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40화 (40/175)

40화

절강행(21)

응1이 찾아낸 초극 고수들의 위치를 농꾼이 좌표화해서 표시한다.

나는 그 표시를 따라 펼쳐진 면포 위에 바늘을 꽂았다.

바늘귀에 붉은 수실을 꿰어 놓은 바늘들이라, 면포 위에 꽂으면 영락없는 붉은 점으로 보인다.

종횡으로 정리된 실로 인해 바둑판처럼 나눠진 면포 위에 정신없이 초극 고수들을 표시하다 보니 어느새 육십 개가 넘었다.

= 야, 더 안 불러?

화면으로 좌표가 더 안 뜨기에 농꾼에게 물었다.

- 끝났습니다.

= 오십 넘게 남았잖아?

응1이 찾아낸 항주 부도 내의 초극 고수는 백 명이 훌쩍 넘는다. 그런데 그 절반만 불러주고 끝낸다?

- 1번 추종향을 사용한 자가 마흔 셋, 2번 추종향을 사용한 자가 열여섯입니다.

= 뭐?

1번 추종향은 항주 흑도의 초극 고수들에게 스스로 바르라고 내어 준 것이고, 2번 추종향은 항주에 거주하고 있는 신원 확실한 초극 고수들에게 사용하라고 내어 준 것이다.

한 마디로 항주 부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초극 고수가 쉰아홉이라는 소리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청도방이 자리 잡은 감주부 전체의 초극 고수는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지경이었다.

아니 청도방이 있는 강서성에는 이렇다 할 명문 거파가 없으니 그렇다 치자. 명문 거파가 자리 잡은 지역이라 해도 부 전체가 아닌 부도 한정으로 초극 고수가 열 이상 몰려 있는 것은 뭔가 많이 이상한 일이다.

항주 부도 내에 몰려 있는 초극 고수의 수에 놀라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지금 항주에 있는 초극 고수가 일흔이 안 된다고?”

공청완이 좌표도 위의 초극 고수 수를 대강 셈한 다음 눈을 크게 떴다.

“일흔이 안 된다? 진짜 너무 적군요. 벽력응주. 이거 확실한 건가? 자네 매가 잘못 본 거 아닌가?”

조구흥이 인상을 쓰며 나에게 묻고 있다. 이 인간들 많아서 놀란 게 아니라 적어서 놀라고 있다!

동네가 다르니 기준도 다른 거냐! 그런 거야?

“그전에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항주 흑도의 초극 고수가 전부 몇입니까?”

“항주 부도의 붙박이들만 해도 예순쯤 되지 않나?”

“공 형님, 이런 거는 정확히 말해 줘야 합니다. 항주 흑도에 속한 초극 고수는 나랑 공 형님 포함해서 마흔 셋이고, 항주에 장원을 가진 거상들의 호위로 활약하는 인원이 열하나, 황가의 별장에 몇 달 전부터 황자 하나와 왕부의 왕자 셋이 와 있는 탓에 붙어 있는 고위 무관들이 다섯. 총 쉰아홉이군. 더 있을 수도 있으나 우리가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수가 그 정도이네.”

“후우!”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응1이 파악한 수와 다르지 않다. 항주 흑도에서 일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1번과 2번 추종향이 묻은 인원을, 항주에 거하고 있는 신원 확실한 초극 고수들을 제외하고 표시한 겁니다.”

“그런 거였나?

“항주 붙박이들 빼고 예순이 넘으면 적은 게 아니지.”

내 말에 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군. 매들이 초극 고수를 분간할 수 있다 해도 항주 전체를 아우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줄 알았는데 하루도 안 되서 이게 가능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공청완의 말에 조구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저는 항주 부도에 흑도 분들이 이렇게 몰려 있는 것이 더 신기합니다만?”

항주 흑도의 초극 고수만 마흔 셋이다. 어지간한 지역에서 부(府)의 패자를 자처하는 흑도 방파의 초극 고수가 둘 아니면 셋. 마흔 셋이면 그런 방파가 열 몇 개가 몰려 있다는 소리 아닌가.

“항주는 소주와 더불어 중원 최고의 향락지이네. ‘상유천당하유소항(上有天堂下有溯航-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야. 흑도의 이권이 어마어마하네. 그런 탓에 어지간한 지역에서는 부(府)의 패자를 자처할 세력이라도, 항주에서는 알짜배기 주루와 기루 몇 개 운영하면 유지가 가능해.”

조구흥의 설명이다. 그렇게 한 차례 설명을 끝낸 조구흥이 배시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잇는다.

“멸왜단의 일이 지겨워지면 우리 상화장으로 오는 건 어떤가? 내 알짜 기루 하나 내어 줄 테니 말이야.”

“어허, 조 아우. 세상에 순서가 있는 법이네. 벽력응주가 항주 흑도로 적을 옮긴다면 자네보다는 내 쪽으로 와야지. 젊은 친구가 기루에서 놀면 뼈 삭네. 무인이 육욕(肉慾)을 쫓으면 좋을 일 없어. 경지에 이른 무인은 정신적 쾌락을 추구해야지. 내 도박장 하나 내어 줌세.”

두 노인이 농담인지 영입 제의인지 구분 안 가는 소리들을 한다.

“농담은 그만들 하시고 일을 하지요. 아시다시피 제가 좀 바쁜 사람이라 말입니다.”

“하긴 지금이 왜구가 한참일 때지.”

내 말에 공청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공 형님의 패선방(牌旋幇)이 움직여 주시고, 이쪽은….”

조구흥이 구역을 할당하며 항주 부도 내 초극 고수들의 신원 파악이 시작되었다.

일단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부터 탐색했다. 초극 고수 정도 되면 돈이 없을 수 없다. 방파에 속해 있으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 것이고, 소속이 없다 해도 그 무력을 원하는 후원자들이 붙기 마련이다.

“돈 쓰러 온 것이 확연해 보이는 자들이 쉰둘이네.”

쉰둘의 신원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유명인이 다수 섞여 있는 탓이다. 유명인이 괜히 유명인이겠는가? 들고 다니는 무기와 복장, 외모적 특징으로 알아볼 수 있으니 유명인인 것이다.

물론 진짜 본인인지 확인을 한다. 평소 흠모했다 뭐다 하면서 들어붙어 보는 것이다.

일행이 있는 자들은 객잔 점소이들을 적극 활용했다. 일행들끼리 대화를 자연스레 주워듣게 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신분을 유추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원들을 들이민다. 핑계를 대고 호패를 확인하는 것이다.

유추한 신분과 다를 경우 의심 대상으로 분류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없었다.

“여섯은 탁발수행 중인 승려와 도사들이더군. 관원을 동원해 신분을 확인했네.”

승려와 도사 같이 수행 중인 사람이 아닌 한 초극 고수가 돈 없는 표를 내고 다닌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의심스러운 자들은 이들 셋이군요.”

돈 없는 낭인 행세를 하는 자들이다. 돈 벌려고 낭인을 하는데 초극의 실력으로 돈을 못 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거기다가 초극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일행으로 몰려 있다.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항주에서 낭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단 잡아들이세.”

공청완의 말에 내가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려고 그러나?”

조구흥이 물었다.

“현장에 가보려고요. 이 작자들이 살마제일도와 그 일당이라면 합공이 가능한 놈들일 수도 있습니다.”

합공이 가능한 놈들이면 그냥 초극 고수 셋이라 보면 안 되었다.

“우리가 잡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는군.”

조구흥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합공을 할 줄 아는 놈들이라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까?”

놈들을 놓치게 되면 골 아파지는 점을 들먹였다.

“자네가 매를 이용해 찾아내면 되지 않나?”

공청완의 말이다.

“그래서 가는 겁니다. 도망칠 수 없게 만들어야지요. 여기서는 전령이 오가야 하잖습니까?”

여기서는 전령이 오가는 시간이 소모되니 즉각 대응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니 현장에서 바로 대응하겠다는 말에 공청완은 수긍하는 얼굴이다.

“포위망이 뚫릴 가능성이 있으면 자네는 더욱더 현장에 가서는 안되는 게 아닌가?”

조구흥이 반대했다. 만약 내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멸왜단주에게 할 말이 없게 된다. 아니 죽기라도 한다면 절강 전체의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하니 말이다.

“놈들이 어떻게 움직이든 제가 바로 알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가까이 오면 냅다 튈 겁니다. 제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어떤지 두 분 다 아시지 않습니까.”

도망가는 나를 못 잡은 전적이 있는 둘이다.

“그리고 제가 항주에 계속 묶여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왜구 일은 솔직히 별 걱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두르는 이유는 이번 일로 손에 넣은 소청단 때문이다. 좋은 약을 손에 넣었으니 빨리 먹고 효과 보고 싶은 게 약쟁이의 마음이다.

***

항주는 대운하의 시작점이자 전당강을 끼고 있는 절강 물류의 중심으로 포구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항주 부도 남쪽의 전당강으로 연결되는 포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노인과 걷고 있자니 건장한 칼잡이 노인이 일행에 합류한다.

“벽력응주, 맞지? 공가야, 이렇게 데리고 나오면 우탁이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칼잡이 노인이 나를 향해 아는 척을 한 뒤 공청완을 타박했다.

“다 이유가 있으니 평가 네놈은 그 입 다물어.”

공청완이 뭐라 했지만 칼잡이 평씨 노인은 개의치 않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반갑네, ‘평현’이라 하네. 그때 얼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 보지 못했지?”

항주 칠선 중 한 명인 삭인(削刃) 평현이다. 겉모습만 보면 패도적인 도법을 쓸 것 같은데, 의외로 정교하고 쾌속한 도법을 자랑하는 도객이라고 농꾼이 프로필을 띄운다.

“복면 쓰고 매복하고 계시던 분이시군요. 멸왜단 뇌응대주 이도연입니다.”

“우탁이에게 소환단 백 개를 내놔라 했다면서?”

“예, 그랬지요.”

내 대답에 목함 하나를 건넨다.

“자령단(滋靈丹)이라는 걸세. 소환단보다 못하지는 않을 거야.”

슬쩍 열어 보니 이번에도 하나가 아닌 다섯이다.

이거 이러다가는 멸왜단주에게 받기로 한 소환단 취소하고 딴 걸로 달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른이 주는 거니 후배 염치없지만 냉큼 받겠습니다.”

“살마제일도라는 놈, 놓치지 말라고 주는 거야.”

자칭 살마제일도에게 죽은 세 명 중 한 명이 이 양반 막내 제자다.

“예. 놓치지 않겠습니다.”

내 대답에 어깨를 두드리고는 일행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나와 두 노인은 포구 한쪽에 자리 잡은 ‘뇌운루(雷澐樓)’라는 칠 층 누각에 올랐다.

좌표도를 만들 때 중요 지점으로 삼았던 곳 중 하나다.

전당강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놈들이 숨은 곳이 저쯤이군요.”

농꾼이 만들어내는 증강현실이 시야와 겹쳐든다. 이어서 놈들이 숨은 곳에 붉은 화살표가 뜬다.

살마제일도로 의심되는 세 놈이 머물고 있는 곳은 포구의 짐을 내리는 짐꾼들이 주로 머무는 허름한 객잔.

“‘좌표도’라는 거 없어도 잘 찾는군.”

조구흥이 히죽거렸다.

“항주 흑도 분들이 알아보기 쉬우라고 만든 겁니다.”

대꾸를 하고 있자니 객잔 주위로 포위망을 짜고 있는 인영들이 보였다.

3인 1조로 움직이고 있는 총 네 개 조. 개개인이 초극 고수들이다.

합공을 익혔을지도 모르는 초극 고수 삼 인이 상대인지라 항주 흑도의 핵심 인사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그들이 포위망을 달성하자 평현이 나타났다. 느긋한 걸음으로 객잔 정문을 향하다가 이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초극씩이나 되어 낭인인 척 하는 세 놈! 튀어나와라!”

목청을 돋워 바로 놈들을 부르니, 이에 바로 반응이 왔다.

“과연 땅 위의 천당이라는 항주를 차지하고 있는 흑도답구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왔소?”

대꾸와 동시에 객방의 이 층 창문을 통과한 세 개의 인영이 평현의 앞으로 당당히 내려섰다.

예상과 달리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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