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93화 (93/227)

93화 인맥도 실력이다

탐욕의 악마 베나론이 에일에게 손을 대었던 그 일.

도중에 루가 개입해 녀석을 완전히 쫓아내기는 했지만, 단순히 엉망으로 쫓아낸 것 정도로는 그녀의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감히 악마가 자신의 사도를 유혹한 것에 대해서 엄중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교단까지 움직이게 만든 것이라면 많은 것이 설명되었다.

“물론 탐욕의 악마 베나론이 존재하는 이상, 결코 그를 따르는 악마 추종자 무리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 수십 년은 그들이 다시 원래의 세를 되찾지 못하도록 짓밟을 수는 있지요.”

집행관, 아일린이 걸어 나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는 던전 사이를 덤덤히 지나고 있었고, 에일과 로덴도 그녀를 잠자코 뒤따랐다.

특히 빛의 교단 소속이 아닌 로덴의 입장에서는 이 광기의 현장에서 무사히 살아나가기 위해선, 그들의 뒤를 졸졸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끄아아악!”

저 멀리서 비명을 지르는 죄인들의 절규 소리가 들려왔다.

언데드가 된 자들은 모조리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했지만, 언데드들을 피해 살아 있던 광신도나 특정 유저들은 이단심판관들의 손에 붙잡혀 집행을 당했다.

그들은 지나던 복도 양옆으로 매달려 있는 이단들은 사지에 말뚝이 박힌 채 벽에 달려 있어 마치 박제된 곤충을 연상시켰다.

박제된 곤충이 깔끔한 모습이라면, 저자들은 사방에 검붉은 피를 흩뿌린 채 죽어가고 있다는 게 그 차이였지만.

“으욱… 설마 저도 불신자라면서 저렇게 만들지는 않겠죠?”

기겁한 로덴이 에일에게 소곤거렸다.

수년을 플레이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 봤던 아르메니아에서도 이런 광경 따위는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에일이 그에게 안심하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전.

로덴의 말을 들은 아일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상의 규율을 지키며 선한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저희와 같은 빛의 신도이니까요. 성서를 들고, 구절을 외우며, 무릎을 꿇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한다 한들, 마음속 여신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자는 이미 악에 빠져 버렸을 테죠.”

여전히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이야기하는 그녀였지만, 광신도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냥한 어조였고 로덴은 잠시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과 같은 교단의 신도인 에일은 어딘가 불안한 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교단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까?”

“물론입니다. 여신께서 뜻을 드러내신 이상, 한시도 지체할 수는 없지요.”

여신의 직접적인 뜻이 내려온 이상, 이단심문소에서 맡고 있던 다른 대부분의 일에 대해선 제동이 걸렸다.

기존에 쫓고 있던 이단의 추적이나 악마종 사냥 같은 업무들도 대부분 2순위로 밀려났고, 교단 또한 기본적인 업무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힘을 기울여 황혼회의 해체를 위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한 점이 있었다.

‘이걸 어쩐다…….’

교단을 완전히 적으로 돌린 결사단의 등장.

그들이 바라는 꿍꿍이는 아직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고, 이번 일을 끝으로 멎을 일도 없었다.

함정까지 파가며 교단의 심판관들을 몰살하기 위해 치밀하게 노려 온 만큼, 그들의 수에 당하지 않으려면 뭔가 대처를 해 두어야 했다.

에일이 교단을 노리던 결사단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전하자, 이야기를 들은 아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지된 마법……. 원래도 이단 마법사들과 적잖은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적으로 돌아선 이상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겠군요. 위험성에 대해선 충분히 인지했습니다. 그러나 여신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이번 총력전으로 인해 그들을 집중적으로 추적할 여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물론. 그들이 우리의 배후에서 활개 칠 동안,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거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복도를 걷던 아일린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에일을 향해 뜻밖의 용건을 꺼내 들었다.

“형제님, 저희를 대신해 조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로 인해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세 배의 추가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2,000]

[중요한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쳐 해당 팩션의 우호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누적 공헌도가 1만을 돌파하였습니다!]

.

.

.

“…….”

흔들리는 마차 위, 턱을 괴고 있는 에일은 교단의 퀘스트가 완료되며 나타났던 메시지들을 다시 띄워 놓은 채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추가 보상 덕에 많은 경험치를 얻어 레벨 업까지 연달아 이루어 냈고, 공헌도 손해도 대부분 메꿨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저 부가적인 사항일 뿐.

아까 전부터 에일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될 줄이야.’

[연계 퀘스트, 결사단 추적(진행 중)]

그의 눈앞에 활성화되어 있는 퀘스트 하나.

훌륭한 판단으로 많은 동료를 구한 공로를 인정하는바, 결사단에 대한 대응을 전담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건 에일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대박이었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빛의 교단 내에서 단독으로 맡게 되다니, 상당한 신뢰가 바탕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은 곧 이번 퀘스트가 두말할 여지 없이 대성공했음을 뜻했고, 아일린과의 관계를 다진 동시에 교단 내 입지까지도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블러디 핸즈가 건넸던 월드 퀘스트와 절묘하게 연계되어 가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정말 상상 이상의 성과야.’

메시지창들을 모두 확인하고 꺼 버린 에일은 자신의 앞자리에 앉아 있는 로덴을 슬쩍 바라봤다.

그는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꾸벅이며 정신없이 졸고 있었다.

원래는 던전을 빠져나오고서 헤어질 생각이었다만, 둘 다 향하려는 도시가 같아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로덴에게서 시선을 거둔 에일은 이번엔 자신의 개인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확실히 쓸 만해…….’

에일이 보고 있는 것은 이번 던전에서 녹화해 둔 영상.

처음 던전에 진입할 때만 해도 가지고 있던 걱정이 부질없이 느껴질 만큼, 영상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영상에서 부분 부분 뽑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양질의 소스가 매우 많았다.

좋게 편집만 거쳐 나간다면, 다시 한 번 워로드 커뮤니티에 큰 화제를 일으킬 만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편집이 문제였다.

이만한 소재를 자신의 어중간한 편집 실력에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보다 뛰어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

그러나 그를 위해 에일은 조금 전부터 영상을 맡아 줄 편집자를 구하려 온갖 사이트를 뒤져 봤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워로드가 벌써 1년을 넘게 절대적인 인기를 끌며,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영상 제작 쪽도 한창 호황인 상황.

실력이 뛰어나다 싶으면 엄청나게 대기자가 몰려 있었고, 그 외의 경우엔 단가나 제작 기간이 문제가 되었다.

물론 편집 수준에 관해 에일이 눈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젯거리이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어쩔 수는 없었다.

‘그냥 내가 할까…….’

에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나선다면 영상의 퀄리티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영상 편집에 매달려야 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아 애를 먹을 것이다.

영상을 한두 번 제작하고 말 것도 아니었으니 스스로 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알리사’ 님의 음성 대화 요청이 도착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응?”

알림과 함께 알리사의 연락이 날아왔다.

에일이 기꺼이 요청을 수락하자, 화면의 한쪽 아래에 음성 채널이 열리며 둘의 대화가 연결되었다.

- 에일 님,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요. 저번에 보내 주신 포션들도 잘 쓰고 있습니다.”

에일이 가볍게 미소를 띠며 답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임에도 그동안 서로 이런 식으로 연락을 주고받아 왔었기에 대수로이 생각할 건 없었다.

- 다행이네요. 마침 이번에 만든 포션들이 제법 괜찮게 나왔는데, 혹시 필요한 것 있으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전에 받은 포션이 아직 남아서요. 뭣보다 너무 받기만 할 수야 없죠.”

- 그런가요? 아쉽네요.

“하하, 아쉬우실 것까지야…….”

- 아, 그런데 다음 영상은 언제 나오나요? 아직은 준비 중이신가.

넌지시 던지는 알리사의 물음.

마차 위에서 늘어지게 앉아 있던 에일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명백히 자신의 영상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 그렇게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설마 제가 그걸 몰랐을까 봐요?

알리사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에일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사실을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녀가 영상을 직접 봐 버린 이상, 어설픈 발뺌은 소용없었다.

알리사의 눈썰미라면 얼굴을 가린 영상 속 모습만으로도 가볍게 정체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확신을 가진 듯한 말투였다.

어쩌면 그녀는 단순히 정체 같은 걸 넘어서, 에일이 이쪽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이유도 파악하고 있을지 몰랐다.

‘으음… 이거 좀 민망한데.’

잠시 말문이 막힌 에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워로드 자체가 컨셉 플레이에 대해 인식이 비교적 자유롭긴 하지만, 그건 일정 범위 내일 때 이야기였다.

에일이 처음 화제가 되었던 것도 의도치 않게 파격적인 컨셉이 잡혀 버린 덕이었고, 그런 기행을 들켰으니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치부 하나를 들킨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언젠가 들통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어차피 들켜 버린 이상, 에일은 자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한때 아마란스의 추적자들에게 쫓겼던 일부터, 무슨 의도로 화제를 끌어모으고 있는지, 지금에 와서는 편집 문제에 부딪힌 것까지도.

사실 처음 입을 뗄 때만 해도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었는데, 왠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많은 것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알리사는 그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 확실히…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문가가 필요하겠죠. 음, 제가 영상 편집 쪽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한 명 있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소개해 드릴까요? 아주 유명한 분은 아니어도 실력은 확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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