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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44화 (144/227)

144화 격동하는 대륙 (5)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형벌 집행의 효과로 스탯 보너스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

화르르륵!

화형대에 매달려 불타고 있던 괴물의 시체가 완전히 바스라졌다.

세 신격의 등장 이후로도 에일은 사냥을 계속해 나갔다.

신격이 나타난 것과는 별개로 꾸준히 성장을 해야 하는 건 변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등장 이후, 이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

[‘화산의 지배자’가 화끈한 불의 세례에 기뻐합니다!]

화산의 지배자, 라자갈.

열정과 불, 파괴의 신이었다.

워로드의 교단 중 두 번째로 신도의 수가 많은 ‘불의 교단’의 주인이기도 했다.

빛의 교단이 최근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며 덩치를 불리고 있다고는 하나, 신도의 수로는 아직 세 번째에 위치해 그들을 넘지 못했다.

라자갈의 신도들이 가지는 총애도가 호불호가 갈릴 일이 없는 ‘공격력’에 특화되어 있는 덕이었다.

‘빛의 신도들이 가지는 총애도의 효과가 좀 더 낫긴 하지만, 신격이 단순한 만큼 큰 페널티가 없으니…….’

모든 전투 스탯을 골고루 올려 주는 루의 신앙이었지만, 정작 유저들에게 기피 받던 이유는 여신의 미친 성향 탓이었다.

반면 라자갈의 경우, 요구하는 것도 파괴라는 세 번째 이명답게 간단했기에 부담이 없었다.

단지, 일정 기간 내에 정해진 수 이상으로 생명체를 죽이거나, 일정 가치 이상의 물품들을 파괴하면 되었다.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던전에서 깽판을 치며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숫자가 카운트되었기에, 다른 교단에 비하면 훨씬 덜한 페널티였다.

[‘은밀한 탐구자’가 당신의 실력에 관심을 가집니다.]

다음으로 메시지를 보내 온 신격은 은밀한 탐구자, 레녹스.

지식과 하늘, 공허의 신이다.

대부분의 신도들이 마법사 유저로 구성되어 있는 ‘천상 교단’의 신이었다.

탐구라는 이명을 지닌 신격답게 마력과 마나 소모량에 강점이 있었기에 마법사 유저들이 주로 몰렸다.

금지된 마법에 손을 댄 결사단의 시설에서 그의 상징물을 본 적도 있었다.

‘나한테 모습을 드러낸 신격은 루를 포함해 총 넷. 아직 다른 세 신격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모두 깨어나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에일은 워로드의 일곱 신격들이 모두 깨어났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신격들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원래 개발 당시 정해졌던 시점에 비해 한참은 일렀지만, 오류로 인한 루의 등장 이후 상황이 뒤바뀌게 되었다.

‘아마 시스템이 상황을 움직인 거겠지.’

외부의 개입 없이 관리되도록 설계된 워로드의 시스템은 마냥 허술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해 오류가 발생할 수 없는 게임이었지만, 설령 오류가 발생했다 해도 밸런스가 완전히 망가지는 일이 없도록 시스템이 작용한 것이다.

그동안 루가 최대한 들통나지 않도록 숨어 왔지만, 그녀의 노력만으로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다.

신격의 이른 활동에 대응해 다양한 연쇄 작용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왜 다들 여기서 난리야?’

에일이 다소 황당한 눈빛으로 메시지들을 바라봤다.

그의 존재를 눈치챈 신격들은 계속 에일을 바라보며 메시지를 날려 왔다.

사냥을 하며 멋진 플레이를 선보일 땐 감탄을 하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반대로 실수가 나올 땐 코웃음을 치곤했다.

마치 따분함을 달래기 위한 시청자처럼 그를 구경하는 모습.

‘자기들 신도나 들여다볼 것이지.’

에일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신격의 입장에서 ‘사도’를 내려다볼 때에는 거의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아무런 소모도 없이 말끔한 시야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반면, 다른 경로를 통해 세상을 내려다볼 경우, 일정한 영향력을 소모해야 하거나 흐릿한 시야로 인해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자연히 다른 교단의 신격이라고는 해도, 더 큰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고 즐겁게 볼거리가 있는 에일을 향해 시선이 쏠리게 되는 것이다.

[‘빛의 심판자, 루’가 당신을 독려합니다!]

[그녀는 당신이 다른 신들의 등장에 동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엔 루가 메시지를 보내 왔다.

원래 해당 신의 독실한 추종자라도 단 한 번의 관심조차 받기 힘든데, 에일은 모든 신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에일이 워로드 속 ‘최초의 사도’인 덕분이었다.

사도의 특성상 신격의 막대한 영향력을 모으고 다니고 있었으니, 흥미로운 볼거리인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루는 그가 신격들의 등장에 위축되지 않길 바란 것이다.

물론 그동안 루의 시선 속에서 콘셉트질이 단련되어 온 에일이 그럴 리는 없었다.

[‘생명의 어머니’가 당신에게 제안을 해 옵니다.]

[그녀는 당신이 대지의 사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신들은 주지 못할 막대한 지원과 보상을 약속합니다.]

‘이건……?’

가장 먼저 노골적인 접근을 해 온 것은 프레이아.

그녀의 세력인 ‘대지 교단’은 따르는 신자의 수가 가장 많고, 일곱 교단 중 가장 부유한 재력을 자랑했다.

생산직 유저들에게 특화된 총애도의 효과 덕이었다.

신도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주기적으로 바쳐야 하는 공물뿐.

어느 정도 경제력만 갖추고 있다면 가장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교단 세력이었다.

가장 큰 교단의 규모 덕에 프레이아가 벌어들이는 영향력 또한 최고였고, 사실상 일곱 교단 중 줄곧 선두에 있던 신앙인 셈이었다.

다른 신격이 주지 못할 막대한 지원과 보상이라는 그녀의 말은 단순히 에일을 꿰기 위한 허언이 아니었다.

[‘빛의 심판자, 루’가 극히 불쾌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그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 루가 메시지를 새로운 띄우며 프레이아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사도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막대한 영향력을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이미 사도가 된 자를 개종시킨다면, 매우 적은 영향력만으로도 간단히 가로챌 수 있었다.

프레이아의 제안에 그녀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게 당연했다.

하나 프레이아는 루의 반응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생명의 어머니’가 당신의 확답을 기다립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군. 가장 세력이 큰 교단인데다 신격의 약속까지 내걸으니 당연히 올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에일은 지금 처했을 각 신격들의 입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원래 ‘사도’에 관한 시스템은 500레벨대 이상의 유저들이 발생한 뒤에야 생겨나는 후반부 컨텐츠였다.

하지만 지금은 신격들이 예정보다 너무 일찍 깨어나 버렸고, 그 탓에 충분한 영향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상황이었다.

새로운 사도를 만들어 내기엔 다소 버거운 입장이라는 뜻.

당장 루만 하더라도, 당시 본인이 가졌던 영향력의 거의 모두를 사용해 에일에게 사도의 자격을 주었다.

만약 에일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입장에서 굉장히 큰 손해를 봤을 상황.

물론 루의 입장에서 결과는 좋았지만, 다른 신격들은 검증된 인재가 없는 이상 쉽사리 그런 도박을 감행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젠 신격들의 경쟁이 시작됐으니까.’

가장 먼저 깨어난 루는 다른 신격들이 움직임을 보이기 전, 미래를 보고 큰 투자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깨어난 신격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무리해서 사도를 만들었다간, 다른 신격이 월드 이벤트를 비롯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더라도 바닥난 영향력 탓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사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에일을 회유하거나, 다른 방면으로 움직여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에일이 고개를 저었다.

[‘빛의 심판자, 루’가 당신의 선택에 안도합니다.]

[‘화산의 지배자’가 즐거워하며 그녀를 조롱합니다!]

[‘생명의 어머니’가 크게 분노합니다!]

[당신은 신격의 정중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앙심을 품은 죽음의 여신이 당신의 목을 노릴 것입니다!]

‘역시나…….’

자존심 강한 프레이아가 보일 태도야 이미 예상했다.

그리고 에일은 일이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이미 빛의 교단과 루를 섬겨 사도가 된 이상, 도중에 신앙을 바꾸는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모를까, 에일이 여태 쌓아온 전용 스탯과 스킬 등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프레이아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다 해 봤자, 빛의 교단에 확보해 둔 입지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면 얻는 것보다는 손해 볼 게 많았다.

하지만 한 가지.

그녀의 제안을 매몰차게 뿌리치지는 않는다.

“다만, 생각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명의 어머니’가 당신의 말에 멈칫합니다.]

[대지를 뒤덮던 그녀의 분노가 일순간 누그러졌습니다.]

[‘은밀한 탐구자’가 당신의 선택이 의외임을 밝힙니다.]

[‘화산의 지배자’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입니다.]

뜻밖의 말이 이어지자, 신격들의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큰 반응을 보일 것 같았던 루의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

츠츠츠츠츳!

주변을 온통 뒤덮은 노이즈.

강렬한 섬광과 함께 빛의 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앗!

루가 손을 휘젓자 주변의 공간이 한차례 일그러지며, 다른 신격들의 메시지가 뚝 멎어 나타나지 않았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

루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에일을 꿰뚫었다.

“그대,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하하…….”

* * *

문제의 발언이 생긴 뒤 루가 직접 에일을 찾아왔고, 그녀의 짙은 오해를 푸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단지 다른 신격들을 이용할 생각뿐이었다고?”

“네, 벌써부터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에일이 간단히 답했다.

모두가 경쟁자라고는 하나, 벌써부터 다른 신격과 적대적인 관계에 휘말릴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어느 길드에도 들지 않고 활동했듯, 자신을 원하는 신격들 사이에서 거래를 하며 이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크흠…….”

루가 헛기침을 흘렸다.

안절부절못하던 그녀의 모습은 그제야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뭔가 잠깐이나마 역전된 듯한 느낌에, 이런 게 바로 경쟁자의 중요성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혹여… 이렇게까지 말해 놓고 나를 배신할 셈은 아니겠지?”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무, 물론 그대를 믿는다. 허나…….”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인제 와서 다른 교단을 택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야… 고맙구나.”

안도한 루가 미소를 보였다.

“여신님이야 말로 나중에 다른 사도들을 들이고, 절 방치하시면 안 됩니다?”

당장 루의 사도는 에일뿐이었지만, 언제까지고 그렇지는 않을 것이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후반부 컨텐츠인 만큼, 시간이 갈수록 워로드의 사도 수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그럴 리 없지 않느냐? 나를 뭘로 보고…….”

“정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그럼! 애당초 그대만 한 사도가 있을 리 없다.”

추궁해 오는 에일 탓에 홧김에 답해 버린 루는 곧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분위기에 완전히 말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아, 이게 무슨 꼴인지… 난 이만 가보겠다!”

파앗!

하얀빛과 함께 루의 모습이 사라졌다.

일그러졌던 공간 또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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