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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45화 (45/175)

45화

절강행(26)

초극에 오른 것은 좋았다. 오감은 물론 기감이 한층 더 예리해졌으며 전신에 힘이 넘친다.

하지만 초극이 됐음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훔치는 것은 여전히 길이 안 보인다.

진우탁에게 공력을 억제한 상태에서의 대련을 청해 그 데이터를 적용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초극이 된 뒤 불편해진 것도 있었다.

“아나!”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온다. 응 시리즈 공유 시야의 해상도가 개판이었다. 거기에 해상도를 올리면 전에 없던 로딩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음파 통신의 한계다. 초당 최고 전송 속도가 테라바이트 단위에서 메가바이트 단위로 떨어졌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어쨌든 예전 수준의 지원을 원한다면 매번 호신강기를 억제해야 했다. 그런데 자연스레 형성되는 호신강기를 억제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이거 어떻게 안 되냐?”

그리고 실전을 치르는 와중에 호신강기를 억제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다.

-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통신 채널 수를 천 단위로 늘려서 데이터를 분할 수신하면 어떻게 되긴 합니다.

초당 전송 속도가 기가바이트만 되어도 응 시리즈를 활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안 그랬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 저야 수신만 하면 되니 채널을 늘려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만, 신호를 송출해야 하는 응 시리즈는 그만한 송신 채널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됩니다.

“응 시리즈 중 하나를 송신 전용으로 돌리면 되는 거 아냐?”

- 음파 통신이기에 송출원 간의 이격 거리가 필요합니다. 송출원이 근접해 있으면 상쇄 현상으로 인해 데이터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알아서 조처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 리퍼께서 안테나를 세우셔야 합니다. 절강 전역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최소 세 곳이 필요합니다.

농꾼의 대답이다.

“안테나? 음파 통신이 안테나와 관계가 있나?”

뭔가 내 상식과 맞지 않는 소리다.

“음파 통신 가능 거리가 1km 이내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안테나 세운다고 음파 통신 가능 거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 통신 채널을 늘리기 위해서 곤충을 사용할 계획입니다. 천 단위에 이르는 곤충들의 정밀한 군중 제어를 위해서는 정확한 공간 좌표가 필요합니다. 세 안테나는 절강 전역의 공간 좌표를 얻기 위한 기준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뭔가 관련 데이터들을 주르륵 나열하면서 이유를 대기 시작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알아보기 힘든 소리들이다.

“절강 전역이라 한정 짓는 것을 보니 지역을 옮기면 그 지역에 또 세워야 된다는 소리지?”

- 현재로는 그렇습니다.

“안테나 설치 뒤에 관리가 필요한 경우냐?”

- 안테나이기에 통짜 금속입니다. 그리고 안테나의 특징상 노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살던 21세기 중반, 금속이 흔하디흔한 시대에도 기간 시설의 고가 금속을 훔쳐 가는 도둑들이 있었다. 내가 사는 여기는 그냥 쇳덩이도 돈이 되는 시대다. 통짜 금속이 사람 없는 곳에 있다면, 그걸 본 쪽이 놔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쉽게 손대지 못하는 곳에 둬야 한다는 거네. 어디 어디야?”

- 항주부와 온주부, 구주부에 설치하시면 됩니다.

항주부는 항주흑도 한 곳에 부탁하면 되겠고, 온주부는 멸왜단 분타에 박아 넣으면 된다. 구주부는 뇌응대 애송이놈들 집을 알아봐야겠다.

“장비는?”

- 공방에서 준비되는 즉시 배송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관련 장비 생산을 승인하시겠습니까?

뭔가 내역을 띄우며 묻는다. 근데 생산 내역이 안테나 세 개만이 아니다. 뭔가 잔뜩 있다.

“뭐가 이렇게 많아?”

- 안테나를 메인으로 절강 곳곳에 중계 장치를 설치해야 합니다. 중계 장치는 생체 드론을 활용하여 설치 가능한 일이니 리퍼는 안테나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근데 이거 만들어 낼 자원은 있냐?”

뭔가 금속만 해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듯 했다.

- 망간 단괴의 수급이 현 상태로만 유지된다면 문제없습니다.

“그쪽으로 진전이 있었어?”

별다른 보고가 없기에 별 진전이 없는 줄 알았다.

- 향유고래 두 개체와 범고래 네 개체에 나노 머신을 투입, 목적에 맞게 변이시켰습니다. 향유고래들이 채집을 담당하고, 범고래들이 수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송을 담당하는 녀석이 공방에 따로 있기는 하지만 날짐승의 수송 용량이라는 것이 뻔한 것이기에 범고래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물길 닿는 데까지다. 공방의 위치는 첩첩산중 아닌가.

“공방까지 육로 운송은?”

- 공방의 기밀 유지를 위해 마*카*원 베타의 숙주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 사제. 고생해라.

***

뇌응대가 만들어지고 삼 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뇌응대가 박살낸 왜선이 스무 척이다. 첫 달에 열 척을 박살냈고, 그 다음 달에는 셋, 둘 해서 다섯 척. 그리고 이번 달에는 지금 포함 다섯 번이나 출동했다.

“이번 달에 잡은 왜선은 선단을 구성한 것이 하나도 없네?”

먼 바다에서 태주부를 향해 부지런히 내달리던 왜선 하나를 박살내고 총타로 돌아왔다.

“죄다 오늘처럼 한 척씩이었죠.”

내 말에 화인천이 답했다.

“뭐가 좀 이상하지 않아? 왜에서 출발할 때 보통 단독으로 출발하지는 않는다 했잖아? 많으면 열 척, 아무리 못해도 세 척은 된다고. 단독으로 찢어져 행동하는 건 근해에 와서고 말이야.”

멸왜단은 왜구를 상대로 수십 년을 싸워 온 곳이다. 그동안 사로잡은 왜구들을 고문해서 알아낸 정보가 적지 않았다.

“우리 절강의 대응이 철저하다고 소문난 거 아닐까요?”

“소문나기에는 빠르지. 한 번 오면 서너 달은 배를 타고 다니며 약탈한다며? 그리고 우리는 소문낼 생존자 따위 남겨 두지도 않았잖아.”

뇌응대는 이때껏 한 놈의 왜구도 놓치지 않았다. 열 마리의 매들이 투입된 이후, 나는 응 시리즈 다섯을 모조리 달고 다녔다.

왜구 놈들 때려잡기 전에 응 시리즈로 총 인원을 파악하고, 때려잡은 후에도 응 시리즈의 데이터를 통해 죽인 놈들 수를 파악했다.

시체가 바다에 빠져 수급을 거두지 못한 놈들은 있어도 응 시리즈의 감시망 아래에서 살아 나간 놈은 없었다.

“절애도 박살낸 게 크지 않았을까요? ‘살마제일도’란 작자 일도 있었잖아요. 항주에서 잡은 놈은 육가장 놈들이 수작부린 가짜였다면서요. 가흥부를 흔들었던 진짜 살마제일도는 살아 있다는 소리인데, 그 작자가 왜구들에게 말을 전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살마제일도가 왜구였으면 그게 타당한 추측이다. 하지만 가흥도 흑도를 후려친 살마제일도는 왜구가 아니라 내가 부린 염가동이다. 그러니 절강의 대응에 관한 일이 살마제일도를 통해 소문이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왜구가 줄어들면 좋은 일이잖아요.”

절강 입장에서야 그렇지. 하지만 항왜 활동으로 명성을 쌓아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 빠른 감이 있다.

못해도 일 년 정도는 왜구들이 꾸준히 와줬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화인천과 헤어지고 내 처소에서 좀 쉬려는 찰나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뇌응대주, 단주님이 찾으십니다.”

“하아! 방금 복귀한 사람을 또 왜?”

그렇게 투덜대면서 단주 집무실로 향했다.

“무슨 일입니까?”

“뇌응대주에게 무슨 볼일이 있겠나. 왜구 문제지.”

내 물음에 진우탁이 인상을 쓰며 답했다.

= 왜선 발견된 거 있냐?

- 현재 감시 범위 안에 왜선의 종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 농꾼에게 묻지만 역시나 문제없다.

“온주부 금향현의 마을이 왜구들에게 약탈당했네.”

= 지도.

내 명에 바로 절강 지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금향현의 위치가 바로 표시된다. 절강의 끝자락에 위치한 지역이다.

“어?”

내 입에서 실성이 흘러나왔다. 금향현은 해안 지역이 아닌 내륙 지역이다.

= 야, 어떻게 된 거야?

항공 정찰로 왜선을 발견하지도 못했는데, 왜구가 내륙까지 기어들어왔다니!

“왜구들이 복건에서 넘어온 것 같은데.”

- 육로를 타고 넘어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진우탁과 농꾼의 대답이 동시에 내 귀를 울렸다.

“산을 타고 육로로 왔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진우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넘어왔답니까?”

“약탈당한 마을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일백이 안 되네.”

“저를 불렀다는 것은 놈들을 찾지 못했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온주 분타는 추종술(追蹤術)을 익힌 사람이 하나도 없답니까? 어떻게 한둘도 아니고 수십 명의 흔적을 놓칠 수 있습니까?”

기가 차서 물었다.

“나도 어이가 없네. 하지만 왜구는 잡아야 하지 않겠나. 벌써 마을 세 개가 당했어.”

“하아.”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대주 대리는 진 부대주에게 맡기지요.”

“혼자 갈 생각인가?”

내 말에 진우탁이 물었다.

“뇌응대가 우르르 몰려갈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혼자 달려가서 후딱 처리할 생각이었다.

“다 데려가게.”

“예?”

진우탁의 말에 나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수십 명이 움직였는데 온주 분타에서 흔적을 찾지 못했어. 분타에 추종술을 익힌 사람이 없다면 온주 무림의 누구라도 나섰을 걸세. 어쨌든 전문가를 동원한 것이 분명하네. 그런데 찾지 못했다는 말 아닌가. 그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잖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소리. 평범한 놈들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나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혼자 가는 것이 편하다는 말입니다.”

“자네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겠다면야 나는 환영할 일이지.”

내 대답에 진우탁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래앉아 있을 생각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경우 어떻게 매를 다뤄야 하는지 남는 사람에게 잘 알려 줘야 하지 않겠나?”

애들 데리고 가서 열심히 가르치라는 말이다.

“하아, 명대로 하지요.”

그렇게 멸왜단주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뇌응대의 거처로 가 출동 준비를 시켰다.

“아니, 들어오기 무섭게 또 나가?”

“왜구 새끼들 사람을 쉬지도 못하게 하네!”

“아나, 좀 쉬나 했더니!”

뇌응대원들이 하나 같이 입을 내밀며 쾌속선 위로 올라탔다.

“대주, 이번에는 몇 척이죠?”

진혜예가 쾌속선 위로 올라타며 물었다.

“온주 분타의 지원 요청이다. 금향현 일대의 마을 세 곳이 약탈당했어.”

“금향현이면 해안 지방이 아닌데요? 거기에 왜구가 나타났단 말입니까?”

온주부 출신인 화인천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복건에서 산을 타고 넘어온 놈들이야. 일백이 안 되는 놈들이 분탕질을 치고 있는데,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더군.”

“하, 이것들 이제 별짓을 다하는군.”

경철운이 인상을 썼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가 다 갈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내 설명에 진혜예가 물었다.

“그냥 혼자 다녀온다 했는데, 전부 데려가라 하시더군.”

내가 멸왜단주 집무실 방향을 가리키며 말하자, 진혜예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나, 이 양반 하나 밖에 없는 딸년 쉬는 걸 못 봐!”

그렇게 투덜거리는 걸로는 분이 안 풀리는지 진혜예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뭐하냐? 해 떨어졌다. 일 조부터 안 튀어 나가?”

“옙!”

“갑니다. 가요!”

진혜예의 호통에 대원들이 목혜를 발에 묶으며 대답했다.

잠시 뒤 절정 무인 세 명을 엔진삼은 쾌속선이 물 위를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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