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추적 (2)
“이 시점에 빛의 교단이 끼어들 줄은 몰랐어. 확실히 그때 대처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에일과 마주한 뮤트가 중얼거렸다.
다른 세력이라면 몰라도 빛의 교단의 추적이란, 그들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뭐, 지금에 와서야 의미 없는 일이지.”
어깨를 으쓱이는 뮤트.
그녀를 마주 보고 있는 에일은 검을 바짝 잡으며 자세를 취했다.
얼마 전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결사단의 몇 안 되는 간부 중 한 명이었다.
금지된 마법 분야에서 굉장한 재능과 성취를 보이며, 그쪽 세계에선 많은 인정을 받는 이단마법사였다.
일반 마법의 제약과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금지된 마법들의 위력을 생각하면, 그런 그녀가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칠 수야 없지.’
결사단의 간부라는 건 지니고 있는 정보 또한 많다는 것이었다.
생포만 해낼 수 있다면 토해 낼 정보가 상당할 것이고, 놈들을 일망타진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동시에 다른 조직원이 토해 낸 정보에 따르면, 사령석에 쌓인 마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만한 마법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금지된 마법에 아주 깊은 이해도가 있는 이단마법사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마법.
기껏해야 눈앞의 뮤트를 포함한 몇 명의 간부만이 구사할 수 있는 고난도의 마법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그녀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놈들의 활동을 크게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날 쓰러뜨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뮤트가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미안하지만 너희가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냥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곤란해. 서로를 노리고 있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그래 봤자 부질없는 발악이지.”
에일이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소수로 이루어진 결사단과 워로드 대륙의 한 교단이 같은 범주로 묶일 수는 없었다.
두 집단 간에는 넘어설 수 없는 체급 차이가 존재했다.
더군다나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이단과 악마와 싸워 온 빛의 교단이라면, 상대가 누구를 등에 업었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저항에 불과했다.
하지만 뮤트는 자신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그 전에 일이 끝날걸. 이대로 상황이 뒤집히고. 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모든 게 끝나니까.”
“그건 무슨…….”
스스스!
갑자기 오염의 중심부를 가득 채우는 짙은 안개.
평범한 현상처럼 보이던 안개는 점점 심해져, 멀지 않게 서 있던 둘이 서로를 보지 못할 만큼 짙어졌다.
“그나저나, 자기가 집행관이라는 자각 정도는 가지고 다니지 그래?”
여섯뿐인 교단의 최고위직.
빛의 교단과 척을 진 입장에서는 당연히 노릴 수밖에 없는 표적이 되기 마련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이었다.
하나 동요하지 않은 에일은 들려온 말소리를 차분히 읽어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소리를 통해 그녀의 위치를 파악한 에일은 곧장 그림자 속으로 몸을 날렸다.
콰악!
뻗어진 장검이 단숨에 뮤트의 심장을 관통했다.
“큭… 그리 급하게 할 거 없었잖아.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볼 겸 보낸 건데.”
뮤트가 피를 주륵 흘리며 휘청였다.
하나 그녀의 입가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직접 처리해 주고 싶었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
말을 잇던 그녀의 발음이 서서히 뭉개지며 형체가 무너져 내렸다.
점토가 녹아내리듯 스르륵 허물어진 뮤트.
‘이번에도 분신이었나.’
에일은 급히 시선을 돌렸다.
아직 이곳의 사령석이 회수된 것 같지는 않았고, 그에게 그냥 넘겨줄 리도 없었다.
즉,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대신해 이곳에 있다는 것.
콰아아앙!
아니나 다를까 바닥이 부풀어 오르며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재빨리 몸을 던진 에일은 폭발을 피했고, 치켜든 장검에 성화를 불어넣었다.
하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짙은 안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키이이익!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의 울음소리.
흉측한 생김새의 괴물들이 안개 속에서 튀어나왔고, 에일은 급히 무기를 들어 놈들을 베었다.
하나 한 번에 쓰러질 만큼 허약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숫자도 제법 많아 숨 돌릴 틈도 없이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그는 겨우겨우 몸을 피해냈다.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인 건가……? 아니, 소환수겠군.’
에일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달려들고 있는 괴물들은 저번에 상대했던 결사단원 대처의 소환수들과 유사한 면이 많았다.
물론 소환수들의 단순 스펙은 그때완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금지된 마법을 통해 소환한 괴물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장님을 상대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지.”
뒤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찾았다!’
말소리에 곧장 방향을 튼 에일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마주한 건 결사단의 마법사가 아닌, 코앞에서 날아드는 거대한 불덩이였다.
“젠장!”
콰아아아앙!
에일의 재빠른 반응 덕에 겨우 직격만은 면했다.
하나 그는 폭발의 여파에 날아가 바닥을 굴렀고, 엎어져 있을 새도 없이 달려드는 괴물들 탓에 곧장 몸을 굴려야 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군.’
안개 때문에 적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던 상황이었지만, 그는 방금의 마법으로 상대의 숫자를 파악해 냈다.
분명 괴물들의 소환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날아든 거대한 화염구.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준비하는 이중 캐스팅은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불가능했다.
당장 에일의 파티에 괴물 같은 재능을 지닌 리아조차도 거기까진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정도니 절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영역이었다.
“탐지 마법 전개.”
그의 예상대로 안개 속에 숨어든 이들은 둘이었다.
안개와 소환수들을 부리는 스모커, 탐지 마법에 높은 화력까지 지닌 아이큐.
두 명 모두 결사단의 일원이었고, 간부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확실히 골치 아프네.’
요란을 떨며 몰려드는 괴물들 탓에 두 마법사의 움직임을 쉽게 찾아낼 수도 없었다.
합을 맞추는 게 아주 익숙한 듯한 움직임이었고, 확실히 이 조합은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콰악!
상황 정리를 끝낸 에일은 거침없이 안개 속 괴물들을 베어 나갔다.
달려드는 괴물들은 하나하나 쓰러져 갔고, 아이큐가 쏘아내는 불덩이 역시 몸을 놀리며 피해냈다.
그 과정 속에서 체력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그의 몸은 벌써 서서히 패턴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한 치의 시야도 없는 상황 속에서, 달려드는 괴물과 등을 노리는 마법을 놀라운 반응속도로 피해내는 모습.
‘괴물 같은 녀석…….’
결사단의 마법사들조차 그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강한 적에게 찍어 눌리듯 패배한 적은 있어도, 비슷한 스펙의 적이 저런 식으로 버텨내는 건 그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뀔 건 없다.’
에일이 그들을 상대로 놀랍도록 선전하고 있는 건 맞았다.
하나 단지 그뿐이었다.
달려드는 소환수들을 베어나가고는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마법사들의 위치는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환을 이어나가고 있는 스모커의 마력이라면 얼마든지 충분했다.
금지된 마법의 우월함 덕에 소환에 필요한 대가도 적었고, 장기전으로 가면 몸을 엄청나게 움직이고 있는 에일만 지칠 뿐이었다.
이대로 갈수록 점점 유리해지고 있는 건 자신들이라는 것.
그렇게 시간이 더욱 지체되자 이젠 승리가 확실해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그들의 착각일 뿐이었다.
키이이익…….
느닷없이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한 괴물들.
놀랍게도 공포에 질려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이었다.
쉴 새 없이 베어 가던 에일이 숨을 돌리며 검을 슬쩍 내렸음에도 녀석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가… 갑자기 뭐 하는 거냐!”
당황한 스모커가 소환수들을 닦달해 보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스모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로서는 소환 마법을 익힌 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동안 공포를 느낀 적 따위는 단 한 번도 없던 그의 소환수들이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후, 슬슬 효과가 나오는 건가.”
스스스!
그사이, 공간을 가득 채우던 짙은 안개마저도 서서히 사라졌다.
“스모커 뭐 하는 거야!”
“무, 무슨……!”
스모커의 안개 마법조차도 풀려 버린 상황.
다시 마법을 시전하려 정신을 집중하려 해봤지만, 그는 자신의 팔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에일이 지닌 영웅급 스킬 ‘피투성이 광신도’.
적을 베면 벨수록, 주변의 모든 적에게 공포와 위축 스탯을 부여하는 효과를 지닌 패시브였다.
달려드는 괴물들을 베며 점점 쌓인 공포 스탯은 엄청나게 쌓여 버렸고, 공포 내성이 달려 있던 소환수들조차도 겁을 먹게 된 것이었다.
소환수들마저 그런데 같은 인간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집중력을 요하는 마법의 유지조차도 안 되었고, 새로운 마법의 캐스팅도 흐트러지는 정신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았다.
“너희들 상대를 잘못 골랐어.”
안개가 사라진 말끔한 방 안에서 에일이 검을 치켜세웠다.
소환수들을 부린다고 해도 공격 스킬을 통해 한 방 싸움에 특화되어 있다면 모를까.
그들처럼 전투 지속력이나 단순히 물량으로 상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케이스라면 에일이 그들에게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제, 젠장…….”
“뒤로 빠져!”
망연자실한 스모커를 밀친 아이큐가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하나 그녀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신을 짜내도 마력이 거의 모이지 않는 상황.
공포에 질린 그녀의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털썩!
온몸에 힘이 풀린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 어느 틈에…….”
그녀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떨고 있었다.
미리 알아차리기 굉장히 어려운 공포와 위축 스탯은 끝도 없이 쌓여 버린 뒤에 눈치챘다고 해도 그땐 이미 늦어 버린 뒤였다.
타악!
에일은 그들이 쥐고 있던 스태프들을 쳐냈다.
“설명할 시간이야 앞으로 많을 테고. 같이 좀 가줘야겠어.”
외부의 하수인들과 다르게 이들은 직접적인 결사단의 일원.
조금 더 전문적이고 진득한 대화를 위해, 이단심문소로 향할 소중한 정보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