이나마 플레이어의 전용 스탯이 올라간다.

물론 교단의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에 한정되어 있는 이야기긴 했지만, 그와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직업이더라도 각자 정해진 특정 행동을 통해 부여받은 전용 스탯을 올리는 건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갑자기 나타난 0.1이라는 수치는 그와 매우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

‘설마 이것도...?’

신도가 기도와 봉사를 하면서 신을 섬기는 것처럼, 이단들을 심판대에 올려서 화형시켜 버리는 것도 결국 똑같이 신을 섬기는 행위였다.

아니, 오히려 빛과 정의, 광기의 여신인 루에게는 그만한 섬김이 없을 것이다.

에일은 애써 흥분감을 감추며, 실행에 옮길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본격적으로 행동하기에 앞서, 우선 화형대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벨루그와 세 명의 유저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루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먼저 벨루그는 자신의 악명대로 정예 몬스터임에도 쓸 만한 아이템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녀석이 선물해준 유저들의 싸늘한 주검에서는 장비와 포션, 골드까지 상당히 짭짤하게 나와 줬다.

거기다 유저들이 잡아놓은 일반 사념체들의 시체까지 알뜰하게 긁어모았으니, 줄줄이 엮여 나오는 아이템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여태껏 힘들게 벨루그를 잡아봤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유저들로 가득 차있었지만, 에일만큼은 각종 추가 스탯에 공헌도, 아이템과 돈까지 한 몫 제대로 뽑게 된 셈이었다.

“키이익...”

뒤편에서 들려오는 어렴풋한 울음소리.

마침 딱 알맞은 타이밍에 또 다른 사념체가 등장했고, 에일은 검을 치켜들어 녀석들을 곧장 추적해 들어갔다.

수풀 너머엔 몬스터 네다섯 마리가 모여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에일은 곧장 뛰쳐나가 놈들을 모조리 베어 갈랐고, 백색 화염에 휩쓸린 사념체들은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휘리릭!

놈들의 앞에 선 에일의 손에서 갑자기 밧줄이 뻗어져 나왔다.

형벌 선고 스킬의 부가 효과를 사용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주변에 이단이 없어 발동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도구를 만들어내거나 처형대를 세우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언제든 발동이 가능하다면 이야기는 한결 더 쉬워졌다.

‘찝찝하기는 하다만... 이것저것 가릴 때는 아니니까.’

에일은 쓰러져있는 사념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중 한 녀석을 끌어와 목에 밧줄을 정성스레 묶었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놈들이 꿈틀거리고 있을 때 재빨리 처리할 생각이었다.

마침 주변엔 적당한 나무들이 널려있었고, 튼튼한 나뭇가지 위에 밧줄을 묶어 고정시켰다.

그렇게 주렁주렁 매달리게 된 사념체들의 시체.

몬스터에게 내려진 교수형이었다.

하지만 일반 몬스터는 이단으로 지정될 수도 없는데다가, 스킬로 형벌을 부여받고 심판을 받은 녀석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스탯 상승은 없었고 공헌도나 총애도가 오르지도 않았다.

분명 아무 쓸모도 없이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에일은 그러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쓰러져있는 사념체들을 모두 매달고 난 뒤에도, 에일은 계속해서 몬스터들의 사냥을 이어가며 녀석들의 목을 매달았다.

축 늘어진 괴물들의 시체가 빽빽한 나무 위 곳곳에 매달려있는 모습.

안 그래도 그림자에 가려져 빛이 적게 닿는 검은 숲의 모습과 합쳐져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인 에일이 놈들을 백하고도 수십 마리 넘게 매달았을 때 즈음,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시스템 창 하나가 드디어 그의 눈앞에 번쩍하고 떠올랐다.

[신앙심이 한층 더 깊어짐을 느낍니다.]

[신앙심 스탯 +0.1]

[광기 스탯 +0.1]

“오...!”

에일이 감탄하며 눈을 크게 떴다.

역시나 적대적인 몬스터에게 형벌을 집행하는 것으로도 신앙심과 광기 스탯을 조금씩 올릴 수 있는 게 맞았다.

이와 관련되어 따로 알려진 경우는 없었지만, 이것도 결국엔 신을 섬기는 행위로 카운트되어 진다는 것.

광기 스탯까지 함께 올라가는 걸 따진다면, 기도는 물론 사람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것보다도 시간 대비 효율이 괜찮았다.

‘빛의 교단 소속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일체 없었는데... 사도 직위와 뭔가 관련이 있다는 건가. 어쩌면 형벌 선고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조건일지도.’

에일이 가지고 있던 정보 속에서는 전혀 드러난 바가 없었던 발견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 사도의 직위를 가진 유저라고는 오직 에일 뿐이었고, 개발자가 아닌 이상 정확한 이유까지 확실하게 추측해낼 수는 없었다.

‘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런 식으로 스탯 상승이 된다는 거지.’

에일이 씩 웃으며 바닥에 꽂아뒀던 검을 들었다.

아직은 얌전히 보스 몬스터가 리젠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지금, 일반 사냥을 하면서 스탯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난 것은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많은 반복 작업이 필요했고, 실제 이단의 낙인이 찍힌 몬스터나 유저를 사냥하는 것만큼 효율이 좋은 편은 아니더라도, 6번째 스탯인 광기까지 함께 올려준다는 것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 일이었다.

콰악!

쓰러진 몬스터의 시체를 끌고 와 쇠창살에 가둬서 높은 곳에 전시해놓았고, 전투 중 목이 잘려 참수를 당한 녀석들은 잘린 목을 잘 보이는 곳에 한데 늘어놔 효시를 해놓았다.

그러다 간혹 체력이 다 떨어져 꼼짝도 못하는 녀석들은 독약을 입에 들이붓기도 했고, 무기 없이 주먹으로만 두들겨 패서 마지막 숨통을 끊거나,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화형대 위에 올려 성화에 활활 태우기도 했다.

혹시나 다양한 형벌을 집행하면 여신의 마음에 들어 더 빠르게 스탯이 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벌이고 있는 행동들이었다.

“젠장, 누가 보면 영락없는 미친놈이잖아…….”

자신의 모습에 순간 회의감을 느낀 에일이 고개를 저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유저에게 손가락질을 당할 것은 물론이고, 기분 나쁘다고 PK를 당해도 할 말 없었다.

자기가 봐도 이런 짓을 하는 미친 유저가 있었다면 질색을 하며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귀중한 보너스 스탯을 주는 행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거…….’

묘한 위기감을 느낀 에일이 자신이 벌여 놓은 광경을 잠시 바라봤다.

이러고 있는 것을 다른 유저들에게 들키거나, 이름이 까발려져 배척당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내면에서 느껴지는 감정 탓이었다.

‘이거… 하다 보니 은근히 재밌어.’

사악한 몬스터를 상대로 한 온갖 방식의 형벌 집행.

묘하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키이이익!”

몬스터들의 비명이 다시 한 번 숲속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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