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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60화 (60/175)

60화

절강행(40)

벼락을 떨구고 반나절이 지났다. 날 밝은지는 오래다. 곤산 산자락 숲속에 땅을 파고 은신처를 만들어 누워 있자니 농꾼의 보고가 올라왔다.

- 화포의 출처를 찾았습니다.

“위치 찍어.”

내 명에 바로 송강부 지도가 펼쳐지고 그 위에 하나의 점이 표시된다.

송강부 부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장원이었다. 선풍장에서 나간 인원이 이곳에서 화포를 수령해 돌아오는 중이란다.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네.”

급하게 화포를 보충하는 일에 사람을 보낸 것으로, 화포의 출처는 곤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짐작하긴 했었다.

“응5를 보내. 그편으로 꿈틀이들 투입해서 장원 구조와 전력 파악하고 도청 감시 들어간다. 장원 내 인원 전원에게 벌레들 붙여서 위치 추적할 수 있게 하고.”

- 예, 리퍼.

선풍장이 박살났다는 소식을 듣고 몸을 피한다면 그 뒤를 슬슬 쫓으면 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여기를 박살내면 그뿐이다.

“육가장 쪽에 파견한 서생원들은 어때?”

- 알파 개체 일곱이 투입되어 무난하게 증식 중입니다.

“육가장과 송강부 장원에 세팅 끝나면 총타에 연락해.”

- 예, 리퍼.

해 떨어지자 화포를 가지러 갔던 놈이 선풍장으로 복귀했고, 응4는 멸왜단 총타로 날아갔다.

응4가 전한 서신에 뇌응대가 쾌속선을 타고 출동했다.

그리고 반 각 뒤, 영파부의 하늘을 나는 응4의 시야에 매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게 걸려들었다. 발목에 서신 통을 찬 것이 전서응이다.

“역시 남아 있는 놈이 있었네?”

놈들의 눈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피식 실소를 흘린 다음 숲속에 만들어 놓은 은신처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슬슬 약속 장소로 나가 봐야 할 시간이었다.

곤산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달렸다. 목적지는 송강부 금산 현도의 북문 쪽에 자리 잡은 사당이다.

- 목적지에 초극 고수 1인 관측 됩니다.

목적지를 십 리 정도 남겨 두고 농꾼이 선행 정찰의 결과를 말한다. 호장우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목적지에 도착해서 사당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호장우가 있었다.

“바쁘신 분을 불러 놓고 제가 늦었습니다.”

“화기를 쓰는 비겁한 것들을 때려잡는 일이라기에 제가 좀 서두른 것뿐입니다.”

내 인사에 호장우가 웃으며 답한 뒤 말을 이었다.

“이 대주. 얼굴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어차피 같이 일을 하다 급박해지면 말을 길게 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예의 차리지 말고 편하게 말 트고 지내자는 말이다. 호장우가 나보다 나이 어린놈도 아니니 내가 손해 볼 건 없다.

“사해는 동도라 했지.”

“그렇게까지 넓게 볼 필요 있나? 우리는 같이 왜구 때려잡는 동도 아닌가.”

내가 바로 말을 편하게 하자 호장우가 미소를 지으며 편하게 말을 받았다.

“근데, 자네 화기에 대한 대처는 있나?”

호장우가 내게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네.”

“나는 있네. 워낙에 화기를 싫어하는지라 이런 쪽으로 생각을 좀 해뒀지.”

그러면서 몇 가지 대처 방안을 말했다. 나는 호장우의 말에 대충 맞장구를 쳐줬다.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것들이다. 왜냐고? 엊그제 호장우가 잠들어 호신강기가 풀렸을 때 내가 송신한 데이터거든.

호장우와 함께 다시 곤산으로 내달렸다. 곤산까지는 백 리가 채 되지 않는 거리. 초극 고수의 주력으로 느긋하게 달려도 반 시진이면 충분했다.

“저기에 화기를 쓰는 비겁한 것들이 몰려 있다는 말이군.”

호장우가 선풍장을 살피며 입가를 말아 올렸다. 슬그머니 살기를 일으키는 꼴이 아무래도 화기를 용납 못 하는 나노 머신의 영향이 큰 것 같다.

- 뇌응대가 출동했다는 소식이 장원에 전해진 듯합니다.

선풍장 안의 인원 배치가 그대로 내 눈에 떠오른다. 초극 고수 넷은 여전히 지하 비밀 통로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1부터 14의 번호를 부여한 화기 사용자들은 불랑기포를 들고 장원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장원 곳곳에는 불랑기포의 자포들이 장전된 상태로 숨겨진 상태.

일류 스물둘, 호원 무사들은 전날과 다르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일류 스물둘에 절정인 화기 사용자가 열넷이야. 그리고 초극이 넷. 화기 사용자들은 왜놈들의 그 지랄 같은 수법을 써서 강기를 휘두를 가능성이 크네. 격검 시 참고하게.”

“초극이 넷에, 꼼수지만 강기를 사용하는 놈들이 열넷이라….”

호장우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둘로 덤벼들어서 이길 계책이라도 있냐는 소리다.

“이곳은 나를 잡기 위해 만든 함정 같은 곳이야.”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리군. 그러면 기습의 효용을 기대하기는 힘든데….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말에 호장우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초극 넷, 강기를 휘두르는 절정 열넷이라지만 그들이 함께 덤빌 일은 없을 걸세. 따로라면 솔직히 초극 넷이라도 자네랑 나라면 상대할 만하지 않겠는가?”

“저들이 한 번에 덤비지 않는다면야 우리 둘이라도 해볼 만하지.”

어지간한 초극 고수 둘은 상대할 자신이 있는 호장우다. 거기에다가 절정일 때도 어지간한 초극을 잡을 실력을 보인 나다. 그런데 지금 내 경지는 그때보다 한 단계 더 올라 초극이니 할 만하다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저들이 함께 덤빌 일이 없다는 것을 어찌 그리 자신하나?”

호장우로서는 묻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초극 넷이 몰려와서 나를 죽였다하면 멸왜단에서 어디를 제일 먼저 의심하겠나?”

“육가장?”

내가 사라지기를 원하는 세력 중 초극 넷을 쉽사리 동원 가능한 곳은 육가장 뿐이다.

“그렇지. 그러니 저들은 화기로 나를 잡고 싶은 거야. 아니 화기가 실패해도 화기의 흔적이 잔뜩 남은 곳에 내 시체를 눕히고 싶은 거지. 육가장은 화기를 쓰는 곳이 아니니 말이야. 그리고 처음부터 초극 넷이 나서면 내가 바로 도망칠 우려도 있지 않나?”

“그러니 처음에는 화기로 공격할 거다?”

“그렇지. 그리고 화기로 공격 받는 도중에 초극 고수들이 나서서 공격할 수는 없을 거고 말이야.”

산탄이 이리저리 터지는데 끼어들어서 무슨 득을 볼까.

“화기를 상대할 자신이 있다 했지?”

“물론이네.”

내 물음에 호장우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네가 앞에서 휘저어 주겠나? 나는 뒤에서 지원하겠네.”

내가 철탄 대신 준비해 놓은 수전과 새총 모양의 소형 탄궁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건?”

“탄궁의 일종이네. 이게 작아 보여도 백 관 철궁보다 강해. 이걸로 화기 사용자들을 침묵시킬 생각이네.”

소형 탄궁의 성능을 호장우는 알지 못해도 그 안의 나노 머신이 알고 있었다.

“믿겠네.”

체내의 나노 머신이 호장우의 무의식을 움직여서 납득시킨 것인지 나를 믿고 그렇게 대답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 나는 자네 지원하기 좋은 자리로 옮기겠네. 일각 뒤에 시작하세.”

내 말에 호장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호장우는 내가 뒤를 받쳐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선풍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 정보 공조는 잘 되고 있지?

그런 호장우를 남겨 두고 발을 옮기던 나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 예, 리퍼.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ZJ-09는 한시적이지만 음파 통신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ZJ-09의 숙주는 제가 전해주는 데이터를 자신의 직감이 알아낸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농꾼의 대답이다. 화기를 사용하는 자들을 때려잡는 일인지라 호장우의 몸속 나노 머신 ZJ-09가 아주 협조적이다.

= 비밀 통로 출입구는?

- 이쪽입니다.

내 물음에 눈 앞으로 화살표가 떠오르며 길 안내를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산속 숲길 옆의 툭 튀어나온 바위다.

= 기관 장치라도 된 건가?

-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힘으로 밀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 소리가 날 수밖에 없겠군.

- 예.

땅속 통로 안은 소리가 울리는 것이 당연지사. 통로 안에 웅크리고 있는 초극 고수 넷에게 들킬 수 있다는 말이다.

= 통로 안의 상황 알 수 있나?

- 예, 리퍼.

장원에 뿌린 꿈틀이만 백 개가 넘는다. 그러니 비밀 통로 안 요소요소에도 꿈틀이가 배치되어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꿈틀이들이 뿌리는 초음파로 통로 안의 상황이 그대로 내게 전달된다.

= 호장우 쪽 영상도 띄우고.

- 예, 리퍼.

숲속에 웅크려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호장우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응 시리즈의 실시간 영상 중계다.

- 시간 되었습니다.

농꾼의 말과 함께 호장우가 몸을 움직였다.

쾅!

굉음과 함께 장원 정문이 날아갔다. 아예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호장우다.

- 왜구의 앞잡이들아! 썩 나와 오라를 받아라!

호장우의 호기 있는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그에 대한 대답이 들려왔다.

쾅!

굉음과 함께 화약이 쏘아낸 강철 화살들이 호장우를 향해 덮쳐들었다.

하지만 호장우는, 아니 그의 체내의 나노 머신은 이미 불랑기포가 발사되기 전에 탄종을 전달 받고 탄도 궤적을 계산해 낸 상태다. 그걸 바탕으로 호장우에게 움직일 궤적을 알려 주니 그걸 자신의 뛰어난 직감으로 받아들인 호장우는 주저 없이 몸을 움직였다.

애꿎은 바닥만이 강철 화살에 박살나고 호장우는 자신의 직감에 더욱 의기양양했다.

- 초극 고수의 단련된 감각에 이런 꼼수가 통할 것 같으냐?

쾅, 콰쾅, 쾅!

호장우의 도발에 네 문의 불랑기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하지만 응 시리즈의 정보 공조를 받는 나노 머신이 인도하는 호장우다.

이리저리 발을 움직여 불랑기포가 만들어 내는 화망을 빠져나가는 모양새가 내가 걱정할 필요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내가 지원하고 있다는 모습은 보여야겠지?”

나는 새총 말고 칼을 뽑았다. 그리고 도강을 일으켜 바위를 겨눴다.

“타깃 3번.”

말과 동시에 푸르도록 시린 궤적이 바위를 난도질한다.

쾅! 콰콰쾅!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굉음이 터지며 화면 한쪽에서 불과 연기가 치솟았다. 3의 숫자를 부여했던 화기 사용자가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화약 천지라 불만 붙여도 터져 나가네. 적당히 시간 봐서 한 놈씩 지워.”

숨겨진 자포들에 나름의 유폭 방지가 되어 있다지만 자포를 쓰기 위해서는 뜯어야 했고, 자포를 불랑기포에 연결하기 이전에 꿈틀이가 불티 하나 만들어 내면 저 꼴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굉음이 터질 때 같이 박살낸 바위의 잔해를 치우며 비밀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지상 위는 농꾼과 호장우에게 맡기고, 나는 초극 고수들을 잡기 위해 비밀 통로 안을 내달렸다.

쾅, 콰콰쾅!

비밀 통로 안은 불랑기포의 발사음과 착탄음에 쉴 사이 없이 울리고 있었다.

- 몇이나 쳐들어온 거야?

- 충격 방향이 일정한 거로 봐서 다수는 아냐?

- 이상하군. 멸왜단을 감시하던 녀석의 말대로라면 뇌응대 애송이들이 다 몰려왔어야 하는 거 아냐?

- 뇌응대 인원이 전원 절정에 열대여섯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인원을 한 방향으로 다 몰아넣는다는 것은 기습의 이점을 버리는 짓인데?

- 목표인 벽력응주는 머리가 안 돌아가는 놈이 아니라 들었는데?

비밀 통로 안의 초극 고수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나는 그들과의 거리를 착실히 줄이고 있었다.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이제 그들의 육성이 들리는 곳까지 거리를 줄였다. 통로를 한 번 꺾기만 하면 네 명의 초극 고수들과 맞닿는 곳이다.

쾅, 콰콰쾅!

평소라면 당장에 들켰을 상황이지만 발포음과 착탄의 충격에 지하 통로 전체가 끊임없이 울리고 흔들리는 와중이니 초극 고수의 예민한 감각도 무용지물.

콰콰콰쾅!

다시 한 번 착탄의 충격이 통로를 뒤흔들 때, 나는 모퉁이를 돌았다.

“누….”

그리고 그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검게 물든 양손을 내뻗었다.

번쩍! 콰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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