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12화 (112/227)

112화 사냥의 진수 (5)

“후, 도착했네.”

거리로 나온 에일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비행선을 통해 그간 활동하던 에스마이어 지역을 벗어났고, 워로드 최남단 지역인 솔스티드에 도착했다.

솔스티드는 뉴월드 시절부터 대립을 이어 온 두 6대 길드 간에 심한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었지만, 에일이 향한 도시는 여명 길드의 영역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에일이 신경 쓰고 있는 건 몇 시간 전에 날아왔던 심문의 결과였다.

‘이단심문소에서 알아낸 건 다음 작업이 이루어질 장소뿐이었어……. 지금은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긴 하지만.’

에일이 제압한 결사단원 대처는 이단심문소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고,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음 장소에 대해 술술 불어냈다.

끌려가기 전만 해도 상당히 자신감 넘치는 태도였지만, 막상 심문을 당하니 입을 열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에일의 예상과는 달리, 심문의 소득은 딱 거기까지였다.

결사단의 목적이나 배후 등, 더욱 자세한 부분에 대해선 무언가 강력한 제약이 걸려 있었는지 심문으로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말을 해내지 못했다.

자신을 죽여 달라던 대처의 진심 어린 자백으로도 그렇고, 정황상으로도 결사단은 서로의 입단속에 대해 의지나 정신력 정도만으로는 믿지 않았는 듯, 단원들에게 마법적 장치 걸어 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아 보였다.

사실을 인지한 이단심문소에서도 현재 죄인의 심문과 병행해, 마법을 풀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하니, 일단 에일의 입장에서는 해당 지역으로 이동해 조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우편이 도착하였습니다!]

‘뭐지? 딱히 우편이 올 일은 없었을 텐데.’

메시지가 나타나자 에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침 주변에 있던 우편함으로 향한 에일은 자신에게 도착한 우편을 꺼내들어 확인했다.

‘이건……?’

6대 길드, 나이트메어에게서 직접 발신된 우편.

협상이 끝난 것은 일주일도 전의 일이었고, 무슨 내용인가 싶어 약간은 긴장한 에일이 내용을 열어 보았다.

혹시나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이라면 귀찮은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가급적 무언가 꼬인 게 아니길 바랐다.

‘아, 아이템?’

그러나 정작 도착한 우편엔 에일이 생각도 못 한 내용물이 들어 있었다.

방어구 5피스, 즉 전신 방어구 아이템들이 첨부되어 있던 것이다.

편지 내용에 적혀 있는 글귀라면 ‘추가 지급분’이 전부, 아주 심플한 설명이었다.

‘뭔가 일이 잘 풀린 건가……? 말도 없이 이런 걸 주고 황당하네.’

아무래도 그가 정보로 건네줬던 고대 던전 ‘왕의 무덤’에서 무언가 예상 이상의 소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이번에 에일에게 보내온 방어구들은 모두 일반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먼, 영웅 등급의 흑요석 방어구 세트였다.

희귀 제련 재료인 흑요석은 에스마이어 동북부 지역에서만 주로 생산되는 탓에 사실상 나이트메어 길드의 독점 상태로 관리되고 있었다.

길드 외 유저들은 일반적인 경로로 구하기가 어려웠고, 나이트메어는 곧잘 흑요석을 이용해 소속 길드원들의 장비들을 제작하곤 했다.

같은 기술 숙련도와 외형이라 해도, 재료에 따라 성능이 바뀌는 워로드에서 흑요석같은 희귀 재료를 바탕으로 장비를 제작하면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에일이 수령한 장비의 세부 정보를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굉장히 뛰어난 스탯 옵션에 속도를 증가시켜 주는 5세트 효과까지 달려 있었다.

에일의 레벨대를 고려해 50레벨용으로 맞춰서 만들어 준 듯했는데, 어지간한 중상위등급 7, 80레벨대 방어구들보다 성능이 나았다.

딱히 이걸 대가로 뭔가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이런 고급 아이템을 공짜로 준다면야 감사히 받을 뿐.

에일은 인벤토리의 장비들을 꺼내 직접 장착했다.

‘제법 근사한데?’

에일이 착용한 장비들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검은빛이 감도는 경갑 방어구 세트.

역시 6대 길드 소속 대장장이가 만든 수제 제작 아이템답게, 굉장히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세트 효과로 인해 몸도 한층 가벼워진 기분이었고, 충분히 체감이 될 만한 전력 상승 요소였다.

“그럼… 가 볼까.”

* * *

“으음, 방한용 망토라도 하나 준비해 왔어야 했나…….”

불가 앞에 쪼그려 앉은 에일이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퀘스트를 위해 산맥 안으로 들어온 그는 혹독한 추위를 맞이했고, 어딜 둘러봐도 사방이 눈 덮여 있는 설산이었다.

워로드를 플레이한다면 허기나 갈증은 물론, 이런 환경에서는 체온 조절까지 신경을 써 줘야 했다.

그나마 화염과 관련된 스킬을 다수 가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여러모로 귀찮은 상태이상인 ‘동상’을 달고 다니면서 전투를 이어 나갈 뻔했다.

‘이 정도 추위는 아니었던 걸로 들었는데. 설마 그새 더 기온이 내려간 건가?’

에일이 찾은 산맥은 50레벨대의 사냥터로 생각보다 많은 유저가 꾸준히 찾는 곳이었다.

넓은 지형 탓에 경쟁도 심하지 않았고, 지리적 위치나 보상도 괜찮은 덕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갑작스러운 이상 기후가 나타난 지역이었고, 언제나 따스한 기후였던 산맥은 단번에 설산 지대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결사단의 활동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놈들을 어떻게 찾느냐는 거지.’

마땅한 단서를 사전에 쥐고 있던 게 아니었고, 일단은 무작정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에일은 몬스터 사냥 겸 종종 마주치는 이단들의 사냥도 곁들이며 산맥을 수색 중이었다.

슬슬 레벨이 어느 정도 올라가서인지 평범한 사냥터에서도 이단 유저들이 보이는 빈도가 잦아졌다.

지금 에일이 쐬고 있는 불길도 이단을 활활 태우고 있는 커다란 십자가였다.

붙잡혔던 유저는 이미 사망해 축 늘어져 있었지만, 아직은 따뜻한 장작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해 주고 있었다.

툭!

에일은 타닥거리는 불길에 몬스터의 시체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그리곤 타오르고 있는 십자가를 멍하니 바라봤다.

얼마 전, 에일이 지니고 있던 광기 스탯이 100을 넘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바로 사도 전용 스킬인 ‘형벌 집행’이 한차례 성장했다는 것.

그간 집행을 위해 다양한 처형대들을 소환할 때에는 대부분이 다소 간단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위치나 소모품의 제약 없이 사용이 가능했기에 굉장히 편리한 스킬이기는 했지만, 소환되는 처형대 자체를 크게 변화를 주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상상하듯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리면 소환할 처형대의 모습을 조금 더 자유롭게 변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스킬의 성능 자체는 변화가 없었기에 아주 큰 변화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연출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더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저기 또 있군.’

에일이 멀찍이서 움직이고 있는 한 파티를 발견했다.

거리도 꽤 떨어져 있었고,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탓에 시야가 방해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 찍혀 있는 이단의 낙인만큼은 제대로 보았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한 게임 속이라도 착하게 살아야지, 여신에게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사냥으로 인해 떨어졌던 체온은 다시 충분히 회복된 상황.

자리에서 일어난 에일이 파티를 뒤쫓아 갔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스탯은 최대한 쌓아 둬야 했다.

설산을 오르고 있는 파티는 총 네 명의 유저로 구성되어 있었고,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들로 보아 레벨은 40에서 50 사이로 보였다.

감각도 뛰어난 편은 아닌지 에일이 뒤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바람과 함께 눈이 쏟아지는 궂은 날씨 덕도 있었지만, 들키지 않게 나무와 바위 등을 이용해 가며 접근한 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에일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잠깐, 한 명만 낙인이 없잖아……?’

같은 파티임에도 단 한 명의 유저만 이단 상태가 아니었다.

로브 차림에 스태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법사 계열로 보이는 여자였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셋만 제압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다 죽여도 상관없나?’

에일이 공격에 앞서 고민했다.

꽤 많은 이단을 마주쳐 왔음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애매한 상황일 경우 꼭 낙인이 없더라도 이단 지정을 해 태워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완전히 무고한 유저를 다짜고짜 먼저 공격하면 여신의 총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아무리 루가 광기라는 강렬한 이미지에 묻혀 있어도, 정의의 여신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으니.

“난 아직도 이 고생을 하면서 올라온 게 맞나 싶다. 토륨 주괴가 이만큼이나 있는데 그냥 눈 딱 감고 도망치는 게 훨씬 낫지 않겠어?”

“바보 같은 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우리한테 퀘스트 맡긴 놈들이 누군데……. 그랬다가는 뼈도 못 추려.”

“그래, 겨우 물건 좀 운반하는 걸로 이만한 보상을 받을 게 또 어디 있다고.”

‘토륨 주괴라고……?’

파티원들이 떠들며 들려온 말소리에 에일이 반응했다.

토륨 주괴라면 에일이 버려진 사원 지하의 전리품 상자 안에서 한가득 발견했던 희귀 광물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결사단원인 뮤트를 만났던 곳이기도 했는데, 마침 저들도 대량의 토륨 주괴를 운반하는 퀘스트를 받았다니.

자연스레 결사단과 연관되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순한 우연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우연일 확률이 더 낮았고, 냄새를 맡은 에일은 곧장 계획을 틀었다.

이단을 불태우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바싹 기척을 죽인 채 그들의 뒤를 신중히 따랐다.

그러자 몬스터들을 피해 가며 산을 오르던 그들은 곧 나타난 큼지막한 바위의 아래에 섰다.

“여기가 맞겠지?”

“확실해.”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쌓인 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바위 아래로 이어진 동굴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명의 파티원은 서둘러 그 안으로 들어섰고, 에일 역시 그 뒤를 곧장 따랐다.

다만, 더 깊숙이 향할 거란 에일의 예상과 달리 파티원들은 동굴 내부의 입구 부근에 멈춰 아이템들을 바닥에 하나둘 내려놓았다.

“그냥 여기 놓고 가면 된다고 했지?”

“그래, 입단속만 제대로 하면 된다 했으니…….”

콰악!

뒤편에 서 있던 남자는 미처 말을 다 내뱉지도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기습.

“컥……!”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장검은 활을 매고 있던 여자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고, 그녀 역시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사이, 쥐고 있던 방패를 허겁지겁 치켜든 탱커가 에일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결국 결과는 같았다.

콰앙!

순식간에 발동된 일섬 스킬을 정면으로 받아내자 방패가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화염에 휩싸인 채 바닥을 뒹군 탱커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고, 이제 자리에 남은 건 유일하게 낙인이 그려져 있지 않던 그녀 한 명뿐이었다.

“히익……!”

“우리, 이야기 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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