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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227화 (완결) (227/227)

227화 에필로그. Cara Mia Addio!

끄아아아악!

활활 타오르는 화형대가 밝게 빛났다.

비명 소리가 잦아들었고 화형대는 새까만 흔적만을 남겼다.

뒤집어진 마차와 여섯의 시체들.

“안타깝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에일이 검을 회수하며 씩 웃었다.

여기에 널브러진 이들은 전부 PK를 업으로 삼고 있는 유저들이었다.

숲속에서 마차를 태워 주며 이런 외진 곳까지 유인한 걸 보아 자기들 딴에는 나름 머리를 굴린 모양이었다.

하나 하필이면 그 상대로 노린 것이 에일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300대의 레벨 보유자에다 워로드 공식 랭킹 1위.

사실상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적을 마주한 셈이었다.

유저들이 제법 많이 오가는 곳에선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닌 탓에, 그들도 에일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사정일 뿐.

에일은 생포한 이들은 물론, 이미 죽은 시체들까지도 남김없이 처형대에 올렸다.

‘두세 달 잠잠하더니, 최근 들어 또 늘어난 모양이네.’

소위 이단을 사냥하는 에일과 빛의 교단의 추종자들이 늘어나며, 그들의 타겟이 되는 범죄자들이 상당히 감소하던 때가 있었다.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 나갔으니 PK 유저들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워로드에 유입되는 유저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더욱 커졌고, 한탕 하기 위한 PK 유저들도 늘어났다.

‘뭐, 그럴수록 빛의 교단 입장에서는 맡게 되는 일도 많아지고 좋은 거지만.’

[‘빛의 심판자, 루’가 사도에 대한 드높은 신뢰감을 표합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800]

아이템들을 챙기던 에일의 눈앞에 루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적잖은 후원 금액과 함께 여신의 신뢰가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착 가라앉은 에일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 * *

벨하벤에서의 승리 이후, 진실은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유저들은 물론 왕국의 모든 NPC가 그들의 만행을 알게 되었다.

왕국 전체를 적으로 돌린 이상,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 해도 소용없는 법.

워로드의 아폴리온 길드는 공중분해 되었고, 6대 길드 중 살아남은 건 철십자를 비롯한 세 길드뿐이었다.

자연히 이후의 세력 구도는 그 세 길드의 삼파전으로 이어졌다.

아폴리온에 맞서 함께 싸웠다고는 하나, 그 이후까지 함께하라는 법은 없었고 또다시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반면 크루거를 제압한 장본인인 에일은 워로드의 랭킹 1위로서 중립을 지키며 빛의 교단을 이끌었다.

워로드 최고의 플레이어인 에일이 있는 곳에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

세이아 공주는 여왕이 되었고, 빛의 교단은 정식으로 왕국의 국교로 선택받았다.

그 덕에 교단은 유저들의 길드 제외한다면 왕가 다음 가는 최대 세력으로 변모했다.

왕의 은인이자, 알키오네를 물리친 최고의 랭커.

어찌 보면 에일은 유저와 NPC 양쪽 모두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위치 속에서 에일은 특정 길드가 워로드 전체를 장악하는 일 없도록, 균형 잡는 역할을 기꺼이 수행했다.

* * *

“…….”

멍하니 식사를 우겨 넣던 우진이 식기를 내려놓았다.

몇 달 전 마지막 싸움이 끝난 뒤, 그는 약속대로 각 길드로부터 성물 파편을 건네받았다.

나이트메어 길드가 지니고 있던 파편이나 아폴리온에게서 빼앗은 것까지 모두 모아 모든 성물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모인 파편들은 의식을 치른 뒤 하나의 성물이 되었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성물은 신격에 엄청난 양의 영향력을 주었고, 에일에게도 막대한 경험치와 보상을 남겼다.

그 어떤 퀘스트와도 타의 추종이 불가능할 정도의 보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도 잠시, 빛의 여신은 워로드상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왜 그렇게 된 거지?’

당시의 일을 떠올린 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단지 자리를 비웠다거나 사도에 대한 관심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시스템상으로 그녀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벌써 몇 달이나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로선 갑자기 그녀가 왜 사라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루가 단 한 마디 언질도 없이 사라진 뒤.

그녀를 대체할 새로운 신격이 ‘루’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대신 섰다.

새로운 여신이 기존의 모든 업무를 이어받은 덕에 교단에 타격이 있다거나, 우진의 플레이에 지장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게임 시스템상 업무나, 교단을 움직이는 것 그리고 후원이 주어지는 것도 모두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진에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째서.’

랭킹 1위 자리를 얻고 난 이후,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고 있었다.

하나 되려 그에겐 워로드를 시작한 이후 최악의 시간들이었다.

어째서인지 그녀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착잡함이 가시지 않았다.

‘성물을 얻고 난 뒤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지. 다 내 추측들이었을 뿐.’

루가 사라진 이후 그의 머릿속에선 한 가지 가설이 떠나질 않았다.

만약 알타리엘이 말한 자유라는 게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소멸’이었다면.

결국엔 게임 속 데이터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기에, 극단적인 선택지를 통해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그동안 그녀가 사실을 애써 감춰 왔던 이유도 모두 납득이 갔다.

자신이 그 사실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절대 루가 성물을 모으게 협력해 줬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왜 그래요?”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현성이 물었다.

간만에 게임 바깥에서 네 명이 모두 만난 자리였고, 모두들 반갑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하나 지금은 얼핏 보기에도 우진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식사 중 갑자기 바뀐 기색에 건너편에 앉은 다른 동료들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우진은 손을 저으며 애써 웃어 보였다.

미친 이단심판관이라는 이미지로 활동을 시작했던 이후, 겉모습을 조절하는 일에 익숙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일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에일, 로덴, 알리사, 리아.

지금 이 자리에 모인 4명의 플레이어는 마지막 전투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을 함께했다.

그것도 워로드 최고의 소형 공격대로 말이다.

온갖 고난도 레이드를 최소 인원으로 클리어하는 것은 물론, 신기록까지 갈아 치우며 최강의 파티로 거듭났다.

처음엔 어수룩하기만 했던 리아도 어느새 50위권 내의 하이 랭커가 된 지 오래였다.

“사냥 중에도 가끔 그러더니, 어디 몸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아뇨, 그냥 잠시 딴 생각을 해서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어, 저기 에일 님 얼굴 나온다!”

마침 리아가 가리킨 화면 속 뉴스엔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번 북부에서 잡은 현존 최고 레벨 필드 보스의 공략에 대한 이야기였다.

에일이 보스의 시체를 활활 불태우는 모습까지 화면에 나왔고, 일행은 키득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레스토랑 안의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까 크게 떠들진 못했다.

파앗!

뉴스의 화제가 바뀌자 이번엔 AI에 관한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워로드의 개발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개발사에서는 예전부터 줄곧 가상현실에 탑재된 완벽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현실에도 적극적으로 적용할 거라 이야기했던 바 있었다.

한데 알고 보니 게임 출시 전부터 관련되어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고, 사회적으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할 뿐 기술 자체는 이미 실용화까지 가능한 수준이라는 발표가 며칠 전에 있었다.

단순한 보조 도구로서가 아닌,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까지 만들겠다는 다소 과할지도 모르는 포부.

소식을 접한 사람들에겐 상당한 충격이었다.

물,론 다른 분야로도 입지를 넓히려는 개발사의 언론 플레이일 뿐이라는 말도 있었다.

하나 그것이 과장이건 아니건, 진보하는 세상은 언제나처럼 공상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부터 느꼈지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만 해도 이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빨라진 감이 있긴 하죠.”

현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정말 완벽한 AI라면 사람과 구별은 어떻게 할까요? 신체나 사고까지 모두 똑같아질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저기서 말하는 것처럼 피도 흐르고, 감정도 있다면…….”

“글쎄요. 꼭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요?”

“엑, 그래도 그건 좀…….”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누었다.

게임 속에선 수많은 NPC와 얼굴을 맞대며 지내는 게 익숙하다곤 해도, 그것이 현실에까지 적용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적응이 쉽게 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동료들의 잡담에도 우진은 또다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눈이 펑펑 내려 하얗게 물든 거리와 불빛 사이로 사람들이 어지러이 오가고 있었다.

“.……?”

우진은 인파 속에서 보인 누군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저 아래 거리를 걷고 있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드르륵!

깜짝 놀란 우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 괘… 괜찮다면서요?”

“미안, 급한 볼일이 생겨서!”

“갑자기 무슨…….”

우진은 의자에 걸린 외투를 챙기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무슨 일인지 묻는 현성의 말소리 따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계단을 타고 내린 그는 거리로 나와, 방금 보았던 사람이 향하던 방향을 필사적으로 쫓았다.

옷차림은 평소와 달랐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눈이 쏟아져 내리는 거리.

시선을 돌리자 코트 입은 긴 금발의 여성을 발견했다.

단숨에 달려간 우진은 거리에서 그녀의 팔을 잡아 세웠다.

“……!”

깜짝 놀란 여성의 표정.

한때 워로드의 일곱 신격이었던 그녀가 새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자신의 앞에서 분명히 숨 쉬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고,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미리 말 못 해서…….”

“아니, 됐어.”

손을 올린 우진은 그렁그렁한 루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민망한 듯 뺨을 붉히며 고개 숙였다.

새삼스러웠지만 아름다웠다.

“나 말야, 만약에… 아주 만약에라도 바깥에 나올 수 있다면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어. 그런데 잘 안 되더라. 이쪽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도와줄래?”

“그럼, 얼마든지.”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주 잡은 그녀의 손은 누구보다도 따뜻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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