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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3화 (3/175)

3화

준비행(03)

사부와 사제가 폐관에 들어서고 이틀 동안은 반응이 없었다.

비급을 읽고 가볍게 운기를 하며 천해공의 성질을 파악하는 듯 했다.

그리고 삼 일째 마*카*원 하나가 가동을 시작했다.

“사제가 먼저 시작했군.”

활성화된 마*카*원이 전해 주는 정보를 통해 복용자가 사제임을 알 수 있었다.

- 지금 활성 개체를 마*카*원 알파(α)로 명명합니다.

“베타(β)로 명칭 정정. 사부님이 계시는데 어디서 알파야, 알파는! 시건방지게.”

이도연으로 중원 무림에서 25년을 살아온 탓에 자연스레 꼰대 짓이 나온다. 하지만 중원 무림에서 호칭은 중요한 문제다. 사제 놈을 사부보다 더 위에 놓을 순 없지 않은가. 알아듣는 자가 나 하나인 호칭이라도 말이다.

- 베타로 명칭 정정 완료했습니다. 자극을 통한 운기 경로 각인에 들어갑니다.

농꾼이 마*카*원 베타의 운행 중계를 시작했다.

“흠. 저거 나랑 비교해서 어느 정도야?”

- 신체 반응을 보면 리퍼의 공력을 귀원공으로 전환 전을 기준으로 구 할 정도로 추측됩니다.

21세기의 잘난 과학력으로도 직접적인 내공의 계측은 불가능했다. 진기의 운행도 마찬가지. ‘기(氣)’라는 것을 감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도 무공을 파악하고 분석한다. 거기에 적절히 개입하여 무공의 숙달 속도를 가속화 시킨다.

내공을, 진기를 계측하지 못한다지만 그것들이 불러오는 신체적 생리 변화, 물리적 변화 등은 관측이 가능하다. 그것들을 이용해 진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 알파파 방출, 명정(明正) 상태로 유도합니다.

거기다 이런 생리 조작을 통해 내공 수련 보조가 가능하다.

명정 상태는 극도의 집중력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몰아지경(沒我之境). 20년 가까이 내공 수련을 한 내가 농꾼이 활성화되기 이전에 경험한 몰아지경이 손에 꼽을 정도.

하지만 농꾼의 보조를 받은 후에는 명령 한 번에 재현이 가능하다. 공력을 쌓는 속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제 녀석이 명정 상태에 들어선지 한나절이 흘렀다.

“내공 변화가 시작되는군.”

사제 녀석의 신체 반응이 변하고 있다. 내 몸을 통해 계측된 우리 일문 특유의 반응이 서서히 천해공 특유의 반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근데, 칠주야 동안 저 상태를 유지하는데 몸이 축나지는 않을라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운기만 칠주야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 영양 부족으로 일부 근육 손실이 예상되지만, 절정 무인의 회복력이면 3일이면 원상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카*원을 가동하면 회복 시간을 24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칠주야의 예상 시간은 리퍼의 경우였고, 대상자는 공력의 문제로 리퍼보다 다소 기간이 짧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괜한 걱정 말라는 소리다.

호법의 임무를 위해 예민하게 북돋은 감각에 미세한 인기척이 걸렸다.

- 나다.

사부의 전음이 귀를 울렸다.

잠시 후 사부가 최상층에서 내려왔다.

“네가 가져온 영단의 효과가 대단하구나. 저 녀석을 저리 쉽게 몰아지경에 이르게 하다니.”

과연 흑도에서 평생을 굴러 눈치 백단인 사부다. 사제의 몰아지경이 마*카*원에서 비롯됨을 바로 눈치 챘다.

“저는 약효에서 벗어나는데 칠주야 걸렸습니다.”

사부에게 어지간하면 저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는 것을 알려 줬다.

“흠.”

사부는 뭔가를 고심하는 눈치다.

“네 녀석이 수행했다는 곳이 어디냐?”

“예?”

사부의 물음에 얼척 없는 얼굴로 반문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수행 장소를 묻는다는 것은 그 이유가 뻔하지 않은가.

“방을 비우고 산중 수행 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녀석처럼 몇 달이고 할 생각 없다. 길어야 한 달이다.”

사부의 두 눈에 확고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가능할 것 같습니까?”

“영약이 내게도 동일한 효과를 낸다면 노려 볼 만하지 않나 생각한다.”

뜬금없는 내 물음을 알아듣고 찰떡 같이 대답하는 사부다.

사부는 마*카*원과 천해공을 통해 자신이 초극지경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 했다.

“해 떨어지고 가실 거지요?”

산중 수련을 택한 것은 사람들 눈을 피하겠다는 소리. 아니, 이번 폐관으로 얻을 성과를 숨기겠다는 속셈이다. 파룡당이 간을 보고 있으니 그것을 의식한 것이다.

사부와 사제가 폐관 수련을 시작한 것은 이미 소문이 났을 수밖에 없다. 나를 비롯한 청도방의 핵심 인사들이 사람들을 물린 상태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사제 녀석이 천해공을 얻고 출관을 한다면 바뀐 기세를 알아보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 정도면 사부와 사제가 함께 한 폐관 성과로 충분했다.

“철상이 놈 출관하면 사부는 요양(療養) 중이신 걸로 할까요?”

“그쪽은 네가 알아서 하고. 지도나 그려 보거라.”

“지도 보다는 안내 받는 것이 빠르겠지요.”

“네가 있던 곳을 들락거리던 사람이 있다는 게냐?”

사부가 슬쩍 인상을 썼다.

“‘응1’이라는 녀석이지요.”

= 응1 호출해.

말을 하는 동시에 손가락을 까닥였다. 내 눈에만 보이는 자판을 두드려 문자 명령을 내렸다.

“믿을 만한 녀석이냐?”

“사부님도 녀석을 보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해 떨어지고 하늘이 어둠에 물들자, 응1이 전각에 도착했다.

“이런 건 언제 또 길들인 게냐?”

사부가 물었다. 응1은 이름 그대로 매. 당연히 농꾼 녀석에게 감염된(?) 녀석이다.

***

- 마*카*원 베타 사용자의 공력 안정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마*카*원 베타가 가동되고 130시간이 지났을 때 농꾼이 사제의 상태를 알려 왔다.

“각성 유도해.”

몰아지경을 인위적으로 깨는 짓이다. 사제가 사실을 알면 길길이 날뛸 일이지만 녀석의 몸에 마*카*원 베타가 남아 있는 이상 몰아지경은 이제 일상이 될 것이다.

- 명정 상태에서 벗어나 공력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농꾼의 보고에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전각 위층으로 올라갔다.

“정신 차렸냐?”

“후우~!”

내 물음에 가부좌를 튼 사제가 호흡을 정리하며 눈을 떴다.

“사형, 위험하게 무슨 짓입니까?”

사제가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폐관 중인 장소에 불쑥 들어온 내 행동은 무림의 상식으로는 칼을 맞아도 할 말 없는 것이다.

“이제 호법은 필요 없지?”

“말 돌리시는 겁니까?”

사제가 인상을 썼다.

“밥 먹고 몸 추스르고 있어. 나는 사부님에게 가봐야겠다.”

“어?”

내 말에 사제가 주위를 둘러보며 실성을 내뱉었다. 같이 폐관에 든 사부가 안 보이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사부님은?”

“공식적으로 사부님은 사제를 위해 무리를 하셔 요양 중인 것이다. 나는 호법을 서느라 곤두선 심신을 추스르는 중이고. 아랫것들이 물으면 그렇게 대답해.”

“사부님은 다른 곳에 계신 겁니까?”

“내가 수행하던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굳이 그럴 필요…. 허, 설마?”

사제의 눈이 커졌다. 녀석도 대강 상황을 눈치 챈 것이다.

“저도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역할에 대해서는 방금 내가 말을 해줬을 텐데? 사부님이 괜히 자리를 옮겼을까!”

“아, 파룡당!”

무림 방파에서, 특히 힘이 우선인 흑도에서 초극 고수의 존재 유무는 중요한 일이다.

파룡당 입장에서는 청도방 같은 작은 방파에서 초극 고수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달갑지 않은 일.

“그러고 보니 조만간 파룡당 놈들이 찾아올 텐데, 사형보다 먼저 오면 어떻게 하오? 사부님이야 요양 중이라 둘러대도 사형은 얼굴을 내비춰야 하지 않소?”

사제의 말대로다. 사부가 파룡당과의 협의를 내게 떠민 이상 그들이 찾아오면 내가 맞이해야 한다.

“시간 좀 끌다가 그쪽이 참지 못할 기색을 보이면, 나는 광맥 살피러 갔다 둘러대.”

“쓸 만한 광맥이라도 찾으셨소?”

“시간 나면 못 찾을 것도 없다.”

정 안되면 엄마에게 흥국 인근 지역의 역사 자료를 요청하면 된다.

사제에게 그렇게 주의를 주고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수하들의 눈을 피해 장원으로 나오는 건 일도 아니다. 어쨌건 청도방은 흑도방파. 만약을 대비한 비밀 통로가 없을 수 없다.

“사부님의 상태는?”

어둠 속을 달리며 농꾼에게 물었다.

-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마*카*원 알파와의 연결은 끊어진 상태, ‘응1’의 외부 관측 데이터로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열 시간 전 마*카*원 알파의 신호가 사라졌다. 바로 ‘응1’을 보내 시각 정보를 공유하고 동굴을 살폈지만 사부는 외견상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어쨌든 마*카*원 알파의 신호가 사라진 게 중요했다.

농꾼이 활성화되고 이도연으로 살던 내가 박경표의 기억을 명확하게 떠올려 리퍼의 권한을 받은 이유도 이와 비슷한 사태 때문 아닌가 말이다.

“만약 사부님이 초극지경으로 올라선 것이라면, 엄마의 가설이 사실이 되는 거네?”

-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몇 가지 확인 절차가 더 필요합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팔 할 정도로 예측됩니다.

금정산의 거처까지 대강 백수십 리. 산길도 제법 있지만 나는 기본이 절정 무인에 육체 강화 시술까지 받은 몸.

쉴 사이 없이 다리를 놀리니 한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숨도 고르기 전에 동굴 앞에서 뒷걸음질 쳤다.

“야, 별 문제 없다며!”

농꾼 녀석에게 나지막이 항의한다.

- 리퍼의 생체 리듬이 극히 불안정합니다.

“넌 이 기세가 안 느껴져?”

동굴 안에서 넘실거리는 기파가 자꾸 내 발걸음을 뒤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 초극 고수의 기세에 노출된 생체 변화로 샘플화 합니다. 다른 샘플의 데이터와 상이점이 많습니다. 특이 샘플로 분류합니다.

맞다. 이 녀석은 기의 직접적인 측정이 불가능하지.

일단 기세의 범위 밖으로 물러나 동굴 입구를 관찰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냥 방 내에서 하셨으면 난리 났겠군.”

전각 주위의 사람을 물려봐야 소용없었다. 청도방의 장원이 거대 방파처럼 둘레 수백 장의 규모도 아니니.

- 야생동물인 응1의 생체 리듬에 큰 변화가 없음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지 않은 무인들은 느끼지 못할 가능성도 큽니다.

“기감이 좋은 놈들은 느낄 수도 있지. 그나저나 언제까지 저러실 것 같아?”

- 알 수 없습니다.

마*카*원 알파와의 연결이 끊어졌으니, 아무리 농꾼이라도 사부의 상태를 알 도리가 없다.

“그냥 방에서 기다리는 것이 나았으려나?”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사부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

***

금정산에 오른 지 삼 일.

동굴 안에서 퍼져 나오는 기세가 사그라지고 있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웬 놈이냐!”

동굴 안에서 사부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사부님, 제자 도연이옵니다.”

내 대답에 사부가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흠.”

그러고는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거라.”

갑자기 한 마디 하고는 내 팔뚝을 잡았다. 잡힌 팔뚝으로 슬그머니 파고드는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기운이 내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비슷하지만 달라.”

사부가 내 눈을 바라보며 팔뚝을 놓았다.

“도연아.”

“예, 사부님.”

“네가 익힌 건 나에게 건넨 천해공과는 다른 것이구나.”

“사부님, 그것이….”

순간 말문이 막힌다. 제자가 사부를 속였다. 흑도의 생리를 따지면 이건 배반의 전조로 여겨도 할 말 없는 일이다.

배반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이 흑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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