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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15화 (115/227)

115화 사냥의 진수 (8)

부스스한 모습의 우진이 탁자에 앉아 반찬을 입에 쑤셔 넣었다.

아침에 막 일어나 딱히 입맛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곧 있을 강행군을 위해서라면 미리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둬야 했다.

‘반응은 여전히 문제없고… 순조롭네.’

식사와 동시에 핸드폰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우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진입한 지 4일이나 지난 성역의 정화 작업은 지금도 매끄럽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와는 또 별개로 워튜브 또한 계속해서 성장을 이어 나가는 중이었다.

영상을 통해 후원금과 광고 수익으로 들어오는 입금액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절로 뿌듯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전셋집도 하나 구하겠는데?’

역시 압도적인 시장을 구축한 워로드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돈이 된다는 게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단순히 돈에 대한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 속 에일의 모습에 감화되어, 이단심판관 직업을 비롯해 빛의 교단에 입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것도 단순한 헛소문이 아니라, 실제 통계상으로 드러난 사실이었다.

잠깐 유행을 타서 반짝 관심을 받는 건지, 아니면 계속 성장세를 이어 갈 수 있을지는 앞으로에 달린 일.

하지만 처음 스스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더 노력해야겠지…….’

우연히 찾아왔던 기회.

그 덕에 그간 끈질기게도 우진의 발목을 잡아 왔던 현실적인 요소들을 떨쳐낼 수 있었고, 이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시간이 다 됐네.”

어느새 약속 시간이 다가와 있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우진은 서둘러 접속기로 향했다.

* * *

파앗!

워로드에 접속한 에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자리한 곳은 성역의 깊숙한 지하.

쉴 새 없이 엄청난 속도로 사냥에 박차를 가해 온 그들 파티는 현재 5번째 층을 돌파 중이었고, 에일의 레벨은 벌써 55를 넘어서 있었다.

지난 나흘간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를 청소한 덕이었다.

[현재 정화율 ‘48.00’%]

하지만 성역의 정화율은 아직도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

‘이만한 층들이 최소 10개는 넘는다는 건가.’

에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반적인 유저들의 파티였다면 진작에 제풀에 꺾여 나가떨어졌을 만큼, 정말 미친 듯한 크기의 던전이었다.

그나마 몬스터의 리젠이 없고, 워낙 사냥의 속도가 빨랐던지라, 아직도 6일에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아주 여유 있는 편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제한 시간 내에 클리어가 가능한 페이스였다.

파앗!

그때, 시간에 맞춰 워로드에 접속해 온 리아도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도 먼저 와 계셨네요…….”

“미리미리 계획도 짜고 준비해 둬야죠.”

에일이 손에 쥐어져 있던 포션병을 슬쩍 들어 올려 보였다.

이곳 성역에 미리 긴 여정을 예상하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물자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도중에 마을로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무려 10일이나 되는 제한 시간상 물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이나 식수뿐 아니라, 전투 시 사용할 물건들도 마찬가지.

워낙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니 포션을 비롯해 전투 물자들까지도 금세 바닥을 보였다.

특히 리아의 경우, 워낙 많은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탓에 평소 넉넉히 지니고 다녔던 마나 포션도 금방 동이 나 버렸다.

그렇게 때문에 현지 조달이 필요했다.

몬스터에게 직접 아이템들을 루팅하거나, 시체 해체, 혹은 채집물을 통해 물자를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던전 안에서 추가로 얻은 물자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미리 들어와 계획을 짜 둬야 했던 것이다.

막무가내로 싸웠다가는 소모품들이 금방 바닥나, 싸움을 이어 갈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 사전에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저기, 에일 님. 오늘은 조금만 속도를 줄여서 가는 건 어떨까요……?”

눈치를 보던 리아가 조심스레 건의했다.

지난 4일간의 강행군으로 인해 혼이 빠져나갈 뻔한 그녀였고, 이걸 또다시 반복하자니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혹시 많이 힘드신가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조금 피로한 것 같아서요.”

“많이 힘드시진 않다니 다행이네요. 사람의 몸과 정신은 쓰면 쓸수록 강해집니다. 피로를 느끼는 것도 덜 굴렀기 때문이죠. 조금만 더 힘내서 갑시다! 화이팅!”

“흐윽… 네…….”

울상을 지은 리아가 축 늘어졌다.

* * *

“흐아아…….”

리아가 스태프에 기댄 채 비틀거리며 걸었다.

처음 봤을 때 생기 넘치던 그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퀭한 그림자가 눈 밑에 드리워져 있었다.

벌써 퀘스트를 시작한 지 8일째.

그들 파티는 이미 10번째의 마지막 계층에 다다라 있었다.

그동안 에일은 어느새 60레벨을 달성한 뒤였고, 뒤를 따르고 있는 리아도 54레벨을 넘어섰다.

그러는 사이,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을 거라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녀가 너무 힘들어한다 싶을 때에는 에일이 알게 모르게 속도를 조절해 가며 진행하긴 했지만, 연속되는 강행군이 버거운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잘 따라와 줬어.’

어찌나 빡빡한 일정을 진행했는지 에일조차도 살짝 무리가 온 상태였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이미 바닥에 뻗어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텐데, 리아는 이렇게 끝까지 버티며 함께 끝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 또한 이쪽 분야에 꽤나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긴급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오염된 성역의 정화를 무사히 끝마쳤습니다! 성역의 균열이 잦아들고 불쾌감을 드러내던 고대의 존재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현재 정화율 ‘100.00’%]

[남은 시간 ‘47:45:01’]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지막 악령 무리를 해치우고 떠오른 메시지들.

퀘스트가 클리어되며 커다란 경험치 보상이 주어졌고, 리아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펄쩍 뛰었다.

“끄… 끝났어요!”

안도감과 성취감이 뒤섞여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알면서도 최대한 밀어붙였던 에일도 왠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리아 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제가 너무 몰아붙였던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아, 아뇨……! 그래도 즐거웠어요, 사냥 속도도 엄청 빨랐고, 그… 뭐라 해야 하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서…….”

에일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리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저었다.

솔직히 그를 따라다니느라 무지막지하게 힘들긴 했지만, 지금의 말이 빈말뿐인 건 아니었다.

그동안 다른 파티원들과 사냥할 때는 전혀 몰랐는데, 워로드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한껏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유저들과 다녔을 때에는 당연히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파티 플레이라고 해 봐야 상황이 닥치면 그때에 가서야 손이 가는 대로 대처하고, 이렇다 할 계획이나 대처법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에일의 주도로 이루어진 파티 사냥은 그동안의 플레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모든 상황에 맞춰 치밀하게 준비하고,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지시를 내리고 역할을 분담했다.

워로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상황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파티장의 오더를 따르면서 합을 맞추는 경험.

그것도 능숙함이 부족한 유저에겐 뼈와 살이 되어 주는 훌륭한 경험이었다.

그녀는 그런 경험을 아예 며칠에 걸쳐 지옥 특훈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본인 스스로도 성장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무튼… 에일 님도 수고하셨어요.”

어느새 생기를 되찾은 리아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둘 모두 과정이야 힘들었지만, 결국에 찾아온 결과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정화가 끝나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동굴의 모습.

“이쪽으로 가야 할 것 같네요.”

에일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바깥으로 통하는 출구일지 아니면 또 다른 공간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시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그들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찬 기둥 사이를 지났다.

그리고 그 너머엔 정말 커다란 지하 계곡이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서리와 함께 수놓아져 있었다.

드드드드드!

거체가 움직이며 진동하는 땅.

“세상에…….”

꽁꽁 얼어붙은 폭포 너머로 거대한 고대 정령의 모습이 비춰 보였다.

이곳 성역엔 고대의 얼음 정령이 잠들어 있었고, 오염으로 인해 서서히 깨어나면서 일대 산맥의 기온이 내려간 것이었다.

“…….”

정령의 눈동자와 마주친 에일과 리아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단지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신비한 분위기 속.

고대 정령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오염되었던 성역이 정화되자 다시금 편히 잠에 드는 것이었다.

“휴, 갑자기 날뛰면 어쩌나 무서웠어요.”

“그래도 보기보단 착한 것 같던데요.”

문제없이 끝난 걸 다행으로 여기며 돌아서려는 그때.

쩌저저적!

그들이 서 있던 바닥 아래에 서리가 피어나더니,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솟구쳐 올랐다.

솟구친 두 갈래의 얼음은 서서히 변형되어 무기의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형태의 장검과 스태프는 바닥에 꽂힌 채 우뚝 섰다.

그중 먼저 장검에게 다가간 에일은 무기의 정보창을 열람했다.

[서리를 머금은 고대 정령의 장검]

- 등급: 유일

- 종류: 장검

- 제한: 레벨 60 이상

- 물리 공격력 110

- 힘 +40, 민첩 +25

- 특수 효과 ‘서리 약탈자’: 상처 부위에 서리를 퍼트려 움직임을 둔화시킵니다. 동시에, 적을 둔화시킨 만큼 사용자의 속도가 증가합니다. (다수 적용 불가)

‘이건…….’

장검을 집어든 에일이 눈을 의심했다.

무려 60레벨제의 유일급 장검.

유일 등급 장비는 게임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이었고, 등급에 걸맞게 굉장한 스탯 보너스를 지니고 있었다.

공격력 또한 110에 달하는 데다가, 적의 속도를 뺏어오는 강력한 특수 효과까지 존재했다.

여럿을 대상으로 동시에 속도를 빼앗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옵션이 되어 줄 것이었다.

“우와…….”

보상을 받은 건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60레벨제의 유일급 스태프였고, 에일의 장검만큼이나 굉장한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아직 레벨이 부족해 당장 장착하지 못했고, 그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좋은데, 아직 3레벨이나 더 올려야 장착할 수 있네요.”

“뭐, 오늘처럼만 한다면 금방일 텐데요.”

“그… 그건 좀…….”

“하하, 일단 올라가죠.”

새로운 장검을 허리춤에 찬 에일이 웃으며 말했다.

그에겐 아직 진짜 보상이 하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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