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54화 (54/175)

54화

절강행(34)

“넘어왔다 보면 되는 거지?”

염가동이 내가 있을 영파부를 향해 예를 올리는 영상을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서렸다.

- 생리적 반응을 보면 마*카*투 알파의 숙주가 하는 행동은 진심으로 보입니다.

농꾼의 분석이다.

“산동에 수확 대상자가 제법 많지?”

- 현행 행정 지역상 산동의 수확 대상자는 태산파, 동곤륜파(東崑崙派), 황보세가, 모용세가와 요동 군부 총 다섯 세력에 분산 배치되어 있습니다.

산동 반도뿐만 아니라 요동 반도도 아우르고 있는 것이 내가 사는 이 시대, 명대의 산동성이다.

“산동의 수확 대상자들은 염가동에게 맡겨야겠군.”

- 마*카*투 알파의 기능으로는 우호적 접촉을 통한 대리 수확은 가능해도 교전을 통한 수확은 무리라 봅니다.

수확 대상자들은 오리지널 나노 머신들을 품은 자들이다. 염가동이 무력으로 수확 대상자들을 제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일단 염가동이 만들어 낼 재력이 태산파 부흥의 핵심이 되어 줄 테니 태산파 쪽 수확은 문제없을 것이고, 태산파와 적대 관계라 볼 수 있는 황보세가를 제외하면 우호적 접촉 가능성은 없지 않잖아.”

- 동곤륜은 대대로 태산파와 경쟁 관계였습니다.

“지금은 같이 망한 사이지. ‘황보세가’라는 공통의 적이 있고 말이야. 어쨌든 염가동에게 산동 수확 대상자들의 명단과 수확에 대한 매뉴얼을 넘겨. 일단 태산파의 수확은 확실히 할 수 있잖아.”

- 수확에 대한 정보는 어느 선까지 허용할 생각입니까?

수확에 대한 진실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태산파를 비롯해 중원 무림의 무공을 훔치기 위해 과거부터 수작을 부려 왔다는 고백이 되니 말이다.

“흠.”

염가동은 나를 멸왜단 사람으로, 진우탁이 비밀리에 키운 고수로 알고 있다. 진우탁에게 말했듯 무공을 완성시키기 운운은 좀 아닌 듯했다. 증강현실에 휘둘린 염가동은 나를 천문위로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아니, 더 그럴듯한가? 천강(天罡)에 오르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한 발악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야.”

이기어(理氣御)가 가능한 천문위를 넘어서는 것이 천강의 경지이다. 어검비행(御劍飛行)이 가능하고 심검을 휘두른다는 전설의 경지.

- 그럼 천강으로 가기 위한 단서를 찾는 행위로 위장하겠습니다.

“염가동의 무공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잘 꼬드겨 봐. 마*카*투 알파의 다른 기능을 개방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내공 수련 시 몰아지경으로만 유도해도 큰 도움이 되니 말이다.

- 예, 리퍼. 그럼 조치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염가동과 관련된 행적은 보안 지정했지?”

- 마*카*투 알파에 배정된 응6을 제외한 외부 대여 개체들은 마*카*투 알파의 숙주를 관측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멸왜단이나 항주 흑도에 염가동의 존재가 드러나 좋을 것이 없기에 행해진 조치다.

- 마*카*투 감마의 숙주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이 끝났는데 계속 수면 상태를 유지시킬 생각이십니까?

아, 경철운을 잊고 있었다. 경철운이 멀쩡하게 회복된 것을 알면 경철하가 또다시 수작을 부릴 위험이 있는 탓에 공식적으로는 의식불명 상태로 만들어 둔 것이다.

뭐 실상은 마*카*투 감마를 이용해 수면 상태를 유지한 것이지만 말이다.

“깨워.”

경철운을 노리던 경철하를 살마제일도가 처리했으니 경철운이 더 이상 의식불명 상태로 있을 필요가 없었다.

잠시 후 화인천이 달려왔다.

“도연 형, 철운 형이 깨어났습니다.”

“그래?”

“형은 철운 형이 깨어났는데 별로 기쁘지 않으신가 봅니다.”

내 무덤덤한 반응에 화인천이 하는 소리다.

“치료는 완벽했어. 그러니 놀라거나 기쁜 일이 아니라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일일 뿐이다.”

“과연 염왕적의(閻王敵醫)!”

내 심드렁한 대꾸에 화인천이 장난스레 추임새를 넣는다.

염왕적의, 이번 온주부 사태 때문에 붙은 새로운 별호다. 평양 분타를 들이친 왜구와의 싸움판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그 뒤처리에 나만 한 공을 세운 사람은 없었다.

다른 의원이 포기한 중상자 십여 명을 살렸으며, 사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사람 삼십여 명을 고쳤다.

그 덕에 명부(冥府)에 속할 사람들마저 다시 데려올 의원, 명부의 왕 염라대왕이 적으로 삼을 의원이란 낯간지러운 별호가 붙은 것이다.

명성을 휘날리기 위해 멸왜단에 온 나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철운의 거처에 도착하니 진혜예와 진우탁이 먼저 와 있는 상태. 경철운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고맙다.”

경철운이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고마우면 나중에 갚아. 달아 놓을 테니.”

“그래.”

내 말에 경철운이 힘없이 웃었다.

“단주께서 와 계신 것을 보니 할 이야기는 벌써 하신 듯 하군요.”

내가 진우탁을 보며 물었다.

“흠흠, 나도 이제 막 눈을 뜬 사람에게 이러고 싶지는 않았네. 하지만 최대한 빨리 해결이 나야 할 문제 아닌가?”

“그건 그렇지요. 대답은 들었습니까?”

진우탁의 말에 내가 물었다.

“아직 묻지도 않았네. 그저 그간 일어난 일을 말했을 뿐이네.”

진우탁의 대답에 나는 경철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짜 왜구가 그랬냐?”

경철운에게 물었다.

“왜구에게 당했다 해도 믿지 않겠지?”

“네 상처, 내가 치료했거든?”

“알면서 굳이 묻는 이유는?”

“너도 알잖아. 우리끼리 알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하아!”

경철운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저는 철산맹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먼저 밝혀 두고 싶군요.”

경철운이 진우탁을 보며 말했다.

“그게 조건인가?”

진우탁이 물었다.

“예.”

경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과는 아예 연을 끊을 생각인가?”

“예.”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진우탁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 등판의 상처를 만든 것은 철산맹의 소맹주 경철하입니다.”

경철운이 증인으로 나서서 철산맹 조지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원래는 이게 가능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절강 무림의 분위기는 철산맹에게 유리했고 제 몫을 못한 멸왜단에게 불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살마제일도 등장이 부른 여파가 절강 무림의 분위기를 바꿨다.

살마제일도가 등장해 ‘살마의 무사는 배신을 용서 않는다.’는 문구를 남겼을 때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다.

철산맹 무인들과 토벌된 반도들을 구분할 줄 모르는 왜구다. 절강 무림의 분열을 바라는 왜구의 수작이다. 이런 반응만이 있었을 뿐이다.

살마제일도에 의한 피해가 누적되자 철산맹은 멸왜단에 협조를 요청했다. 항주 흑도를 후려친, 살마제일도를 자칭한 초극 고수들을 색출한 전적이 있는 나를 원한 것이다.

철산맹에 살마제일도를 보낸 게 나다. 당연히 거부했다. 물론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으니 다른 핑계를 댔다.

온주부에서 함정에 빠져 죽을 뻔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나를 불러내기 위한 왜구들의 함정일 가능성을 이유로 요청을 거부했다.

철산맹은 이번 온주 일에 자신들의 공을 들먹이며 다시 요청했다. 그게 실수였다.

온주 일을 해결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철산맹이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자기들이 친 사고를 수습한 것이지 공이나 은혜로 내세울 일이 아니었다.

철산맹에 대해 절강 무림이 호의적인 분위기로 흐른 것도 누가 문제 삼기 전에 자발적으로 자기 세력의 치부를 밝히고 전력으로 뒷수습을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왜구를 박살낸 새로운 영웅 등장’이라는 사건이 절강 무림의 기댓값을 더하는 데 있어 큰 부분을 차치했다.

그런데 이번 살마제일도가 벌인 난리로 절강 무림은 현실을 인지해야 했다.

철산맹 단독으로는 ‘살마제일도’라는 왜구 하나 잡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온주에서의 활약은 멸왜단이 왜구를 정면에서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대는 실망이 된다. 기대가 만든 호의도 실망과 함께 깎여 나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 차에 온주부의 일을 은혜니 공이니 운운하며 멸왜단에게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니 철산맹에 대한 절강 무림의 분위기는 호의적일 수가 없었다.

거기에 죽다 살아난 경철운의 발언이 더해졌다.

“왜구와의 격전 중 경철하의 암습을 받았다.”

이에 발맞춰 철검화가가 의혹들을 토해냈다.

검원장에서 발견된 통로, 그곳에 사용된 목재들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었다. 이 목재들은 자기와 명검의 고장인 용천 세력 백토검문이 단독으로 구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이 경철하가 경철운을 백토검문과 함께 제거하기 위해 부린 수작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니 살마제일도가 남긴 말도 의심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살마의 무사는 배신을 용서 않는다.’

철산맹 소맹주 경철하가 왜구를 끌어들이고 그 뒤통수를 후려쳐 모든 상황을 일으킨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팽배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경철하의 죽음.

“경철하가 살마제일도에게 죽었다.”

“살마제일도가 경철하를 죽이고 물러났어!”

“경철하가 왜구 놈들을 끌어들이고 뒤통수를 쳤던 거야?”

철산맹을 몰아붙이던 살마제일도가 경철하의 죽음에 만족하고 물러선 것이다.

단순한 의혹으로 끝나지 않을 일이 되었다.

“철산맹주 경구전이 이번 일에 대한 재조사를 명했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지. 철산맹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으면, 철검화가가 철산맹을 향해 검을 뽑아 들 걸.”

“철검화가만 그런가? 온주를 후려친 왜구와 손을 잡았다는 의혹이라고. 멸왜단 온주 평양 분타의 피해를 생각해 봐. 멸왜단 총타도 가만히 있지 않아!”

그렇게 철검화가와 멸왜단이 철산맹을 후려쳐도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같이 가는 것이 좋을 듯한데?”

진우탁이 나를 보고 하는 소리다.

“왜구에게 당한 허리가 아파서 못갑니다.”

철산맹이 재조사한 내용을 밝혔다. 의혹대로 모든 일의 원흉은 소맹주였던 경철하와 그 세력들. 경철하는 죽었다지만 그와 연관된 세력은 남아 있었다.

철산맹주인 경구전이 그들을 제압했다지만, 그 뒤처리는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멸왜단과 철검화가가 그들을 치죄하는 일에 입회하기로 한 것이다.

“같이 가지 않으면 자네 몫 챙겨 주기가 힘든데 말이야.”

그뿐만 아니라 이번 일에 대한 배상을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왜구들의 암습 대상이었던 나와 동행하면 철산맹으로부터 조금 더 많은 배상을 뜯어낼 수 있을지 모르니 저러는 것이다.

“이번처럼 육상으로 접근하는 놈들을 막기 위해 최소한 매 두 마리는 더 필요하다 하셨지 않습니까? 필요 없어진 겁니까?”

절강의 양단 지역에 육로를 감시할 매를 한 마리씩 추가하기로 했다. 솔직히 해상처럼 탁월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초극의 왜구가 기어들어와 지역을 휘젓는 일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명색이 단주인데 휘하 대주 하나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아, 이러려고 단주가 됐나 자괴감이 드는군.”

징징거리는 진우탁을 쫓아내고 집무실 자리에 앉아 있자니 농꾼 녀석의 보고가 귀를 울렸다.

- 리퍼, 안테나가 완성되었습니다.

드디어 저화질 인생에서 벗어나 고화질 인생으로 복귀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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