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준비행(09)
공주부 부도를 둘러싼 외성 밖으로 나와 감강을 따라 남쪽으로 걷는다. 감강은 우도를 거쳐 신풍, 공주부도로 흐른다. 그러니 공주부도에서 우도로 가려면 물길을 거슬러야 한다. 속도를 생각하면 물길이 아닌 육로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공주부도 남쪽, 신풍현과 공주부도를 갈라놓는 삼강수 나루터로 가는 것이다.
삼강수는 감강에 합류하는 물길. 그 탓에 삼강수 하류에 자리 잡은 나루터에서 감강을 오가는 배들도 볼 수 있다. 파룡당 놈들이 감강을 거슬러 오른다 해도 바로 대응 가능한 위치인 것이다.
반 시진을 열심히 걸으니 나루터가 보였다. 그때 농꾼의 음성이 귀를 울렸다.
- 초극 고수 포착.
파룡당 정문을 감시하고 있는 응1의 시야가 떠올랐다.
- 얼굴의 수염, 무장인 협검(狹劍)으로 보아 삼당주인 혈검(穴劍) 곤구여로 추정됩니다.
초극 고수 감별법은 쉽다. 나노 머신이 다루는 모든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 호신강기의 특성. 지향성 전파를 발해서 차단 유무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 데이터에 등록된 무장과 복장 상태를 대조한 결과 절정 무인은 5명, 정예는 30명으로 추정됩니다.
서른여섯의 기마가 포구 쪽이 아니라 부도의 남문으로 향하고 있다. 예상대로 육로를 택한 것이다.
“응1, 표적 변경. 표적은 혈검. 응3, 응1의 변경 전 임무 인계. 응2는 계속 파룡당 전체 감시.”
나루터를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공주 부도까지의 거리를 감안하면 말 타고 일각 좀 넘게 걸릴 것이다.
초극 고수와 그 일행에게 수작을 부려야 하는 상황. 수작을 부리기 전에 초극 고수 눈에 띄어서 좋을 것 없다.
마침 나루터에 배 한 척이 있었다.
“반대편까지 뱃삯이 얼마입니까?”
사공에게 물었다.
“동전 이 문이오.
“언제 출발합니까?”
“못해도 열은 차야 출발하지 않겠소?”
사공이 나룻배를 보며 말했다.
나룻배의 앉아 있는 손님은 여섯, 나 말고도 셋은 더 와야 한다는 소리. 공주부도에서 나루터로 오는 동안 몇 명 스쳐 지나왔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삼십 문 드릴 테니 바로 출발합시다.”
내가 동전을 내밀자 사공이 함박웃음을 보였다.
내가 배에 오르자 사공은 바로 삿대질을 시작했다.
삼강수는 그 폭이 삼십 사오 장쯤 된다. 삿대질 한 번에 일 장은 족히 나가는 탓에 반대편 나루터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내가 배에서 내리자 파룡당 무사 복장을 한 기마 셋이 강 너머 나루터에 당도하는 것이 보였다.
삼당주와 그 일행의 지체 없는 도강을 위해 파룡당에서 한 발 먼저 보낸 놈들이다.
한 놈이 이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빨리 건너오라는 손짓을 했다.
“파룡당 사람들 아녀? 손님도 없이 넘어가게 생겼네.”
사공이 인상을 쓰며 뱃전에서 일어섰다.
“이거 제 탓에 사공이 손해를 보게 생겼습니다.”
“손님 탓이겠소? 다 내 복이 없는 거지.”
“내 기분이 그러니 이거라도 받으시지요.”
은자 한 냥을 사공에게 쥐어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넙죽 고개를 숙이는 사공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살아야 하는데. 일 잘 풀려서 다행히 살아남는다면 나중에 보상을 하면 된다.
내가 탔던 배가 넘어갔지만 서른여섯의 인원과 기마가 한 번에 건너려면 나룻배 하나로는 턱도 없다. 인근 마을의 나룻배까지 동원해서 총 여섯 척의 나룻배가 나루터에 준비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혈검이 이끄는 기마가 도착했다.
나룻배 하나에 여섯 명, 여섯 마리를 태우고 사공들이 삿대질을 시작했다.
여섯 척의 나룻배가 삼강수를 절반쯤 넘자, 나루터에서 준비한 것들을 늘여 놓고 있던 나도 할 일을 시작했다. 먼저 복면으로 얼굴부터 가린 다음 말이다.
납작하고 탄탄한 것이 머리통만한 돌을 양손에 하나씩 잡는다. 그리고 원반던지기 하듯 몸을 두어 바퀴 돌리다가 돌을 순차적으로 놓았다.
촥, 촥, 촥!
수면 위를 튀기며 날아든 돌이 그대로 두 나룻배의 뱃머리를 파고들었다.
콰자작! 콰콱!
굉음과 함께 뱃머리가 작살나며 두 척의 나룻배가 균형을 잃는다.
“뭐냐?”
“암초라도 있었던 거냐?”
사람이 놀라는 것은 어찌 감당할지 몰라도 육중한 말이 놀라는 것은 균형을 잃기 시작한 나룻배의 침몰을 가속화시킨다. 아니 발라당 뒤집어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빠진다!”
“구해!”
그리고 그들이 앞서가던 나룻배 두 척의 갑작스런 침몰에 관심을 둘 때, 나는 다음 돌 2개를 던진다.
촥, 촤촥, 촥!
수면 위로 생기는 물수제비가 세 번째, 네 번째 목표를 향해 징검다리를 그렸다.
콰자작, 콰작!
이번에도 성공. 하지만 나룻배를 박살내는 것은 거기까지다.
“놈!”
제일 뒤의 나룻배에서 호통과 함께 하나의 인영이 솟아올랐다.
볼 것도 없다. 파룡당의 삼당주인 혈검이다.
“과연 초극 고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등평도수(登萍渡水)의 절정 경공으로 수면을 박차며 나를 향해 직진해 오고 있다.
준비된 탄궁(彈弓)을 들고 나도 발을 움직인다. 나노 머신으로 강화된 내 신체가 강력하다지만 나는 근본이 절정 무인. 초극 고수를 상대하기 위한 몇 가지 꼼수가 준비되었다지만 검증된 것은 하나 없는 상태다. 이 상태로 홀로 초극 고수와 정면 대결은 미친 짓.
집중해야 할 때다.
잡생각은 걷어치우고 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내달리며 연사.
팅, 팅, 팅!
한 발에 팔 냥은 너끈히 나가는 철탄들이 물 위를 달리는 혈검을 덮쳐들었다.
카카캉!
검강의 번뜩임 한 번에 그대로 튕겨 난다. 하지만 혈검의 발을 잠시 멈춘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어디서 온 잡놈이냐!”
혈검이 호통을 내지르며 발을 박찼다. 물로 슬며시 빠져들던 혈검의 신형이 다시 힘을 얻고 솟아오른다.
나는 그 사이에 혈검과의 거리를 십 장은 더 벌렸다.
그리고 대답 대신 다시 탄궁을 연사한다.
“흥!”
혈검이 자세를 낮춰 덮쳐드는 철탄을 피하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의 발이 막 수면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주저 없이 물 위로 몸을 던졌다.
“어딜!”
혈검이 지면에 발이 닿기 무섭게 방향을 틀며 내 뒤를 쫓는다.
촤촥!
두 발이 번갈아 수면을 박찼다.
파라락!
피풍의가 날개처럼 펼쳐졌다. 아니 날개나 다름없다. 펼쳐진 피풍의에 주입된 공력의 영향으로 아랫면은 평평하게, 윗면은 굴곡지게. 그 형태의 차이가 베르누이의 법칙을 부르고 양력을 일으킨다.
양력이 몸무게를 지탱하니 수면을 박차는 발은 온전한 추진력이 되어 몸을 가속시키고, 그 가속력은 또 다시 양력을 추가해 몸무게를 지워 버린다.
뒤는 신경 쓰지 않는다. 혈검과 나의 거리는 굳이 뒤돌아 볼 필요도 없다.
응1과 응4, 두 생체 드론이 전하는 정보에 의하면 거리가 좁아지기는커녕 1초에 일 장씩 벌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경공에 간단한 과학 상식을 곁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초극 고수도 따라오기 힘든 강호일절의 경공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니 나는 마음 놓고 원래 목표를, 물에 빠진 파룡당의 절정 무인들을 노리면 된다.
물에 빠진 파룡당 무인들은 말들과 같이 빠졌기에 놀라 날뛰는 말들을 수습하려 노력하고 있다.
쑤시라고 틈을 주는데 그것을 그냥 지나치면 참된 흑도인이 아니다.
팅, 팅, 팅!
연사되는 철탄이 말고삐를 잡고 뭍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머리를, 등판을 노린다.
퍽, 퍽, 팍!
척추가 으스러지고, 머리가 터져 나간다.
“막아!”
“죽어라!”
멀쩡한 두 나룻배에 타고 있던 절정 무인들이 검기와 도기를 뿜으며 달려든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탄궁이 아니고 고수를 잡기 위해 만든 백관(百貫) 탄궁. 통짜 쇠로 만든 활대의 장력이 백 관에 이른다는 괴랄한 무기다.
팅, 팅!
거기에 내가 펼치는 경공의 가속력과 나의 내기가 고스란히 가미된다. 절정 무인이라도 쉽게 막을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힘 받을 때 없는 허공이다.
캉, 캉!
“커헉!”
“큭!”
금속성과 억눌린 신음이 동시에 들린다. 놈들이 철탄을 막아냈지만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런 그들의 코앞까지 달려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탄궁의 시위를 튕겨 철탄을 선물한다.
캉, 카캉!
이번에도 어떻게 막았지만 그뿐이다.
탄궁을 어깨에 걸며 뽑아 든 단검으로 철교아의 기교를 뿌린다.
고수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백관 탄궁의 묵직한 철탄을 두 번이나 받아낸 터라 무기를 든 손이 반쯤 마비된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촤, 촥!
단검이 섬광을 번뜩이고 그 뒤를 따라 피가 흘렀다.
한 놈은 명치를 쑤시고, 한 놈은 멱을 땄다. 둘을 처리하는 순간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멀쩡한 나룻배의 옆면이 눈에 들어온다.
타탓!
두어 번 물을 박차고.
쾅!
나룻배를 지려 밟았다.
나룻배에 올라서는 순간, 피풍의의 각도를 조절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그 추진력을 발끝에 온전히 모아 지려 밟으니, 나무로 만들어진 나룻배 따위가 견딜 리 만무하다.
“어엇!”
“빌어먹을!”
나룻배가 박살나자 배에 있던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빠져든다.
“놈! 서라!”
뒤쫓는 혈검의 노성이 귀를 때렸지만 당연히 무시다.
파룡당 정예들은 나름 수공에 밝은 놈들. 물 위에 머리를 내밀고 있으면 내게 공격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속으로 숨어든다.
멀쩡한 나룻배 위에 있던 놈들도 마찬가지. 바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어깨에 걸친 탄궁을 다시 든다.
팅, 팅, 팅!
빈 나룻배를 스쳐 지나가며 탄궁을 튕긴다. 묵직한 철탄 3개가 절정 무인의 공력을 머금고 날아간다.
콰자작! 콱!
지근거리에서 쏟아진 철탄 공격에 나룻배가 뻥뻥 뚫리며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목표한 절정 무인 다섯 놈을 끝장냈고, 덤으로 나룻배도 박살냈다. 이제 남은 일은 전력을 다해 도망가는 것.
파파파팟!
발이 수면을 격하게 박찬다. 전신을 수면 위로 깔아지듯 낮춘다. 피풍의가 만들어내는 양력이 몸무게를 감당하니, 나는 그저 열심히 발만 놀리면 된다.
“서란 말이다!”
등 뒤에서 울부짖는 혈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삼강수를 따라 십여 리를 달린 다음 발을 멈추었다.
“혈검은?”
내 물음에 바로 혈검을 내려다보는 응1의 시야가 떠올랐다.
혈검은 신풍현 쪽 나루터에서 살아남은 수하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절정 다섯은 확실히 죽였고, 정예 넷은 왜 죽은 거야?”
특별히 파룡당 정예 무사들에 대해 따로 손을 쓴 기억이 없지 않은가.
- 리퍼가 배를 박살내기 위해 던진 돌에 3명이 죽고, 다섯 번째 배가 박살날 때 튄 파편에 1명이 죽었습니다.
응1과 응4, 두 시선으로 전장을 감시한 농꾼이라 바로 답을 내놓는다.
“좀 더 줄여 볼까?”
백 관 탄궁이라면 일류 무인들 저격하기 딱 좋은 무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