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준비행(16)
길안 부도에 자리 잡은 복로방은 파룡당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복로방도 만만찮은 규모군.”
길안부의 땅덩어리가 공주부보다 작지만 속해 있는 현이 여덟 곳으로 인구수로 따지면 공주부 못지않은 곳이다. 복로방은 그런 길안부의 흑도 패권을 움켜쥔 방파니 규모가 작을 수 없다.
그렇게 복로방 총타를 평하며 정문으로 향하자 수문위사들이 나를 맞이한다.
“본방에 용무가 있으십니까?”
일단 비싸 보이는 비단 장포를 걸치고 있으니 대우가 정중하다.
“공주부 청도방에서 온 이도연이라 하오. 귀방의 방주를 뵈려고 하니 기별을 해주시겠소?”
준비해 온 배첩을 꺼냈다. 배첩을 받은 수문위사가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자 하인 한 명이 따라 나왔다.
“객청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객청으로 가 앉았다. 준비된 차를 홀짝이고 있으니 일각도 되지 않아 소식이 왔다.
“복로방주 오군척이네.”
“복로방에서 머리 쓰는 일을 보고 있는 관필이라 하오.”
“청도방의 이도연이라 합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갔다.
“공주부의 새로운 패자인 청도방에서 어쩐 일인가? 길안부와 공주부는 지역이 다르니 큰 문제없으면 얼굴 볼 일 없지 않은가.”
복로방주가 바로 치고 들어왔다. 뭐, 괜한 말로 시간 끄는 것보다 이편이 좋기는 하다.
“본방의 방주께서는 복로방과 이웃의 정을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이웃끼리 정답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
복로방주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슬쩍 옆의 관필을 노려보았다.
“정을 나누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 않소, 청도방은 어떤 방법을 생각하는 건지 듣고 싶소만?”
관필의 말이다.
“여기 구체적인 방법을 논해 놓은 제안서입니다.”
준비해 놓은 것을 다탁 위에 놓았다. 관필이 먼저 그 내용을 살피고는 슬쩍 인상을 쓰며 방주에게 건넸다.
내용을 살핀 복로방주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진다.
“용공산의 금광을 공동 개발한다라? 정을 나누기에는 적절한 방법이기는 하군. 하지만 조건이 터무니없어. 개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인원을 우리가 대는데, 우리 수익이 삼이고 청도방이 칠이라니! 청도방은 지금 우리 복로방과 전쟁을 하자는 건가?”
복로방주의 언성이 높아졌다. 개발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복로방이 부담하고 전체 수익의 삼 할만 가져간다면 간신히 본전치기나 할뿐이다.
고생은 복로방이 다하는데 수익은 청도방이 다 가진다는 소리니 목소리가 높아질 만하다.
“전쟁을 할 생각이라면 이렇게 동업의 제안서를 들고 찾아오지를 않았지요.”
“이 시건방진 어린놈이!”
복로방주가 막 분노를 터트리려는 순간.
“방주, 밥값을 하고 싶소이다만?”
관필이 나섰다.
“후우, 그래. 이런 일은 자네 소관이지.”
복로방주가 인상을 팍 쓰면서 관필에게 손짓을 했다.
“파룡당을 단숨에 박살낸 청도방의 위세가 대단함을 아오. 하지만 복로방은 약하지 않소. 그리고 우리에게는 크나큰 맹방도 있소. 청도방이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관필이 미소를 지었다. 복로방 뒤에 파양호 수채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어지간하면 싸움은 멀리하고 흥정을 가까이 하는 것이 서로 좋지 않겠소?”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 아닙니까?”
관필의 미소에 나도 미소로 응수했다.
“우리 복로방은 파룡당과는 다르오? 모르지 않을 텐데?”
복로방과 파룡당의 차이, 관필이 파양호 수채의 존재를 다시 상기 시킨다.
“이틀 전에 파양호 수채로 사람을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온 것이고.”
내 말에 관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연하다. 파양호 수채에 사람을 보낸 것은 은밀한 일. 그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복로방 고위층에서 정보가 새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파양호 수채가 개입할 것을 알면서 이런 제안서를 내민단 말이오?”
관필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상황을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은 뭔가 자신이 놓치고 있는, 모르는 일이 있다는 소리니, 머리 쓰는 지자(智者)로서 불안해질 만하다.
“이웃의 정을 나누는 일입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어야 하는 일이지요.”
“용공산 금광 개발의 모든 부담을 우리 복로방이 지는 것이, 간신히 본전치기나 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란 말이오?”
“금전적으로는 물론, 맹방과의 신뢰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큰 이득이지요.”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답답함을 참지 못한 복로방주가 다시 언성을 높이려 했지만.
“방주! 믿고 맡겼으면 좀 믿어 주시오!”
“…….”
관필이 버럭 역정을 내자 입을 다물었다.
“설명을 부탁 드려도 되겠소?”
관필이 물었다.
“이때껏 흥국현에 만족하고 있었던 본방입니다. 그런데, 왜 파룡당과 척을 지고 끝까지 갔을까요?”
“파룡당이 청도방을 도발했다는 말이오?”
“자석산 금광을 우리에게 개발시키려 했습니다. 용공산 금광의 존재를 숨기고 말이지요.”
내 말에 관필의 안색이 굳어졌다. 머리 쓰는 인간이라 이야기의 앞뒤가 맞춰진 것이다.
“본방이 본방의 관할 아래 일어나는 일도 모르고 있는 멍청이로 보였나 봅디다. 파룡당도 복로방도!”
“그, 그건….”
“본방은 파룡당의 솔하(率下) 세력이 아닙니다. 용공산 금광이 탐이 나셨으면 그저 본방에 연수 제의를 하셨으면 될 일이지요. 파룡당을 움직여 개수작을 부릴 게 아니라 말입니다.”
자석산 금광을 개발하게 파룡당을 움직인 것이, 파룡당으로 하여금 청도방을 핍박하게 한 것이 복로당임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
“방주, 청도방의 제안을 받아들이시지요.”
하얗게 뜬 얼굴로 관필이 말했다.
“파양호 수채에 사람을 보내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사람이 가서 이야기가 다 되었을 텐데 우리가 저자세로 나갈 이유가 있나?”
청도방에 복로방을 후려칠 명분이 있다 해도 복로방 뒤에 파양호 수채가 있다.
이미 중재 요청을 한 뒤라 파양호 수채는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판국에 청도방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배짱이다.
청도방이 아무리 대단해도 파양호 수채가 중재 요청을 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아, 머리 안 돌아가는 인사 같으니라고.
“고생이 많겠습니다.”
관필을 향해 웃어 준다.
“하아.”
내 말에 관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청도방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위태롭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바로 설명을 바라는 복로방주의 태도에 관필이 슬쩍 내 눈치를 본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소?”
“편하실 대로.”
관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답답한 거 싫어하는 거 잘 알잖아?”
“방주 체면은 차리셔야지요.”
“체면은 무슨! 딱 보니 자네도 청도방의 저치가 말 안 해줬으면 몰랐을 일 같던데. 이제 와서 체면은 무슨. 그냥 여기서 설명해.”
“하아!”
복로방주의 말에 관필은 한숨을 푹 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파양호 수채는 우리가 청도방의 전광석화 같은 행보에 위축되어 파양호 수채의 위명을 빌리려 한다 알고 있습니다. 원래 우리 의도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협상 자리에서 청도방이 자석산 금광과 용공산 금광의 일을 순차적으로 푼다면 파양호 수채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복로방이 파룡당에게 부린 수작질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 수작질에 피해를 입은 것이 청도방이고, 그 때문에 파룡당과 싸운 것이 된다. 즉, 복로방을 후려칠 명분을 청도방이 가진 것이 되는 셈.
파양호 수채는 새로운 이웃에 불안해하는 복로방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알고 보니 청도방은 칼질할 이유가 충분하고 복로방은 칼 맞을 이유가 분명한 분쟁인 것이다.
“젠장, 청도방에 먼저 시비 걸어 놓고 그 뒷감당을 못해 파양호 수채를 불렀다는 걸로 여기겠군.”
복로방주가 인상을 팍 썼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복로방의 요청을 파양호 수채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솔하 세력 주제에 웃전의 위세를 빌리면서 웃전에게 사정을 속인 셈이 되는 겁니다.”
관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 복로방은 돈 몇 푼 아끼려고 파양호 수채를 기만한 꼴이 되는 겁니다.”
“전후 사정을 안 파양호 수채가 그냥 넘어갈 것 같습니까?”
내가 관필의 말에 몇 마디 더 보탠다.
“복로방은 바뀐 사정에 의해 파양호 수채에게 돈은 돈대로 뜯길 거고….”
“신뢰는 신뢰대로 잃겠지요.”
관필이 내 말을 받으며 마무리했다.
“끄응!”
복로방주가 얼굴을 있는 힘껏 구긴다.
“파양호 수채의 인사 앞에서 방주인 사부께서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조약서에 서명하는 대가로 이정도면 우리 청도방이 이웃의 정이 없다 할 정도가 아닐진데 복로방주께서는 생각이 다른 모양입니다?”
앞뒤 사정을 안 파양호 수채에게 뜯길 돈도 돈이지만 신뢰를 잃게 되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파양호 수채가 복로방을 못 믿을 놈이라 여겨 우산을 걷어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이 좀 짧아서 실언을 자주 하네. 하하. 이거 청도방 분들 이웃에 정이 아주 넘치는 분들이구만. 하하. 좋은 이웃을 얻었어.”
복로방주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 보니 우리 복로방에서 금광을 주도하면서 얻는 득이 큰데 이득을 삼 할이나 가져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생각하네. 복로방 몫으로 이 할이 적당하다 보는데, 어떤가?”
이제 흑도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복로방주다.
용공산 금광을 청도방에서 주도할 경우, 있지도 않는 사건을 만들어 그 배후로 복로방을 찍어 복로방이 불가침 조약을 깼다고 우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애초에 금광 운영을 복로방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이 진짜 이웃으로 잘 해보자는 진심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웃의 정을 마다할 수 없지요.”
환한 미소로 응수해 준다.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양보해 준다는데 거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복로방과 사전 조율을 한 덕에 파양호 수채를 끼고 한 상호 불가침 조약은 무난하게 체결되었다.
그렇게 외부 정리가 무난하게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내실을 다지는 것. 그것은 사부와 사제의 몫이니 나는 그 토대나 만들면 된다.
공주 부도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주민들의 그물질에 사람이 먹지 않는 물고기도 많이 잡히고 버려진다.
무슨 소리냐 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 고양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란 말이다. 어디에나 고양이가 있고 고양이가 있어도 그러려니 하는 환경이니 고양이를 안 써먹을 수 없다.
장원 한쪽의 작은 창고 하나를 비웠다. 그리고 천안각(千眼閣)이라 이름 붙였다.
넙대대한 대야를 여럿 준비해 천안각 바닥에 깔아놓고 깨끗한 물과 고양이가 좋아할만한 먹이들을 준비해 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천안각에는 먹이 냄새에 이끌린 고양이들이 득실거리게 되었고 나는 농꾼의 공방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나노 머신들을 먹였다.
그렇게 고양이를 이용해 공주 부도 전역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