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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90화 (90/227)

90화 결사단 (3)

콰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한참을 튕겨 나간 에일이 바닥을 굴렀다.

“으윽.”

엉망이 된 몰골의 에일이 앓는소리를 내며 팔을 짚었다.

자신의 체력을 확인하자 너덜너덜해진 몸에 걸맞게 생명력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못 할 아슬아슬한 수치.

겨우 목숨 건진 수준이었다.

다급해진 에일은 급히 회복 포션 하나를 꺼내 마셨다.

하지만 병 안에 든 내용물을 모두 삼켰음에도 효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회복 포션을 복용했다면 그 즉시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에일의 체력은 마시기 전의 상태 그대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동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디버프, ‘회복 불가’의 효과로 포션의 효과가 무력화되었습니다!]

‘젠장, 이것도 금지된 마법인가.’

회복 불가 오오라 탓에 포션을 비롯해 모든 치유 효과가 아무런 효력을 가질 수 없었다.

원소마법이나 흑마법 등을 비롯해 워로드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각종 마법과 달리, 금지된 마법의 경우 여러모로 상식 외라고는 미리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건 에일조차도 듣도 보도 못한 효과의 마법이었다.

‘죽지를 않는다니… 터무니없어.’

에일과 마찬가지로 폭발의 한가운데에 있던 뮤트가 상처를 재생시키며 몸을 일으켰다.

심장을 찔리고, 자신의 마법에 휘말렸음에도 그녀의 체력은 가득 차 있었다.

‘정말 무적일 리는 없고… 공략 방법이 뭐지?’

이런 상황이라면 보통 패턴이 몇 가지로 나뉜다.

그녀의 신체 어딘가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든가, 생명력이 모두 고갈될 때까지 일정 횟수 이상을 쓰러뜨려야 한다든가.

아니면 외부에서 생명력을 공급하는 무언가를 파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저것이겠군.’

감을 잡은 에일의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제단의 꼭대기에 놓인 검은 사령석.

죽은 시체들을 자유자재로 부활시킬 수 있는 물건인 만큼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한 상황, 목표가 정해진 이상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움직여 파괴해야 했다.

하지만 에일은 순간적으로 핑 도는 듯한 느낌에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빈사 상태가 되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체력 수치.

작은 공격이 스치기만 해도 죽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생명력이었다.

콰과과광!

뮤트의 마력창이 또다시 날아들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에일은 몸을 꾸역꾸역 움직여야 했다.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해진 듯한 마법은 바닥을 뒤집어 놓았고, 설상가상으로 뒤편에서 뛰어든 거대한 짐승이 그를 노렸다.

촤아악!

기다란 창이 짐승을 가르며 큰 상처를 남겼고, 이미 군데군데 상처가 있던 녀석은 힘을 잃고 허물어졌다.

어느새 아래에서 짐승들을 떨쳐내고 뒤따라온 로덴이었다.

“에일 님! 괜찮아요?”

엉망이 된 모습을 본 로덴이 물어왔다.

하지만 에일은 곧장 제단의 꼭대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사령석을 노려야 합니다!”

“사령석……? 아, 알겠습니다!”

위를 바라본 로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뮤트가 죽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대강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둘은 꼭대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놈들을 막아!”

뮤트의 외침과 함께 일제히 달려든 짐승들이 그들의 길을 막아섰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녀의 반응은 이번 공략에서 반드시 사령석을 노려야 한다는 신호밖에 되지 않았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거대한 곰을 상대로 역극을 사용한 에일은 단숨에 놈의 뒤로 돌파해 지나갔다.

이대로 가면 그들을 저지하지 못하고 사령석이 파괴될 상황.

하지만 뮤트는 피 묻은 입술을 햝으며 히죽 웃었다.

“드디어 왔군.”

미리 설치해 둔 탐지 마법을 통해, 무수한 기척을 느낀 그녀가 위를 올려다봤다.

이단심문소의 심판관들이 던전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사령석을 노리든 말든 상관없어. 시동은 이미 끝나 있었으니까!”

키이이잉!

제단 위에 모여 있던 거대한 마력이 거세게 울렁거렸다.

목표가 모두 범위 내에 들어왔음을 확인한 뮤트가 절멸 마법진을 발동시키려는 것이었다.

“다 같이 보내 주마.”

“이런, 어떻게 해야…….”

바쁘게 위를 향해 나아가던 에일이 멈춰 섰다.

아직 제단 꼭대기까지는 거리가 다소 남은 데다가, 사령석은 어디까지나 마력 공급책이었기 때문에 이미 별개의 마력이 마법진에 모여 발동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만약 그가 사령석을 당장 파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뮤트의 부활이 불가능해질 뿐, 가장 중요한 마법진은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마법진의 발동 자체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사령석을 박살 낸 뒤, 마법진의 시동자인 뮤트를 죽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 만큼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아마 금지된 마법의 특성으로 보아, 이 대형 마법진의 캐스팅도 비교적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에일 님, 먼저 가세요!”

로덴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저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죽이진 못해도 캐스팅 작업을 하지 못하게 붙잡고 늘어지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잠깐, 무턱대고 가기엔 너무 위험해요.”

상대는 무려 죽지도 않는 데다가 캐스팅 시간 없이 광역 폭딜을 쏟아내는 마법사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더 말할 것도 없는 끔찍한 존재.

특히나 바짝 붙어서 교전해야 하는 근접 클래스라면 견제만을 이어 가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조금 전 에일을 상대로 사용했던 광역 마법만 계속 터트려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어차피 못 막으면 전멸이에요. 뭐, 혹시 제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죠?”

로덴이 장난기 섞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다급한 상황에 몰린 에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솔직히 견적이 빡센 건 사실이니까, 가능한 빨리 처리해 주세요.”

“노력해 보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에일과 로덴은 둘로 나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단의 꼭대기로 향하는 에일은 사령석 쪽으로 짐승들을 뚫고 나갔고, 아래로 힘껏 뛰어내린 로덴은 뮤트가 있는 층 바닥에 착지했다.

쿠웅!

얼얼한 다리의 느낌을 참으며 로덴은 인벤토리에서 검 하나를 꺼내 던졌다.

쉬익 소리를 내며 날아간 검은 그녀의 팔에 정확히 꽂혔다.

그 충격에 뮤트는 휘청거렸고,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물론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그녀에게 체력이 줄어든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나 한 가지.

방금의 일격으로 대단위 절멸 마법의 캐스팅은 확실히 중단되었다.

“방해하지 마…….”

분노한 그녀의 시선이 로덴에게 꽂혔다.

척 보기에도 상당한 마력이 뮤트의 지팡이에 몰렸고, 로덴의 이마에선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그저 에일이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해결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아래에서 봤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제단은 결코 작지 않았다.

멸망의 마을에 있던 제단과 비교해, 버려진 사원 지역 밑에 자리 잡은 이 광신도 소굴의 규모만큼이나 커다랬다.

죽기 직전이나 다름없는 생명력만이 남은 에일은 거친 숨이 차올랐지만,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갔다.

지긋지긋하다 싶을 만큼 거대한 짐승들이 끊임없이 방해해 왔지만, 공격을 피하고 놈들을 떨어트리거나 직접 쓰러뜨리며 돌파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외줄타기이긴 했지만, 불평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쿠웅!

아래에서 또 요란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뮤트가 쏘아낸 마법이 폭발을 일으킨 소리였다.

아마 그녀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 있는 로덴은 지금쯤 죽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맹렬히 뒤를 따라오고 있는 다른 짐승들과의 거리를 꽤 벌려 둔 상태.

하지만 여지없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괴수가 또 나타났다.

“키에에에엑!”

이번엔 거대한 괴조가 계단 위로 올라타 그의 앞을 막았다.

마치 그보고 지나갈 수 없다고 말하듯이, 큼지막한 양 날개를 활짝 펼치며 포효하는 모습.

아까부터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 지르며 길을 방해하던 녀석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시끄러워! 날지도 못하는 자식이!”

콰아아아!

입을 쩍 벌린 괴조를 에일은 단숨에 베어 버렸다.

지금껏 아껴 뒀던 영웅급 스킬, 일섬을 사용하자 놈이 반으로 갈라지며 강력한 불길에 휩싸였다.

괴조는 균형을 잃고 휘청였고, 곧 하얀 화염에 휩싸인 채 계단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떨어진 녀석은 에일을 뒤쫓아오던 거대 짐승 서너 마리와 뒤엉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타악!

그사이, 드디어 꼭대기에 오른 에일이 사령석의 앞에 섰다.

음습한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돌 앞에서 에일은 쥐고 있던 무기를 대검으로 바꿔 들었다.

무기에 따로 특성이 붙어 있는 게 아닌 이상, 이런 류의 지형지물을 파괴하기엔 대검을 비롯한 대형 무기들의 효율이 훨씬 더 뛰어났다.

콰앙!

에일이 무게를 실어 강하게 내려치자 사령석에 쩌저적 금이 갔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커다란 사령석은 아직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에일은 계속해서 대검을 휘둘렀다.

힘들게 따돌려 놓은 몬스터들이 여기까지 따라와 방해하기 전에, 가급적 빠르게 파괴해야 했다.

대검이 강타할 때마다 사령석에 그어진 금들이 커져 갔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를 꽉 문 에일은 엉망이 된 검은 돌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콰드드득!

불꽃을 머금은 대검이 사령석의 허리 깊숙한 곳에 박혔다.

그러자 사방에 금이 가 있던 사령석이 환하게 빛나더니, 머금고 있던 검은 마력을 모조리 토해 내며 산산조각 났다.

원래의 형체를 잃고 완전히 부서져 버린 사령석.

그리고 그 모습을 애타게 지켜보고 있던 로덴이 아래에 있었다.

푸욱!

곧바로 행동을 취한 로덴의 창이 던져져 뮤트의 가슴팍에 꽂혔다.

날카로운 창은 반대편을 통해 등을 뚫고 나왔고,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끄으윽…….”

털썩!

창에 꿰인 뮤트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으로 가득 찬 그녀의 눈이 파르르 떨렸고, 얼마 가지 못해 빛을 잃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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