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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216화 (216/227)

216화 팀 플레이

“너 말을…….”

깜짝 놀란 에일이 네슈아를 바라봤다.

유론과의 전투 중 갑작스러운 네슈아의 등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놀란 것은 네슈아가 직접 말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림자 교단의 소속으로서 침묵 페널티를 지니고 있을 터였는데 그는 분명히 자신을 향해 말을 걸었다.

여러 차례 함께했던 네슈아였지만 목소리는 완전히 처음 듣는 것이었다.

“뭔가 좀 어색하다?”

“뭐라는 건지…….”

에일의 실없는 반응에 네슈아는 고개를 저었다.

“교단을 나온 건 아닐 테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야? 신격에게 페널티를 받을 텐데?”

“난 원래 그런 거 신경 안 써. 단지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아도 됐을 상황이었을 뿐이지.”

네슈아가 간단히 답했다.

애초에 그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림자 교단에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들어간 것이었다.

‘하긴 아무리 교단의 원칙이라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 엄격하게 따지긴 무리겠지.’

원칙이라고는 해도 중대한 위반 사항이 아니라면 약간의 페널티를 감수하면 그만이었다.

그림자 교단의 내부 사정은 워낙에 알려지지 않아서 정확히 짐작은 할 수 없긴 했지만 신격의 변덕이나 상황에 따라 페널티를 덜 받는 것 얼마든지 가능했다.

당장 에일만 해도 여러 차례 경험이 있었다.

간혹 마주한 아군 랭커들 중 낙인을 찍힌 경우도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마찰을 빚지 않아도 넘어가 주었다.

물론 아무리 사도인 에일이라 해도 성전이라는 중대한 사안이 아니었다면 어느 정도의 페널티를 받았을 것이다.

일곱 신격들의 입지까지도 걸린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는 그들도 어느 정도 봐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보단 앞에 집중해. 잡담이나 할 만한 상대는 아니니까.”

“…그래.”

그들의 앞에는 어느새 박차고 일어난 유론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전 맥없이 기습을 허용한 것이 꽤나 자존심이 상한 듯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저건 또 뭐하는 놈이지?’

불청객의 모습을 살핀 유론이 고개를 까닥였다.

공교롭게도 방금의 일격은 전혀 방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한 것이었다.

전쟁터나 다름없어진 도시 한복판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 누군가 기습을 해 올 수 있다는 것쯤은 고려해 두고 있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살짝 짜증이 났다.

‘웬 본 적도 없는 놈이 끼어들어서.’

이미 최상위 유저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알려져 있고 100위권에 진입하기까지한 에일과는 달랐다.

네슈아의 경우 유명세는커녕 아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켈베로스의 길드장인 유론이라고 해도 랭커 목록 쯤은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고 제법 신경을 쓰고 있는 편이었다.

그가 랭커가 아니라는 것쯤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잘 쳐줘 봐야 준랭커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두각을 드러낸 적 없는 수준이라는 것.

아예 에일을 도울 보조 전문 직업이라면 또 모를까 고작 그런 수준의 도적 하나가 합세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나 그의 그런 생각은 막상 둘과 맞부딪히자 달라졌다.

콰드드득!

‘이건… 그림자 교단의 전문 직업인가.’

네슈아의 단검을 맞댄 유론이 생각했다.

단검에 피어올라 있던 검은 서리의 냉기가 그의 창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에일의 장검에 피어오르던 하얀 불꽃과는 정반대인 동시에 어딘가 비슷한 모습었다.

‘빛의 교단과 그림자 교단, 양쪽의 전문 직업인가 보군. 두 교단이 사이가 좋다는 건 처음 듣는데.’

어둠의 신인 힌의 전문 직업, 그림자 파수꾼.

그림자 교단이 워낙 마이너한 탓에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도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에일!”

“알았어!”

콰아아아아!

시선을 주고받은 에일과 네슈아가 합격기를 날렸다.

먼저 네슈아가 그림자 쐐기 스킬을 발동해 상대의 행동을 묶고 에일은 그곳을 향해 불의 세례를 뿜어낸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꿈쩍도 안 하던 유론의 체력이 주르륵 줄어들었다.

지금 팀플레이를 보이는 둘의 호흡은 이미 어지간한 전문 태그팀 이상의 것이었다.

카앙!

“너, 정체가 뭐냐.”

유론은 먼저 바짝 다가선 네슈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호흡은 둘째 치더라도 조금 전부터 거슬리던 점이었다.

처음 그의 예상과는 달리 네슈아의 실력은 놀랍게도 평범한 준랭커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랭킹권 진입은 물론이고 에일과 거의 동급의 실력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나 네슈아는 분명 랭킹에도 들지 못했고 이런 실력을 보이기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한테 말하느라 페널티가 부과되는 건 아까운데.”

콰악!

네슈아는 대화를 매몰차게 거절하며 창을 튕겨 냈다.

에일이 묻는 것도 아니고 굳이 적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사실 그가 아직도 랭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힌의 사도는 특성상 유저 랭킹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침묵과 그림자의 은총.

사실 아무리 노력해도 랭킹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건 대부분의 유저들에겐 저주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나 유저들의 성향은 다양한 법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아하던 네슈아에게 만큼은 힌의 사도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메리트나 다름없었다.

후웅!

뒤로 크게 물러난 네슈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에일이 정면에서 붙어 주는 동안 네슈아는 기척을 완전히 감춘 채 상대의 배후를 노렸다.

‘아까부터 성가시게 하네.’

어김없이 사라진 그의 모습에 유론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역시 첫 기습에 당했던 것은 결코 방심이나 우연 때문이 아니었다.

네슈아의 기척을 숨기는 솜씨만큼은 워로드에서 본 그 어떤 랭커들보다도 뛰어났다.

에일의 광기 스탯이 놀라운 성능을 보이듯 네슈아의 기척 삭제 능력 또한 전투 속에서 엄청난 진가를 발휘하는 무기였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에일만을 신경 쓰고 있다간 언제 당할지 몰라 주변 시야를 확보해야 했고 그조차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마지막 수 없이도 충분히 해볼 만해.’

당연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에일은 그 점을 철저히 이용했다.

언제든 후방을 노리는 네슈아라는 공격 옵션이 생긴 이상 조금 전처럼 호락호락하게 밀려 주지 않았다.

에일의 동조율도 어느덧 140까지 끌어 올려진 상태였다.

콰과과광!

건물이 박살 나며 유론은 옆 길목으로 밀려났다.

정면에서 에일의 장검이 날아왔고, 창을 휘둘러 그를 받아 냈다.

하지만 그때 기척도 없이 뒤에서 나타난 네슈아가 단검을 휘둘렀고, 직전에야 눈치챈 유론은 급하게 탈출기를 사용했다.

파앗!

“하…….”

겨우 합공을 피한 유론은 잠시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2 대 1은 골치 아팠다.

어쭙잖은 상대라면 수백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도륙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는 제대로 PVP를 할 줄 아는 랭커급 유저 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귀찮게 공주를 찾아다니기 보단, 적당히 에일과 놀아 줄 셈이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겠네.’

유론은 창을 바짝 들어올렸다.

* * *

“뭐야, 저 녀석들 생각보다 제법이잖아?”

세 유저 간의 전투가 한창 벌이지고 있을 무렵.

건물 옥상에서 걸터앉아 그들의 모습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가 있었다.

아폴리온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인 루칸이었다.“유론도 진심으로 나올 생각인 거 같고…….”

다소 거리가 있긴 했지만 대강 내려다보이는 유론의 낌새를 보아 전력을 다할 작정인 것 같았다.

일방적이던 싸움이 2 대 1이 되면서 꽤나 재밌게 흘러가더니 이젠 아끼던 스킬들까지 다 내보일 작정인 듯했다.

원래 여유롭게 정리할 수 있는 상대에게는 쿨타임이 긴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게 당연했고, 둘의 합공은 전력을 꺼내 들지 않으면 그조차 부담을 느낀다는 뜻이었다.

점점 더 재밌어지는 상황에 그는 팔짱까지 끼며 유심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때 그에게 무시할 수 없는 연락이 하나 들어왔다.

아폴리온을 이끄는 길드장, 크루거의 연락이었다.

-루칸?

“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찾고 있던 표적이라도 찾았어?”

-아니, 다른 일이다. 지금 유론이 있는 쪽에 있지?

“그래, 에일하고 어떤 이름 모를 녀석 하나랑 동시에 싸우고 있어. 2 대 1이긴 해도 꽤…….”

-그럼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상황부터 빠르게 마무리 지어.

구경하지 말고 개입하라는 크루거의 지시가 떨어졌다.

“뭐? 왜? 간만에 재밌는 녀석들을 찾았는데 안 지켜보려고?”

-그쪽 일은 이미 끝났어. 어차피 이번 일만 끝나면 의미 없어지는 거니까. 아직 공주가 발견된 것도 아니니 확실하게 처리하는 편이 나아.

“오케이, 알았어. 어서 처리하고 찾으러 가지 뭐.”

입맛을 쩝 다신 루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장과의 메신저는 끊어졌고, 주먹을 이리저리 풀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길드장의 명이 떨어진 이상 얌전히 지시를 따르는 것 외에는 고려할 가치가 없었다.

쩌엉!

하지만 그 순간 기다란 검이 내려찍히면서 쇳소리를 자아냈다.

재빨리 팔을 들어 올린 그는 주먹의 건틀릿으로 막아 내긴 했지만 묵직한 충격이 그를 짓눌렀다.

단순 힘만 강한 것이 아니라 받아내는 루칸조차 순간 위험했을 만큼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이건…….”

루칸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야 뻔했다.

현재 이 벨하벤 도시 안에서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적대 유저라면 하나 밖에 없었다.

철십자의 길드장, 시르.

그녀가 이 자리에 와 있었다.

“적당히 날뛰어야지. 남의 도시에 침입해 놓고 주인 마냥 편히 돌아다니면 곤란해.”

“시르, 제 발로 먼저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너희부터 제거해야 일이 편해질 테니까.”

“하하, 좋아. 하지만 지금 여기에 나타난 게 과연 좋은 수일까? 저쪽 싸움이 끝나면 유론까지 함께 상대해야 하는데. 감당이 되겠어?”

“글세…….”

시르는 아직 아폴리온이 전력을 드러낸 이후로, 최고 간부들과 직접 맞붙어 본 적이 없었다.

하나 루칸 만으로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런 상황에 유론까지 합류하면 승산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단순한 오착이 아니었다.

그녀가 루칸을 막으려 이 곳에 나타난 건 철저히 계산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어쩌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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