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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35화 (135/227)

135화 여섯 번째 집행관 (2)

하얀빛으로 가득 찬 순백의 공간.

루는 어김없이 아래 세상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만에 바깥 세상에 직접 나섰었는데, 또다시 이곳 신격의 공간에 있어야 했다.

마음 같아선 본인이 직접 나가서 모든 일을 해결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신격이 지상에 직접 강림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영향력 소모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당연히 아무리 넉넉히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큰일이 아닌 이상 나설 수 없었다.

저번에 루가 직접 나섰던 경우도 탐욕의 악마가 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든 세력을 잃고, 직접 약점까지 노출한 베나론을 루가 직접 나서 아예 제거함으로서 오히려 소모되었던 것 이상으로 더욱 많은 영향력을 챙길 수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아주 잠깐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또다시 그에 준하는 일이 없는 이상, 직접 강림할 일은 확실히 없을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인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황혼회를 모두 뿌리 뽑음으로써 얻은 영향력에 더해, 에일이 지하 세계 엘트리스를 교단의 손에 넣으면서 막대한 추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지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

츠츠츳!

루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화면이 움직이더니, 이단심문소에 들어서 있는 에일을 비췄다.

가장 먼저 시작할 건 역시 이쪽이었다.

마침 에일의 총애도가 100퍼센트를 넘기면서 신격과 사도 간의 연결이 조금 더 긴밀해졌다.

더 깔끔하게 주변 상황이 비춰 보임은 물론, 그녀의 뜻을 알리거나 메시지를 띄우는 등의 행위도 더 적은 영향력 소모만으로 가능해졌다.

“활약을 했으면 그에 맞는 선물을 줘야겠지.”

루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에스마이어의 이단심문소 내부에 위치한 조그만 신전.

그 안에선 새로운 집행관을 위한 조촐한 임명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집행관이라 해도, 외부에 알리지 않은 과정과 교단의 성향상 거창하게 치러질 일은 없었다.

그렇게 일련의 간단한 과정을 마친 뒤.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집행관이 된 에일을 위해, 새로이 제작된 교단의 장비가 건네어졌다.

140레벨대 영웅 등급 풀세트.

축복이 담긴 경갑 방어구와 장검이 수여되었다.

집행관에게 수여되는 것인 만큼 스펙에 대해선 굳이 말할 것도 없었고, 백색 바탕의 붉은 장식을 띠고 있는 장비들은 깔끔하면서도 근사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다른 집행관들이 차려입은 것과 비슷한 복장이었다.

“빛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하얀 법복을 차려 입은 교단의 장로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집행관의 상징인 검은 십자 펜던트를 에일에게 건넸다.

‘이게 정말이라니…….’

손에 쥐어진 펜던트를 내려다보자 새삼 체감이 들었다.

실제 옵션을 가진 장착용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집행관으로서의 권한을 뜻하는 물건이었다.

이를 받았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일개 유저가 집행관만 한 교단의 중역이 된 건 이번이 최초였다.

비단 빛의 교단뿐 아니라, 다른 여섯 교단 역시 마찬가지.

에일이 그동안 지하에서 활약하는 동안, 별다른 보상을 건네 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설마 자신을 직접 집행관으로 임명할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임명식이 모두 마무리되고, 신전이 비워지자 안으로 들어선 아일린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저 높이 있던 네임드 NPC가 아닌, 동료 집행관이 된 그녀였다.

“축하드립니다, 집행관. 기분은 어떠신지요.”

“그게… 아직 얼떨떨하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저도 처음엔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까요. 하나 여신께 선택받아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분명 형제님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과거를 회상하던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용건을 꺼내들었다.

“임명식 전에 말했다시피, 집행관으로서의 업무는 몇몇 사안을 제외하면 따로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그저 이 땅에 여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만이 목적일 뿐,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것이죠.”

그녀의 말에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행관이 되었다고 해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 큰 제약이 생기는 일은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유저인 에일에게는 당연히 좋은 소식이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집행관이란 모두를 책임지는 무거운 위치이기도 하니까요. 형제님은 당분간 엘트리스 지부를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이 발견된 지하 세계는 결국 에일의 소관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현재 엘트리스는 주민들의 열렬한 성원 아래에 수많은 빛의 신전들은 물론, 이단심문소까지도 건설 중에 있었다.

그렇게 곧 완성될 엘트리스 지부의 이단심문소는 앞으로 에일이 맡아 관리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 전 엘트리스 지부에 내려가 있어야 합니까?”

“그건 집행관의 결정에 달린 것이겠지요. 교단의 사제들을 파견하였으니 기본적인 업무야 알아서 처리될 겁니다.”

그녀의 말대로 얼마 전부터 엘트리스를 향해 교단의 사제들이 파견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확립하고, 심판관과 기사단의 양성을 통해 전력 확보에 나서려는 것이었다.

엘트리스에서 인간은 굉장히 생소한 종족이었지만, 모두가 같은 종교를 믿게 되었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신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형제님을 집행관으로 임명하시진 않으셨겠지요. 조만간 그분의 뜻이 내려올 겁니다.”

‘여신의 뜻……?’

아일린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집행관으로서 언제나 부지런히 심판을 내리는 그녀였고, 또 다른 악마 추종자 무리를 추적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텅 빈 신전에 홀로 서게 된 에일은 새로 얻은 장비들을 바꿔 장착했다.

‘내가 지하에 틀어박혀 있던 동안 교단에 생긴 큰 변화라면, 아무래도 황혼회의 절멸이겠지.’

빛의 교단이 대대적으로 나섰던 핏빛 황혼회와의 전쟁은 불과 며칠 전에 끝났다.

물론 결과는 교단 측의 대승리였다.

그동안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황혼회는 결국 지도층을 비롯해 완전히 뿌리 뽑혀 사라진 상태였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악마 추종자들의 특성상, 세력을 약화시키는 게 고작이라고 여겨졌던 일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썼는지, 놀랍게도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 덕에 그동안 놈들에게 쏠렸던 교단의 극단적인 움직임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교단이 잠시 미뤄 뒀던 모든 업무가 재개되었다.

에일이 전적으로 맡았던 결사단에 대한 조사도 다시 이단심문소 측이 맡아 진행되고 있었다.

단순히 세력 와해를 넘어서, 아예 탐욕의 악마인 베나론이 소멸되었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물론 사실이 어느 쪽이건, 그로 인해 루가 막대한 영향력을 수급했을 것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번 엘트리스 건으로 얻은 영향력도 엄청날 테고… 이 정도면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루가 얻었을 영향력을 대강 계산해 본 에일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탓에, 오히려 빗나갔다는 표현이 적당할지도 몰랐다.

두우우웅!

요란한 뿔나팔과 북소리와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번쩍 떠올랐다.

[월드 이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빛의 거병 - 대륙 남부에 전란의 기운이 감돕니다.]

[정의를 외치는 광기의 무리가 도시를 향해 진격합니다. 그들의 불꽃은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잿더미로 만들 것입니다. 여신을 따르는 신도들의 눈동자엔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고, 이단을 향한 그들의 칼끝엔 일말의 자비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이 파멸의 노도를 막을 수 있을까요.]

[여섯 번째 집행관 ‘에일’의 지휘 아래, 인근 지역의 모든 신도가 집결할 것입니다.]

[목표 도시 - ‘암스텔’]

“뭐, 뭐라고……?”

놀란 에일이 자리에 딱딱히 굳었다.

대륙 전역에 알려지는 월드 이벤트.

지금 생겨난 이 메시지는 에일은 물론이고, 지금 접속해 있는 워로드의 모든 유저에게 떠올라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틈도 없이,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격 ‘루’의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악마와 계약을 맺은 영주가 무고한 이들을 제물로 바치며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물증은 없으나 여신의 뜻이 그의 목을 가리키고, 신도들은 해방을 위해 진격합니다. 정의를 따르는 검이 남부 도시 ‘암스텔’로 향합니다.]

[해당 퀘스트는 거부가 불가능하며, 에스마이어와 솔스티드 지역에 위치한 모든 신도에게 강제됩니다.]

[퀘스트의 결과에 따라 큰 페널티 혹은 보상이 주어집니다.]

[실패 조건: 전멸]

“미친…….”

에일이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신격이 발생시키는 ‘월드 이벤트’.

범위 내에 있던 모든 신도가 움직여야 하는 강제성 이벤트이자, 대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형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교단을 꺼리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기도 했다.

무조건 참여에 거부권은 없었다.

더군다나 실패 조건은 전멸.

모두가 성공하거나 죽기 전까지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도중에 이탈하는 자는 그 즉시 신격의 분노를 사, 죽음 이상의 막대한 페널티를 얻게 될 것이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왜 월드 이벤트에 내 이름이 떡하니 걸린 거야!’

에일의 이름뿐 아니라, 교단의 여섯 번째 집행관이라는 사실까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모든 유저에게 노출되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어그로를 끌어 버리게 된 셈이었다.

‘미치겠네…….’

심지어 도시 ‘암스텔’이라면 무려 12강에 속하는 길드의 주요 영지 중 하나였다.

어중간한 길드도 아닌, 아예 12강 길드라는 거대 세력을 상대로 도시를 공격해 함락시켜야 한다는 것.

이번 이벤트는 사실상 그들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이제 이 앞에 있을 일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질 지경이었다.

‘첫 임무부터 이게 대체 무슨…….’

하지만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월드 이벤트가 모두에게 대문짝만하게 떠오른 이상, 벌써 주사위는 던져져 버렸다.

빛의 신도들이 한데 집결 중인 데다가, 상대 길드도 대응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었다.

“젠장!”

에일은 서둘러 이단심문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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