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팀플레이 (3)
쩌저저저적!
파괴된 도시의 거리와 건물들이 통째로 얼어붙었다.
전방이 검은 얼음으로 가득 뒤덮인 광경.
네슈아가 사용한 대규모 광역 스킬이 앞을 향해 뻗어져 나가 만들어 낸 모습이었다.
그에 휘말린 유론도 온몸이 얼어붙게 되었다.
날아드는 공격을 보자마자 몸을 날려 피하려 했지만 스킬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피할 수 없었다.
스킬이 시전되는 동시에 발산된 한기만으로도 순간 이동 속도가 느려졌던 것은 덤이었다.
‘이건 무슨…….’
공격에 휘말린 유론은 물론 에일마저도 그 광경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의 위력과 효과라면 굳이 재 볼 것도 없이 최소 전설 등급의 공격 스킬이다.
자신만 얻으라는 법은 없었지만 곁에서 여러 차례 함께 하던 네슈아가 전설 등급의 스킬을 얻은 뒤였을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XX…….”
짧은 말을 남긴 유론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 명을 상대로 전투를 펼치던 상황.
에일이 정면에서 달려들며 시선을 끈 데다가 예상치도 못한 전설급 스킬에 당했으니 대처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아무리 그가 6대 길드장의 위치에 있던 강자라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함없었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신격의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랭커들을 대상으로 주어졌던 루의 퀘스트에서 부분 보상이 주어졌다.
일반 랭커들과는 격이 다른 대어를 잡은 만큼 커다란 보상들이 주어졌고, 전투를 지켜보던 신격들의 후원까지 이어졌다.
아마 함께 싸운 네슈아에게도 그의 신격으로부터 후원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게 그였으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루 뿐만 아니라 이미 연결된 신격이 굉장히 많은 편인 에일이 더 벌이가 좋을 확률이 높긴 했다.
콰앙!
그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두 명의 랭커가 나타났다.
루칸과 시르.
랭킹 최상위권을 장식하고 있는 두 실력자였다.
“하? 이거 완전히 예상 밖인데… 설마 유론이 당할 줄이야.”
먼지를 털어 낸 루칸이 슬쩍 시선을 옮겨 싸늘한 시체를 쳐다봤다.
달려드는 시르를 상대로 정신없이 전투를 벌이느라 순간 놓쳐 버린 탓에 유론이 당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유론이 둘에게 완전히 당해 버렸다는 것.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걸 제외하고도 그의 상태는 이미 강제 종료 처리가 된 뒤였다.
“정말 네 말이 맞았네.”
“그럼 내기의 값을 치러야겠지.”
시르의 검이 루칸의 목을 가리켰다.
그러자 에일과 네슈아의 시선도 그에게 꽂혔다.
“살벌하게 굴기는.”
파앗!
단숨에 셋을 상대해야 하는 구도가 되어 버리자 루칸은 등을 돌려 잽싸게 도망쳤다.
물론 시르는 그를 간단히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단숨에 가속 스킬을 사용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카아아앙!
“읏…….”
하지만 불청객 하나가 끼어들었다.
몰래 기척을 숨기고 있던 아폴리온의 랭커가 나타나 시르에게 도끼를 내려찍었다.
물론 충분히 반응해낸 시르는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 틈에 루칸이 그녀를 앞질러 달아났다.
‘이런…….’
이를 빠득 간 시르는 장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거기에 뒤따라오던 에일까지 그녀를 거들자 길을 막던 랭커를 간단히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버리는 패였을 뿐.
애초에 800위대에 불과한 그를 혼자 남겨두고 살아 돌아올 거라 생각하진 않을 터였다.
부하의 도움 덕에 루칸은 자리 피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보험을 들어 둔 건가… 루칸을 놓친 건 아쉽긴 하지만 결국 사고를 쳤네. 너희 둘이서 유론을 쓰러뜨리다니 말이야.”
“그건…….”
털썩!
말하던 에일의 시선이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돌아갔다.
가만히 서 있던 네슈아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뭐, 뭐야?”
놀란 에일이 그에게 다가갔다.
일반적으로 전투 뒤에 갑자기 쓰러질 일이라면 독이나 출혈 정도의 상태 이상에 걸렸을 경우가 다였다.
하지만 유론은 그런 상태 이상을 사용하는 유저가 아니었다.
함께 싸웠던 에일도 정면에서 유론의 맹공을 받아 내느라 상처를 여러 번 입기는 했지만 그런 상태 이상이 생긴 적은 없었다.
“죽지는 않은 듯하네.”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시르가 말했다.
네슈아의 상태를 살핀 에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창으로 보이는 체력 상황으로 보아 목숨은 확실히 붙어 있었다.
이 정도면 죽음과는 한참 거리가 멀 만큼 넉넉한 체력이었다.
“그렇다면 왜……?”
“방금 사용한 스킬의 반동인가?”
시르의 말에 네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행동 불능 상태라 앞으로 1시간 동안은 못 움직여.”
“길드엔 들어오지도 않고 혼자서 행동하겠다는 녀석이 그런 이상한 스킬이나 배우고 다니다니.”
시르는 쓰러져 있는 자신의 동생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녀의 이상한 스킬이라는 표현은 정확했다.
실제로 워로드에서 스킬의 반동만으로 행동 불능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도 1시간이라는 매우 긴 시간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돌봐 줄 파티원이나 동료가 있다면 모를까 가뜩이나 혼자 다니는 게 네슈아에게는 너무나 큰 페널티였다.
“그럼 전설 등급 스킬이 나왔는데 내다 버려?”
네슈아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비록 페널티가 꺼림칙하다고는 하나 전설 등급의 스킬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등급이 등급인 지라 페널티를 가볍게 뛰어넘는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기 마련이었다.
거기다 그가 택한 ‘그림자 파수꾼’의 직업 전용 스킬이기까지 해서 더더욱 버릴 수 없었다.
방금 보였던 일격만 해도 스킬의 위력만큼은 말이 필요 없었다.
“확실히 신기하긴 하네. 그런 스킬이 있다니.”
“원래 전설 등급 스킬은 위력이 강한 대신 그에 동반한 페널티도 강한 게 많아. 쿨타임이나 반동 대미지 같은 정석적인 페널티도 있지만 이렇게 행동 불능 같은 특이한 것도 있는 거지. 스킬의 효과든 반동이든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범주를 넘은 경우가 많거든.”
세 명 중 전설 등급을 가장 먼저 얻었던 경험자답게 설명을 이어 가던 시르는 쓰러져 있던 네슈아를 툭 발로 찼다.
그러자 인상을 팍 찌푸린 네슈아가 그녀를 째려봤다.
“그만해라.”
“싫은데?”
툭.
이번엔 발을 뻗어 머리를 건드렸다.
그러자 순간 뒤 목이 당겨 온 네슈아는 고개를 젖히며 눈을 감았다.
행동 불능 상태인 탓에 움직일 수가 없으니 반격할 수도 없고 당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여기서 왜 싸우는…….”
에일은 둘을 이해 안 간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편이 나을 테니… 다시 결계 쪽을 해결할 생각 맞지?”
시르의 물음에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막던 유론을 해치우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다시 본 목적으로 돌아가 마법진들을 무력화시키러 움직여야 했다.
“일단 이 녀석부터 좀 치워 놓으라고 연락해야겠네.”
“짐 덩이처럼 내려다보지 마.”
시르의 미묘한 시선에 네슈아는 까칠하게 반응했다.
어쨌든 움직이기에 앞서 꼼짝하지 못하는 네슈아를 안전한 곳에 옮겨야 하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6대 길드자인 유론을 처리한 공로만큼은 확실하니 그녀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그사이 에일은 시르와 개인 화면을 공유하며 도시의 지도에서 가장 의심 가는 위치들을 찍어 주었다.
“이미 한 곳 찾아서 제압했으니 아마 그중에 몇 곳에는 확실히 숨어 있을 거야.”
“좋아, 이제부턴 우리도 거들겠어.”
예상 못 한 습격에 급히 대응하고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느라 바빠 함께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이었다.
철십자의 입장에서도 역시 도시를 가둔 결계를 해제하는 게 급선무였고 길드장인 시르도 직접 나서 추적할 생각이었다.
* * *
대도시 벨하벤의 거대한 지하 수로.
그 안엔 추적자들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숨어다니는 세 명의 일행이 있었다.
세이아를 데리고 피신하는 로덴과 리아.
그들은 복잡한 지형 속에 몸을 숨기면서도 들키지 않도록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 다녔다.
현재 추적자들은 모든 장소를 체크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고, 한 곳에만 틀어박혀 숨어 있다면 결국엔 들킬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심장에 무리가 가는 숨바꼭질 중, 그들의 화면에 동시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에일이 보낸 메시지였다.
시르를 포함한 철십자의 랭커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벌써 목표치의 절반 이상을 해치웠다는 좋은 소식이었다.
“생각보다 의외네요. 결계를 노린다는 걸 알면 아폴리온에서 마법사들을 철저히 지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지켜야 할 곳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였겠죠. 이렇게 도시 전체에 걸쳐 거대한 결계를 펼치려면 여기저기 많은 인원이 퍼져 있을 테고, 반면 저희는 그중에서 몇 곳만 파괴하면 그만이니까요. 그곳에 모두 상위 랭커들을 하나하나 배치하기엔 무리가 있을 겁니다. 뭐, 어쨌건 숨어 다녀야 하는 저희 입장에선 다행인 소식이에요. 도시를 덮은 결계에도 균열이 보인다고 하니까요. 조금만 더 버팁시다.”
“네. 이대로…….”
힘차게 말하려던 리아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순간 앞길에서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걸 발견한 탓이었다.
“……!”
이제 막 위치를 옮기려 했던 둘은 허둥지둥 구석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뒤에서 쫓아오려던 세이아 공주까지 안으로 급히 구겨 넣었다.
벽 틈 사이로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인 그들은 감각을 집중했다.
건너편에선 뚜벅뚜벅 걷는 소리만 들려왔다.
누가 근처에 따라붙은 건지 슬쩍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랭커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저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성 장악은 끝난 모양이지?”
“그러니까 내가 여기 왔지. 철십자 녀석들도 정신이 없으니 내성 쪽은 일찌감치 포기한 모양이야. 도시 전체를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계획대로 되어가는군.”
‘이 목소리는……?’
목소리의 정체를 유일하게 눈치챈 로덴이 동요했다.
지금 근처에 있는 이들은 무려 아폴리온의 최고 간부 둘, 사일러스와 다고스였다.
현재 랭킹 2위와 5위의 최상위 랭커들.
걸리면 뼈도 못 추릴 상황에 그는 바짝 긴장했다.
“결계를 유지하던 이단 마법사들이 공격받고 있는 모양인데 그쪽으로는 안 가 봐도 되나?”
“나 하나 그쪽으로 가봤자 별 의미도 없으니까. 그리고…….”
사일러스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결계를 무너뜨리려 해 봤자 헛수고잖아. 결계가 무너질 만큼 마법사들을 제거한다 해도 미리 들었던 보험 덕에 최소 1시간은 버틸 테니… 그때쯤이면 이미 상황은 끝나지.”
“설마 바로 절멸 마법진을 사용할 셈인가?”
“그래. 그것 때문에 내성을 장악한 거니까. 도시의 가장 중심부에서 뻥 터트리려고 말이지.”
“원래 계획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 두는 거였을 텐데.”
“공주 쪽이 의외로 지지부진해서 크루거가 빨리 마무리를 지을 거라고 하더라고. 절멸 마법이 발동될 내성 안쪽만 빼면 도시가 싹 쓸려 나갈 테니 이젠 공주가 어디 숨어 있건 상관없겠지.”
“…….”
충격적인 사실에 숨죽이던 로덴과 리아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점점 멀어져 가는 간부들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