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30화 (30/175)

30화

절강행(12)

응 시리즈의 정보를 태호 육가장이 얻었다면, 그래서 나를 제거하기로 했다면 가능성이 있다.

매들을 활용해서 왜구들을 막아낸 다음의 멸왜단이 두려운 것이다.

절강은 중원에서 물산이 제일 풍족한 지역 중 하나. 절강 무림의 힘이 약할 리 없다. 그런 절강 무림의 정파들이 고수를 보태고, 절강 무림의 흑도들이 돈을 보태 중원 전역의 쓸 만한 낭인들을 빨아들여 만든 세력이 멸왜단이다.

지금은 왜구를 후려치는 칼로 절강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지만, 왜구 문제가 해결된다면? 절강 무림의 칼로 절강의 이권을 잠식한 외부 세력에게 겨눠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그 칼이 제일 처음 향하는 곳은 절강 흑도의 이권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태호 육가장이 될 것이 뻔했다.

씨발, 중간에 끼어서 이게 뭔 꼴이야.

“임무 포기하고 그냥 멸왜단 총타로 가지요.”

당장은 피해야 한다.

“왜?”

“부도 사방 성문에 한 명씩, 이쪽에서 올라가는 관도에 한 명씩 총 일곱의 초극 고수가 감지되었습니다. 현무대의 역량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뭐?”

“형님, 혹시 매들이 어디 아픈 거 아닙니까? 이런 일에 초극 고수가 하나둘도 아니고 일곱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생각됩니다만?”

= 상태 확인해.

화인천의 말도 그럴 듯 했다.

- 응 시리즈의 전 기능 문제없습니다.

농꾼이 바로 확인하고 응답한다.

“혹시 우연히 이 근방을 지나가던 초극 고수들 아닐까?”

경철운의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한 시진 정도 기다려 보자.”

진혜예가 결정을 내렸다. 저쪽도 움직이고 있지 않으니 일단 따른다.

반 시진 정도 기다렸을까?

- 숲속 감시 대상들이 움직입니다.

화면이 떴다. 숲속에서 나와 구릉을 넘어온 그들은 우리가 수로를 넘어간 부분에서 멈췄다.

우리를 추적할 수단이 있다는 말.

= 추종향 확인해.

- 심호흡을 해주십시오.

농꾼의 말에 바로 숨을 크게 들이쉰다.

“하아, 후.”

주위의 공기를 열심히 빨아들여 추종향 성분이 흩날리고 있는지 확인한다.

- 추종향 확인되었습니다.

수레에 놓인 상자가 붉게 표시 된다.

“수레 버리고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왜구의 수급을 담은 상자들에 추종향이 묻어 있어요. 숲에 매복하던 자들이 지금 우리를 쫓고 있습니다.”

“젠장.”

“놈들이 왜구들의 수급을 노리는 놈들이라면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 한 마리 내려 보내.

내 문자질에 응1이 벼락 같이 내려왔다. 응1이 상자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들이밀게 시켰다.

“추종향 냄새 기억시켰습니다. 놈들이 왜구들에게 넘기려 한다면 도리어 놈들을 박살낼 수 있는 증거가 될 겁니다.”

대책 없이 물러나는 게 아니라고 진혜예를 설득한다.

“좋아, 그럼 물러난다.”

진혜예가 대답하기 무섭게 나는 수레 위에 놓인 상자 하나를 손으로 쓱 더듬는다.

“뭐 하는 거야?”

스스로 추종향을 바르는 내 모습에 진혜예가 기겁을 했다.

“일곱이 진짜 한패인지 아닌지 확인은 해야지요. 누님이나 인천이 철운이 같은 경우는 현무대로 일 년 이상 돌아다녔으니 상대가 얼굴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셋을 설득한 뒤 헤어졌다.

관도를 따라 내달렸다. 저 멀리 문제의 노인이 보였다.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 응1 노인 육체 스캔. 후각 기관의 움직임에 주의할 것.

내 손에 묻은 추종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해주는 택향제를 흡입했다면, 나에게 반응할 게 뻔했다. 반응하지 않으면 그저 내 착각이고, 반응하면 한패다.

잰걸음으로 노인의 앞을 스윽 지나간다.

- 후각 기관 반응 체크. 추종향에 반응했을 가능성 98%입니다.

농꾼이 바로 알아챘다.

= 철 이온 준비.

“거기 젊은이, 잠시만 멈춰 보겠나?”

노인, 늙은 초극 고수가 말로 나를 붙잡는다.

“무슨 일이신지요? 어르신.”

발을 멈추고 몸을 돌리며 언제든지 한 방 후릴 준비를 하고 묻는다.

“끙차, 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네.”

늙어 기력이 쇠한 척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일어선다.

“예, 어르신.”

이에 나도 예의 바른 젊은이인 척 다가가 거리를 줄인다.

“자네 혹시….”

바로 칼을 빼면서 허리를 긋는다.

캉!

늙다리가 지팡이로 도격을 막는다. 예상했던 일.

“최대 전력!”

빈손을 뿌리며 외쳤다. 뿌려지는 철 이온을 따라 배터리의 모든 전하가 내달린다.

번쩍! 콰콰쾅!

폭음과 함께 땅이 터지며 흙이 튄다. 젠장, 막은 건가?

“이런 썅!”

늙다리 초극 고수가 낭패한 표정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다.

“야, 멸왜단의 애송이! 도대체 뭐….”

그리고 터지는 노성. 하지만 나는 이미 피풍의를 펼친 상태로 십 장  밖을 내달리고 있다.

- 상대가 들고 있던 지팡이가 철제였습니다. 배터리의 전하량 절반이 그쪽으로 전이된 탓에 충분한 위력이….

“배터리나 채워!”

기습이 실패한 이유를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

“거기 안 서!”

노성과 함께 늙다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거리는 이십 장, 60m는 족히 벌어진 상태다.

휘이이잉! 팡!

허공에서 폭죽이 터졌다. 지팡이 든 늙다리가 쓴 것이다.

늙다리가 쫓아오고 있었지만 추종향을 믿는 것인지 거리를 좁히기 위한 전력 질주가 아니었다.

그러니 서로 간의 거리가 죽죽 늘어나고 있다.

- 부도 성문에서 대기 중이던 초극 고수들 폭죽에 반응해서 움직입니다.

가흥부 부도에 배치된 응5의 시야가 펼쳐졌다. 허름한 옷을 입고 촌동네 노친네로 위장하고 있던 늙다리들이 섬전 같이 내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숲속 패거리가 수급 수레를 확보했습니다.

이번에는 응3의 시야다. 왜구들의 수급 강탈이 주목적이었으면 이들의 목적은 달성된 셈.

하지만 철수 신호를 올리지 않는다. 아니 수레는 다른 복면인들에게 옮기도록 하고 초극 고수로 판명된 복면인이 폭죽 터진 방향으로 내달린다.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누군가가 나를 잡기 위해 이들을 동원했다는 소리다.

“응3, 타깃 변경. 수급 수레. 응5는 가흥부 부도 전체 감시.”

나를 잡기 위해 초극 고수 일곱이 모여들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넷이나 내려오고 있었고, 동쪽은 지팡이를 든 노친네, 남쪽은 복면인이다.

- 500m 전방에서 초극 고수 접근 중.

다른 관도에 배치되었던 초극 고수가 서쪽인 전방에서 나를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배터리는?”

- 충전 완료.

뚫고 나간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내달리니 500m의 거리는 숨 몇 번 몰아쉴 시간 만에 사라진다.

“헛!”

기합과 함께 곧게 내뻗는 손이 공간을 짓누르며 닥쳐온다. 맨손, 권각법이 주 무공?

“전력으로!”

마주 뻗는 손을 강철 코팅을 하며 외쳤다.

파지직, 콰콰쾅!

굉음과 함께 뒤로 격하게 튕겨 나가는 상대다.

“빌어…. 절정이라며!”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원망을 토하다 고개를 꺾었다.

“초극 고수 아냐?”

- 맞습니다.

내가 풍기는 기세와 내가 내뻗는 공력에 맞춰서 나를 상대하려다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전격에 쳐 맞고 저 꼴이 난 듯하다.

애초에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건가?

“죽었냐?”

- 기절 상태입니다만, 후속 조치가 필요합니다. 초극 고수의 육체적 강인함을 생각하면 120초 이내에 정신을 차리고, 그 후 15초 이내에 전투 가능 상태가….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사자 뱃속의 벌레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닌가. 품에서 준비된 단환을 꺼내 쓰러진 상대에게 먹였다.

- 마*카*투 베타 활성화 합니다.

농꾼 녀석의 보고를 들으며 다시 발을 놀렸다.

***

“…아우, 조 아우, 눈 좀 떠 봐.”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 귀를 두드리는 목소리. 조 씨 노인은 눈을 떴다.

“평 형님?”

조 씨 노인이 상대를 보고 물었다.

“그래, 알아보겠나?”

평 노인이 물었다.

“끄윽, 평 형님. 아우, 몸 좀 추스릅시다.”

조 노인이 평 노인을 밀어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래, 내 호법을 서지.”

평 노인이 조 노인의 주위를 살폈다.

“하아, 후!”

심호흡을 반복한다. 진기가 일어나 내부를 일순하니 풀려 버린 사지백해에 불끈하고 힘이 돈다.

“다행히 어디 박살난 데는 없네. 하아, 개망신 당할 뻔 했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조 노인이 중얼거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평 노인이 물었다.

“달려드는 기세가 절정을 꽤나 채운 놈이었소. 어디 명문의 제자도 아닌 놈이 서른 안 되어 그 정도면 싹수가 있는 놈 아니오. 그래서 좀 놀아주려 했는데 난데없이 벽력이 칩디다.”

“벽력이 쳐?”

조 노인의 말에 평 노인이 반문했다.

“그거면 조 아우가 방심하고 있었으면 당할 만하네. 나도 거기에 당할 뻔했으니.”

한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둘의 고개가 돌아가니 철제 지팡이를 든 노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 형님!”

“공가야 네가 당할 뻔하다니?”

평 노인이 물었다.

“다짜고짜 칼질을 하기에 이걸로 막았는데, 조 아우 말대로 벽력이 치더군. 아찔했어. 그런데 다행히 이게 벽력을 절반쯤 받아내서 다치진 않았지.”

공 노인이 자신의 무기인 지팡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다치지 않았는데 자네가 놓쳤다고?”

평 노인이 공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날 기습한 칼질에 담긴 힘을 생각하면 항주 부도에서 절정이랍시고 모가지에 힘주고 다니는 놈들 두셋은 그냥 족치겠던데? 게다가 경공은 어떻고! 내가 멀쩡한 걸 확인하기 무섭게 튀는데, 순식간에 횡하고 사라지는 게 뒤쫓아 갈 엄두가 안 나더군.”

공 노인이 그렇게 말한 뒤 평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보라는 거다.

“젠장, 나는 보지도 못했어. 올 시간이 되어서도 안 오기에 길을 거슬러 갔더니, 내가 숨은 곳에서 오 리쯤 떨어진 곳에서 길을 바꿨더군. 내가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듯이 말이야. 추종향을 추적했더니 수레와 당나귀만 있더군.”

평 노인이 투덜거렸다.

“우탁이 딸내미가 임무를 포기해?”

공 노인이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관도를 막고 있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부도에서 성문을 틀어막은 다른 형님들도 감지했다는 소리지요. 매들이 초극 고수를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어요.”

조 노인의 말이다.

“번개와 매를 부리는 놈이라니.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거야?”

평 노인이 투덜거렸다.

“그건 우탁이가 알아낼 일이지. 우탁이 놈 같이 좀 쪼아 보세.”

공 노인의 말이다.

“번개와 매를 부린다. 번개와 매의 주인이라, 벽력응주(霹靂鷹主)! 나쁘지 않은 별호네요.”

조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저저, 어린놈에게 한 방 먹었다고 잽싸게 그놈 띄울 생각을 하나?”

평 노인의 타박에 조 노인이 슬쩍 정색을 한다.

“그럼? 이 나이 먹고 어린놈 쥐어박을 궁리할까요? 잘 키워서 왜구 놈들 족치게 해야죠. 절강이 평화로워야 애들이 돈을 벌죠, 애들이 번 돈으로 노후 생활 하는 게 우립니다.”

***

추종향을 씻어 내고 야산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활성화시킨 마*카*투 베타와 연결했다.

음파 통신을 이용한 연결이라 응 시리즈를 띄워 중계해야 하고, 통신 속도가 느리고 데이터 전송량도 초당 1메가 안팎이라지만 호신강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초극 고수 내의 나노 머신과 바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오가는 대화가 어째 죄다 내게 우호적이다. 거기다가 진혜예와 멸왜단주를 이르는 호칭들을 들으면 아주 친한 사이들 같지 않은가.

“응3, 연결해.”

- 예, 리퍼.

수급 수레는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응3으로 초음파 검사 되지?”

- 예, 리퍼. 가능합니다.

“상자 내용물 확인해.”

응3이 쏘아낸 초음파가 수급 수레를 훑었고, 잠시 후 그 결과가 나왔다.

- 리퍼, 사람 머리로 볼 수 있는 물체가 담긴 상자는 수레에 하나 밖에 없습니다.

대강 어떻게 일이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응2, 불러.”

***

가흥부 해염현의 객잔에 자리를 잡은 지 하루. 응2가 전한 소식을 들은 멸왜단주 진우탁이 달려왔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 해명을 늘어놓았다.

“소환단 백 개를 구하려면 최소 은자 삼십만 냥은 소모되네. 그 돈을 절강 각지에서 추렴해야 되는데, 그냥 내가 전하는 말만 듣고 ‘아 그렇구려. 여기 돈 가져가시오.’ 할 것 같은가? 그만한 돈을 들여도 되는지, 최소한의 확인은 해야 할 것 아닌가.”

매들이 초극 고수를 구별하고 무인들을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검증한 것이다. 그 정도의 훈련이 가능하면 왜선의 식별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절강 인사들의 판단.

“사람이 죽을 뻔했습니다.”

“네 듣기로는 자네는 별 위험 없이 잘 빠져나갔다 들었는데?”

내 정색한 얼굴에 진우탁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봤다.

“적수공권에, 조씨 성을 쓰시는 분.”

“항주 흑도의 거물 중 한 분이시네. 단철귀수(斷鐵鬼手) 조구홍 선배시지. 그분이 왜?”

진우탁의 흑도인에 대한 반응이 어째 이상하다. 보통 정파와 흑도는 어느 한쪽이 체면이나 이권을 건들지만 않으면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사이 아닌가.

물론, 개인적으로 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진우탁의 태도는 그들과 친한 게 당연하다는 태도다.

일단 이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고 당장은 눈앞의 문제에 집중한다.

“가볍게 손을 쓰셨습니다. 그저 쓸 만한 후배의 솜씨를 보실 요량이셨겠지요. 그런데 그때 저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으면 쓰러져 계신 그분 목을 땄겠지요.”

내 말에 진우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게 되었으면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관도 옆 숲에 매복하셨던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계셨던 초극 고수는 어쩌지 못했겠지만, 제가 작정하고 탄궁으로 기습을 했다면 다른 분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섬뜩할 것이다. 까닥 잘못했으면 아군끼리 피를 잔뜩 봤을지도 모를 상황. 아니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원한 관계는 왜구를 근절할 수 있는 패를 지닌 나를 절강에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말씀대로 시험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걸린 것이 작은 것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의 시험은 아니라 봅니다.”

“내가 실수를 했군. 사죄하네.”

진우탁이 머리를 숙였다.

“진심어린 사죄에는 배상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합니다만?”

“무엇을 원하나?”

“평시 독립 작전권을 원합니다!”

왜구에 의해 해란이 일어나면 총타의 지시를 받는 건 당연하지만, 평소에는 내 알아서 움직이겠다는 말이다.

진우탁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가 너무 과한 요구를 한 것인가?

“그게 뭔데?”

아, 이건 현대 용어였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