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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78화 (178/227)

178화 소리 없는 전쟁 (2)

“이걸로 220!”

덜컹!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에일은 붙잡혔던 마지막 이단을 처형하며 레벨업했다.

최근 들어 지역과 레벨대를 가리지 않고 부쩍 늘어난 PK범들 덕에, 그의 스탯까지도 풍족해지고 있었다.

화산 지대에 들어선 뒤 벌써 수일이 지난 시점.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홀로 PK와 몬스터 사냥과 병행하며 오랜 시간 활동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 에일은 이미 북부 설원과 남부 늪지대에서도 멀쩡히 살아 돌아온 몸이었다.

무려 국경 밖 오지를 두 곳이나 경험하고 왔던 터라, 왕국 내의 악명 높은 지역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뭐, 딱히 불편하다 싶은 건 없었으니.’

사방에 흐르는 불과 용암의 열기가 압박하는 화산 지대에서 그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투를 이어갔다.

오랜 사냥에도 전혀 페이스를 잃지 않고 220레벨을 달성하고 만 것이다.

저번에 마주한 결사단과의 싸움 이후, 세 번의 전투가 더 있었다.

그를 추적해 온 결사단원들은 예상 못 한 금단 마법들로 제법 애를 먹이긴 했지만, 결국엔 모두 불꽃 속에서 참회의 기회를 받았다.

여신의 은총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덕일까.

어찌나 좋아하는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할 정도였고, 자발적으로 조직에 대한 정보들을 토해 냈다.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정보들은 모두 각지의 이단심문소와 협력 관계의 길드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제 어중이떠중이들을 보내는 건 소용없다는 걸 알았을 테고……. 슬슬 간부가 따라붙어 줘야 할 텐데.’

결사단의 규모는 조직원들을 마구잡이로 쏟아 넣을 수 있을 만큼 크진 않다.

그들이 대륙 전역에 파고든 영향력은 예상 이상이었지만, 하수인이나 정신 조작에 당한 정보원들만 많을 뿐이었다.

이젠 간부가 그를 노리고 접근해 올 때였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 놈들의 특성상, 꼼꼼히 살피고 견적을 잰 다음에야 모습을 드러낼 터.

분명 승리를 확신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 놓을 테니 꽤나 골치가 아플 것이다.

하지만 월척을 낚아내기 위해선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뭐, 때가 되면 오겠지. 슬슬 나가 볼까.”

[‘화산의 지배자’가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공용 교단 공헌도 +50]

에일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룡, 라자갈이 약간의 공헌도를 찔러준 모습.

누가 화산의 지배자 아니랄까 봐 그는 이곳 화산 지대가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하나 이 주변 사냥터에서 최대 효율을 뽑아낼 단계는 이미 지난 뒤였다.

아무리 에일이라도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이런 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상황을 루가 용납할 리 없었다.

[‘빛의 심판자, 루’가 신격들의 말을 무시하라며 당신을 재촉합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100]

루가 두 배의 공헌도를 건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쓸데없이 타신격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서둘러 이곳을 떠나 성장세를 이어 나가길 원하는 모습이었다.

하나 자존심 센 라자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화산의 지배자’가 발끈하며 추가 후원금을 지급합니다!]

[공용 교단 공헌도 +200]

[‘빛의 심판자, 루’가 코웃음 칩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2,000]

[‘화산의 지배자’가 움찔하며 잔고를 확인합니다.]

‘…….’

잠시 자리에 멈춰선 에일이 기다려 봤으나, 라자갈이 보낸 메시지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무래도 지갑 사정상 더 쏟을 공헌도는 없는 듯했다.

워로드에서 둘째가는 메이저 교단인 불의 교단도 규모가 작은 곳은 결코 아니었다.

하나 에일이 자신의 사도인 루와 달리, 구경꾼일 뿐인 라자갈이 투입할 수 있는 자본엔 한계가 있었다.

[‘생명의 어머니’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화산의 지배자’가 으르렁거립니다.]

투박거리는 신격들을 뒤로하고 에일은 화산 지대를 빠져나가 인근 도시로 향했다.

미리 다음 사냥터를 봐두긴 했지만, 그에 앞서 유저와 몬스터를 사냥하며 엄청나게 쌓인 전리품들을 다시 비워야 했다.

경매장과 상점에 들러 물건을 모두 털어냈고, 두둑한 골드를 챙겨나올 수 있었다.

경매장에 올린 장비 아이템들은 아직 팔리지도 않았지만, 상점에서 처분한 것들로도 상당했다.

역시나 레벨이 높아지자 벌리는 골드의 액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사냥터 수준에 따른 몬스터 간 보상 차이는 물론, 200레벨대에서 어중간한 장비 세팅을 하고 다닐 만한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걸어 다니는 돈덩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건 스킬북인가…….’

시선을 돌린 그가 눈앞에 화면을 띄우자 활성화된 새로운 스킬란이 반짝이며 공란으로 놓여 있었다.

220레벨이라면 새로운 습득 스킬을 한 가지 더 배울 수 있는 시점.

하나 그가 가지고 있는 스킬북이라고는 붉은빛 스킬북 몇 권 정도뿐이었다.

책들을 잠시 내려다보던 에일은 스킬북에 손을 뻗었다.

파아앗!

‘역시…….’

지니고 있던 스킬북들을 모두 사용해 봤지만, 습득할 만한 스킬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은 각종 퀘스트와 보스에게서 얻은 전리품으로 어찌어찌 채워 넣었다고는 해도, 원래 상위 등급 스킬들로 스킬창을 채운다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에일의 높은 기준점에 맞춰 스킬창을 영웅과 유일급 스킬들로 채워 넣는 일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일반 유저들은 쓸 만한 희귀 등급 스킬 하나조차 얻기 어려워하는 게 정상이니 말이다.

어지간한 상위권 유저들조차 이 정도 스킬 구성을 갖추기란 불가능했다.

최소 랭커들 정도는 되어야 비슷해질 정도였고, 그마저도 전설 등급의 스킬 앞에 무력해졌다.

구도자의 열성.

선택할 수 있는 스킬의 폭을 확 넓히며, 무한한 잠재력을 선사한 전설급 스킬.

직업의 제약을 하나 깨부순 거나 다름없었고,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신성 마법의 위력이 확 달라졌다.

‘신성 마법? 검술? 패시브로 기초를 좀 더 다지면… 아니, 근접전에 대비해 체술 쪽을 조금 더 보강할까.’

머릿속으로 바란다고 나오는 스킬 시스템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패시브와 액티브, 스킬 분야 간의 선택지 차이 정도는 미리 고려해 놔야 했다.

“에일 님, 일은 잘되고 계신가요?”

그때 느닷없이 뒤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이미 들은 적 있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에일은 뒤를 바라봤다.

“공주님……?”

“오래간만입니다.”

반가운 듯 손을 흔든 세이아가 다가왔다.

인적 없는 뒷골목에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이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던 때와 비슷했다.

하나 그때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호위는 어디 갔습니까?”

“도시까지 오는 동안만 동행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려면 이편이 나을 테니까요.”

“아니… 아무리 공주님이라도 요즘 같은 때에는 위험하십니다.”

에일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아무리 막 나가고 있는 왕자라 해도, 대의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기에 쉽게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섣불리 손을 댔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직접 손을 쓸 수는 없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요즘같이 흉흉할 때에 직계 왕족이 홀로 이렇게 나돌아 다니는 건 여지없이 위험한 선택이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어요?”

“음…….”

의아함을 느낀 에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왕족인 그녀에게 대놓고 앞에서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전에 봤던 치밀한 모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안일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카앙!

에일이 던진 단검이 그림자로 날아갔고, 그 안에 숨어 있던 남자가 단검을 튕겨냈다.

그림자 속에서 걸어나오며 보랏빛 후드를 쓴 결사단원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는 결사단의 간부 중 하나인 ‘예거’였다.

붙잡은 결사단원들의 정보를 통해 알아낸 얼굴이었으니 확실했다.

‘간부가 나타난 건 좋은데 하필 이럴 때……!’

에일의 표정이 구겨졌다.

결사단의 간부가 나타난 게 하필 호위 하나 없는 공주가 옆에 붙어 있을 때라니.

그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었다.

“정말 근처에 호위가 없다는 건 확인했다. 뻔한 함정인 줄 알았는데 이런 멍청한 짓을 할 줄이야……. 이거 뜻밖의 수확이군, 일이 훨씬 쉬워지겠어.”

“이단마법사인가? 나를 어쩔 셈이지?”

세이아 공주가 당당히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날 건드리면 오른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래, 일이 너무 커지면 골치 아프니 죽이진 않을 거다. 하지만 정신 지배를 걸어 두면 훨씬 깔끔하게 일이 처리되지.”

“왕가의 마법사들이 그것 하나 눈치채지 못할 것 같나?”

세이아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왕실 마법사들의 수준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는바.

온갖 일들을 벌이던 결사단도 감히 왕궁 내에선 아무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것도 그들의 존재 탓이었다.

그것도 무려 왕족에게 걸린 정신 지배 저주 따위는 단박에 알아챌 것이었다.

“멍청하긴, 고대 정령도 조종하는 게 우리의 마법이다. 사령석의 힘을 빌리면 그깟 왕실 마법사들 따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

“그런 수가 있었나…….”

고개를 끄덕인 세이아가 빠르게 수긍했다.

하지만 이런 위급 상황 속에서 그녀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 에일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에일 님, 미리 이야기 못 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세이아가 그에게 낮게 말했다.

[왕가의 돌발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

.

.

‘이건……?’

그의 앞에 생겨난 퀘스트 메시지.

하지만 그 밑에 쓰여진 퀘스트의 내용은 그의 예상 밖이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처음부터 알고서…….”

끄덕.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세이아의 고개가 말없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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