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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64화 (64/227)

64화 운칠기삼 (4)

“끄어어…….”

“더는 못해!”

안전지대에 다다르자 파티원들이 탈진해 쓰러졌다.

연이은 사냥에 반쯤 영혼이 나간 모습들이었다.

평소엔 널널하게 플레이해 왔던 이들이 갑자기 에일의 사냥 사이클에 맞춰 따라오자니 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반면 평소 사냥에도 이 정도 강도는 유지해 오던 에일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번엔 그들에게 맞추느라 페이스를 늦춘 편이었다.

‘저건 괴물이야…….’

파티원들은 공포와 존경이 반쯤 섞인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에일은 그들이 그러던지 말던지 당장의 상황을 정리하느라 딴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분명 파티까지 맺어 가며 고레벨 몬스터들을 격하게 사냥한 덕에 레벨이 한 단계 올라 29가 되었고, 아이템과 돈도 짭짤하게 벌렸다.

하지만 에일은 정작 가장 큰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이거 문제가 심각한데.’

에일이 자신의 인벤토리를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바로 아직까지도 몬스터에게서 인장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에일의 손에만 들어오지 않은 게 아니라, 파티원들끼리 나눠서 분배할 인장조차도 없었다.

아무리 확률이 낮을 거란 소리는 들었어도 세 명이 하루가 넘게 사냥을 진행했는데 인장 조각 하나 없다는 건 문제가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다른 유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서도 결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에일네 파티는 다른 유저들에 비해 훨씬 사냥이 효율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어지간히 운이 안 따라준 것이라고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당연히 에일뿐 아니라 파티원들에게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그 고생을 하고도 인장 조각은 하나도 안 나왔네. 하… 이게 게임입니까?”

“역시 예상은 했지만 쉽지가 않네요.”

에일이 나지막이 말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파티원들에게는 단순한 바람이겠지만 에일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았다. 하지만 이 속도로는 어림도 없어.’

사망한 유저의 접속 페널티는 48시간.

이제 곧 아마란스에서 다시 추적해 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자신에게 한 번 당한 이상 여유 넘치는 태도로 올 리도 없었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온힘을 다해 달려들 터.

‘그 방법을 써야 하나……?’

에일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곧 생각을 떨쳐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고, 상황상 적절하지도 않았다.

그때 묘하게 가라앉은 에일의 낌새를 느낀 단람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입을 열었다.

“어차피 금방 될 거라고는 생각 안했잖습니까. 힘내서 셋 다 인장 완성해 봅시다!”

“맞아요. 다 같이 공주님 얼굴이나 한번 보죠!”

퓨리온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에일은 가늘어진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인장 모으려는 건 아니죠?”

“맞는데요. 현실엔 없을 절세미인이라던데 한번 직접 보고 싶어서요.”

“하하하!”

에일과 단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파티원들의 따라와 주는 태도가 처음과는 달라졌다.

처음엔 죽기 싫어 따르는 악덕 고용주와 노예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힘들긴 해도 본인들도 사냥을 원하고 있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운동을 할 때는 죽을 맛이지만, 끝마치고 나서는 묘한 쾌감과 뿌듯함을 함께 느끼는 것처럼.

이렇게 집중하며 몰입하는 사냥도 에일의 지도하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느낌을 받았다.

더군다나 워로드에서는 경험치와 능력치가 오르는 모습까지 직접 눈에 보이니 훨씬 성과가 와닿았다.

[‘빛의 심판자, 루’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반면 루는 저번 결정으로 삐지기라도 했는지 찬물을 뿌리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실제로 에일이 이번 파티 사냥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여신이 보내오던 메시지의 수는 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좀 더 실력 있는 파티원으로 바꿔달라는 권고까지 거절했으니, 후원하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여신을 다시 달래주려면 이곳 일을 마치고 저번의 몬스터 학대 행위를 이어가야 할 듯했다.

그렇게 체력을 위해 잠깐의 휴식을 즐긴 일행은 다시 사냥을 재개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에일이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까악까악!

느닷없이 하늘에서 까마귀가 날아와 에일의 팔 위에 덥석 내려앉았다.

파티원들은 깜짝 놀라 그와 까마귀를 쳐다봤지만, 정작 에일은 그리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까마귀의 발치엔 쪽지가 묶여 있었고, 에일은 그를 거둬 접힌 종이를 펼쳤다.

간결한 문장이 담긴 쪽지.

“단람 님, 퓨리온 님.”

“네?”

“저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앞장서 사냥을 이끌던 에일이 갑자기 떠나야 한다고 하니 파티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세한 건 그들에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혹시 저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다가오면 괜히 다투지 말고 그냥 협조해 주세요. 위험할 수 있으니까.”

“자… 잠시만요!”

파악!

에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자신과 관련된 일에 괜히 그들까지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다.

‘벌써 쫓아온 건가…….’

에일은 한 손으로 꾸깃꾸깃하게 구긴 편지를 옆으로 내던졌다.

자신을 찾는 추적자들이 칼페아 관문 근처에 찾아왔다는 연락.

NPC나 유저들을 매수해 정보망을 만들어 두는 건 아마란스의 특기였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쫓는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돈을 얼마나 써 대는 거야?’

아직 에일의 손에 당했던 추적자 조가 전멸한 지 48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을 시점.

그런데 벌써부터 추적이 바짝 따라 붙었다는 건, 그들이 아닌 또 다른 조가 자신을 쫓아왔다는 소리였다.

즉, 베켄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아마란스에게 추가로 의뢰한 것이다.

고작 망신 한 번 당한 것 가지고 아마란스의 2개 조를 동시에 움직일 정도면 아무래도 어지간히 돈이 넘쳐나는 금수저인 모양인데, 그 덕에 예정이 보다 일찍 틀어져 버렸다.

‘어쩔 수 없나… 계획을 바꾸는 수밖에.’

에일이 관문의 NPC 하나를 매수해 뒀듯,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도주 경로 정도는 미리 마련해 두었다.

숲 한쪽에 웬만한 유저라면 알 수가 없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에일이 이곳 사냥터를 선택한 이유 중엔 도주에 용이하다는 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어디 두고 보자고…….’

후욱!

숲속을 달리던 에일의 모습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 * *

[판매된 항목을 모두 수령했습니다!]

[4,503골드 90실링 14쿠퍼를 획득하였습니다!]

“어우…….”

떠오른 시스템 창에 에일은 잠시 동안 넋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온 거액의 골드.

경매장에 등록했던 아이템들의 판매 금액이었다.

총 4,500골드.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다.

시체굴에서 아마란스의 추적자들을 쓰러뜨려 얻은 금액이었고, 에일의 예상보다도 많은 수익을 남겨 주었다.

액수를 확인한 에일은 곧바로 경매장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도시 중심가에 있는 은행으로 향했다.

이 상태에서 습격 받아 죽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양의 골드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었고, 기껏 얻은 돈을 토해내기 싫다면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4,500골드가 입금되었습니다!]

에일은 이번에 얻은 골드의 대부분을 모조리 집어넣었다.

어차피 그사이 사냥으로 얻은 골드와 아마란스의 길드원들이 죽으면서 소지금의 일부를 떨어뜨렸었기 때문에, 에일의 수중엔 아직도 40골드가량이 남아 있었다.

단순히 보관용일 뿐이라 이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시스템적으로 완벽하게 보호받는 덕에 보관해 둔 돈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었다.

‘당분간 자금 걱정 같은 건 없겠어.’

에일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슬쩍슬쩍 올라갔다.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4,500골드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길거리를 걷는 데만 해도 든든한 느낌이었다.

‘물론 돈 좀 벌었다고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지만, 아마란스라 해도 바로 날 찾지는 못하겠지.’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거쳐 왔는지라, 관문까지 쫓아왔던 추적자들은 지금쯤 위치 추적에 곤란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에일은 지금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완전히 후드를 뒤집어 써 얼굴 가리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위치를 알아낼 수도 없었다.

현실에서 이랬다간 더욱 쫓기는 사람처럼 보일 뿐이겠지만, 워로드에서는 별 문제없이 사람들 틈에 섞여들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발각되기 전까지 시간을 번 것뿐이니 언제까지고 이렇게 숨어 다닐 순 없다.

‘왕가 쪽 루트가 완전히 막혀버린 탓에 계획을 바꿔야 해. 어쩔 수 없이 리스크는 감안해야 된다.’

왕가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아마란스의 추적을 중단시킨다는 원래의 플랜 A는 완전히 폐기했다.

단순히 칼페아 관문에서 추적자들이 따라붙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왕가의 인장 아이템 드랍이 멈췄다는 소식 탓이었다.

하필 에일이 인장을 목표로 사냥을 시작했을 때 즈음부터 아이템 드랍 확률이 급감하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예 드랍조차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에 돌기 시작했고, 그동안 인장을 획득했다는 이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아 소식은 확실한 것으로 판명났다.

하필 시기가 맞물려 뒤늦게 이야기 듣게 된 에일은 이렇게 운이 없어도 되는 건지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와 함께했던 파티원들이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고서 헛고생을 하고 있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에일은 당장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했고, 워로드 전역에서 활동하는 아마란스를 상대로는 어딘가로 도망치거나 숨는 것은 소용없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 필요한 시점.

시간을 확인한 뒤, 인적 드문 골목길에 들어선 에일은 후드를 바짝 당긴 채 걷기 시작했다.

좁지 않은 골목이었지만 평소 도심을 돌아다니는 경비병이 있기는커녕, 일반 유저들조차 거의 없어 그를 포함해 두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콰악!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가던 한 남자를 다짜고짜 벽에 밀쳤다.

“어떤 자식이야!”

느닷없이 벽에 부딪혀 넘어진 베켄이 노성을 토해냈다.

그러자 에일은 뒤집어썼던 후드를 들췄다.

훤히 드러난 얼굴.

당황한 베켄의 안색이 새하얗게 바뀌었고, 에일은 팔을 벽에 짚은 채 그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띠었다.

“여… 여긴 어떻게……!”

“당하기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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